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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조선시대 왕실 여성의 출산력 : 시기별 변화추이와 사회문화적 함의

The Fertility of the Royal Women in Joseon Dynasty: Fertility Transition and its Socio-Cultural Explanations

한국학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11, v.34 no.3, pp.259-299
https://doi.org/10.25024/ksq.34.3.201109.259
김지영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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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은 조선시대 특수한 신분계층에 속하면서 비교적 정확한 인구학적 자료들을 남기고 있는 왕실 여성들의 출산력 수준과 변화추이, 그리고 그 변화에 영향을 준 사회문화적 요인을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하여 조선시대 왕실 여성들의 출산력과 왕대별 자녀 수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왕실 출산력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온 왕실 여성의 출산력 감소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우선, 왕실자손이 번성하는 경사를 일컫는 용어인 ‘종사지경(螽斯之慶)’이 왕실이라는 맥락에서 의미하는 바를 고찰하였다. 왕자녀의 탄생은 곧 조선이라는 국가의 번영과도 맞닿아 있었으며, 이는 곧 국가의 경사인 ‘종사지경(宗社之慶)’과 동일시되었다. 두 번째로, 조선시대 왕실족보를 활용하여 왕실 여성들의 자녀출산과 왕실 출산력에 나타난 변화들을 살펴보았다. 조선시대 왕실 여성의 출산력에 변화를 가져온 직접적인 요인은 조선후기 왕비의 출산력 저하와 후궁 수의 감소로 인한 후궁출산력의 저하에 있음이 드러났다. 특히 왕실 여성의 출산력 수준은 인조 이전과 인조 이후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났다. 인조 이후에는 왕비와 후궁소생의 자녀 수가 모두 감소하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왕비소생 자녀 수의 감소폭에 비하여 후궁소생 자녀 수의 감소폭이 눈에 띄게 커졌음을 밝혔다. 세 번째로, 조선시대 왕실 여성들의 출산력 저하에 영향을 준 사회문화적 요인을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유교적 종법질서에 영향을 받은 처첩관념의 심화로 인한 간택후궁 수의 감소와 유교적 예제, 특히 상례와 제례기간 동안의 재계기간 엄수와, 상례와 제례대상자 수의 증가로 인한 재계기간의 증가가 왕실출산력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음을 기술하였다. 왕이라고 하는 한 남성을 대상으로 한 가임기 여성 수의 감소는 자연스럽게 왕실의 자녀 수를 감소시켰다. 또한 예의 실천이 일상생활의 영역까지 심화되면서 왕의 금욕기간이 늘어나게 되면서 한 남성을 공유한 왕실 여성들의 출산력은 자연히 감소하게 되었다. 즉, 왕실 여성의 출산력 저하가 조선사회의 유교화 과정과의 연관성 하에서 해석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하여 조선사회의 유교화 과정은 언뜻 보면 유교적 예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출산행위와 같은 사적인 일상생활의 영역에도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밝혔다.

keywords
출산력(fertility), 유교화(Confucianization), 왕실 여성(royal women), 간택 후궁(Gantaek hugung(揀擇後宮)), 승은후궁(Seungeun hugung(承恩後宮)), 재계(sexual abstinence(齋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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