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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서울분원 대회의실(별관 3층)
  • 2024년 07월 03일(수) 13:30
 

대중서사연구

  • P-ISSN1738-3188
  • E-ISSN2713-9964

‘노스탤지어’의 흥행사

The History of entertainment as ‘Nostalgia’: focusing on the ebb and flow of Ak-g?k(樂劇) in 1950’s

대중서사연구 / 대중서사연구, (P)1738-3188; (E)2713-9964
2007, v.0 no.17, pp.43-72
https://doi.org/10.18856/jpn.2007..17.002
이화진 (연세대학교)

초록

1940년대에 가장 전성했던 연예물인 악극은 한국전쟁기에도 전방에서는 병사들을, 후방에서는 피난민들을 위안하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피난을 떠났던 여러 악극단들과,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선전에 동원되었던 군예대는 전쟁 발발 후 문화적으로 공동화(空洞化)된 서울보다는 피난민들이 모인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그 활동은 전전(戰前)의 것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그침으로써, 공연은 계속되어도 새로운 창조는 없었다. 이런 이유로 전후 악극은 영화와 여성국극, 각종 쇼 등 다양하고 새로운 볼거리의 홍수 속에서 서울의 중앙 무대로 귀환하는 데 실패하고, ‘낡은 것’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 시기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악극단은 전옥이 이끄는 백조가극단이었는데, 이 단체는 1930년대 ‘화류비련’류의 통속적 신파극의 영향 아래 여주인공의 수난을 통해 관객의 동정을 이끌어내는 ‘노래하는 신파비극’으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 그러나 백조가극단처럼 전쟁 중 왕성하게 흥행했던 악극단들도 전후 흥행의 부진 속에서 버라이어티 쇼에 비중을 두면서 자구책을 모색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악극의 퇴조를 더욱 가속화할 뿐이었다. 1950년대 중반 악극단 출신 연예인들이 대거 영화나 쇼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관객들은 새로 등장한 대중연예들로 눈을 돌리면서, 악극은 궁핍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노스탤지어’로 호명될 뿐 빠르게 잊혀져갔다. 주제어악극, 전시의 대중연예, 군예대, 노래하는 신파비극, 버라이어티 쇼, 백조가극단

keywords
Ak-gǔk, entertainment in wartime, KAS, vulgar melodrama with song and dance, variety show, Baek-jo gagǔkdan., 악극, 전시의 대중연예, 군예대, 노래하는 신파비극, 버라이어티 쇼, 백조가극단

Abstract

The heydays of Ak-gǔk(樂劇) covered in a state of disorder from the late colonial period to the Korean war. Performers of Ak-gǔk entertained troops and refugees with songs and dances even in wartime. Ak-gǔk was transformed from theatrical shows to the ones on the street during those times. Troupes took the road for the provincial audiences rather than in the city Seoul which had become a big cultural hollow because of the Korean war. The activities of entertainers in wartime tell u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ar and entertainment. The shows could go on, even though the war violently interrupted the peaceful daily life. However they didn't create new ones, just repeatedly reproduced the prewar ones since the future had remained uncertain in an emergency situation. Many musical troupes, including 'Baek-jo gagǔkdan', gained the popularity through the vulgar melodramas with songs and dances in wartime. After the war, however, they had to give ways to the cinemas, the Korean female classical operas, and the variety shows. Ak-gǔk became old-fashioned spectacles. The trials of some troupes, which attempted to adapt themselves to the new showbiz, resulted in failures. As lots of talented entertainers moved their fields to the cinema and the variety show, and audience turned their eyes to new rising entertainment, Ak-gǔk was lost in the mists of time. It has been remembered as only 'nostalgia'.

keywords
Ak-gǔk, entertainment in wartime, KAS, vulgar melodrama with song and dance, variety show, Baek-jo gagǔkdan., 악극, 전시의 대중연예, 군예대, 노래하는 신파비극, 버라이어티 쇼, 백조가극단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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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港口의 一夜" 前·後篇(1964)가요 114(http://www.gayo11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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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1월·2월) 한국악극사⑧⑨-악극단들의 활동무대, 한국연극

3.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울다 웃다 80年 배우 인생(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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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대중연희에서 영화로 : 한국 대중영화의 기원을 찾아서, 한국영상자료원

5.

(2004) 신문 기사로 본 한국영화 1945~1957, 공간과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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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신문 기사로 본 한국영화 1945~1957, 공간과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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