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738-3188
본고는 대중소설 『인간시장』의 특징과 대중문화사적 맥락을 살펴보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의 인기는 무림의 고수이자 정의 수호자인 ‘장총찬’의 영웅적 활약상에 힘입은 바 크다. 장총찬은 70년대 청년문화가 보여주는 ‘퇴폐 멜로’의 반항아들과 달리 불의에 맞서 싸우는 투사형 청년이다. 신군부 쿠데타, 80년 광주비극 등의 5공화국의 폭력적 현실에 의해 다시 한번 좌절한 대중은 이 저돌적인 청년의 돈키호테적인 활약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러나 장총찬이 수호하는 정의란 ‘인신매매, 소매치기, 재벌 비리’와 같은 뒷골목의 치안이나 민생 정의에 한한 것이다. 장총찬은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등의 의적, 토착적 영웅계보를 잇고 있으나, 70, 80년대 당대 현실에 훨씬 더 밀착해있다. 『인간시장』의 인기비결은 70년대 대중독물의 한 특징인, 르포・논픽션적 현장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인간시장』의 많은 내용은 당시 저널리즘에 등장한 사건들을 픽션화한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서사양식 또한 르포・논픽션에 가까운 특징을 보여준다. 장총찬은 방외인, 루저와 같은 하위남성들을 대표한다. 장총찬은 이들을 대신하여 부패한 일류를 응징하고 공평한 사회를 구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수단은 주먹, 표창, 무술, 그리고 전국적인 조직폭력배와의 연대이다. 이러한 수단에 의한 악의 응징은 근본적인 구조를 도외시한 채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대리만족을 겨냥한다. 폭력과 함께 『인간시장』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코드는 마초적 섹슈얼리티이다. ‘왕초’가 되고 싶어 하는 장총찬은 파시즘과 가진 자들에게 억눌려 남근주의적 마초의식을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하위 남성들의 영웅 표상이다. 『인간시장』은 후반부로 갈수록 민족주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표출하고 있다. 민족/국가주의 영웅은 장총찬이라는 남근주의적 영웅형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나 이 이념은 군부독재라는 당시 폭력적 현실을 은폐하고, 대중에게 익숙하고 안전한 대리만족을 안겨줄 뿐이다. 결론적으로 당시 부패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장총찬의 폭력, 그리고 섹슈얼리티는 일종의 80년대에 대한 시뮬라크르로 볼 수 있다. 장총찬의 영웅주의는 데칼코마니처럼 80년대 독재정권을 모방하면서 근본적인 ‘폭력’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시장』 1부 10권, 해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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