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이란 추리와 무협이 결합한 형태의 서사물이다. 중국 작가 고룡으로부터 시작한 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존 무협소설에 추리적 요소를 섞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국내 추리무협 작품으로는 <지옥의 영가>와 <구기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고룡의 <초류향>과 <지옥의 영가>, <구기화>를 분석해 추리와 무협의 컨버전스 형태인 추리무협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고룡의 <초류향>은 뤼팽, 셜록 홈즈와 같은 유사한 능력을 지녔고 강호의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추리적 요소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관찰력과 추리력을 바탕으로 범인을 밝히는 과정이 추리소설만큼 부각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지옥의 영가>는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를 찾아가는 추리적 서사를 지향했지만 설정의 불균형, 에스컬레이팅 시스템 활용의 오류 등을 보이면서 추리무협으로서의 한계를 지닌다. 다만 과도한 폭력과 선정적인 장면의 도입, 팜므파탈적 캐릭터 등장 등의 측면에서 하드보일드 성격을 지녔다는 의의는 있다. <구기화>는 제시된 문제를 논리적 판단으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추리적 요소를 드러내며, 무협소설의 본질인 ‘협’의 정신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추리소설과 무협소설의 융합을 잘 보여준다. 다만 추리소설 기본 작법에서 위배되는 부분과 무리한 설정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추리무협은 무협소설 장르의 변용으로 새로운 시도로 정통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있으며, 여러 요소를 살펴볼 때 추리소설의 하위 장르인 하드보일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추리와 무협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 간 융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한국에서 추리무협은 장르적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고, 몇몇 작품에서 그 흔적을 보여주는 것에 그쳤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 글은 1980년대 텔레비전드라마에 나타난 추리와 범죄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1970년대 내내 전국적인 인기를 이끌어왔던 <수사반장>의 영향력은 텔레비전을 넘어 대중예술 전반에 추리물이 수용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이러한 경향은 특정 장르만을 중점적으로 소비한 것처럼 보이는 한국 텔레비전드라마사의 다양한 진폭을 밝혀줄 수 있는 단서가 되며 이후 텔레비전드라마의 다양한 장르물 제작과 방송에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특정 장르물이 한국 텔레비전드라마사에서 비주류 혹은 결함을 가진 텍스트로만 존재했다는 통념은 당시 편성과 담론의 총체적 분석을 통해 재인식되어야만 한다. 기억해야할 것은 장르는 언제나 과정 중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장르는 고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제작주체와 수용자의 의도가 뒤섞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추리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구 추리소설의 탐정형 인물이 사회맥락상 공감을 얻기가 어려웠던 한국의 사회적 맥락상 사상검사나 형사반장과 같은 공권력이 탐정의 자리를 대체하며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본래 추리물이 필수적으로 드러내어야 하는 논리적 이성은 수용자들의 요구와 취향에 따라 변화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국 텔레비전 추리물에서 추리보다는 수사가, 근대적 이성보다는 연민과 공감의 휴머니티가 강조되는 현상은 한국의 텔레비전 시청자의 입장에서 추리서사를 받아들이는 독특한 맥락인 셈이다. 1970년대 수사극이라는 명명하에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추리물은 1980년대에 들어서 컬러방송과 언론통폐합을 맞닥뜨리게 된다. 텔레비전드라마는 자율정화와 개방이라는 기치 아래 신군부 정권의 문화예술 정책과 동행하게 된다. 이에 맞추어 추리와 범죄라는 새로운 즐거움을 수용하는 시청자들의 시각도 시대에 맞춰 변화해가고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87년 직선제 개헌에 따른 민주화가 가져온 일시적인 자유 앞에서 텔레비전 추리물 역시 자신을 변주해야했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추리소설의 수용은 한국적 맥락을 다분히 의식한 선택으로 수사극으로 불리던 텔레비전드라마들이 추리극으로 변화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문제는 이러한 텔레비전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추리와 범죄를 접한 시청자들이 ‘국가 너머’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공언하며 텔레비전드라마를 통해 계도와 계몽을 시도했던 공권력이 1980년대 내내 지속되었던 신군부 정권 아래에서 사회정의에 대해 보여준 대중예술만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87년 이후 텔레비전드라마에 나타난 추리와 범죄의 새로운 양상은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수호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대중적인 질문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직업적 범죄자들과 자경단의 충돌은 텔레비전드라마의 시청자들이 현실의 범죄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태도를 반영한 텔레비전드라마의 재연방식일 것이다. 공권력을 내세운 형사들보다 불법을 불사하면서까지 사적 제재를 수행해줄 자경단에게 ‘감정적 리얼리즘’을 느끼는 현상은 국가가 더 이상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불신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러한 욕망이 태생적으로 국가의 개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텔레비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유의미한 현상이다. 1980년대 내내 국가의 발전을 시각적으로 과시해오던 신군부 정권의 욕망에 의문을 제기하는 불온한 시선은 망가지고 부서지는 이들의 육체를 통해 가시화된다. 텔레비전 추리물을 둘러싼 시청자들의 장르적 욕망은 이 지점에서 새롭게 해석될 여지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범죄 인포테인먼트의 스토리텔링 전략에 주목하여, 레거시 미디어가 탐사보도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을 교접해 시도하는 범죄 사건 스토리텔링의 저널리즘적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하고자 했다. 주된 분석 대상은 이야기의 주제를 ‘음모론’으로 집약해 전면에 내세운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 중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다루었던 두 편의 에피소드다. 장기 미제 사건과 음모론을 관계 짓는 방식에 있어 두 에피소드가 드러내는 차이는, 레거시 미디어가 ‘음모론’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방법과 의도의 변화와도 결부되어 있었다. 개구리 소년 사건을 처음 다루었던 에피소드에서는 장기 미제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이 발생하게 된 경로를 추적하고, 음모론 형성 및 유포와 관련된 정치적, 법적, 금전적 이해 관계를 파헤쳤다. 반면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사건의 범인과 범행 도구를 추론하는 여러 가설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가장 유력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은 또 하나의 가설을 제출하는 데 집중했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기존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부터 이어진 과학적 검증 방법의 정밀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과도하게 전시했으며, 결과적으로 그 결론은 검증하고자 했던 음모론들과 경쟁하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차이는 음모론을 프로그램의 주제로 삼아 문제시하려 했던 기존의 기획의도와 달리, 음모론을 괴담이나 미스터리처럼 추리의 소재로 조정한 데서 빚어진 것이었다. 음모론 자체를 문제적인 것으로 적시한다는 <당신이 혹하는 사이>의 첫 기획의도는 음모론에 대립하는 공론적인 것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정치적 행위로 읽을 수 있다. 동시에 그러한 공론의 재현은 레거시 미디어의 권위를 지탱하는 상징자본이라는 점 또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권위는 팬더믹 위기 상황이 한창 고조되었던 시기, 레거시 미디어가 각종 음모론이 공중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합리적 판단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게 하는 근간이기도 했다. 개편을 전후하여 확인되는 프로그램 기획의도 간의 낙차와 음모론을 활용하는 양상의 변화는 레거시 미디어의 권위를 지키려는 자성적 시도와 손쉬운 표변의 양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본 연구는 『아리랑』에 등장하는 직업여성의 재현방식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전후 재건 현실에 대응하는 대중잡지 『아리랑』의 방식과 그 의미를 가늠해보았다. 통상 한국 전쟁 이후, 가부장이나 남성 가족구성원이 결락된 상태에 처했고 이때문에 전쟁서사나 전후소설에서는 여성 가장이나 전쟁 ‘미망인’(과부)이 대표적인 직업여성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아리랑』은, 전후 직업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특징적 양상을 드러냈다. 첫째, 『아리랑』은 전쟁 ‘미망인’인 아내의 입장이 아니라 자식세대의 직업 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세대교체 현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즉 ‘전쟁 미망인’인 어머니는 무력하게 그려지며, 실제 생계 부양과 가부장의 역할을 하는 것은 딸인 것이다. 둘째, 직업여성의 세대교체는 5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 더욱 뚜렷해지는데, 『아리랑』은 이를 화보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가상과 실재 두 범주에서 구현했다. 우선 가상 직업여성의 경우로는, 화려한 여성연예인을 등장시킨 일종의 체험활동 화보가 있었다. 그러나 이 화보들은 직업여성의 실태를 보여주거나, 직장/노동현장을 소개하기보다는 여성연예인을 ‘보는’ 쾌락, 즉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강조점이 놓여있었다. 이에 비해 「직장의 꽃」 시리즈 화보는 실제 직업여성을 등장시켰다. ‘직장의 꽃’이란, 가정을 벗어난 여성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 등장한 모습을 명명하는 말이다. 그런데, 「직장의 꽃」 화보가 등장하던 시기에 실제로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은 3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중반의 기혼여성이었다. 이런 현실과는 달리 잡지 『아리랑』은 극소수의 ‘직장여성’를 시각적으로 재현해냈던 것이다. 셋째, 『아리랑』의 직업여성 화보는 ‘볼거리 여성이미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대상화를 야기했지만, 그 한편으로는 여성의 근대적인 직업과 그에 종사하는 여성의 개인적인 자질 및 특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여성이 가족 구성원 혹은 인구 재생산 담당자라는 공동체 구성원의 위치에서 벗어난다는 근대적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모습은 결국 전후 현실에서 분출된 욕망이 평등하게 가시화되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 풍경 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나는 한편으로 여전히 보여지는 존재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결국 잡지 『아리랑』은 직업여성의 재현을 통해 ‘욕망의 민주주의’를 발화시키고 생산-유통시켰지만, 그 이면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위계적인 젠더 질서를 지속적으로 재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일본군 ‘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짐으로써,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를 정부에 등록시켜 셀 수 있는 인구로 범주화한 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한국 내에서 살아남은 일본군 ‘위안부’의 수를 셈하기 이전에 자신을 드러낸 김학순의 증언 투쟁에 내재한 상징과 정동을 살펴보았다. 김학순이 증언을 통해 드러낸 전쟁 기억 이미지로서의 폐허는 지명을 지닌 특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무수한 죽음을 목격한 곳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그 참상을 돌아갈 수 없는 주검들이 부유하는 바다로 그려낸 도미야마 다에코의 <바다의 기억>이 제시하는 전쟁의 폐허 이미지를 주목하였다. 땅이 아닌 바다의 폐허 이미지는 굳이 셈할 필요조차 없다고 간주된 여성들에 대한 일본군 ‘위안부’의 동원과 존재 방식, 초국가적인 폴리스를 창출한 운동의 양상에 각인되어 있다. 이에 비추어본다면, 일본에서 기금 문제가 대두된 것에 대한 국내 운동의 대응 속에서 이루어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정부 등록의 법제화는 커밍아웃의 청자를 정부로 삼았으며, 그 자격이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자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것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법제화 과정과 그 결과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 기억, 서사에 있어 민족주의 프레임을 강화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오늘날 ‘위안부’ 생존자 수를 세는 관행과 세계 곳곳에 지속되고 있는 전쟁에 힘입어 확장되는 K-방위산업을 자랑하고 신냉전의 군사적 긴장 속에 확전을 외치는 것이 같은 민족주의의 깃발 아래서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 글은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헤아릴 필요조차 없는 존재들을 대량 생산하는 자본주의 팽창으로 일어나는 전쟁의 중지와 반대에 있음을 주장한다.
1988년의 등단작을 포함하여 1992년까지 발표된 작품들을 엮은 최윤의 첫 소설집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80년대와 90년대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했던 작품집으로 기억된다. 이 글은 최윤의 초기 단편을 ‘여성’ ‘후일담’으로 읽으면서 그녀의 소설이 90년대에 선취한 여성 서사로서의 성취를 확인하고 이러한 성취가 90년대 후일담 담론, 나아가 90년대 한국 문단의 몰젠더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밝혔다. 최윤의 등단작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이하 「꽃잎」)에서 주의깊게 읽어야 하는 부분은 실종된 ‘소녀’를 쫓는 ‘남자’와 ‘우리’들의 윤리 감각이기보다는, 그녀의 날 것 그대로의 독백이 되어야 한다. 독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일인칭 독백 속에서 그녀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을 적극적으로 발화하는 능동적인 윤리적 주체가 되어 있다. 이러한 소녀의 독백을 유심히 읽는다면, 광주의 비극에 대한 여성 수난의 서사로, 혹은 재현 불가능의 고통을 파편화된 언어로 전달하는 소설로 이 작품을 단순화할 수 없게 된다. 90년대 이후 씌어진 후일담이 대체로 80년대와 성공적으로 작별하기 위한 이른바 재빠른 ‘전향자’들의 자기 합리화를 위해 쓰여지기도 했다면, 「아버지 감시」는 이념을 망령화하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후회하지 않는 어떤 굳건한 마음이 90년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소설로 읽힌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그러한 단단한 마음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자기 삶의 불행을 월북한 남편의 탓으로 돌리지도 않고 그와의 조우도 끝끝내 거절한 어머니의 “결단”과도 같은 갑작스러운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 감시」는 1990년대 초반에 쓰여진 후일담소설이 특정 세대와 특정 젠더의 마음만을 대변하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가 된다. 「회색 눈사람」은 7~80년대 운동의 현장에서, 나아가 사건 이후 작성된 후일담의 서사에서 여성이 비단 남성 운동가의 조력자로만 존재하지 않았음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는 소설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 의미있게 읽혀야 하는 부분은 ‘변신’하지 않은 주체로서 여성이 같은 자리에 남아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기록하는, 즉 진정한 후일담을 쓰는 주체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글쓰기의 경험을 나누며, 나아가 하나의 ‘이름’을 공유하며 여성 연대가 돈독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도 여성 후일담으로서 이 소설의 특별한 성과가 된다. 최윤의 첫 번째 소설집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다시 읽는 일은 이처럼 여성 후일담의 유의미한 성과를 재확인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90년대 이후 특정한 시기까지의 한국 문단이 특정 세대와 젠더의 몸 가벼운 변신과 반성을 통해 대변되어왔음을 사후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한국 타임루프 장르의 문화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타임루프 장르는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 형식이 탈근대적 조건의 시공간을 재현하고 있으며, 진보로 대표되는 근대적 시간관‧역사관을 부정하는 측면이 있음을 논증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은 총 세 가지 상호연관적인 세부목표를 경유하여 수행되었다. 첫째, 이 연구는 타임루프 장르가 반서사학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타임루프 장르가 연대기적인 시간성을 교란함으로써, 서사학적 차원을 ‘사건의 시간적 배치’에서 ‘사건의 공간적 배치’로 전환시키는 측면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때 나타나는 서사의 ‘다중분기구조’가 근대적 시간관‧역사관을 부정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점을 조명했다. 둘째, 이 연구는 타임루프 장르가 ‘게임 형식의 서사화’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서사에서 동일한 텍스트의 다시읽기는 권장될 수는 있으나 필수적인 경험이 아니다. 그러나 놀이는 동일한 수행의 반복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맥락을 참조할 때, 타임루프 장르는 비디오 게임의 ‘재시작’이나 ‘세이브/로드’를 서사적으로 번안한 형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이 연구는 타임루프 장르의 서사학적‧기술문화적 맥락이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가지고 있는지 제시했다. 타임루프에서 시간성의 교란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기 어렵다는 현실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은 재시작을 통해 최소한의 기회를 제공하는 유토피아적인 세계로서 재현되고 있다. 이러한 서사는 현재 우리 사회의 증상이 ‘현실적인 플롯’으로는 적절히 다스려지지 않는 측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언설의 의미는 타임루프 장르에 아로새겨진 욕망이 ‘비현실적’이며 따라서 현실도피적이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타임루프 장르는 진보에 대한 전망을 갖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불합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가망성과 기회를 상징적으로 요구하는 서사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트래비스)에게서 드러난 망상과 분노의 수사학 및 특성미를 공감각적 미학의 관점으로 추론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아웃사이더의 고독과 우울, 무력 등에 대한 실재적이고 심각한 문제의 진실을 영화 서사와 영상, 음악을 중심으로 모색함으로써, 영화 미학에서의 시청각적 공감각의 양식화를 재발견하는 데 있다. 폴 슈레이더의 각색은 “매일-불일치-결정적 행동-정체”의 패러다임을 드러낸다. 트래비스는 과로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망상과 분노에서 사회 속으로 통합하려는 노력이 좌절되며, 삶의 전환기를 맞는 결정적 행동에도 실패하고, 자아실현의 내러티브를 만들기 위해 일기와 편지, 기사, 영화, 드라마 등에 열중한다. 이 영화는 인간관계와 관련된 실존적인 작품으로, 유한성의 괴로움에 짓눌려 있는 트래비스를 깨달음의 해방과 초월을 위해 애쓰는 인물로 묘사한다. 마이클 채프먼의 영상에서, 택시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뉴욕의 스냅숏은 필름 누아르보다 더 복잡하고, 개인적이며, 어둡게 빛난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뉴욕 고딕’의 이미지와 버나드 허먼의 ‘시적이고 병적인 경향’의 음악을 결합하여, 시작부터 끝까지 오버랩을 통해 흥분을 고조하며 이전의 각인한 것을 계속 강조하는 음악적 박동을 선호한다. <택시 드라이버>의 서사는 초월적 스타일을 지향하고, 그 영상과 음악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망상과 분노의 미학적 재생산을 도모한다. 이러한 연출은 사회 심리 드라마의 미적 범주를 미술과 사진, 음악, 영화의 영역으로까지 연결하는 극적 양식화로 나아간다. 이 글은 영화를 통한 일련의 시청각적 모티프를 확인하는 데 연구 의의가 있다.
본 연구는 폭력의 문제적 현실을 다룬 판타지 드라마 <시그널>과 그의 중국 리메이크 드라마 <시공래전>을 대상으로 드라마에 재현된 각종 폭력과 정의구현을 비교 분석하였다. 서사를 둘러싼 문화의 공통성과 변용에 초점을 맞추어 폭력의 문제적 현실의 근원을 고찰하였다. 제도를 뛰어넘어 시공간을 초월한 연대가 정의의 부재와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이라는 드라마 서사의 사회적 기능을 탐색하였다. 이를 계기로 권력의 폭력을 재현한 드라마의 분석을 통해 한·중 두 나라에서 문제적 현실 속 권력의 폭력의 근원을 밝히는 비교연구의 공백을 메우리라 기대한다. 장기미제사건으로 표현되는 과거의 폭력과 책임의 부재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삶의 고통을 재구성함으로써 구조적 폭력의 문화 정치학을 살펴보면서 억눌려 왔던 대중의 목소리와 당대 사회적 의미를 포착한다. 한·중 두 드라마의 서사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문화적 공통성과 회피의 문화적 변용을 고찰하여 어떤 정치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탐구한다. 더 나아가 인간성 내면의 특징을 통찰하며 권력의 횡포에 맞선 진실 추구의 깊은 문화적 함의를 밝혀낸다. 시공간을 초월한 연대라는 판타지를 통한 정의실현으로 현실 속 폭력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재조명한다. 궁극적으로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데에 한·중의 문화 공유와 공감을 재사유하여 공평과 정의를 지향하는 공통의 대안을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에 의의를 둔다.
이 글은 웹툰을 대상으로 오늘날 청년세대의 정체성과 문화가 재현되는 양상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했다. 웹툰은 비교적 동시대 사회적 이슈 및 담론을 기민하게 섭취하여 담아내는 장르이다. 그런 만큼 최근 연재된 웹툰은 우리 시대 청년세대와 관련된 여러 현상을 이해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 이 글은 ‘20대 현상’을 설명하는 최근의 청년담론의 논의를 참고하여 ‘공정하지 않다는 감각’과 그로부터 파생된 차별과 혐오를 이해하기 위해 지방대를 졸업한 사회초년생이 취업 문제를 다룬 서사를 살펴보았다. <취준생물>은 표면적으로는 지방대생의 취업 성공이라는 희망을 전달하는 듯하나, 사회적 성공과 내적 성장을 겹쳐 놓음으로써 타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손쉽게 해소해버리는 청년의 모습을 그린다. 진정성이라는 가면으로 무장한 주인공의 모습은 일상이 된 혐오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은폐하는 현상을 징후적으로 담아낸다. <니나의 마법서랍>은 생존조차 어려운 현실과 전망 없는 미래에 불안해 하면서, 이를 회피하기 위해 가상세계가 주는 쾌락에 중독되는 청년을 그린다. 상호연결의 감각, 자기와 타인을 돌보는 관계성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쾌락이 되어버린 혐오와 폭력에서 벗어나는 대안적 가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제시한다. 이처럼 두 텍스트는 공통적으로는 청년의 불안과 혐오를 다루면서도 상이한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흥미로운 것은 진정성을 다루는 방식이다. <취준생물>은 거짓된 진정성으로 무장하여 현실에 순응하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면, <니나의 마법서랍>은 자기정체성은 진정성이 아니라 상호 돌봄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이는 진정성의 상실 이후 청년세대의 미래를 짐작하게 한다. 최근 청년세대를 재현하는 두 텍스트는 주제와 전달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오늘날 청년세대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논문은 프란체스코 카세티의 2015년 저서인 『뤼미에르 은하계: 도래할 시네마에 대한 7가지 키워드』(The Lumière Galaxy: Seven Key Words for the Cinema to Come)를 포스트-시네마 연구(post-cinema studies)의 맥락에서 살펴본다. 포스트-시네마 연구란 표준적인 시네마를 규정해 온 셀룰로이드, 렌즈-기반 이미지, 단일 스크린, 영사, 관객의 고정성 등의 구성요소가 디지털 기술 및 영화관 이외의 경험적 플랫폼에 의해 변하면서 표준적인 시네마의 경계가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조건인 포스트-시네마 조건(post-cinematic conditions)에 반응하는 1990년대 이후의 영화연구 및 담론을 포괄한다. 이 논문은 포스트-시네마 연구의 경향을 재료와 형태(material and form), 플랫폼(platform), 역사(history), 철학(philosophy)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요악하면서 『뤼미에르 은하계』가 두 번째와 세 번째 경향, 즉 플랫폼과 역사의 관점에서 포스트-시네마 조건을 시네마의 존속과 변화가 이루는 이중 운동으로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한편으로 카세티는 포스트-시네마 조건을 전통적인 시네마의 경험, 그리고 이를 구성하는 장소와 장치가 전례 없이 변동되는 상황으로 진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한편으로 이와 같은 변동이 전통적인 시네마의 경험을 다른 장소와 기기에서 재발견, 재구성, 재창안하게끔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포스트-시네마 담론 중 하나의 목소리인 ‘영화의 죽음’ 담론, 그리고 이 담론의 인식론적 근거로서 포스트-시네마라는 용어를 시네마와 시네마 이후의 단절을 강조하는 시대구분으로 이해하는 관점에 도전한다. 이와 같은 카세티의 주장을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 이 논문은 『뤼미에르 은하계』가 제시하는 7가지 키워드인 재배치(relocation), 성유물/도상(relic/icon), 결합체(assemblage), 확장(expansion), 하이퍼토피아(hypertopia), 디스플레이(display), 수행(performance)의 의미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이 논문은 카세티의 이론이 포스트-시네마 연구에 기여하는 바를 점검한다.
This paper positions Francesco Cassetti's 2015 book, The Lumière Galaxy: Seven Key Words for the Cinema to Come, within post-cinema studies. I define post-cinema studies as a set of scholarly approaches and discourses since the 1990s that have responded to the post-cinematic conditions: conditions in which the boundaries of normative have been dismantled and dynamically redrawn as its constitutive components, such as celluloid, lens-based imagery, single screen, projection, and the fixity of spectators, are changed by digital technologies and non-theatrical experiential platforms. Summarizing the tendencies of post-cinema studies as four keywords (material and form, platform, history, and philosophy), I argue that The Lumière Galaxy, based on its emphases on platform and history, demands us to consider the post-cinematic condition as a dual movement of cinema's persistence and change. On the one hand, Cassetti diagnoses the post-cinema conditions as a situation in which traditional cinematic experience, and the place and apparatus that constitute it, are undergoing unprecedented changes. On the other hand, he nevertheless stresses that such a shift provides an opportunity for rediscovery, reconstruction, and reinvention of the traditional cinema experience in other places and devices. In so doing, he challenges the so-called ‘death of cinema’ discourse, as well as its epistemological basis that posits the term post-cinema as marking a fundamental, periodizing break from cinema. In order to closely examine Cassetti's argument, this paper elucidates the seven keywords suggested by The Lumière Galaxy: relocation, relic/icon, assemblage, expansion, hypertopia, display, and performance. This leads to underline Cassetti's contribution to post-cinema studies.
이정옥의 『로맨스라는 환상』(문학과지성사, 2022)은 로맨스 장르를 통해 여성 취향 독서 시장의 통시적 흐름과 거기에서 나타나는 친밀한 관계의 변화 양상 그리고 여성 주체성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 저서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대체로 통시적 흐름에 따라 구성되었다. 1부는 중세, 2부는 근대, 3부는 현대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로맨스의 역사를 중세까지 확장해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보통 근대와 현대 로맨스의 역사적 흐름만을 제시해 왔던 다른 연구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 책은 중세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던 기사도 로맨스부터 시작하여, 낭만주의 시대의 운명적이며 비극적인 사랑을 거쳐, 근대 여성의 낭만주의 유토피아를 구현하며 로맨스가 상품화되는 과정까지 살피고 있다. 이 책은 로맨스 장르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로맨스라는 장르로 대표되는 여성 정체성의 서사적 구축에 더욱 관심이 많다. 그리고 여성의 서사를 여성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축적된 로맨스의 대표작들이나 사랑에 관한 철학과 사회학 이론 그리고 문학 이론을 여성적 관점을 통해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를 통해 독자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젠더적 편견을 깨닫는 놀라운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