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ACOMS+ 및 학술지 리포지터리 설명회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서울분원 대회의실(별관 3층)
  • 2024년 07월 03일(수) 13:30
 

logo

메뉴

일제강점기 치과재료 합금 광고에 관한 연구

The Study on the Advertisement for the Dental Alloys during the Colonial Period in Korea

Abstract

금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왔다. 4-5000 년 전 고대 이집트인의 미이라에서 금으로 봉한 치아가 발견되었고, 그리스에서는 금선으로 치아 를 묶었다. 1593년 독일에서 금세공업자에 의하여 만들어진 금니가 발견되어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1). 근대치의학에서 금은 치과재료로 보편화되었다. 금은 치아 보철과 보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재료 였다. 또한 금은 장신구의 재료로서 사랑 받는 금속이었기 때문에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합금 의 개발은 가격을 저렴하게 하기 위하여 출발하 였으나, 이 과정에서 합금은 그 성질에 있어서 금이나 백금과의 차이를 보이며 문제점이 나타나 게 되었다. 귀금속과 합금의 광고는 치과재료의 광고에서 항 상 게재되었다. 1927년 7월 금, 은, 백금의 광고가 보이며2), 1929년 11월 다양한 금 합금이 판매되고 있었다3). 1931년 5월 일본치과재료협회는 내무성 위생국의 요청에 따라 치과재료의 자국산화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이후 일제 당국과 일본치과재료 협회 회원은 합금을 연구·개발을 촉진시켜 왔고4), 치과의사들의 학술 단체인 조선치과의학회와 경성 치과의학회는 학문적으로 알리기까지 했다5). 합금은 그 성질에 있어서 금이나 백금과의 차이 를 보였다. 때문에 합금의 개발은 얼마나 그 차이 를 좁히는가 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 이 과정 에서 일제의 당국자들은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 으로 금의 사용을 규제하며, 일본치과재료협회 회 원과 같이 어떻게 합금을 연구·개발을 촉진시켜 왔는지를 밝혀 보고자 한다. 자료는『조선치과의학 회잡지(朝鮮齒科醫學會雜誌)』와 『경성치과의학회 잡지(京城齒科醫學會雜誌)』월간지 『조선지치계 (朝鮮之齒界)』와 『만선지치계(滿鮮之齒界)』6)에서 합금의 광고를 발췌하여 사용하였다.

keywords

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