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국가 기획으로 제작된 문화영화의 역사성(historicity)을 밝히기 위하여 한국전쟁이후 1960년대의 문화영화 제작 및 상영 그리고 관람 경험을 분석하고 있다. 195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국가 정체성 및 국민 통합은 대한민국을 대내외적으로 승인받고자 하는 문화영화의 제작으로 나타났다. 전후 문화영화에 재현된 남한 각 지역에 대한 시각화는 반공 이념과 냉전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각 지역 고유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삭제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미국을 정점에 둔 냉전 오리엔탈리즘의 이중적 시선의 내면화이자 지역의 지방화 과정이었다. 문화영화를 통한 균질적인 역사 기록과 기억의 재구성은 전쟁이후 근대질서 수립과 정권의 안정을 목적으로 했다. 그것은 1960년대 산업화와 결부된 향토 담론의 소환과 함께 근대 이전 문화를 국가권력 아래로 재배치시키는 결과 역시 초래했다. 문화영화 제작과 상영은 지역 엘리트를 성공적으로 동원시켰으며, 지역 엘리트 역시 문화원을 통한 순회 영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하지만 일상생활 경험 주체인 대중은 지역민이자 관객의 위치에서 다양한 문화적 실천을 벌여갔다. 지역민 대중은 계몽과 교화를 위한 영화 상영장을 오락과 통속의 장(場)으로 전유하면서 국가의 문화 기획을 비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화와 도시화 표상으로서 영화 관람에 대한 지역민의 욕망은 지역 엘리트의 발전 담론과 영화산업 논리와 결합되면서 상설극장 건립으로 봉합되는 역설적 상황을 연출했다.
This work examines the historicity of cultural film from the post-Korean War to the 1960s designed by Korean government in order to construct the cultural identity for both Korean people and international propaganda. To problematize the representation of each region in South Korea in the film during the period is to explore the contention and struggle regarding the discourse on culture between nation power and ordinary people, and interweave them into history. By the 1950s after the Korean War the visual images of regions and its theme in cultural film displayed in the rhetorics of inclusion and exclusion of anti-communism based on Cold War Orientalism. Also, cultural film produced until the mid 1960s intended to mold the discourse on the 'one's native place' in order to support the discourse on modern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in South Korea. Under the circumstance, most of the local elites were mobilized to the logics of the construction of ‘Korean-ness’ and modernization, which were designed by cultural film. Ordinary people in the local areas, as distinct from the local elites, responded the propaganda film and appropriated the place of film exhibition from the place of the ‘enlightenment’ to the place of ‘the vernacular’. The appropriation of the film exhibition place, however, resulted in the desire of the building of movie theaters in their regions, which was the paradox of film reception in their ow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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