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738-3188
최근 발표된 SF는 인류가 인류세적 위기에 응전하며 만들어갈 새로운 문명의 모습을 예고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김초엽과 김보영의 소설들을 대상으로 하여 한국 SF가 임박한 인류세적 재난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인류가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인류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한다. 근대적 인간관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포스트휴먼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초엽의 『파견자들』은 외계에서 온 생물인 ‘범람체’에 의해 오염되는 세상을 그린다. 사람들은 범람체를 배척하고 피하려 하지만 주인공은 오히려 범람체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독립된 개체로서 자리매김된 근대적 인간관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의 형상을 제시한다. 이러한 포스트휴먼들은 다양한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생성의 흐름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보영은 장편 『종의 기원담』에서 로봇과 인간이 서로를 훼손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존, 공진화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김초엽은 단편 <오래된 협약>에서 외계 생명체와 공존을 모색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소멸 속에서 머물기’와 ‘노출’의 윤리와 정치학을 실천하라고 요청한다. 신유물론적 페미니스트 연구자 스테이시 얼라이모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오염시키는 유해한 재난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노출하라고 권유한다. 생명체는 자신을 노출시킴으로서 근대적 자아(ego)의 소멸, 훼손을 경험하지만, 이를 통해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는 존재론적 엉킴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원자화된 자아에서 벗어나 생성의 흐름에 합쳐지는 경험을 수반하므로 쾌락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수동적, 금욕적 의미의 ‘페이션시’에서 더 나아간 ‘노출’과 공생의 정치학을 인류세의 대안으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