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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Comparison of Accepting Confucianism and Implementing Ritual Norms in Korea and Vietnam

Korean Studies Quarterly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20, v.43 no.3, pp.193-234
https://doi.org/10.25024/ksq.43.3.202009.193
Han, Jae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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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은 한국과 베트남의 유교를 유교의 수용과 예교의 시행이라는 측면에서 비교한 논문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접해 있다는 점과 그로 인해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많이 비교되곤 한다. 특히 ‘유교’라는 공통의 사상적 기반을 전통시대에 공유했다는 점은 현대까지도 양국의 문화적 동질감을 형성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의 유교는 비슷한 수용 과정을 거친 뒤 지속적으로 통치이념을 제공하고 통치수단으로서 기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면서도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도 분명 존재한다. 그 차이는 유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유교와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서 비롯되었다. 즉, 한국은 중국의 지배로부터 상대적으로 일찍 벗어난 이후 유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자유롭게 이를 활용한 데 비해, 베트남은 이른바 ‘북속’의 지배 논리로 유교를 접했기 때문에 역사의 고비마다 ‘민족’적 거부감에 의한 검열을 피할 수 없었다. 그 결과 한국의 유교는 조선에서 자기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었지만, 베트남의 유교는 심지어 후려에서조차 부평초처럼 역사 위를 맴돌았다. 이러한 현상은 유교국가를 표방했던 조선과 후려에서 예교의 시행에 적용해 살펴보아도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조선은 초기부터 국가 차원에서 구체적인 계획 아래 예치에 필요한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취해 갔던 데 비해, 후려는 성종대에 잠깐 예치에 해당하는 조치들이 취해졌을 뿐 어떤 계획과 지속성도 발휘되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출몰할 뿐이었다. 이는 두 나라의 민간 영역에 실질적 영향을 미쳤던 『가례』에 대한 대응에서도 똑같은 양상을 보인다. 조선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가례』에 대한 연구를 축적했고 그 결과 『가례』를 보완하고 극복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던 데 비해, 후려와 완에서 행해진 『가례』 연구는 절대량에서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축적된 결과물도 산출하지 못한 채 개인적 연구 수준에 머물렀다.

keywords
Confucianism, Ritual Norms, Ritual Politics, Garye, Joseon, Hau Le, 유교(儒敎), 예교(禮敎), 예치(禮治), 가례(家禮), 조선(朝鮮), 후려(後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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