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Detail

Home > Article Detail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The March 1st Movement: A National Narrative of Death and Sacrifice

Korean Studies Quarterly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18, v.41 no.4, pp.105-131
https://doi.org/10.25024/ksq.41.4.201812.105
Kim Jeongin
  • Downloaded
  • Viewed

Abstract

3·1 운동으로 수만의 사람들이 검거되었고, 수천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3·1 운동을 기억하고 기념할 때 이 사실은 매우 중요했다. 3·1 운동에서의 죽음과 희생은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간이었다. 이와 같은 3·1 운동에서의 죽음과 희생의 서사는 상징적인 사건과 인물을 통해 완성되었다. 바로 제암리 학살사건과 유관순이다. 제암리 학살사건은 사건 직후 서양인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세계에 3·1 운동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국내외 한국인에게는 일본의 집단학살에 대한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유관순은 해방 직후부터 3·1 운동의 저항과 희생을 상징하는 아이콘을 부상하면서 3·1 운동을 대표하는 열사로 추앙받았다. 그리고 오늘날 제암리 학살과 유관순의 죽음은 민족의 희생을 상징하는 민족서사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제암리 학살과 유관순의 죽음에 대한 민족서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제껏 분석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1919년과 오늘을 잇고자 3·1 운동의 죽음과 희생을 개인화·인간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억과 기념의 현재화·내면화의 단계로 나아가기에 앞서 지난 100년간 제암리 학살 사건과 유관순의 죽음이라는 민족적 희생 서사가 형성되어온 과정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keywords
3·1 운동(March 1st Movement), 죽음(death), 희생(sacrifice), 민족서사(national narrative), 제암리학살사건(the Je’am-ri Massacre), 유관순(Yu Gwan‒sun)


Reference

1

김선진, 『일제의 학살 만행을 고발한다』. 미래문화사, 1983.

2

김윤환 외, 『독립운동총서 5: 의사와 열사들』. 민문고, 1995.

3

제프리 C. 알렉산더 저, 박선웅 역, 『문화사회학』. 한울아카데미, 2007.

4

프랭크 윌리암 스코필드 저, 이항·김재현 엮음, 『기록과 기억을 통해 본 프랭크 스코필드』.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한국고등신학연구원, 2016.

5

김기창, 「교과서에 수록된 유관순 전기문」. 『유관순연구』 17권, 2012, 10쪽.

6

김승태, 「“저팬 애드버타이저(The Japan Advertiser)”의 3·1 운동 관련 보도」. 『한국독립운동사연구』 54권, 2016, 166‒167쪽.

7

김승태, 「3·1 운동과 일본군의 한인 학살」. 『제노사이드와 한국근대』,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09, 109‒140쪽.

8

김승태, 「제암리교회 사건과 서구인들의 반응」. 『한국기독교와 역사』 7권, 1997, 99‒146쪽.

9

김춘식, 「유관순과 잔 다르크 비교 연구」. 『유관순연구』 8권, 2006, 35‒36쪽.

10

박환, 「경기도 수원·화성의 3·1 운동 관련 학살유적과 평화적 활용 방안」. 『근현대전쟁 유적 그리고 평화』, 동북아역사재단, 2011, 162‒195쪽.

11

신효승, 「일제의 ‘제암리 학살 사건’과 미국 선교사 기록의 형성 과정」. 『학림』 31권, 2018, 179‒206쪽.

12

이계형, 「경기도 화성지역 3·1 운동의 연구동향과 과제」. 『한국학논총』 50권, 2018, 479‒515쪽.

13

이덕주·김형석, 「3·1 운동과 제암리사건」. 『한국기독교와 역사』 7권, 1997, 39‒71쪽.

14

임명순, 「유관순 열사의 아이콘」. 『유관순연구』 22권, 2017, 43‒75쪽.

15

임종명, 「설립 초기 대한민국의 3·1 운동 전용·전유」. 『역사문제연구』 22권 2호, 2009, 227‒256쪽.

16

정상우, 「3·1 운동의 표상 ‘유관순’의 발굴」. 『역사와현실』 74호, 2009, 235‒263쪽.

17

정종현, 「유관순 표상의 창출과 전승」. 『1919년 3월 1일에 묻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9, 730‒776쪽.

상단으로 이동

Korean Studies Quart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