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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Dangun’s Portrait in the Collection of Park Chan‒ik(朴贊翊) Family

Korean Studies Quarterly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18, v.41 no.2, pp.41-64
https://doi.org/10.25024/ksq.41.2.2018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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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단군영정과 관련해서는 그 전래 과정과 화가에 대해 신라의 솔거를 비롯하여 여러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고 있는 단군영정은 한말 이후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것이고, 이 역시 여러 화본이 전하여 그중에서도 어떤 것이 고본(古本)인지, 그 계승 관계는 어떠한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만 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동아일보의 단군영정 현상모집 캠페인의 결과로 대종교에서 봉안했던 단군영정이 공인되게 됨에 따라 이 화본이 공적인 영정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단군유훈(檀君遺訓)’을 쫒겠다는 다짐을 창간호 만평에 실은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초에 단군영정 현상모집 캠페인을 전개했다. 민족의 종조(宗祖)인 단군을 충심으로 모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캠페인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응모된 총 56건의 작품에서 당선작을 내지 못하자 동아일보는 1922년 개천절에 <단군 천제의 영정>이라 하여 대종교에서 봉안하고 있던 전신상의 영정을 공개하였다. 이것이 이후 단군영정의 기준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정의 제작 시기와 과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실하지 못하다. 1922년 개천절을 기념하여 동아일보에서 공개하고 있는 전신상의 영정이 확인되는 가장 오랜 기록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단군영정이 제작되어 대종교나 단군교단에 봉안되었다는 기록이 확인되고, 신앙의 보급과 독립사상의 고취를 위해 보급용으로 인쇄되었다고 하지만, 그 실체는 이제까지 확인되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반신상(사진본)이지만 <박찬익 집안 소장 단군영정>이 가지는 의미는 자못 상당하다. 1917년 개천절을 기념하여 대종교 서도본사(상해)에서 보급용으로 제작하였음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이 단군영정(사진본)으로 우리는 단군영정의 기준작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keywords
단군영정, 박찬익, 동아일보, 대종교, 단군영정 현상모집 캠페인, Dangun portraits, Park Chan‒ik, Dong‒a Ilbo, Daejong‒gyo, The campaign to collect depictions of Dan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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