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738-3188
우리는 수많은 데이터가 존재하는 인터넷 공간에 접속하기 위해 포털이라는 관문을 거친다. 포털은 데이터 사회에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 시대적 흐름에 맞춰 그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글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서사적 배경이 포털(기업)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데이터 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적 산물인 포털 공간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검블유>에서는 국내 양대 포털 기업인 ‘유니콘’과 ‘바로’가 자사 서비스 사용자를 늘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바로’로 이적한 배타미는 점유율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광고, 웹툰 작가 영입, 메인 화면 개편 등의 전략을 시도한다. 이때 드러난 스펙터클한 포털 이미지의 이면에 집중하면, 포털의 은폐된 작동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 즉, 포털이 새로운 경제체제에 신속하게 편입되어 신자유주의의 실상이 스며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또한 포털의 여러 서비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검색’이다. 포털은 고유의 알고리즘에 따른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가 만족할 만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다. <검블유>는 유력 대선 후보의 실검 삭제가 극 중 갈등의 시발점이다. 이는 알고리즘이라는 수학적 원리의 작동 방식이 객관적이고 투명한 것이 아니며, 정치와 자본 세력에게 끊임없이 기만당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검블유>는 사회적 구성물로서 포털의 영향력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현 시대는 인터넷을 접속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은 인터넷과 우리의 세계를 잇는 포털(기업)의 스펙터클에 은폐되고 숨겨져 있는 작동원리를 볼 수 있는 혜안을 지닐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OTT드라마 <무브 투 헤븐>을 대상으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는 ‘소외된 죽음’에 대해 살펴보고, 드라마 콘텐츠가 죽음을 재현하는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윤리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목적이다. 죽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불안과 공포,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근현대 사회는 죽음의 부정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서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서 죽음을 유폐시키려고 했다. 이에 죽음은 어느 순간부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관련이 없어야 하는 ‘타자의 사건’이 되면서 소외되기 시작했다. 근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성취를 요구한다. 이러한 성취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의 잉여자 또는 낙오자가 되어 주변화된 집단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있어서도 소외된다. 소외된 죽음은 현대 사회 체제가 지닌 결핍과 모순이 응집된 장소와 시간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사회의 헤게모니 집단은 소외된 죽음이 대중의 관심을 받거나 집단의 대항담론을 구성하는 대상이 되는 것을 기피한다. 과거 TV드라마는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기능이 강했으며, 사회의 규정성을 생산해 내는 매체였다. 그래서 당대 사회 체제의 모순과 결핍을 드러내는 사건 등이 드라마의 소재로 활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 이에 따른 OTT드라마의 등장은 기존의 드라마 제작 및 방영에 있어서 큰 변화를 주었다. OTT사업은 구독자 중심으로 수익이 발생하기에 양질의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를 위해서 콘텐츠 창작의 자율성 보장, 거대 자금의 투자 등이 이루어졌다. 이에 OTT드라마는 과거 공중파 드라마가 다루지 않은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여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은 한국 사회의 ‘소외된 죽음’을 이슈화된 사건으로 다루는 것을 지양하면서 유품정리사를 통해서 죽은 이의 ‘삶의 서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드라마는 이를 통해서 소외된 죽음이 ‘개인의 죽음’이 아닌 ‘사회적 죽음’임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드라마는 죽은 이의 ‘삶의 서사’를 구성하면서 죽은 이가 누구인지, 현재 우리가 소외된 죽음을 대면하면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소외된 죽음에 우리의 책임은 없는지 등을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 드라마는 이 과정에서 현재 우리에게 요구되는 죽음에 대한 ‘애도의 윤리’를 구성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근래 한국 게이 로맨스 영화에서 공통되는 서사적 구조를 도출하여 남성 간 돌봄을 통해서 친밀성의 관계를 창출하는 장치를 분석한다. 이는 여성 독자·관객이 주를 이루는 폐쇄적 매체를 통해 창작·향유되었기에 주로 여성 문화로 간주하여 온 동성애 재현 텍스트의 스펙트럼을 되묻는 것이기도 하다. BL(Boy’s Love)이 주로 이성애자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위한 문화적 전유이므로 젠더 정치적 의미가 있지만, 역으로 퀴어성은 충분히 담지 못한다는 그간의 통념이 실은 동성애 규범적 재현을 유도하며 퀴어를 반사회적인 급진성으로 한정하는 진보주의적, 엘리트주의적 관점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규범적 정체성에 근접한 재현보다는 퀴어적 독해라는 수행이 중요하다는 선행논의를 통과하여, 이 글은 ‘BL-게이 로맨스’라는 스펙트럼을 제안하면서 게이 로맨스 대중 영화의 정치적 해석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게이 로맨스 영화의 청년기 남성들이 계급 재생산을 위해 특정한 남성 젠더의 훈육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에 반발하며 성장하는 서사적 구조를 분석한다. 또한 간호를 비롯한 돌봄과 동거의 상황을 반복하게 만드는 서사적 패턴을 귀납하여, 독립적인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남성적 생애 모델의 전제를 무너뜨리는 기제로 작동함을 논한다. 강제된 동거와 돌봄은, 경쟁적이고 위계적인 기존의 남성 동성 사회의 관계 맺음에 균열을 내는 계기로써, 상호 대등한 경제적 주체이자 상호 의존적인 정서적 주체가 되게 만든다. 이 돌봄은 남성 간의 신체접촉을 경쟁에서 탈맥락화하여 에로티시즘을 적층해간다. 이로써 친밀감을 축적하고 상호 의존적인 돌봄 관계가 부모세대의 가족주의적 남성과 다른 대안적 남성상일 수 있음을 인물들은 깨닫게 된다. 따라서 두 주인공은 경쟁과 독립이라는 남성성에서 벗어나 돌봄과 연결이라는 다른 남성성에 도달하면서 연애 서사를 완성한다. 이 글은 게이 로맨스가 기성 가족 제도의 계급 재생산 및 폭력적인 위계를 중심으로 하는 남성성과 거리를 둔 남성 젠더/섹슈얼리티를 창안하려는 시도이며, 또한 남성 간 친밀성과 돌봄의 문화정치를 위한 자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본고는 인스타툰의 핵심 기제가 진정성이라는 점을 포착하여, 진정성을 정동으로 개념화함으로써 인스타툰의 미학과 정치적 가능성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이는 개별 인스타툰의 작품성이 아니라, 인스타툰의 매체적 특성을 고려하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현상에 종합적으로 주목하였을 때 가능해진다. 인스타툰은 인스타그램에서 연재되는 SNS툰이며, 일상에서 소재를 취하고, 일상의 둘레에서 감상된다는 점에서 일상툰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작가의 적극적 노출로 인해 캐릭터와 작가 간의 강한 동일시가 일어난다. 캐릭터는 작가를 대리하는 가면으로 여겨지고 서사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느껴진다. 이 같은 매체적 특성에 의해 인스타툰에서는 진정성이 핵심적인 가치로 나타난다. 이때 진정성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인스타툰의 장을 구성하는 모두와 연관을 맺는 집단적인 정동이다. 진정성은 게시물과 댓글 사이를 순환하며 축적되고, 다방향적이고 역동적인 영향을 끼친다. 나아가 진정성의 정동은 개개의 인스타툰보다 선행하여, 인스타툰 장르 자체를 진정성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감각하게 한다. 진정성의 정동으로 인해 일상의 경험들은 인스타툰에서 솔직하게 토로되며, 이는 지금까지 비가시화되었던 사적 영역들을 문제로 가시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가령 여성의 임신·출산·육아 경험을 다룬 인스타툰은 이것이 단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전달하고, 식이 장애 및 기분 장애 경험을 다룬 인스타툰은 이것이 전문 치료를 요하는 문제임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스타툰은, 주 수입원인 광고툰이 진정성을 훼손한다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행해지는 여러 전략들은 인스타툰에서 진정성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재차 방증한다. 진정성의 정동에 주목하여 볼 때, 지금까지 한계로만 여겨진 인스타툰의 특징들, 즉 단순한 서사, 일상적 소재, 간단한 그림체 등은 오히려 진정성의 정동을 더 잘 일으키는 것이 된다. 인스타툰의 미래는 이 특징들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면서 진정성의 정동을 더욱 다채롭게 일구어내는 데에 달려 있다.
초패왕 항우의 고사는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이래 동아시아에서 오랜 세월 문학적 재생산의 원천이 되어 왔다. 소설가 박태원 역시 「해하의 일야」라는 짧은 소설을 통해 항우의 마지막 하루를 그려냈는데, 비슷한 시기 궈모뤄의 「초패왕의 자살(楚霸王自杀)」, 장아이링의 「패왕별희(霸王别姬)」가 항우 및 우희의 고사를 근대소설로 탈바꿈시킨 바 있다. 이 연구는 세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1930년대 근대문학에서 항우가 호출된 이유와 그 소설적 접근법을 비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이 작품들이 역사 서술에서 공백으로 남은 부분들을 상상적으로 메우는 데 있어 이야기의 욕망, 서술자의 존재, 서사와 묘사, 젠더 역학의 변화와 같은 소설사적 과제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오강에서 자살하기까지 항우의 마지막을 그린 궈모뤄의 작품은 소설의 서사에서 묘사가 가진 기법적 자율성과 더불어 작중 인물로서 서술자(관찰자)의 역할을 극대화함으로써 근대소설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시험한다. 반면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밤 해하를 배경으로 항우의 내면 묘사에 치중한 박태원의 작품은 사색과 독백을 통해 비장함과 슬픔 그리고 적멸의 허무로 빠져드는 항우를 그렸다. 두 작품은 모두 외면 묘사와 내면 묘사라는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지만 영웅이 아닌 인간의 한순간을 포착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한편 장아이링의 작품은 박태원 소설처럼 해하에서 마지막 밤을 배경으로 하되 우희의 시점에서 그녀의 내면을 따라간다. 이 작품은 전근대의 정절관과 결부된 여성의 자결이라는 모티프를 따르면서도, 기존의 남성 중심 서사와 정반대의 반전(反轉)을 통해 젠더 역학의 변화를 역설한다는 점에서 근대 소설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본고는 대중소설 『인간시장』의 특징과 대중문화사적 맥락을 살펴보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의 인기는 무림의 고수이자 정의 수호자인 ‘장총찬’의 영웅적 활약상에 힘입은 바 크다. 장총찬은 70년대 청년문화가 보여주는 ‘퇴폐 멜로’의 반항아들과 달리 불의에 맞서 싸우는 투사형 청년이다. 신군부 쿠데타, 80년 광주비극 등의 5공화국의 폭력적 현실에 의해 다시 한번 좌절한 대중은 이 저돌적인 청년의 돈키호테적인 활약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러나 장총찬이 수호하는 정의란 ‘인신매매, 소매치기, 재벌 비리’와 같은 뒷골목의 치안이나 민생 정의에 한한 것이다. 장총찬은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등의 의적, 토착적 영웅계보를 잇고 있으나, 70, 80년대 당대 현실에 훨씬 더 밀착해있다. 『인간시장』의 인기비결은 70년대 대중독물의 한 특징인, 르포・논픽션적 현장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인간시장』의 많은 내용은 당시 저널리즘에 등장한 사건들을 픽션화한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서사양식 또한 르포・논픽션에 가까운 특징을 보여준다. 장총찬은 방외인, 루저와 같은 하위남성들을 대표한다. 장총찬은 이들을 대신하여 부패한 일류를 응징하고 공평한 사회를 구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수단은 주먹, 표창, 무술, 그리고 전국적인 조직폭력배와의 연대이다. 이러한 수단에 의한 악의 응징은 근본적인 구조를 도외시한 채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대리만족을 겨냥한다. 폭력과 함께 『인간시장』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코드는 마초적 섹슈얼리티이다. ‘왕초’가 되고 싶어 하는 장총찬은 파시즘과 가진 자들에게 억눌려 남근주의적 마초의식을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하위 남성들의 영웅 표상이다. 『인간시장』은 후반부로 갈수록 민족주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표출하고 있다. 민족/국가주의 영웅은 장총찬이라는 남근주의적 영웅형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나 이 이념은 군부독재라는 당시 폭력적 현실을 은폐하고, 대중에게 익숙하고 안전한 대리만족을 안겨줄 뿐이다. 결론적으로 당시 부패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장총찬의 폭력, 그리고 섹슈얼리티는 일종의 80년대에 대한 시뮬라크르로 볼 수 있다. 장총찬의 영웅주의는 데칼코마니처럼 80년대 독재정권을 모방하면서 근본적인 ‘폭력’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Literature is an aspect of linguistic performance. Language obtains an opportunity for progress by realizing the effects of ordinary linguistic performances and other communications through literary performances. But there is no specialized language that is different from ordinary language and specialized in the area unique to literature. Therefore, a conceptual schema for the legitimacy of literature that proves the aesthetic features that well embody the qualities of so-called literary language is nonsense. The marked signs defined by the conceptual schema of negative terms added to literature, such as local literature or popular literature, have no substance. In this context, it is essential to diagnose whether the conceptual schema derived from the ideology of the Center involved in literature is reasonable, and to reveal and disrupt the operation of the unjust ideology. This article corresponds to an essay that evokes this process.
본고는 1970년대 한국영화 검열의 준거와 영향을 밝히기 위해 영화진흥공사의 대표작이자 국책영화의 성공작으로 알려져 있는 <증언>(1973)을 중점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국책영화는 검열을 받지 않았으리라는 선입견과는 반대로 정책을 선전하는 모범적인 영화여야 했기에 정권의 통제와 간섭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국책영화 역시 검열절차를 밟아야 했던 것은 물론이고, 제작과정 자체가 실질적인 사전검열과정이기도 했다. 이에 본고에서는 대표적인 국책영화의 제작과 흥행 과정은 검열의 준거와 영향을 드러내는 표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증언>의 제작부터 흥행까지 추적하여 당시 정권이 만들고자 했던 영화의 실체와 실상을 구명(究明)하고자 했다. 2장에서는 1972년 이후 권위주의체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영화진흥공사가 제작하는 기획영화가 <증언>과 같은 반공역사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살폈다. 3장에서는 <증언>과 함께 기획되었으나 대조적인 길을 간 <들국화는 피었는데>를 통해 유리한 물리적 조건 속에서도 영화가 붕괴되어 간 것은 검열 준거에 해당하는 제작지침의 표리가 달랐던 데에서부터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음을 밝혔다. 4장에서는 <증언>의 대본들과 프린트, 검열서류를 검토하여 기획의도가 영화로 재현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수사학과 함의를 짚어보았다. 아울러 영화진흥공사 제작 관련 서류를 검토하여, <증언>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성공신화와는 달리 산업적으로 실패한 영화였음을 논증했다. 총력안보가 주창되면서 제작지침에서 ‘반공’은 전면화되지 않았으나 오히려 영화 전반(全般)을 통어하는 최종심급에 자리했다. <증언>은 잔혹과 숭고의 리듬으로 극단적 반공을 성화(聖化)된 종교적 이념으로까지 격상시키며 표리부동한 제작지침을 충실히 구현했다. 국책영화를 기획했던 의도나 제작지침이 검열의 준거이기도 했으므로 <증언>의 제작과정과 수사학은 1970년대 검열과 텍스트의 상관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정권이 야심차게 제작하고 지원했던 <증언>이 산업적으로 실패한 것은 검열로 상징되는 1970년대 영화통제정책이 시장에 미친 영향을 증언한다.
1990년대 북한은 내외적으로 위기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소련의 붕괴로 냉전 체제가 해체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었고,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며 체제 위기를 맞는다. 후계자 김정일 체제도 결속을 유도했지만, 수해와 가뭄에 따른 식량난으로 ‘고난의 행군’기가 왔고, 북핵 문제로 인해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가 경색되었으며 그에 따른 국제 사회의 제재 조치로 경제난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영화에 반영되었으며, 최악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군사 선행의 선군정치의 교시를 담은 선군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군대와 군 생활을 담은 선군영화의 특성 상 과거의 조국해방전쟁이 소환되기도 했고 군의 적대적 표상은 미국으로 수렴되었다. 당시 북한영화의 미국 표상을 살펴보는 것은 적대적 표상의 대척점에서 당시 북한이 지향하던 체제의 모습을 영화적 선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 시기 북한영화가 미국을 표상하는 방식에는 변화가 발견된다. 1990년대 이전의 북한영화들에서 미국을 폭력성이 강조된 캐릭터를 통해 직접적으로 악인의 이미지로 만들었던 것에 반해 이 시기 영화들은 수령형상화와 내부 결속을 위한 장치로 미국을 소모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위기를 만든 원흉으로서 미국이 설정된다. 그러한 이유로 이 시기 북한영화들에서 미국의 표상은 직접적인 이미지로 표현되기 보다는 배경에 위치한 악으로 역할을 한다. 전쟁영화에서도 직접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 자료화면으로 노출되고, 경제난을 다룬 영화에서도 고난의 원인으로 존재하지만 직접 인물 간의 서사에 개입하는 장치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는 체제 결속을 위한 선전 목적이라도 이 시기 영화들에서는 미국 표상이 지니는 다른 방향성이 발견되는 것을 뜻한다. 과거처럼 미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통해 내부를 결속한다는 목적보다는 김정일이라는 새 지도자를 선전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유도하고 대중을 교양하는 것이다. 그 장치로 미국이 관습적 적으로 소모되는 경향을 영화적 표상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2022)에 내재된 사랑의 윤리를 해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헤어질 결심>은 예외상태에 놓인 ‘서래’를 통해 ‘예외적 사건’으로서의 사랑의 윤리를 구현하고 있다. 이 영화는 사랑의 윤리가 연인의 타자성을 수용하고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면서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통해 윤리적 폭력에 저항하는 말걸기를 지속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세계에 대한 위반과 전복, 상징계의 균열이 불가피함을 암시한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한국말이 서툰 중국인과 한국인이 주인공으로 설정됨으로써 사랑의 윤리가 ‘언어’와도 밀접히 관련된다는 점도 부각된다. 언어는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고 따라서 언어를 사용하는 한 윤리적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다. 자신이 한국어에 취약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서래는 윤리적 주체가 된다. 그녀는 폭력에 저항하는데,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맥락화 시키고 그 바탕 위에서 지속적인 ‘말걸기’를 시도한다. 이 말걸기는 비록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서래는 자신을 해준의 ‘미결사건’으로 남김으로써 해준에게 말걸기를 지속한다. 해준은 서래가 사라진 후 비로소 ‘붕괴’된다. 그리고 이 붕괴를 통해 상징계적 환상을 가로지르며 구원에 다다르게 된다. 구원은 상징계적 대타자가 아니라 취약한 또 하나의 주체,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에 의해 가능하다는 역설을 <헤어질 결심>은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역설은 대사 차원에 머물지 않고 데칼코마니적 프레임 구성과 편집, 실재계를 암시하는 장면 등을 통해 연출되고 있다. 이 논문은 타자를 소비하는 연애가 주류를 이루는 시대에 <헤어질 결심>의 해석을 통해 사랑의 윤리, 언어에 대한 자의식, 구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글은 허영만 음식 만화 <식객>의 영화화 과정에서 나타난 매체 전이 전략을 살펴보고, 나아가 각색영화의 문제점과 한계를 비교의 방식으로 고찰한다. 만화 <식객>은 철저한 현장 취재와 음식 정보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 <식객>과 <식객: 김치 전쟁>은 그러한 인포테인먼트 음식 콘텐츠를 각색하면서 전문성을 배제하고 감상성과 통속성을 강화한다. 그 결과, 서브플롯은 메인 플롯의 주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며, 음식과 관련된 과잉의 수사학은 영화가 푸드 포르노의 성격을 띠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각색영화는 원작의 에피소드 구성을 해체하고 대립의 서사를 강화하는데, 이때 대립 구도는 적대세력의 역할 강조와 경쟁 시스템의 도입으로 구체화 된다. 이 과정에서 성찬과 봉주가 참여한 요리 경연은 스포츠 대회와 같은 이벤트성 서바이벌 게임으로 변질되고 만다. 한편 성찬과 관련된 미장센은 ‘함께 먹기’와 ‘조화’라는 한국 음식문화의 특징을 드러내지만, 봉주의 미장센은 그의 독불장군 이미지를 강화한다. 이는 성찬과 봉주의 대립을 권선징악의 주제로 연결하기 위한 전략이다. 영화 <식객>에서 인물의 대립은 항일/친일 프레임의 음식 민족주의로 수렴되며, 육개장과 비전지탕은 항일/친일 행적의 상징기호가 된다. 하지만 조부의 행적 계승 여부과 정보의 불균형, 최종 심판자로 등장하는 일본인 등은 대립의 원칙에 균열을 일으킨다. <식객:김치 전쟁>은 대립 구도가 명확하지 않고 추상적이어서 음식 민족주의의 의미가 퇴색된다. 두 영화는 각색을 통해 음식 민족주의를 새로 설정해 대립의 원칙을 재현하는데, 그로 인해 원작만화의 전문성은 희석되고 만다. 두 영화는 ‘허영만 만화’ 브랜드를 각색한 작품이며, 2000년대 초반 음식 콘텐츠 유행을 이끈 서사 매체이다. 하지만 음식 정보의 생략과 전문성 부재, 경연 시스템의 선정성, 개연성이 부족한 음식 민족주의, 눈물과 웃음의 과도한 감상성 등으로 인해 원작만화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이 글의 연구 결과는 앞으로 만화(웹툰) 각색영화의 분석은 물론 음식 콘텐츠 제작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Essay is not simply a free art form without formal norms, but rather an experiment, experimentation beyond formal freedom and relative brevity, as the dictionary meaning of ‘the work of confirming (reviewing) the characteristics or properties of an object or its use method’, and more closely related to the critical and heuristic project of thought. Essay film is also another form of film that stimulates thinking about film by experimenting and testing film itself (including film writer and audience) through its own format. In this respect, Godard's work is a representative example of comprehensively realizing the formal, philosophical, and political potential of these essay films. In particular, in <6x2>, Godard turns the existing cinematic grammar, form, and norms into a blank slate, and deconstructs the image called ‘Godardian pedagogy’ (Daney) through an experimental essay composed of the fundamental elements and problems of the film. try Through these experiments and trials, i.e., ‘essays’, Godard tried to re-establish the possibility of new arrangement of cinematic images, the political relationship with discourse and language, and above all, the creative capacity of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