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738-3188
요괴 만화로 잘 알려진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는 1943년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 라바울에서 폭격으로 왼쪽 팔을 절단하고 상이군인으로 제대했다. 1922년생인 그는 전쟁에서 승리를 경험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패배와 죽음을 목전에 둔 전쟁터로 파병되었다. 군국주의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 전쟁터에서는 누구보다 많이 죽어야 했던 세대로서 전중 세대는 전쟁의 허무함을 체험해야 했다. 미즈키는 한국에도 번역된 <전원 옥쇄하라!>와 <일본 현대사>, <라바울 전기>를 비롯하여 단편 <패주기(敗走記)>, <고낭(姑娘)> 등을 통해 전쟁 서사를 여러 차례 발표했다. 그는 쇼와 전쟁의 포스트메모리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로서 위안소의 ‘위안부’들이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동원된 자들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는 군대의 규범이 군인다움을 전혀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비판한다. 신병은 괴롭힘의 대상이고, 이유 없는 체벌이 가해진다. 무의미한 죽음을 강요당하는 옥쇄를 탈낭만화하고, 일본 군대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여 죽음을 미화하는 서사들과 차별화시켰다. 상이군인으로서 미즈키는 전쟁의 비참함을 전달하는 ‘영웅’이 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만화를 통해서 군대의 모순을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메모리는 전쟁 기억을 다시 쓰는 작업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전쟁에 대한 미즈키의 기억은 라바울 선주민과의 유대로 마무리된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일본인들이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했다면, 미즈키는 라바울의 선주민들과의 관계로 전쟁의 기억을 대리보충한다. 선주민들과의 관계를 통해 전쟁으로 인한 손상을 정상화・혼종화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