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738-3188
한국 SF가 ‘80년 광주’를 이야기한 사례는 손에 꼽을 숫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80년 광주 SF’는 1980년 이래 정치 사회 변동의 중요 국면마다 확인된다는 점에서 결정적이다. 이 연구의 문제의식은 크게 세 가지다. ① ‘5・18’을 ‘SF’와 연결하는 상상력은 사회 구조의 변동과 어떻게 연결되며 발현하는가? 이를 위해 잠재적 창작 역량으로서의 ‘5・18 상상력’의 형성 추이를 추적한다. ② ‘5・18이 소거된 광주’를 상상하는 서사는 왜 기피되거나 시도하더라도 정치적 오염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③ ‘80년 광주’를 이야기하는 SF는 임철우, 윤정모, 홍희담 등의 이른바 非 SF 문학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대상으로 삼은 소설은 채영주의〈시간 속의 도적〉(1993), 김세랑의〈ARMOR’S STORY〉(1993)와 강유한의〈리턴1979〉(2009-2011), 김희선의 〈무한의 책〉(2017)이다. 1979년 12・12 사태로부터 1980년 5・18, ‘5・18’을 둘러싼 용어 변천사, 84년 유화 국면 이래의 학술 출판계의 대응, 6월항쟁과 직선제 개헌, 정권별 5・18과 통일에 대한 정책 변화, 1993년 문민정부의 탄생과 하나회 축출, 역사바로세우기 정책, 세기말에서 밀레니엄 시기의 5・18을 둘러싼 각종 논쟁 등을 추세선(趨勢線)으로 인식하고 ‘80년 광주 SF’의 발생이라는 결과에 이르는 역사의 추세를 역산(逆算)하는 ‘외삽법(Extrapolation)’을 본 연구의 방법론으로 삼았다. 시기별로 그 흐름을 소략하면, ‘5・18’을 ‘SF’와 연결하는 상상력은 1980년대 한국에선 불가능했다. 전환점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은 1993년이었다. 1993년 3월에 채영주의 〈시간 속의 도적〉, 1993년 〈취미가〉 3월호와 4월호에 김세랑의 〈ARMOR’S STORY〉가 발표됐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를 지나는 동안에는 ‘80년 광주’와 ‘SF’의 접목은 눈에 띌 만한 성과가 적었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시기에 역설적인 활기를 되찾는다. ‘5・18 상상력’을 우익의 관점에서 갱신하는 강유한의 대체 역사소설 〈리턴1979〉가 이 시기(2007-2011)에 연재됐다. 촛불 항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첫해인 2017년에는 김희선의 〈무한의 책〉이 발표된다. 각각의 작품을 잇는 흐름을 통해 ‘5・18 상상력’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사실과 해석, 정서들의 나열 속에 맴돌게 하지 않을 ‘사이’, 국가의 영역이나 제도화된 학계의 영역에 분류되지 않을 때 가능한 ‘사이’를 사유하는 SF의 발견으로 접근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