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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The Social Nature of Poor Relief by a Noble Family in the Latter Part of Joseon: With the Cases of the Head Family of the Haenam Yun Clan

Korean Studies Quarterly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20, v.43 no.4, pp.41-74
https://doi.org/10.25024/ksq.43.4.202012.41
Sookja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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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16세기경 특정한 지역에 정착한 사족(士族) 가문 중 그 지역 주민들에게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수백년 동안 세거(世居)하고 있는 사례들이 많다. 본고는 그런 사례 중 하나인 해남윤씨 종가를 통해 그들이 지역민을 위해 실행한 빈민구제의 내용과 그 성격을 규명해보았다. 해남윤씨 3대가 지역민에 대해 베푼 시혜(施惠)로서 잘 알려진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16세기에 윤효정(尹孝貞)이 환곡 빚을 갚지 못해 옥에 갇힌 지역 주민을 대신해 세 차례 빚을 갚아주어 옥에서 풀려나게 했다는 일화이다. 두 번째는 17세기에 윤선도(尹善道)가 간척사업을 통해 지역의 빈민을 구제했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18세기에 윤두서(尹斗緖)가 자염(煮鹽)과 부채탕감을 통해 빈민을 구제한 이야기이다. 이 중 윤효정의 미담은 16세기 초의 행위인데 19세기에 와서 윤씨 집안의 세거지 및 묘역이 있는 마을의 제역(除役)을 위한 명분으로 공적으로 활용되었다. 윤선도의 간척사업에는 대대적인 민인 동원이 있었고, 살아갈 방도를 찾기 위해 역가(役價)를 받을 수 있는 준천(濬川) 공사 등을 자발적으로 찾는 지역민이 있었다. 18세기 초 윤씨가에서 제공한 자염처에서 민인들은 소금을 채취하고, 윤씨 일가와 지역민은 면세의 혜택을 누리고 수익을 공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 지역사회의 사족 가문과 지역민은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시혜를 베풀거나 구제하고 구제받는 관계라기보다, 서로 협력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호혜적 관계를 형성한 측면이 있음을 해남윤씨 사례로 추론할 수 있다.

keywords
빈민구제, 부채탕감, 간척사업, 자염(煮鹽), 호혜(互惠), poor relief, debt relief, reclamation project, saltmaking, mutual bene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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