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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Eo Yunjung’ 1881 Damcho Damcho (談草): Discourse written for the record and Circumstances Surrounding Korea, China, and Japan as Revealed in the Conversations

Korean Studies Quarterly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18, v.41 no.2, pp.303-334
https://doi.org/10.25024/ksq.41.2.201806.303
Kim Gi Ye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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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어윤중의 필담은 1883년에 청(淸)나라의 인사들과 나눈 대담을 기록한 텍스트 3종(種)이 『어윤중전집(魚允中全集)』에 이미 실려 있다. 장서각(藏書閣)에 소장된 「담초(談草)」는 이보다 앞선 1881년에 그가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으로 일본에 파견되어, 일본과 청을 오가면서 청(淸)·일(日) 양국의 외교 담당 인사들과 나누었던 대담을 기록한 것이다. 어윤중은 1881년 7월에 먼저 귀국하기 시작한 조사(朝士)들을 일본에 남아 전송하고 다음 달인 윤7월부터 「담초」를 작성하였다. 1883년에 기술된 「담초」와 필사된 형태를 비교하여 아직 공시(公示) 목적으로 정리된 텍스트가 아님을 밝히고, 「종정연표(從政年表)」에 기록된 「서계(書啓)」의 내용을 근거로 12월에 복명(復命)할 때 공식적으로 제출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어윤중은 청나라의 관료에게 개화 후 일본의 재정 상태, 부국강병을 위한 무력 증강, 실용적인 학문의 효용, 상업 운영 등에 대하여 자문을 구하고 함께 논의하였다. 이에 비해 일본 관료와 나눈 대담은 구포(九浦)에서 일어난 쟁투(爭鬪) 사건, 절영도(絶影島)를 둘러싼 군사적 의견 대립, 동맹 및 세관(稅關)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었다. 일본의 현황에 대하여 청나라의 관료와 주고받은 대담 양상을 통해, 조선과 청나라가 일본을 견제하고 있음을 파악하였다. 청·일 두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과 나눈 대담이 기록된 1881년의 「담초」는, 조선의 눈에 비친 양국의 정세를 비교하기에 좋은 자료가 된다.

keywords
담초, 어윤중, 개화, 사행, 필담, 수신사, 대담, 김윤식, Damcho, Eo Yunjung, Enlightenment, Envoy's visit, Conversation by writing, Korean goodwill delegations to Japan, Conversation, Kim YunShik, 談草, 魚允中, 開化, 使行, 筆談, 修信使, 金允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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