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738-3188
이 글에서는 아카이브로서 하위주체 읽기를 시도한 소영현의 『하녀-빈곤과 낙인의 사회사』(2024)에 주목하며, 사이디야 하트만(Saidiya Hartman)의 글들을 소영현의 『하녀』와 겹쳐 읽어보고자 한다. 하트만은 현대 사회에 잔존 중인 노예제의 인종 차별적 폭력을 ‘노예제의 사후세계(the afterlife of slavery)’로 개념화하며, 흑인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이 아카이브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소영현은 한국 사회에서 하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역사적인 경위를 추적하며 아카이브 다시 읽기를 시도했다. 아카이브가 전하는 공식 기록 너머의 억압된 목소리를 듣기 위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며, 하위주체들의 서사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역사 쓰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소영현과 하트만의 연구는 공통적이다. 하트만은 흑인 노예제 아카이브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를 질문하며, 아카이브로부터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고 동시에 무엇을 이야기할 수 없는지에 대해 사유해왔다. 소영현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하녀의 존재를 보지 못하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 존재로 인식되어 온 이유는 하녀의 삶을 읽는 방법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아카이브를 다시 읽는 행위는 한국 사회에서 비가시적인 존재로 내몰린 타자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성찰하는 윤리적 실천의 일환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In this article, I focus on Young-Hyun So’s The Housemaid: A Social History of Poverty and Stigma (2024), which interprets subjects as archives and intersects with Saidiya Hartman’s work. Saidiya Hartman conceptualizes the racial violence that persists in modern society as the "the afterlife of slavery," analyzing how the discrimination and violence experienced by Black women are treated within the archive. Similarly, Young-Hyun So traces the historical trajectory of how the voices of female domestic workers have been silenced in Korean society and conducts research that seeks to uncover the truth conveyed by the archive. Both Hartman and So share a common focus on exploring ways to actively listen to the repressed voices beyond the official records of the archive, proposing the possibility of a new historiography that reconstructs the narratives of marginalized subjects. Hartman has long been preoccupied with the question of how to interpret the archives of Black slavery, focusing on what can and cannot be told from the archive. So diagnoses that the reason why domestic workers have remained invisible and unacknowledged in Korean society is due to the lack of consideration given to how their lives are read. The act of rereading the archive can be viewed as an ethical practice that reflects on how we might live together with the marginalized others who have been rendered invisible in Korean 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