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738-3188
본고의 목적은, 동아시아 블록 차원의 유통이 장려되거나 강제되던 신체제기(1940-1945)에 조선에서 공연된 가극단들의 민족(지역) 재현물을 주목하고, 그 민족 재현물이 ‘국책의 요구’와 조응하는 양상을 규명하는 것이다. 일본의 도호무용대와 다카라즈카가극단이 국책 선전극으로 기획한 ‘도호 국민극’이나 ‘동아공영권 시리즈’에는 동아 재현물이 상당했다. 선택적으로 절취한 민족적 기표를 시청각적 표현 매개로 삼은 이들 동아 재현물들은, 재현 주체로서 제국 일본의 위상을 전시하는 효과를 내었다. 이 일본의 두 공연단들은 각각 두 차례씩(도호무용대는 1940년과 1941년에, 다카라즈카가극단은 1942년과 1943년에) 조선에서 대규모 공연을 실시했다. 일본과 만주로 진출했던 조선의 가극단들도 민족(지역) 서사를 가극으로 무용극으로 만들어 공연했다. 라미라가극단과 반도가극단의 <콩쥐팥쥐>, <견우직녀>, <은하수>는 아시아에서 널리 공유되는 설화를 채택하면서 조선의 향토성을 강조하는 식으로, 대동아공영 이념을 재현하고 조선을 타자화했다. 특히 <콩쥐팥쥐>는 노동하는 소녀와 협동하는 아이들 이미지를 통해 총후에 요구되는 생활 감각을 제시했고, <견우직녀>는 견우와 직녀를 ‘떠오르는 태양’과 ‘천녀’라는 일본적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일본을 범아시아의 중심으로 재현하는 효과를 내었다. 한편, 조선악극단과 반도가극단의 <목란>과 <맹강녀>는 지나의 설화를 레뷰화한 것으로, 전쟁터의 여성용사와 부역장의 열녀 이미지를 통해 국방국가 건설에 부응하는 여성상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