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대중예술 연구에 이르게 된 과정을 회고하는 글이다. 우선 어릴 적 문화적 환경과 대학 시절의 예술 관련 체험, 그리고 진보적 예술문화운동의 경험을 서술했다. 나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에 이르는 예술문화운동을 경험하면서 많은 학술적 아이디어와 태도를 습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199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나의 대중예술 연구에서 독특한 연구방법론을 정립하는 데에 기초가 되었다. 이 글은 나의 연구가 형성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밝힘으로써, 대중예술 연구방법론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성찰을 유도한다.
본고는 2000년대 이후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발생한 밈(meme)과 신조어의 활용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밈과 신조어를 통해서 구성되는 언어사용자들의 정치적 무의식을 간접적으로나마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며, 크게는 단순한 언어사용 이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형성된 압축적인 세계인식을 체화하거나 재인식하는 이야기 형식으로 살피는 것이다. 우선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밈의 발생과 유포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속감을 획득하기 위한 증표처럼 활용된다. 타인과의 의도적인 구분짓기를 수행하는 다양한 밈의 활용은 그 의도를 떠나서 언어적 효능감에만 집중함으로써 혐오 표현들을 정당화하게 된다. 모든 것을 유머의 효과로 환원하는 것만이 부족주의의 소속감을 획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언어적 수단이다. 타인을 향한 구분짓기와 손쉬운 대상화를 통해서 인터넷문화는 편의적인 대안세계의 위상만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타인에 대한 구별짓기만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비하를 통해서 타인에 대한 적극적인 비하를 정당화하는 경향도 생겨난다. ‘슬픈 개구리 페페’를 중심으로, 루저(loser)로서의 자기정체성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을 포함한 커뮤니티 이용자들 모두를 사회적인 아웃사이더이자 패배자로 규정하는 포괄적인 밈이 활용된다. 이러한 시도들은 대안세계에서의 정서적인 평등주의를 통해서 스스로를 위안하는 마조히즘적 제스쳐다. 다른 한편으로 남초 커뮤니티의 ‘우리형’ 문화는 현실세계에서의 능력주의 성장서사에 대한 대립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활용되는 밈이다. 우리형은 전통적인 아버지와 달리 친근하고 권위적이지 않은 유머능력의 소유자로서, 인터넷문화에 새롭게 등장한 대타자의 위상을 가진다. 랩퍼 ‘염따’의 경우처럼 많은 팬덤이 그를 통해서 오히려 능력주의 시대에 반대되는 성공사례를 구성하며 위임된 성장서사를 향유한다. 불확실하고 힘든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수많은 우리형들에 대한 감정적 투사를 통해서 빠르고 편하게 성공하는 편의적인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양상이다. 인터넷 부족주의와 그 안에서 형성된 과도한 소속감, 그리고 현실세계에 대한 방어적 환상들이 모든 ‘실패’와 ‘손해’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기제처럼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일련의 밈의 활용과 그에 따라 구성되는 대안 세계의 이야기 구조는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실패와 손해를 미리 방어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인터넷 세대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이 논문은 2000년대 한국 로맨스소설에 나타난 여성 주체의 새로운 표상을 확인하고 당대 여성의 욕망을 분석하였다. 2000년대 여성의 새로운 주체에 대한 연구는 그간 칙릿소설이나 텔레비전드라마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이 연구들은 신자유주의로의 변화 속에 나타난 주체적 여성들이 가부장제와의 갈등 속에서 주체성이 왜곡되거나 좌절되는 모습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여성 중심의 하위문화인 로맨스소설에는 주류 담론에서 전면적으로 형상화되지 못했던 여성의 솔직한 판타지가 그려졌다. 그래서 이 논문에서는 2000년대 인기 로맨스소설을 분석하였다. 물론 여성 하위문화에 나타난 특징이 당대의 보편적 욕망과 만나는 지점을 확인하기 위해, 로맨스소설 중에서도 텔레비전드라마로 각색되어 큰 인기를 얻은 두 작품인 지수현의 『내 이름은 김삼순』과 현고운의 『1%의 어떤 것』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2000년대 한국 로맨스소설 속 여성 주체는 신자유주의 자기계발 담론에서 권장했던 여성 주체의 모습을 획득하지 못한 자기관리 실패자로 그려졌다. 그들은 평범함을 넘어선 낙오자이다.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한 여성성을 획득하지 못한 여성이다. 하지만 로맨스소설 속 승리자는 이런 실패자들이었다. 비록 그녀는 자기관리에는 실패했지만, 다른 능력을 가졌다. 여주인공의 능력은 인간을 믿고 진정한 사랑을 실천한다는 점이다. 사랑에 대한 신뢰로 여주인공은 상처 받은 상류층 남성을 치유하고 변화시켰다. 여성을 통해 남성이 구원받는 것이다. 이를 통해 로맨스 여주인공은 관계 형성의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더 나아가 로맨스소설은 기존의 신데렐라 서사를 역전시키고 중산층의 삶의 윤리를 부각시켰다. 이는 당대 사회의 주류 담론인 신자유주의와 성차별주의에 저항하는 여성 주체의 욕망을 보여주었다. 2000년대 로맨스소설은 신자유주의 생존경쟁의 담론 속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간의 가치와 중산층의 윤리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을 담아내었다.
This paper identified a new representation of female subjects in Korean romance novels in the 2000s and analyzed the desires of women at the time. Research on women’s new subjects in the 2000s has been studied focusing on chick-lit and TV dramas. These studies focused on the distortion or frustration of subjectivity of women who appeared in the conflict with the patriarchal system in the change to neoliberalism. However, the romance novel, a subculture centered on women, depicts a woman’s honest fantasy that was not fully embodied in the mainstream discourse. Therefore, this paper analyzed popular romance novels in the 2000s. Of course, in order to identify the point where the characteristics of women’s subculture meet the general desires of the time, it was analyzed focusing on Ji Soohyeon’s My Name is Kim Sam-soon and Hyun Gowoon’s Something About 1% that gained great popularity among romance novels. In the 2000s, the female subject in Korean romance novels was portrayed as a failure of self management recommended in the neoliberal self-development discourse. They are out-of-the-way losers. They are a pathetic woman who has not acquired the perfect femininity demanded by society of their time. However, the winners of romance novels were these failures. Although she failed to manage herself, she had different abilities. The romance heroine’s ability is to trust humans and practice true love. With trust in love, the heroine healed and changed an upper class man who was hurted by someone. Men are saved through women. Through this, the romance heroine becomes the subject of relationship. Moreover, romance novels reversed the typical Cinderella narrative and highlighted the ethics of life of the middle class. This showed the desire of female subjects to resist neoliberalism and sexism, which are mainstream discourses in contemporary society. In the 2000s, romance novels portrayed human values, ethics, and cultural diversity that survived to the end in the discourse of neoliberal competition for survival.
이 논문의 목적은 SF영화가 재현하는 기계—인간의 특성에 주목하여 미래 사회에 필요한 윤리적 주체성의 본질을 살펴보는데 있다. 인간 주체의 대타항적 존재로 이해되었던 시각에서 벗어나 기계—인간의 (비)인간성의 면모를 살핀다면 창조주인 인간의 본성뿐 아니라 근원적으로 지녀야 할 인간성의 차원 역시 기계—인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성’의 의미가 지닌 허구적 실체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안적 제시로 순수한 주체적 형상을 살피고자 한다.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축적된 기억이나 풍요로운 내적 삶이 있다는 환상은 오히려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를 구성하는 배경과 내적 삶—내용의 허울을 버리고 ‘텅 빈 상태’에 이르렀을 때 오히려 순수한 주체의 지위에 이를 수 있다. 이를 살피기 위해 ‘기억’의 정체성 구성과 연관되는 관계를 살피고자 한다. 기억은 기계—인간의 인공적 성격과 결합될 때 다양한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신체의 소멸성에 갇힌 기계—인간이 실존적으로 경험한 과거로 재현되거나 이식된 기억이 실체적 정체성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야기하기도 한다. ‘기억’은 소멸되는 순간 겪는 ‘환상’으로도 재현되면서 인간성을 드러내는 감정들이 정서, 본능, 욕망으로 연결되는 전일적 대상임을 살펴볼 수 있다. 이상의 연구는 SF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대타항적 존재로 구현되는 ‘기계—인간’의 성격과 그 의미를 고찰하는 일은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간의 자질로 주체성을 갖춰야 함을 의미한다. 순수한 주체의 형상을 한 기계—인간의 형상은 비인간성으로 표상되는 기존의 시각을 넘어서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새롭게 바라봐야 하는 주제이다. 인간과 기계—인간의 상동성을 대조하는 일이야말로 확장된 인간성의 의의를 살피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웹툰 <브이>와 <캉타우>를 통해 슈퍼로봇의 신체에 대한 각각의 소년이 가지는 두 개의 소망 성취의 판타지가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두 신체에 기입된 세대 구성의 특성을 파악한다. <캉타우>와 <브이>는 과학입국과 기술발전에 대한 열망이 컸던 1970년대에 두 달의 간격을 두고 공개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 <철인 캉타우>와 극장용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의 후속작이다. 이 논문은 1976년의 남성성의 권능을 소망한 슈퍼 로봇에 대한 열망이 2000년대 이후에 시대를 달리하며 부활해 여전히 작동되고 있는 세태를, “녹슨 신체의 나르시시즘적 열망”과 “육화된 신체의 주체로의 열망을 지닌 뉴타입”으로 해석했다. 우선 1976년의 <로보트 태권브이>와의 조우를 통해 과거의 영광과 오늘날의 초라한 자신을 대면하게 되는 웹툰<브이>의 훈이는 남성성을 거세당한 존재로서 “녹슨 신체의 나르시시즘적 열망”을 드러낸다. 이는 “라떼(나 때)는 말이야”로 풍자되는 86세대의 자기환영에 불과하다. 결국 웹툰 <브이>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1976년’은 나르시스트적 주체인 훈이가 집착하는 과거이자 상상계에 존재하는 이상적 자아상이며, 일종의 퇴행이다. 반면, 웹툰 <캉타우>의 강현은 “육화된 신체의 주체로의 열망”을 표상한다. 아버지의 세계를 ‘파괴’하고 ‘복원’함으로써 그가 형상화하고자 한 새로운 세계의 모습은 연대와 보살핌의 윤리가 보장되는 세계로의 구축이었다. <캉타우>의 강현은 이전과 달리 영웅의 자질도 바꾸었고, 그 성격마저 전환하며 새로운 시대의 주체(소년)의 탄생을 예고하며, 곧 Z세대의 힘의 역능을 표상한다. 이처럼 웹툰 <브이>(2007)와 <캉타우>(2018)의 로봇에 기입된 신체는 포스트 바디의 등장과 함께 한국 SF만화(웹툰)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여성범죄라는 범주가 여성을 성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1930년대 전후로 여성에 대한 지식이 구성되는 과정을 통해 확인해 보았다. 본부살해범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간의 여성범죄에 관한 연구에 기반하면서도, 여성범죄가 본부살해에 대한 논의로 한정되는 이해 방식이 만들어내는 논의의 누락 지점으로 시야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본고에서는 여성의 성과 성적 욕망을 질병이자 범죄의 근원으로 여기는 인식에 입각한 여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의사와 법률가로 대표되는 전문가에 의한 여성 인식이 형성되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구체적으로 범죄학과의 연계성 속에서 구축되었던 성학이 범죄학과의 연관성을 누락한 형태로 소개되었던 사정을 환기하고, 식민지기 조선 사회에 성학의 소개가 미친 영향을 인쇄 매체를 통해 확산되었던 성지식의 대중화 경향 속에서 확인해보았다. 의학적이고 법률적인 차원의 작업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만들어낸 변화와 그것이 야기한 효과 즉 인식적 전환의 맥락을 재구하는 작업을 통해, 여성범죄란 근대적 여성 이해가 여성의 성과 욕망을 조절하고 규율하기 위한 메커니즘 속에서 ‘발명’된 통치술의 영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It was confirmed through the process of forming knowledge about women around the 1930s that women’s crimes were created in the process of understanding women sexually. Based on research on women’s crimes centered on husbands murderers, I tried to expand my perspective to the point of omission in the discussion created by the way of understanding that women’s crimes are limited to the discussion of husbands murder. In this paper, the understanding of women’s crimes based on the recognition that women’s sexuality and sexual desire as a disease and a source of crime is ‘made’ in the process of expanding the understanding of women by experts represented by doctors and lawyers. Specifically, it reminds us of the situation in which sexuality, which had been built in connection with the Department of Criminology, was introduced in the form of omitting the connection with the Department of Criminology, and I checked that the popularization of sexual knowledge that was spread through print media to reflect the influence of the introduction of sexology on Joseon society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rough the work of reconstructing the context of the changes that medical and legal work has made in the name of science and the effects it caused, that is, the cognitive transformation, women’s crime is a mechanism for modern women’s understanding to regulate and regulate women’s sexuality and desires.
이 글은 <케이프 피어>의 리메이크 서사와 디자인, 음악의 상호텍스트성이 원작의 1962년에서 리메이크의 1991년으로 전환하는 새 시대의 문화적 경험을 재창조하고, 새 텍스트의 정체성 유지를 보장함을 추론하는 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리메이크 서사는 미적 판단의 다양성을 보이는 인물들이 눈길을 끈다. 먼저, 미적 대상을 직감으로 판단하는 미의식을 함축하는 ‘취미 판단’에 해당하는 인물은 성적 일탈을 일삼는 샘과 로리다. 다음으로, 미의식에 참여하여 대상에 대한 표현 의미를 판단하는 ‘이해 판단’에 해당하는 인물은 샘 때문에 상실감에 빠지고 반항심이 생기는(케이디 때문에 동질감을 느끼고 배신감을 안기는) 레이와 대니다. 끝으로, 미의식에 부수하여 대상에 대한 미적 가치를 판단자의 가치관으로 판단하는 ‘가치 판단’에 해당하는 인물은 샘을 피고로 한 최후의 심판을 주도하는 케이디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리메이크에서 미적 판단의 다양성이 드러나는 문화적 경험의 서사를 특유의 영화관으로 구현했다. 첫째, 리메이크 서사는 가정 해체와 가족 파괴라는 무질서, 불협화음을 통해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관념에 뿌리박힌 자유와 평등의 이면, 즉 계급과 젠더의 차별상을 노출했다. 둘째, 솔 바스와 일레인 바스의 타이틀 시퀀스를 중심으로 한 리메이크 디자인은 영화 서사와 감독 의도, 연출 방향에 맞춘 상징적 이미지와 절제된 색조, 애니메이션 기법 등으로 은유적 표현을 하면서 영화 음악의 비중까지 고려했다. 셋째, 엘머 번스타인의 리메이크 음악은 버나드 허먼의 원곡을 바탕으로 편곡과 개작을 했다. 이때 편곡은 타이틀 시퀀스와 영화 서사의 전반에서, 개작은 영화 서사의 후반에서 다양한 미적 판단의 영상 미학과 상호텍스트성을 유지했다. 또 리메이크의 내재 음악은 다양한 음악(뉴올리언스 블루스, 블루스 록, 가스펠·팝·알 앤 비가 혼합된 곡, 벨칸토 오페라, 부기우기 등)으로 새 시대의 문화적 융합을 공유함으로써 새 텍스트의 정체성을 확보했고, 상호텍스트성의 아이러니까지 유발했다. <케이프 피어>에서의 동일화는 리메이크 서사와 그 서사의 시청각적 표현을 통한 공감각적 미학 세계를 구축한 것에 기반을 두고 형성하므로 영화 미학의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의의가 있다. 관객이 <케이프 피어>를 통해 체험할 미적 판단의 다양성은 단순한 디제시스 복제라는 비평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본 연구는 한국의 현실 제도와 문화적 특징을 보여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사회 구조적 폭력의 발현’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내는 데 목적이 있다. 세 작품 속 주요 인물들은 폭력에 관한 극단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청소년기,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폭력적 환경을 가능케 하는 은밀한 이데올로기는 알튀세르가 논한 국가장치의 역능과 작동의 관점에서 논할 수 있다. 소재와 상황이 모두 다르지만, 주요 인물들이 경험하는 폭력은 사회적 상상력으로 풀어내야 할 ‘역학 문제’를 환기시킨다. 먼저 <소년심판>은 억압적 국가 장치이면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이기도 한 법이,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 상황을 묘사한다. 기성세대가 공유해온 지배 이데올로기의 통로로서 소년법의 틈새를 적확하게 보 여주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소년범들을 통해 감지되는 폭력의 재귀성은 ‘사유하는 사법’의 필요성을 강변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 등장하는 ‘요나스 바이러스’는 자기 안녕을 추구하는 기성 사회가 학교 폭력을 방관한 자리에서 발생한다. 그리고는 계층화된 사회에 안착하기 위해 서로를 착취해온 학생들 사이로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살아남은 아이들’과 ‘절비’는 폭력의 전염성을 방조하는 사회 시스템을 고발하는 동시에 기성세대의 규율화의 의지를 고발한다. 마지막으로 <D.P.>는 ‘군탈체포조’의 임무 수행 과정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데, 이는 예외성의 표지가 나타나면 합의된 폭력으로 억압하는 군대의 규율체계를 적확하게 보여준다. <D.P>는 군대라는 억압적 국가 장치 내부에 자리한 폭력의 순환성을 보여주면서 수용자로 하여금 선명한 입장을 요구한다.
이 글은 1970년대 후반~80년대 한국추리소설 속 재벌 표상을 분석하여 당대 대중들의 재벌에 대한 인식을 살피는 데 목적을 두었다. 재벌을 통해 당대 사회문제를 다룬 조해일의 『갈 수 없는 나라』(1979)와 박범신의 『형장의 신』(1982)은 ‘정의’에 대한 대중의 환상과 재벌 가부장의 지위 ‘상속’이라는 문제를 잘 보여주는 추리소설이다. 이 시기 추리소설은 현실의 사회 문제 및 사회구조 변화를 담아내는 한편,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회복 및 가부장 지위 계승 문제를 전면화하는 특징을 보인다. 『갈 수 없는 나라』의 남성 주인공은 부도덕한 재벌2세에 대한 복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지만, 범죄자가 되어 체포 되면서 오히려 현실에서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라는 문제를 보여준다. 『형장의 신』은 고아인 남성이 재벌 후계자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모습을 통해 무한경쟁 속에 내몰린 남성주체의 불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남성 인물들과는 대조적으로 1980년대 한국추리소설의 여성 범죄자들은 완전범죄를 완성하는 경우가 많다. 『갈 수 없는 나라』의 여성 주인공은 남성 인물들이 끝내 놓지 못하는 도덕적 명분이나 가정 내의 자리에 집착하지 않으며, 성공과 신분상승을 위해 자신이 가진 자산을 직시하고 최대한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범죄자인 여성을 성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간주하며 단죄하려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초과한 여성의 욕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해명하였다.
이 연구의 목적은 권혁주의 웹툰 <씬커>와 정지돈의 소설 『야간 경비원의 일기』에 나타난 도시 공간의 해킹을 ‘저항의 공간적 실천’의 구체적인 사례로서 설명하는 것이다. 즉 해킹이라는 일탈적 기술의 실천이 특정 장소나 공간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사회적 행위로 나타나는 양상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2장은 권혁주의 웹툰 <씬커>를 살펴보았다. <씬커>의 주인공 파이는 해킹과 파쿠르의 수행자다. 그는 슈퍼 컴퓨터와 융합한 일종의 사이보그로서 도시의 네트워크를 교란하는 신체로 나타났다. 한편 파이는 파쿠르 수행자로서 도시공간의 규제를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통행로를 개척하는 인물이다. 즉 파이는 해킹과 파쿠르를 통해 기술적·공간적 보안을 꿰뚫고, 사회적 규칙을 위반하는 저항적 주체로서 재현되고 있었다. 3장은 정지돈의 소설 『야간 경비원의 일기』를 살펴보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조지(훈)’은 도시 해킹의 수행가다. 여기서 도시 해킹이란 보안으로 통행이 금지된 도시공간 내부에 침투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이때 해킹은 다만 컴퓨터 기술의 응용에 국한되지 않고, 금지된 공간에 침투하는 해적 행위로서 확장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때 『야간 경비원의 일기』는 도시의 규제를 돌파하고자 하는 저항적인 욕망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텍스트들에서 해킹이라는 반문화적 행위는, 우리가 도시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확장하거나 회복하는 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서사는 대안적인 세계에 대한 열망과 환상을 표현하는 상징적 형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오유권의 『방앗골 혁명』에 나타난 혁명의 서사에 주목하여 1960년대 소설에 나타난 혁명의 문학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1960년대는 새로운 혁명의 의미들이 등장하였고 또 동시에 좌절되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실제로 혁명의 당대적 의미를 다루는 작품들은 많지 않다. 오유권은 농촌 사회를 배경으로 혁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마을의 봉건적 신분제도를 분열과 갈등의 원인으로 설명하는 『방앗골 혁명』은 계급 갈등의 문제를 가시화하면서 금기된 혁명의 가능성들을 드러낸다. 또한 전장이 아닌 평화로운 농촌의 풍경을 통해 잔혹한 전쟁의 폭력성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이념 갈등을 넘어서 평화와 결속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형상화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인 순태와 금순의 사랑은 상촌과 하촌의 계급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평화적인 대안으로 등장한다. 낭만적 사랑을 통해 추동되었던 『방앗골 혁명』의 혁명적 의지들은 강력한 반공 이데올로기 내부에서 좌절된다. 좌익의 경력을 지닌 주인공은 전쟁을 통해 반공의 외부는 없다는 현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정치적 발화가 금지된 마을에서 갈등의 해소를 위해 혈연적 결속을 시도한다. 일부다처의 가족제도는 상촌과 하촌의 사이에 놓여있는 분열과 갈등의 불안들을 봉합하는 유일한 방안으로 등장한다. 결국 모든 폭력과 복수를 금지하는 평화의 혁명론은 퇴행적인 원시 공동체라는 형태로 종결된다. 이 같은 혁명의 담론은 전망을 상실한 1960년대 혁명 정신의 거울상과 같다. 전후 방앗골의 뿌리 깊은 불평등과 학대의 문제는 더 이상 혁명의 목표가 되지 못하고, 퇴행된 혁명의 의지는 방앗골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삭제하여 방앗골을 하나의 신화적 공간에 대한 상상태로 전환시킨다. 이 같은 방앗골의 혁명 서사는 민족에 대한 상상을 신화화하면서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 서사의 원형적인 구조를 드러낸다. 그리고 분단 사회에서 혁명의 정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왜곡, 전유되고 있었는가를 확인해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1990년대 중반 우연히 국내에 상륙한 것처럼 보이는 국제영화제는 아래로부터의 역사적 산물에 가깝다. 엄밀히 말하자면 1980년대 국내의 문화운동과 1990년대 탈냉전의 세계 사이에 놓인 접촉지대의 혼종적이면서 동시에 토착적인 문화운동이었다. 1980년대 영화운동에서 시작해, 1990년대 예술영화전용관 설치, 그리고 1996년 국제영화제의 등장은 병렬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적 긴장을 빚는 과정이었다. 이 글은 글로벌과 로컬의 결합으로서 국제영화제가 이 둘을 어떻게 매개하는지에 관해서는 별로 궁금해 한 적 없었던 기존의 논의를 넘어서고자 했다.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국내 국제영화제의 변화는 글로컬한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고, 배제와 차별을 넘어 연대하고 공존하기 위한 실천적 전략을 탐색하는 문화정치의 진화과정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데이빗 R. 셤웨이의 『현대적 사랑』(2003)을 중심으로, 로맨스와 친밀성의 구조변동과 결혼의 위기와의 상관성에 기초하여 20세기 현대적 사랑의 전개양상을 고찰하고, 그 연구의 의의와 한계를 논구했다. 이 책은 텍스트 분석 중심의 로맨스연구와 로맨스의 구조변동에 관한 문화사회학 이론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방법론을 토대로, 20세기 사랑과 관계에 관한 문화텍스트의 지형을 개괄한 연구서이다. 셤웨이는 결혼의 위기가 불러온 20세기의 로맨스와 친밀성 담론의 구조변동을 고찰하기 위해, 푸코와 기든스, 루만 등의 사회학이론을 원용하여 자신만의 연구방법론을 구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로맨스와 친밀성의 담론이 텍스트로 구현된 서사를 각각 사랑이야기와 관계이야기라 규정한 다음, 20세기의 현대적 사랑이 전개되는 양상을 일목요연하게 조감했다. 20세기 초 데이트라는 새로운 연애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연애지침서나 스크루볼 코미디와 같은 관계이야기가 등장했지만, 낭만적 사랑의 로맨스를 지향하는 할리우드 고전로맨스와 같은 사랑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다. 반면 196,70년대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의 여파로 20세기 후반에는 관계영화와 결혼소설 등과 같은 관계이야기가 압도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이분법적 분석은 20세기 현대적 사랑의 지형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 장점을 지니지만, 2차 개인화과정이 안겨준 위험과 해방이라는 양면성을 외면함으로써 20세기 후반 친밀관계의 실상을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근대적인 결혼제도가 와해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면서 낭만적 사랑의 로맨스가 약화되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친밀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친밀성 연구도 개인적인 관계를 넘어 친밀공동체나 건강한 친밀성과 공공성의 교차지점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맥락에서 셤웨이의 연구는 로맨스와 친밀성의 연구가 나가야 할 방향을 선도했다는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