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채털리부인의 연인』과 음란죄 재판의 대표적 판례인 이 텍스트를 대상으로 수행된 서구 및 일본의 음란죄 재판 판례의 번역을 통해서 해방 이후 70년대까지 수행된 불온/외설 담론의 젠더/섹슈얼리티/계급 정치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서구, 특히 일본에서 음란죄로 번역자와 출판인이 유죄판결을 받았던 예와 달리, 우리의 경우는 이 텍스트가 출판 금지 처분을 받지 않았다는 데 문제의식을 착안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러한 상황은 당대 검열 상황이 진보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냉전 체제 하 경직된 정치 검열 상황과 서구 고전 텍스트를 읽히려는 당국의 독서 정책에서 나온 결과였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이 텍스트가 작가의 의도대로 제대로 번역되지 않고 이미 유부녀의 불륜을 미화한 음란한 외설서로 풍문으로 인식된 까닭에 굳이 통제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텍스트에 대한 서구와 일본의 음란죄 관련 판례는 한국의 음란죄에 대한 인식은 물론 실제 재판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 음란죄 대상 텍스트였던 소설 『반노』는 무죄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채털리부인의 연인』에서 콘스턴스의 욕망이 제대로 가치있게 번역되지 못했던 것처럼, 검열과의 대대적인 싸움을 벌였던 『반노』 텍스트와 재판 과정에서도, 여성의 성적 주체성은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되었다. 이 모두 오랫동안 에로티즘에 관한 생산적인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탈식민 국가, 한국의 보수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한 여기에는 개발독재 체제 하 통치자들의 위계화된 계급, 젠더/섹슈얼리티, 가부장제적 남성 중심주의 등 전근대적인 사회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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