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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Review on the ‘Yellow Dragon(黃龍)’ as an Epithet for Goguryeo(高句麗)

Korean Studies Quarterly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18, v.41 no.1, pp.63-82
https://doi.org/10.25024/ksq.41.1.201803.63
Kim Jin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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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고구려는 가장 널리 알려진 국호이지만 별칭으로서 ‘황룡’이 보인다. 공식적인 국호가 아닌 별칭으로서 이러한 표기는 타자의 대고구려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에 국내외 자료에 나오는 ‘황룡’의 용례를 정리한 뒤, 그 의미에 대해 검토해보았다. 중국 자료에서 국명으로 쓰인 황룡은 북연과 고구려를 가리키는 두 가지 사례가 있었다. 북연이 황룡국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 치소가 황룡성이기 때문이다. 북연의 별칭으로서 황룡은 남북조뿐만 아니라 고구려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 밖에 북위가 고구려를 가리켜 황룡으로 부른 예가 있었다. 북위는 입조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던 고구려에게 북연을 거울삼아 조심하라는 경고의 의미에서 ‘황룡’이라고 불렀다. 중국 자료 가운데 지명으로 쓰인 ‘황룡’은 92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북연의 수도였던 ‘황룡(조양시)’과 거란 태조가 발해부여부를 개명한 ‘황룡부(농안 일대)’로 구분된다. 국내 자료에 보이는 황룡(국)은 고구려 인근에 있었던 황룡국을 가리키고 있다. 『삼국사기』 단계에서 고구려와 인접한 나라로 등장하는 ‘황룡국’은 『고려사』 단계에서는 용강지역의 ‘황룡성(혹은 황룡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단계에 이르면 유리왕대 황룡국 관련 기록이 용강현 고적조에 실림으로써 동일화된다. 이는 ‘황룡국’이 후대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평양 일대에 전해져오는 기자전승과 맞물려 착종과정을 거쳐 용강지역의 ‘황룡국’으로 단일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황룡은 상서로움의 상징으로서 등장하였다. 광개토왕비와 문무왕릉비에 보이는 황룡은 동명왕 전승과 관련해 나타났다. 특히, 문무왕릉비에서 신라인들은 신라 사방을 가리키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동명왕 전승과 관련하여 인식하였으며 비문의 전체적인 성격과 문맥 속에서 황룡이 갖는 상징성을 함께 고려할 때, 신라를 부각시키는 요소로 등장하였음을 확인하였다.

keywords
Goguryeo, the Northern Yan, the Northern Wei, yellow dragon, other name, 高句麗, 北燕, 北魏, 黃龍, 고구려, 북연, 북위, 황룡,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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