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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SSN 2671-8197
  • E-ISSN 2733-936X

Aspects of the Propagation of Kurozumikyo to Jose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Korean Studies Quarterly / Korean Studies Quarterly, (P)2671-8197; (E)2733-936X
2024, v.47 no.1, pp.339-376
Dongwoo-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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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에서 조선에서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포교에 매우 적극적이었던 천리교나 신리교 등과 다르게 조선인 포교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흑주교의 조선 포교 양상에 대해 살펴봤다. 이를 위해 흑주교 조선 포교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검토하면서 이들의 조선 포교 양상을 이해하고, 나아가 이들의 교리적 특성이 조선 포교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고찰했다. 흑주교의 조선 포교는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기는 1890년부터 러일전쟁까지, 2기는 러일전쟁부터 1926년 조선 포교 공식화 이전, 3기는 1926년 조선포교가 공식화된 이후이다. 이 과정에서 흑주교는 조선 포교 공식화 이전에 마지 나이를 더 중시하다가 1926년 공식적으로 포교를 개시한 뒤에는 강연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천황이 선포한 「국민정신 작흥에 관한 조서」의 영향이 크며, 흑주교는 ‘국민정신 작흥’을 국체론과 연동하고, 또한 국체론의 근본정신이 흑주교에 있다는 방식의 인식을 형성하면서 설교와 강연을 해 나간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흑주교는 근대 다른 교파신도와 전혀 다른 유형의 ‘종교관’을 형성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곧 기존 연구에서 교파신도가 조선 포교를 통해 ‘민족종교’의 틀을 깨고 ‘세계종교’로 나아가려 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흑주교는 자신들의 세력을 외부로 확장하면 할수록 오히려 일본인을 중심으로 하는 ‘국교’의 의미를 더 강조하는 독특한 종교관을 형성해 갔다.

keywords
흑주교, 조선 포교, 안경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사회진화론, Kurozumikyo, propagation to Joseon, Ahn Gyeongsoo, Amaterasu Ōmikami, theory of social 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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