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Detail

Home > Article Detail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A Study of Water Mark Meteorological Records of in the Late Joseon: Sourced from Comprehensive Records of Ritual for Rain

Korean Studies Quarterly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23, v.46 no.1, pp.275-352
https://doi.org/10.25024/ksq.46.1.202303.275
IL GWON KIM
  • Downloaded
  • Viewed

Abstract

본 연구는 외견상 기우제 관련 자료물인 『기우제등록』(6책, 규장각 필사본, 奎12901)이 내용상은 강우 기상을 기록한 역사기상 보고서 성격을 띠는 점에 주목하고서, 여기에 수록된 ‘수표(水標)’ 기록 전체를 전면 추출하고 계량화하여 조선 후기 한양 기준의 강우 추이 변화를 고찰하였다. 기우 일지는 254년간(1636~1889) 1,810건 분량이다. 수표는 세종 23년(1441.양9.3) 처음 설치된 개천수표(청계천 수표교 서쪽 수중)와 한강수표(한강진 제천정 아래 암반 자리)의 앙대 수표를 일컫고, 그 개천과 한강의 유량 변화 관측을 통해 한양 도성의 간접적 강우지표로 활용되었으며, 강우시 기둥에 새긴 척촌의 눈금으로 유량의 수위 증감을 기록하는 방식이다(개천수표 10척=2m, 한강수표 포백척 40척=18.8m). 계측 관리자로 개천수표는 중부수표직과 남부수표직, 한강수표는 한강도승(뒤에는 한강도진별장)이 맡았고, 개천수표 668건과 한강수표 107건의 총 775건(『승정원일기』 60건 포함)을 기록하였다. 이를 놓고 조선 후기의 시기별 강우 추세를 분석하였다. 그중 개천수표 기록은 인조~순조의 만 200년간(1633-1832)에 걸친 대장정의 수표 기상기록인 만큼 분석의 중요성이 크다. 첫째, 수표직 변화에 따라 제1 중부・남부 수표직 병행기(1633~1697의 65년), 제2 중부수표직 운영기(1697~1760의 64년), 제3 수표직 운영기(1760~1832의 73년), 제4 측우기 운영기(1832~1889의 58년)로 시기구분하였다. 둘째, 개천수표의 기상변화 고찰을 위해 시기별 기록빈도 추이와 10년단위 수량 누계 추이로 살피면, 숙종 40년간(1680~1719)이 제1차 강우 최고조기로, 영조 30년간(1750~1779)이 제2차 강우 고조기로 분석되었다. 이 100년간의 강우 추세 변동은 측우기 활용이 없던 시기에 참조되는 유일한 강우지표 기록이라는 점에서 본 수표기록의 높은 역사기상학적 가치를 보여주었다. 이 문제를 강우 강도의 연간 추이로 재차 검증하면, 200년간(1633-1832)은 연평균 234.936cm(=11.75척) /혹은 505.24cm(=25.26척)인데, 숙종 40년간은 약 4배 /혹은 2배 많은 연평균 944.45cm(=47.22척) 값을 보여 최고조기 구간의 강우 강도를 가늠케 하였다. 이 구간에서 연평균 초과의 해로 추출된 15개년(1682, 1684,〔…〕, 1709)은 수해가 의심되는 해여서 향후 기상과 사회 변화 분석에 일정 활용되는 연구효과가 기대된다. 셋째, 한강수표가 기록된 143년간(1636~1778) 분석하면, 숙종 44년간(1679~1722) 구간에 한강 수위가 가장 증대되고, 영조 22년간(1757~1778)에도 다시 높아졌다. 이 분포는 위 개천수표의 시기 변동과 유사한 추세여서 상호 보완하는 지표 관계임을 시사하였다. 숙종 44년간 한강수표 중 연평균 초과의 해로 추출된 16개년(1685, 1687, 〔…〕, 1717)은 한강 범람이나 창일의 해로 접근되고, 그런데 위 개천수표와는 다른 해의 구성이어서 한강 수계 상류의 집중호우 문제도 고려되어야 함을 드러내었다. 넷째, 영조의 측우기 부흥이 『영조실록』을 통해 잘 알려진 바이나, 『기우제등록』에는 그 과정이 좀더 자세하여 사료적 의의가 새로 조망되었다. 특히 영조가 세종 측우기의 우수한 기상과학성을 뒤늦게 알아 즉시 동제 측우기로 부활케 하여, 유량(流量, 흐르는 물) 계측이란 수표의 한계를 보완토록 한 점이 피력되어 있다. 아울러 양궐(경희궁과 창덕궁)에 측우기를 동시 설치한 것이 선행된 풍기대(風旗臺)의 양궐 설치에 준한 점이 밝혀져 있다. 요컨대, 본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영조의 측우기 부활이 우연이 아니라 인조 이래 특히 숙종대의 오랜 수표 계측과 노력을 기반으로 재탄생한 필연의 기상과학사적 성취라 재평가하게 되고, 그에 따라 측우기의 전사(前史)로서 수표 기록의 세계기상사적 의의를 더욱 주목할 필요성이 커졌다.

keywords
기우제등록, 청계천&한강 수표, 측우기, 역사기상학, Kiwooje-dunglok(Ritual for Rain), Soopyo(Water Mark) of Cheonggye Stream and Han River, Chukwookee(Pluviometer), The Study of Historical Meteorology


상단으로 이동

Korean Studies Quart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