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Detail

Home > Article Detail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3・1 movement as a ‘peaceful revolution’: The condition of violence and nonviolence・disobedience

Korean Studies Quarterly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20, v.43 no.1, pp.7-48
https://doi.org/10.25024/ksq.43.1.202003.7
Hae Dong Yun
  • Downloaded
  • Viewed

Abstract

3・1운동의 폭력성과 관련하여, 우선 일제 군경의 발포가 자행된 시위 가운데 약 85% 정도의 시위가 폭력적인 시위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발포와 폭력성의 상관성이 매우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3・1운동이 기본적으로 비폭력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해명하는 열쇠가 숨어 있다. 3・1운동의 폭력시위 대부분은 일제 군경의 시위 진압 방식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3・1운동 연구에서 그 동안 거의 완전히 간과되어 온 측면은 바로 비타협적인 불복종 행동에 대한 것이다. 대개 평화운동에서의 불복종 행동은 “선에 대한 협력과 악에 대한 비협력”이라는 도덕적인 원칙에서 출발한다. 조선인들은 불의의 법과 제도에 협력할 수 없다는 논리에 따라 일본의 지배를 거부하였다. 폭력시위에 대한 미시분석의 과정에서 그런 불복종의 태도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거의 대부분의 시위는 비폭력시위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틀 이상 지속되는 연속시위의 경우, 폭력시위는 대부분 둘째 날 이후에 나타나고 있다. 발포 등의 잔인한 진압 방식이 동원되거나 그것이 예상되는 경우에 시위가 폭력화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발포가 있는 경우에도 비폭력시위를 유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통해 3・1운동의 주요시위가 불복종의 가치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비폭력과 불복종 행위를 가로지르며 아름답게 직조되었던 3・1운동은 ‘평화적 혁명’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다음 3가지 측면에서 그렇게 인정할 수 있다. 첫째, 3・1운동은 실용적인 운동이었다. 폭력시위의 경우에도 파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다. 둘째, 3・1운동은 도덕적인 운동이었다. 권력의 말살이 아니라, 상대방의 개조를 목적으로 한 운동이었다. 셋째, 3・1운동은 창조적인 운동이었다. 비폭력・불복종운동은 분노를 건설적인 힘으로 전환한다. 3・1운동은 ‘문화를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3・1운동의 힘은 이른바 ‘문화의 힘’이고, 창조적인 힘이다. 3・1운동에 참여했던 조선인들이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3・1운동은 ‘혁명적인 운동’이었고, ‘평화적인 혁명’이었다.

keywords
March 1st Movement, violence, shoot, non‒violent street demonstrations, violent street demonstrations, non‒violence, disobedience, peaceful revolution, 3・1운동, 폭력성, 발포, 비폭력시위, 폭력시위, 비폭력, 불복종, 평화적 혁명


Reference

1

국사편찬위원회 <3・1운동 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samil).

2

「3・1독립선언서」(1919. 3. 1). 국사편찬위원회 <3・1운동 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samil).

3

조성환, 「창간사」. 『光復』 제1권 제1기, 1941. 2,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터베이스> (db.history.go.kr).

4

「建國綱領」(1941. 11). 《신한민보》 1942년 11월 12일자,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5

「大韓民國臨時憲章」(1944. 4. 22).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터베이스>(db.history. go.kr).

6

「釋三一革命精神」. 『나라사랑』 21집, 1975, 146‒150쪽.

7

모한다스 K. 간디 저, 「비폭력은 강자의 무기이다」. 황필호 편역, 『비폭력이란무엇인가』, 종로서적, 1986.

8

마틴 루터 킹 저, 황필호 편역,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 『비폭력이란 무엇인가』, 종로서적, 1986.

9

권보드래, 『3월 1일의 밤』. 돌베개, 2019.

10

김삼웅, 『3・1혁명과 임시정부』. 두레, 2019.

11

김정인 외, 『국내 3・1운동 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2

김진호 외, 『국내 3・1운동 2』.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저, 박홍규 역,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들녘, 2016.

14

이정은, 『3・1독립운동의 지방시위에 관한 연구』. 국학자료원, 2009.

15

한국사연구회, 『3・1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지역적 전개』. 경인문화사, 2019.

16

헨리 데이빗 소로우 저, 강승영 역,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 이레, 1999.

17

황필호 편역, 『비폭력이란 무엇인가』. 종로서적, 1986.

18

김광재, 「3・1운동의 3・1혁명으로서의 헌법사적 재해석」. 전남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논총』 제39권 1호, 2019, 81‒118쪽.

19

김선욱, 「한나 아렌트의 폭력개념」. 『인문학연구』 14호, 2008, 7‒29쪽.

20

김선욱, 「폭력과 평화」. 『동서사상』 15호, 2013, 71‒82쪽.

21

김수용, 「민주헌정의 관점에서 본 대한민국임시정부헌법과 제헌헌법의 관계」. 『헌법학연구』 제25권 1호, 2019, 67‒93쪽.

22

김영범, 「3・1운동에서의 폭력과 그 함의」.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4호(통권 153호), 2018, 67‒104쪽.

23

김정한, 「폭력과 저항」. 『사회와 철학』 21집, 2011, 363‒390쪽.

24

배성준, 「3・1운동의 농민봉기적 양상」. 박헌호・류준필 엮음, 『1919년 3월 1일에 묻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0.

25

백영서, 「연동하는 동아시아와 3・1운동: 계속 학습되는 혁명」. 『창작과비평』 183호, 2019, 51‒56쪽.

26

백영서, 「연동하는 동아시아의 1919: 혁명의 기점으로서의 3・1운동과 5・4운동」. 『개념과 소통』 23호, 2019, 5‒37쪽.

27

윤해동, 「동아시아 근대의 문화론적 전환과 3・1운동」. 『사회와 역사』 121집, 2019, 7‒37쪽.

28

윤해동, 「3・1운동의 폭력과 비폭력 Ⅰ: ‘폭력성’에 대한 거시적 접근」. 『사학연구』 113호, 2019, 503‒545쪽.

29

이문영, 「폭력 개념에 대한 고찰」. 『역사비평』 106호, 2014, 323‒356쪽.

30

이송순, 「경기도의 3・1운동」. 국사편찬위원회 <3・1운동 데이터베이스>(db. history.go.kr/samil).

31

이준식, 「‘운동’인가 ‘혁명’인가: ‘3・1혁명’의 재인식」. 『3・1혁명 95주년 기념 학술회의 자료집』, 2014, 42‒56쪽.

32

정상우, 「3・1운동과 민주공화국의 탄생」. 『헌법학연구』 제25권 1호, 2019, 1‒33쪽.

33

「좌담 3・1운동 100주년이 말하는 것들」. 이기훈 기획,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 창비, 2019, 11‒76쪽.

상단으로 이동

Korean Studies Quart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