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주로 1960년대에 액션 영화의 일종으로 존재했던 ‘대륙물’, 그 중에서 웨스턴을 전유하고 있는 ‘만주웨스턴’ 장르에 대한 연구이다. 본고에서는 1962년∼1971년까지 한국영화에서 웨스턴을 전유했던 양상을 살펴 ‘만주웨스턴’의 의미를 밝히고, 그것을 통해 <놈놈놈>과 같은 영화로 이어지는 만주웨스턴 장르를 영화사적 맥락에서 정관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 수입된 웨스턴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그 과정에서 대륙물이 형성되는 맥락과 대륙물의 추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주웨스턴의 양상과 욕망을 고찰하여, 만주웨스턴의 장르사적 의의를 밝혔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전반기까지는 할리우드 웨스턴의 전성기로 한국에도 웨스턴 영화가 대거 수입되면서 총이 나오는 액션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1966년 <황야의 무법자>가 수입되어 스파게티 웨스턴이 크게 유행하면서 웨스턴 영화의 판도가 달라지고, 이 시기에 대륙물 중에서도 웨스턴의 문법을 전면적으로 전유하고 있는 ‘만주웨스턴’이 두드러지게 된다. 이는 문명에 대한 자신감으로 차있는 할리우드 웨스턴보다 냉소적이고 적나라한 욕망을 드러내는 스파게티 웨스턴이 한국 대중에게 보다 핍진성 있게 다가왔다는 것, 대륙물에서 점차 심화되던 이분법의 균열도 스파게티 웨스턴의 전복적인 서사를 수용하는 데 토양이 되었다는 것, 기존 웨스턴의 광활하고 정형적인 미장센과는 다른 협소하고 누추한 지역성을 지닌 웨스턴이 가능하다는 것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를 통해 입증되면서 한국영화에서도 웨스턴을 본격적으로 전유해볼 수 있는 자신감을 추동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상옥 감독의 <무숙자>는 웨스턴의 관습 안에서 한국에서 가장 주류 장르인 멜로드라마의 서사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웨스턴 전유의 중요한 경향을 보여준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유연한 봉합이 돋보이는데, 그러한 봉합을 통해 웨스턴의 도상과 서사가 한국 멜로드라마의 정서로 수렴된다. 이러한 정서는 이데올로기 면에서는 기존의 위계와 질서에 순응하는 것으로 귀결되지만, 이질적인 장르의 접합을 통한 전유라는 점에서 장르 실험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이는 혼성 장르화 경향이 심화되며 장르 내부의 상호텍스트성 속에서의 관습 혁신이 중요해지고 있는 현재 영화의 관점에서 볼 때 선취에 해당한다. 임권택 감독의 <황야의 독수리>는 1950,60년대 할리우드 웨스턴의 유연한 서사와 스파게티 웨스턴의 오락성이 강고한 이분법과 부딪힐 때의 파탄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가부장적인 이분법과 오락으로서의 폭력이 불편하게 공존하다가 마지막에 파국을 맞이함으로써 치명적인 폭력으로 전화되어 버리는 문제적인 텍스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극단적인 파국을 통해 그 폭력성이 폭로됨으로써 그것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측면도 있다. 이로써 이 영화는 이분법을 고수하는 강고한 욕망에 의해 간섭되는 도착적인 폭력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이는 한국영화에서 지속되고 있는 문제적인 지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계몽적 이분법에의 집착과 그로 인한 오락성의 죄의식은 지금까지도 한국영화의 특성이자 한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는 가장 전복적인 웨스턴인 스파게티 웨스턴의 전복성을 더 끝까지 밀고 나간다. 이 영화는 농담을 통해 당대의 무거움과 진지함을 넘어서면서 놀이로서의 영화 공간을 가능케 했다. 농담과 놀이는 당시의 강고한 지배 질서와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타협을 최소화할 수 있는 수사학이며, 그로부터 구현되는 철저한 개인주의는 일종의 반항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인 저항은 되지 못하고 개인적 열망으로서의 정신적 탈주로 남는다. 그러한 탈주의 에너지는 영화를 살아가게 하는 핵심적인 힘이며, 이 시기에 그러한 에너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쇠사슬을 끊어라>는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영화들이 생산된 시기는 4.19를 통한 시민의식의 체험이 5.16으로 인한 가부장적 질서로 봉합되면서 이분법적 구도로는 수렴되지 못하는 복잡한 욕망이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하위 장르들의 분화를 추동하던 때이다. 이 시기에 ‘만주웨스턴’은 현실과 영화의 관계에서 벗어나 영화와 영화의 관계망 안에서 영화 장르를 실험함으로써 상상력의 폭을 넓혔던 장르였다. 여기에서 이 영화들을 비판하는 하나의 이유였던 ‘무국적성’은 현실과 유리되게 하는 요인이었지만, 다양한 가능성의 폭을 확장하는 기반으로서 기능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도 지닌다. 장르 혼성의 시대인 21세기에 <놈놈놈>과 같은 한국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기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주웨스턴이 보여준 장르 혼성 실험, 관습적 이분법, 놀이를 통한 탈주는 <놈놈놈>에서도 중요한 장르 요소로 작용하기 있기 때문이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Manchuria-Western genre which were produced from 1960s to the early 1970s as a sub-genre of ‘Daeryukmul’ and a appropriative genre of Western movies. Hollywood western movies have imported since 1945 largely and have influenced on Korean Action films. The Spaghetti- Western movies hit the big time in Korea since the middle of 1960s and led to the full scale appropriation of the Western movies. The result were Manchuria-Western films such like <A homeless wanderer> (1968), <An eagle of a wildness>(1969), <Cut off the Chains> (1971). The Manchuria-Western genre regarded just as the films for amusement. So ironically, the Manchuria-Western movies implied diverse desires which were not taken by main genres or Art films. the Manchuria-Western films opened up the new space of imagination which had capacity for the amusement such like fun, joke, game. In conclusion, the Manchuria-Western films means a kind of passive resistance against the dichotomy times. And it means also a kind of experimental genre which was formed between the genre and the genre. So it enables the crossover genre films such like <The good, The bad, The weird>(2008) in the digital era.
본고의 목적은 트로트와 관련된 논쟁의 경위를 밝혀 트로트에 대한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것이다. 트로트 중에서 이미자와 관련이 있는 논쟁은 1960년대의 왜색가요 시비와 1990년대의 ‘이미자 시비’이다. 1960년대의 왜색가요 시비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중심으로 벌어진 논쟁이라면, 1990년대의 ‘이미자 시비’는 서양음악학자가 이미자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벌어진 논쟁이다. 본고에서는 이제까지 다루지 않았던 1960년대 자료를 들어 1960년대 왜색가요 시비의 자세한 경위를 살폈다. 트로트가 일본을 통해서 유입되었다는 것을 전제한 상황에서 벌어진 1960년대의 왜색가요 시비는 연예인협회의 단체 행동과 방송가요심의위원회의 구성과 같은 가시적인 결과를 낳았다. 1960년대의 왜색가요 시비는 정권 차원에서 이루어진 의도적인 시비라는 기존의 평가와 달리 일차적으로 당시의 가요 풍토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일수교 이후에 주체성을 찾자는 의식이 왜색가요 시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왜색가요 시비에 애초부터 정권이 개입하였던 것은 아니다. 이어서 1990년대의 이미자 시비는 이미자에 대한 찬사에 가까운 박종문의 논문에서 비롯한다. 대중가수에 대한 서양음악학자의 논문이 발단이 되어 이에 대한 비판을 거듭하면서 이루어진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영미는 박용구 옹과의 대담을 통해 이 논쟁을 정리하였다. 그러나 이영미가 주장한 트로트의 왜색성과 신파성은 여전히 반박의 여지가 있다. 일제시대에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형성된 갈래인 트로트에 민족의 문제가 개입하면 트로트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트로트는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는 것 외에 굳이 일본색을 운운할 필요가 없는 갈래이다. 종종 트로트의 왜색성의 근거로 제시하는 음계도 일본 고유의 것은 아니며, 음계가 음악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요인도 아니다. 게다가 대중가요는 음악과 문학, 수용자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어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음악만으로 어떤 갈래를 문제 삼는 것은 그 시작에서부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트로트는 일본을 통해 들어와서 한국적인 토양에서 순화·형성된 갈래이다. 트로트에 대한 선호는 기실 취향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계층 간의 ‘구별 짓기’가 자리하고 있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details of trot controversies. Controversies related to Lee Mi-ja are the dispute over Japanese manners in the 1960s and the argument concerning Lee Mi-ja in the 1990s. First, this paper considered the details of the first controversy using materials from the 1960s that have heretofore been unexamined. Japanese manners in the 1960s had visible effects, such as the group behavior of the Korean entertainer's association and the organization of broadcasting deliberation. The cause of the dispute over Japanese manners in the 1960's can be found in the climate of the songs at the time. Next, the argument concerning Lee Mi-ja in the 1990s began with Park Jong-moon's paper that dealt with Lee Mi-ja's songs. This paper created a sensation in the 1990s. Lee Young-mee brought together the various threads of this controversy. However, there is room for refutation of the Japanese manners and the characteristic new school that Lee Young-Mee insists upon. There is no need to mention the characteristic Japanese manners except that trot was introduced through the Japanese. Trot is a genre of song that was introduced by Japan and took on a Korean character in Korea. The preference for trot could be seen as a product of the tastes at the time. Also, behind the scenes, the distinction between classes played a part. This paper was written to provide a foundation for examining the controversy over trot and reestablish it's position in the history of Korean popular songs.
휴대폰 소설이란 휴대폰 자판을 눌러가며 창작한 소설을 ‘마법의 i랜드’(魔法のiらんど) 같은 휴대폰 소설 전용 사이트에 올리고, 다시 독자들이 휴대폰으로 내려 받아 읽는 소설을 말한다. 또한 대중적 인기가 검증된 휴대폰 소설을 출판물로 출간한 경우도 해당된다. 휴대폰 소설은 휴대폰이라는 매체의 독특한 특성- 개인성과 이동성에 따른 사용자의 친밀도가 현저함, 영상통화와 메일의 사용가능성 등-에 힘입어 소설의 창작에서 유통까지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문학이 새로운 매체의 대두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함은 물론일 터인데, 특히 일본에서의 휴대폰 소설의 놀라운 약진을 보면 진지한 탐구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휴대폰 소설의 새로운 서사적 특성을 살펴본 이 연구도 그러한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논의된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1. 휴대폰 소설은 특히 휴대폰 메일과 관련하여 개인의 내밀한 상처를 고백하는 문학이다. 휴대폰 메일의 정서와 쓰임새를 그대로 유지한 채 휴대폰 소설은 개인의 ‘숨겨진’ ‘치명적’ 상처를 내밀하게 ‘고백'하는 문학이다. 휴대폰 소설은 그것이 고백될 때의 극적 효과를 강조하고자 그 상처들이 ‘숨겨진’ 상처들임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작중 인물들이 그들의 상처에 대해 애써 ‘침묵’한다는 사실이 재삼 강조되며, 숨겨진 상처가 고백되기 전까지 결코 인지되지 못하는 타인들의 ‘인식의 지연’이 의도적으로 부각된다. 아울러 휴대폰 소설의 연재물로서의 성격, 즉시적인 독자의 상호작용성 등과 관련하여 고백의 효과가 지속적이고 점층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숨겨진 상처 혹은 비밀은 중층적으로 구성된다. 또한 그들의 ‘숨겨진’ 상처는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것인데, 그들의 유일한 꿈과 처참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운명과의 그 아득한 격차 혹은 그에 대한 강조야말로 휴대폰 소설의 생래적 강점을 부각시키려는 작자의 집요한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2. 휴대폰 소설은 개인의 깊은 상처를 예외 없이 다루면서, 그 상처를 내밀하고 지속적으로 토로하는 방식을 취한다. 한마디로 끊임없이 인물들의 상처를 지속적으로 수신자에게 송신하는 식이다. 특히 ‘고백’이 갖는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경우는 문자 그대로 고백이 모든 삶의 의미를 관통하는 기제가 된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어느 누구와도 어떤 경우에도 고백은 큰 파장을 불러오며 삶의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된다. 그래서 고백은 힘이 있고, 그들 삶을 추동시키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휴대폰 소설의 서사의 축은 <고백의 궤적과 온전히 일치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3. 휴대폰 소설은 ‘휴대폰 메일의 속성과 방식 그대로 구축된 삶의 기록’들을 일목요연하고 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소설의 강점인 ‘이야기’의 힘을 빌린 것이니, 그것은 생래적으로 ‘자전적’ 임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즉 휴대폰 소설이 창작되고 감상되는 근본적 전제가 ‘휴대폰 메일이 가져온 삶’을 노래했다는 것이니, 또 휴대폰 메일을 읽듯이 휴대폰 소설을 읽어달라는 것이니, ‘자전적’이란 개연성과 감동을 담보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전제이자 근간이 되는 것이다. 4. 휴대폰이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무너뜨리며 개인 간을 ‘접속’ 상태에 머물게 한다는 점과 관련하여, 휴대폰 소설은 ‘접속’이 불러 온 삶의 변화를 노래하고 있다. 특히 연인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휴대폰 소설에서 ‘접속’은 사랑을 새롭게 규정하는 지고의 가치가 되며, 아울러 삶을 추동하는 원리이자 힘이 되고 있다. 5. 휴대폰 소설이 휴대폰 메일의 정서와 쓰임새와 관련이 있고 아울러 휴대폰 소설의 주 독자가 젊은 여성임과 관련하여 그들의 소망적 사고가 담긴 남성 주인공 역으로 특정의 인물형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바로 ‘굿배드맨 형 인물’과 ‘수호천사 형 인물’이다. ‘굿배드맨 형 인물’은 거칠고 반항적이며 바람둥이 기질의 남성이 여성의 진지한 사랑을 만나 자신도 진지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나누는 긍정적 인물로 변하게 된 인물을 가르키는데, 이 인물은 여성이 자신의 역할을 존중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을 소유하고 싶은 소망적 사고를 그 한계치까지 끌어올려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는 인물인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여성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수호천사 형 인물’도 주목할 수 있다. 특히 휴대폰을 통해 특정의 인물과 언제 어디서든 접속되어 있는 현실과 관련하여 ‘수호천사 형 인물’의 능력과 헌신성은 그 어떤 제약도 뛰어넘어 훨씬 더 큰 존재와 의미로 다가설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휴대폰 소설에서는 ‘수호천사 형 인물’의 능력과 헌신성의 한계치가 커져 가는데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고, 일상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나의 모든 삶에 드리운 그의 손길을 강조하는 데 힘을 기울이게 된다.
Mobile phone novels are a new genre, where mobile phones have become a tool of creation and appreciation. The new genre has quickly grown and already come into the spotlight in Japan. It was affected by the characteristics of mobile phones and therefore has its own peculiarities. The following are the narrative characteristics of mobile phone novels: 1. Mobile phone novels are a kind of literature in which a person confesses his deep inner scars. It sustains the usages and emotions of mobile phones' mails and confesses a person's private 'hidden' or 'fatal' scars. Mobile phone novels clearly express the 'hidden' scars in order to emphasize the effect of confessing. In addition, the secrets related to the scars are multi-layered. 2. Mobile phone novels use the method of continuous revealing of the personal deep scars, that is to say, sending characters' scars to receivers without an end. 'Confessions', especially, become always moments of changing ways of living and driving forces of leading living. So the narratives of mobile phone novels completely corresponds with the orbits of confessions 3. Mobile phone novels straightforwardly show the facts that they deal with the experiences of their writers own. Mobile phone novels utilize the method of mobile phones' mail usage and emotions (sharing the writer's own experiences and stories), so the autobiographical characteristics are the basis of guaranteeing their probabilities and strong impressions. 4. Mobile phone novels sing changes in life made by computer connections. In mobile phone novels, which especially sing love between lovers, 'connections' have become a supreme value that defines love quite newly. 'Connections' have also become a driving force and a principle of living. 5. The main audience of mobile phone novels are mainly young females, so the frequent characters are the types of 'good bad man' and 'the guard angel'. These are the characters who are the reflections of female readers' wishful thinking and, when especially related to 'connections', the characters' powers and devotions are distinctively emphasized.
본고는 ‘나르시시즘, 섹스, 죽음’ 등의 주제들이 김영하의 소설 속에서 어떠한 양상과 논리를 통해 구체화되는지 살펴보았다. 즉, 그의 ‘사랑 3부작’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세 편의 작품, 「거울에 대한 명상」, 「사진관 살인 사건」, 「너의 의미」 등을 중심으로 김영하 소설의 저류를 관통하는 심층적 의미 구조의 일단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 결과 사랑이라는 문제에 연루되어 있는 김영하 소설 속의 인물들은 크게 두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나는 자신을 대상 소문자 a를 함유한 주체로 간주하는 것이다. 김영하 소설의 나르시시즘적 특질은 대체로 이처럼 ‘내 안에 있는 나 이상의 것’으로서의 대상 소문자 a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거나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인물들을 통해 구현된다. 반면 「너의 의미」의 조윤숙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은 그것을 전혀 객관적으로는 납득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대상에게서 발견한다. 게다가 그러한 상대방은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동일한 고통, 즉 ‘왜 하필 그 사람인지 설명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김영하에게 사랑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고서는 유지가 불가능한 일종의 교착상태의 구조에 불과하다. 김영하적 논리에 따르면 가장 순수한 사랑조차도 이처럼 근본적인 궁지를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This paper aims to look into aspects of the theme as love in Kim young-ha's short-stories. He is a novelist who has especially concentrated on the theme as sex, narcissism, death etc. His stories dealing with these contents have exposed a deadlock of love. According to 'The mean of you', 'The murder case in the photo shop', 'A contemplation on a mirror', this deadlock has two aspects. First of all, the subject who seems to fall in love actually doesn't love anybody except him/herself. He/She believes that has an objet petit a in his/her own being. He/She needs somebody only to prove the fact that he/she has an objet petit a. In another cases, the person who seem to fall in love know well that there each partners never love or be satisfied with them. But they can't stop loving there partners who give them only pain. The key to this situation would thus seem to reside in the split between knowledge and belief. "I know well (that the situation is catastrophic), but … (I don't believe it and will go on acting as though it were not serious)." The typical attitude toward the love which finds an objet petit a in an improper object is a perfect illustration on this split. So love is impossible because we in loving with actually never love each other. We love only ourselves, our objet petit a. Or we have a split between knowledge and belief. In Kim young-ha's short-stories, not even the purest love can escape this fundamental impasse of symbolization.
TV 드라마 <마왕>은 추리 서사 요소와 특징을 지닌 드라마이다. <마왕>은 구조, 인물형, 소재적 차원 등에서의 변화를 활용하여 독특한 장르 드라마를 시도 했다고 보인다. 이는 연속극 형태 안에서 추리 서사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수수께끼 플롯과 복수플롯의 이중구조를 활용함으로써 흥미, 긴장감을 유지한 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마왕>은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을 풀어가는 수수께끼 플롯이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둔 문제해결 방식에 그치지 않고 ‘사건의 동기, 과정’ 에 중심을 둔다. 여기서 종결되지 않는 사건, 증폭되는 의문, 문제해결 지연이 반복된다. 이와 같은 반복은 복수플롯이라는 또 다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전통적 추리 서사에서 요구하는 인물의 역할 범주를 이탈하여 변화된 인물형을 보여 주고 있다. 형사, 범인의 선악 대립 구도를 깨뜨리고 관계의 역전을 통해 고정적 역할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있다. 결국 대립적 인물이 동일화 되는 과정을 통해 선과 악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싸이코 메트리’ 라는 독특한 소재 활용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마왕>에서 사건해결과 관련하여 ‘싸이코 메트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에서 실질적으로 사건의 단서를 추리, 분석하는 인물은 싸이코 메트러이다. 싸이코 메트러가 제공하는 정보들은 의문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예측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도 한다. 이 점은 보다 다양한 예측 결과들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하고 긴장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선악 자체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추리장르의 일반적인 특징인 오락성, 대중적 흥미 유발이라는 차원을 넘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이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의 장르 개발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 할 수 있으며, 다양화 된 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어 둔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TV drama <The Devil> is the ratiocination style drama which changes a traditional ratiocination format. As the drama which applies the rule which is official the existing investigation pole is tracking, explanation and event solution of the criminal one many sides applied the change from structure, the person style and subject matter dimension etc. and attempted the style drama of a more different dimension, is visible. <The Devil> solves a problem in the center of homicide accident and arrests the criminal the process which releases and is a ratiocination pole of riddle structure. But it pointed who is the criminal not the process and method. From here the event which happens chain, the doubt which is amplified, the problem solving delay is repeated. Also this work is disconnected and role category of the person which demands from traditional ratiocination narration the person style which changes is to seem. The process where the opposing person is identified finally leads and proposes a doubt about the line and evil. With the subject matter which is unique `psycho maul trees ' is this combines and raises the distinction characteristic of the different ratiocination pole. From relates with an event solution and `psycho maul trees ' major role. The psycho maul sprouts to read and the afterimage in the criminal case which solves a problem with end is delivered, in the watching person the gap between of the hero and the viewer originates because being presented time. Therefore with asking the question which is sincere about good and evil oneself, the entertainment which is a feature which ratiocination style is general, goes over the dimension which is a popular interest mortar indication curiosity the insect family hour height is to seem reading. This will be able to give meaning which is affirmative from the style development side from teleplay, puts the questionable matter will be possibility from the point which is a reading to open the possibility of the drama which had become diversification.
본고는 다양하게 재생산되는 동양의 고전 『삼국지』를 컴퓨터 환경에서 재구성한 『삼국지Ⅺ』를 대상으로 서사 구조상의 특징과 수용자의 텍스트 향유 방식에 대한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삼국지Ⅺ』은 삼국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다양한 변수와 수리적 연산으로 이루어진 시뮬레이션 모델을 도입한다. 시뮬레이션을 거쳐 발생하는 사건전개는 플레이어의 선택을 새로운 변수로 하여 더욱 복잡하게 전개됨으로써 리좀적인 형태를 지닌다. 그러나 역사나 소설을 원본으로 삼은 게임의 특성상 스토리의 확장은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반적 스토리’를 지향하는 장치를 통해 사건 발생의 질서를 부여받는다. ‘시나리오’, ‘이벤트’, ‘패치’, ‘에디터’ 등이 이에 속한다. 특히 플레이어들이 ‘패치’와 ‘에디터’를 사용하는 것은 전통적 서사에서 ‘미메시스3’에만 한정되던 독자의 영역이 ‘미메시스1’과 ‘미메시스2’에까지 확장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전통적 서사의 생산과 소비 방식의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플레이어가 선택한 주인공이 통일을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우발적 스토리’는 게임의 시작부터 ‘기반적 스토리’에서 벗어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원본에서는 잠재적으로만 존재하던 ‘공가능하지 않은’ 사건 계열을 서사화하는 것이며 이때 사건발생을 연속적으로 산출하는 시뮬레이션 과정 자체가 일종의 개연성의 법칙으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삼국지를 쓰고 읽게 된다. 플레이어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시뮬레이션 과정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원본을 연구하는 진지함을 보인다. 요컨대 플레이어들은 시뮬레이션 모델을 매개로 한 ‘기반적 스토리’와 ‘우발적 스토리’의 길항작용을 통해 가상역사를 만드는 동시에 즐기는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analyze the narrative structure and examine how to enjoy Romance of the Three Kingdom that has reorganized the original text of the same name in computer circumstances nowadays. Romance of the Three Kingdom Ⅺ uses simulation models that consist of many variables and mathematical operations. The unfolding of events through simulations becomes complex, and game players' various choices intensify it, at last the whole shape of events looks like Rhizome. However, the expansion of game story doesn't lead game play to chaos but gives order, because it was oriented by the facts in novel or history. "Scenario systems," "events systems," "patch programs," and "editor programs" make game story follow the original story. Above all game players’ using of patch programs and editor programs means that reader's sphere limited to "MimesisⅢ" in traditional narratives have extended to "MimesisⅠ" and "MimesisⅡ." And it shows the change in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conventional literature. Meanwhile, the object of "the random story" is that hero chosen by game player will accomplish reunifying the whole country, and it makes "the random story" differ from "the back story" finally. In other words, "incompossible" series of events that stayed as potentiality in original story is able to be narrated, at this time the process of simulation as the "law of probability" will operate upon it. That makes game players' can write and read their own Romance of the Three Kingdom that is not equal to the origin. However game players doesn't content with it, they study the original text to make simulation process more flawless. In brief they make and enjoy virtual history with the antagonism between "the back story" and "the random story."
이 글은 ‘엽기’라는 단어를 과연 정신분석적 입장에서 하나의 미학적 개념으로 세울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데 목적이 있다. 대개는 이 말의 뜻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잔혹성’과 ‘공포’를 떠올린다. 그러나 비일상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로테스크와 맞닿은 기괴함이 낯섦의 공포는 포함할 수 있을지언정, 무슨 근거로 잔혹성을 연상시키는지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비상식적이고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수수께끼 감정 이상으로 잔혹성에 대한 끔찍한 감정이나 공포감을 자아낼 수 있을까? 이 글은 ‘엽기취향’의 역사를 더듬어 살펴보면서 이 단어가 함축하는 의미의 변화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일상화되어버린 ‘엽기’가 아닌, 한 독특한 문화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2차 개념으로서 ‘엽기’의 미학적 개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때 우리의 관점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미학이다. 이를 위해 면밀한 한자 풀이를 통해 얻은 ‘엽기’의 깊은 의미를 억압된 것의 회귀와 연결짓고, das Unheimliche, 쾌락원칙, 죽음충동 등의 프로이드의 이론을 동원함으로써, 억압된 것의 회귀가 불러일으키는 불안함과 공포를 ‘엽기’의 유희와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그리고 현대인의 고립된 개인의 나르시스적 상처가 불러일으키는 권태가 상상력을 공격적이고 파괴적으로 만든 측면이 있다는 사실 또한 지적함으로써 ‘엽기’ 단어의 광범위한 일상화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 이면에는 잔혹성의 의미소가 잔재해있다는 사실을 해명하고자 한다.
This article aims to make an aesthetic notion of the word Yopki, by taking it as a secondary notion and not as a familiarized one in the everyday life. Most Koreans imagine at first cruelty and fear when they think about its meaning. As it represents the grotesque, which arouses a curiosity, it could hold the fear of strangeness as a conceptual element. But how can it be associated automatically with cruelty? To answer this question, we seek firstly a history of the taste for 'Yopki' since 1930s to nowadays and analyze the modifications of its meaning. It is toward Freud's aesthetics of Unconsciousness that our perspective is oriented. In this objective, we do also a very detailed analysis of the two chinese ideograms which constitute the word, to associate them with the return of the repressed, by calling for some Freud's notions like uncanny, pleasure principle, death instincts. By that, we can see the possibility to link the characteristics of Yopki with fear or angst which are produced by the return of the repressed. To finish, observing that the boredom and the narcissistic wound of an isolated individual in his hyper modernized life make his imagination aggressive and destructive, we can finally say that cruelty remains under the meaning of yopki in spite of its widespread and familiarized usage.
This study seeks to examine the historical discussion on Shinpa by tracking down its process of changes, focusing on the 1920s and 1930s. In the discussions of early modern Korea, the conflict between the new and old appears the most extensively in the realms of politics, society, and culture. Shinpa (新派), or the new wave, was in opposition to the old wave, and was a cultural discussion and a form of representation, symbolizing the early modernity of Korea. But it soon turned to be a symbolic word indicating older and lower quality of culture product. I would like to argue that the meaning of Shinpa had been changed several times according to the process of Korean film production and discourse. In Chosun films, Shinpa was almost a kind of general style that films had to adopt as a matter of course. In the process of taste distinction in 1920s and 1930s, it was reduced down its meaning to old, unrealistic cliches. Around 1930, the left-wing film movement and the concept of film criticism emerged, and the popularity of foreign films, especially Hollywood films, Shinpa began to be depreciated in value, and it became an emblem of an old era, yellow-covered characteristics of Chosun cinema. Critics influenced on the meaning of shinpa converted, however, basically it was a sign of the formation of mass culture and a distinction of taste at the same time.
대중음악이 ‘민중의 음악’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보다 대중음악 속에 청각을 매개로 한 ‘구술성’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대중음악의 구술성에 대한 관심은 필연적으로 음향 복제기술과 대중매체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매체나 음향기술 자체가 문자를 통한 소통・과학적 방법론・합리성 등을 바탕으로 하는 고도의 ‘문자성’의 산물이라는 점이 대중음악을 논하는 데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아이러니이다. 따라서, 대중음악에 대한 논의가 구술성에 입각한 민중의 정치적 힘과 관련된 논의로 연결되는 순간, 대중음악의 정치적 목표 지점 가운데 하나는 대중음악의 구술성 그 자체를 가능케 하는 음향기술과 대중매체에 대한 긍정과 함께 다른 한편 문자성에 기반한 대중매체의 합리적 시스템에 대한 부정을 동시에 함의하게 된다는 역설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논문에서 나는 대중음악에 함축되어 있는 구술성의 이러한 변증법적 성격에 주목하면서, ‘공장의 불빛’이라는 제목으로 1978년에 발표된 독특한 음악적 실험 한 가지를 조명한다. 대중음악과 음향기술에 입각한 대중매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대중음악이 갖는 ‘민중음악’으로서의 가치, 다시 말해 민중의 구술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치적 잠재력을 점검할 것이다.
If there is any room for 20th century ‘popular music’ to be interpreted as ‘people’s music’, the grounds for such an interpretation would be the oral practices embedded in popular music. But we cannot discuss the orality of popular music without considering sound reproduction technologies or the mass media connecting the individual members of an modern industrialized society to one other. And it is an inevitable irony that this mechanical reproduction and the mass media are products of a highly developed ‘literacy’ marked by scientific method, ‘rationality’, literate communication, and so forth. Therefore, at the very moment when our discussion of popular music turns to the question of a people’s political power exerted through orality, we end up with the following contradiction: that one of the main political ends of popular music is found in the affirmation of sound technologies that give popular music a ‘secondary orality’ and thus negate the ‘literate’ mass-mediated musical systems. Focussing on this dialectic character of orality implied in music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I examine a unique musical experiment, a musical play titled ‘Light of a Factory’ that was in 1978. I consider the value of popular music as ‘people’s music’, or its political potential to suggest a kind of musical orality focu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popular music and mass-mediated reproduction.
영화는 사운드와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적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영화들이 내러티브를 관습적인 스타일로 장면화하는데 머무른다. 이는 상업영화를 제작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이 연출자의 크리에이티브를 존중하기보다는 장르적인 관습 안에서 영화를 ‘생산’해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최근 영화인 <라스트 데이즈(2005)>는 주류 영화의 관습에서 벗어나 ‘사운드’ 실험으로 영화의 주제와 내러티브를 전달하려는 작가적 크리에이티브가 돋보인다. 이 영화는 뮤지션 커트 코베인이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나날들을 다루고 있다. 감독은 음악이라는 ‘사운드’를 통해 존재 증명을 해왔던 뮤지션이 죽어 가는 과정을 바로 ‘사운드’를 통해 장면화한다. 주인공이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은 ‘사운드’를 통해 서서히 균열이 일어난다. 그 균열이 일어나는 틈은 바로 죽음에 이르는 문이 열리는 지점이다.
Cinema is a media that communicates based on sound and image. However, in reality most film directors deliver narrative in a traditional style for the structure of commercial film studio system rather attempts to 'produce' films effectively within genre tradition rather than to respect creativity of filmmakers. Such a current tendency makes it meaningful to pay attention to Gus Van Sant's recent films, from Gerry (2002), Elephant (2003), Last Days (2005), to Paranoid Park (2007), which visualize the director's painstaking effort to display the most suitable style for a specific narrative. This paper will look into the image and sound experimented in Last Days to present the death of Cobain, a member of the rock group, Nirv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