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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묵죽은 백 여 년 간 대구에서 어떻게 계속될 수 있었을까?

A Study on the Continuation of Mukjukhwa in the 20th Century in Daegu

한국학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21, v.44 no.3, pp.201-234
https://doi.org/10.25024/ksq.44.3.202109.201
이인숙 (경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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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대구에서 묵죽이 근현대기에 걸쳐 활발하게 이어지게 된 구체적 이유를 3세대에 걸친 직접 사승을 통해 주요작가가 배출되었다는 인적 자원의 측면과 이들의 경제적 기반이자 활동의 장이었던 교육공간이라는 물적 토대에 주목해 살펴보았다. 20세기 대구 전통화단은 1910‒1940년대, 1950‒1960년대, 1970‒1990년대의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세대의 석재(石齋) 서병오(1862‒1936), 2세대의 죽농(竹儂) 서동균(1903‒1978), 3세대의 천석(千石) 박근술(1937‒1993)과 야정(野丁) 서근섭(1946년생) 등이 각 세대를 대표하는 묵죽화가이자 교육자이다. 서병오는 시서화를 전통 교양으로 익힌 위에 이하응, 민영익, 포화 등 난죽화 대가들과 직접 교유한 경험을 ‘석재죽’으로 이루었고, 서병오가 발탁한 수제자 서동균은 20대인 근대기부터 청년서화가로 이름을 알리며 활동했다. 서동균의 제자인 박근술은 대학생 때 입문해 25세 때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입상하며 묵죽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관전에서 인정받았다. 서동균의 아들 서근섭 또한 3세대의 주요작가이다. 이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을 통해 묵죽의 사의(寫意) 정신을 내면화했고 이로 인해 그들의 묵죽이 생명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서병오는 지역 최초의 미술인 단체이자 교육공간인 교남시서화연구회를 1922년 창립해 2세대 작가를 배출함으로서 근대기의 역량을 현대기로 이어지게 하였다. 서동균은 1956년 영남서화원을 창립한 이래 꾸준한 교육활동으로 대구묵죽의 작가층과 애호가층을 크게 넓혔다. 1963년부터 시작된 김만호의 봉강서숙은 이후 30여 년간 대구 묵죽의 저변을 크게 확장했다. 3세대의 주요 교육공간은 박근술의 취묵헌과 서근섭이 1972년 재개원한 영남서화원이다. 1970년대에는 ‘국전작가’들의 교육공간, 대학출신 청년세대의 연구 모임 등이 나타나고 1980년대 이후로는 4세대, 5세대 작가들도 교육공간을 열고 활동한다. 3세대에 걸쳐 역량 높은 작가들이 연이어 배출되며 이들의 활동이 후세대들에게 의욕과 영감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교육공간이라는 생태계의 뒷받침으로 인해 대구의 묵죽이 백여 년간 활발하게 지속될 수 있었다.

keywords
묵죽화, 사군자화, 문인화, 서예, 대구, 20세기, 예술가이자 교육자, 강습소, 회원전, Mukjukhwa, Four Gracious Plants Painting, Literary Painting, Calligraphy, Daegu, 20th Century, Artists as Educators, Private Institute, Exhibition of Me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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