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의 캐릭터들의 몸짓과 대사는 독자와 관객들 사이에서 오랜 기간 화제가 되었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흑인의 몸(짓)에 동양인의 얼굴을 한 <슬램덩크>의 캐릭터들, 그리고 여기에 격렬하게 호응하는 남성 팬덤과 이 호응을 여성에게 공유하면서 공감을 만들어내는 힘은 <슬램덩크>를 둘러싼 정동의 작용은 물론, 그 정동이 인종화 및 젠더화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이 글은 몸짓의 초국가적 정동지리를 그려 보임으로써, 그 지형을 사물화, 인종화, 젠더화 어셈블리지로서 드러내고자 한다. NBA 커미셔너로서 데이비드 스턴과 그의 동료들은 마이클 조던의 이미지를 통해 흑인과 백인을 대표하는 가장 유익한 측면을 결합했다. 농구의 상징과도 같았던 조던의 모순적 이미지는 <슬램덩크>의 재현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슬램덩크>의 모사적 재현은 흑인 남성의 신체를 통해 체현된 NBA의 정동을 유지하면서도 도상적으로 흑인성의 흔적을 삭제하는 기술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재현은 몸짓의 패턴에 결합된 스포츠 기술로부터 인종화된 개인에게 정치적 행위자로서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을 박탈하는 결과를 함께 낳는다. 한편, 일본산 ‘하드 바디’의 캐릭터화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농구선수들은 ‘오빠부대’를 향한 혐오의 정동에 함께 접착되면서 ‘소프트 바디’로 변신했다. 이는 혐오의 대상을 젠더화시키는 동시에 유아화시키는 위계적 방식이다. 이러한 세대의 문제는 역사적 단층의 문제다. 한국에서 농구의 전성기는 학생운동이 쇠락하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농구대잔치의 주역이었던 선수들이 속한 연세대학교는 ‘한총련 사태’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한총련’과 ‘오빠부대’를 하나로 묶고 고착시키는 것은 혐오의 정동경제다. 몸짓의 의미와 정동은 대중문화적 정치의 지형 변화와 중첩에 따라 인종화되고 젠더화되면서 끊임없이 우발적으로 변용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몸짓의 진행 중인 변용은 대중문화와 일상생활의 변화하는 관계, 그리고 글로벌 어셈블리지의 인종화되고 젠더화된 (재)배열을 보여주는 징후로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The bodily motion and dialog of Slam Dunk's characters have become a long-standing trend among readers and audiences, and it's an ongoing trend. The characters in Slam Dunk, with their black motions and Asian faces, and the power of the male fanbase to resonate with them and share this resonance with women, suggests that the affective forces surrounding Slam Dunk are intimately connected to issues of racialization and gendering. Based on these considerations, this article seeks to map the transnational affective geographies of bodily motions, revealing them as assemblages of objectification, racialization, and gendering. As NBA commissioner, David Stern and his colleagues combined the most favorable aspects of black and white representation through the image of Michael Jordan. Jordan's contradictory image as a symbol of basketball also influenced the way Slam Dunk was represented. The tracing representation of Slam Dunk is a technique that maintains the NBA's affect as embodied through the bodies of black men, while iconographically erasing traces of blackness. Ultimately, this representation works together to deprive racialized individuals of the potential they may have as political agents, from the technology of sport coupled with patterns of bodily motion. On the other hand, Korean basketball players, who could be said to be characterizations of Japanese "hard body", were transformed into "soft body" as they were attached to the affect of hate towards the "Oppa band". This is a hierarchical way of gendering and infantilizing the object of hate. This generational problem is a historical fault line. The heyday of basketball in South Korea coincided with the decline of the student movement. Yonsei University, where the players who were part of the basketball festivities belonged to, was also in the spotlight for the "Hanchongryon(Korean Federation of Student Councils) demonstration". It is the affective economy of hate that unites and perpetuates the "Hanchongryon" and "Oppa band". The meanings and affects of bodily motions have been and will continue to be contingent, racialized and gendered as the terrain of pop cultural politics shifts and overlaps. The ongoing transformation of bodily motions should therefore be noted as a manifestation of the changing relationship between popular culture and everyday life, and the racialized and gendered (re)arrangement of global assembl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