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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연구

pp.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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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discuss the poems of Seo Jeong-Ju as a canon. While I basically took the method of the intrinsic analysis, I ultimately paid attention to not only the place that his poems have as a canon but also the relation of influence that his poems have had o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The point aimed at in this paper are the world of 'eternity' and 'femininity' that are shown in his poems. The 'eternity' and 'femininity' are the evidence that his poems are very faithful to the poetic nature. To study 'the poeticity' that his poems have shown is an important factor that locate his literature at the place of a canon. In addition, the fact that they are faithful to the poeticity other than anything else plays the factor that his poems have tremendous influence o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Due to this interest, in this paper, I studied the combining process of the study on the eternity found in his poems and the representation of the 'feminity'. I confirmed through this process that the 'femininity' in his poems plays the role of not only as the important occasion in embodying the world of 'eternity' but also strengthening the transcendental and shamanistic aspects of his poetic world. In conclusion, the point of meaning of his poems as a canon stems from the 'poeticity' he had pursued. Seo Jeong-Ju is a poet who suggested the orthodox paradigm of Korean lyric poetry by consistently pursuing the nature and pureness of the 'poeticity'. However, the model of the orthodox lyric poetry he suggested has produced the result of narrowing down the mainstream of Korean poetry by constantly eliciting the world of tradition and folklore as the space of union and transcendence based on the principle of equality.

pp.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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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기존의 연구들은 김수영의 여성관이 그의 아내나 거리의 여성, 주변의 여성들에 대한 태도나 김수영의 가족주의적 시각을 통해 드러난다고 보았다. ‘반여성주의’라는 관점의 연구들은 김수영의 신화가 한편으로는 남성적 영웅주의적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따라서 그 신화를 한 꺼풀 벗길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보인다. 이 시각은 주로 김수영의 아내에 대한 호칭 문제(‘여편네’)와 여성을 대체로 속물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 그 근거를 둔다. 그러나 필자의 입장은 좀 다르다. 즉 ‘생활, 현실’의 문제가 중요한 시적 대상이 될 때 비하된 여성이 등장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여성’에 대한 언급이 근대적 삶의 형식에 대한 진술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일종의 허영과 허위와 가식, 위악의 텍스트로 표면화되고, 문제의 핵심을 바로 파고들기보다는 그 ‘문제의 에둘러 가기’라는 형식으로 그의 텍스트가 기능할 것을 의미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시편들은 한편으로는 연민과 동정으로 다른 하나는 위악과 공격으로 그 어조적 특성을 보여준다. ‘여편네’는 마누라의 속물근성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 호칭이라기보다는 시인 자신의 속물근성을 회피하고 정신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된 단어이다. 그것은 악이 아니라 오히려 선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순간적이고 찰라적인 시간성을 갖는 일시적 개념이다. 어조의 공격성은 결국 시인 자기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공격적인 언어가 사실은 자기 내부에 갇혀서 맴도는 매저키즘적 담론의 한 양상으로 파악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실과 생활이 제거된 자리에서 그의 어조는 그리움이나 연정의 형식으로 표출되며 이는 여성적 목소리로 표면화 된다. 이 때의 목소리는 김수영이 권력적이고 계몽적인 근대적 기획의 장면 앞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반성하게 했던 바로 그것, 자기 안의 여성성, 여성적 목소리의 언어이다. ‘여성’은 점점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대상으로 변용된다. ‘여성’은 ‘죽음’과 ‘사랑’의 상호 소통과 비약적인 넘나듦을 통해 정의된다. 그의 ‘반여성주의’적 어법은 결국 ‘비약적 사유’를 향해 가는 데 중요한 동기가 되며 이 때의 사변적인 시풍들은 난해시의 전범을 이룬다.

pp.5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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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은, ‘여성의 눈으로 정전 다시 읽기’의 일환으로 우리 근대문학사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염상섭의 『만세전』을 “저항하는 독자”로서 다시 읽은 결과이다. 『만세전』이 반성적 사유를 하는 식민지 지식청년의 발견여행으로 진정성의 측면에서 뛰어난 성취를 거둔 걸작이라는 數多한 비평들은 『만세전』에 리얼리즘 정전의 권위를 부여해 왔다. 이 논문은, 주인공의 旅路와 그 여로에서 발견하는 식민지의 현실, 그러한 발견을 통한 주인공의 각성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주인공의 여로를 덮고 있는, 근대의 普遍者로서의 개인주의적 남성의 시선에 주목했다. 모든 시선은 위치 정하기에 따라서 달라진다. ‘근대적 개인’이 ‘근대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고 그 관찰의 결과물을 충실하게 기록했기에 『만세전』은 뛰어난 ‘근대문학’이 될 수 있었다. 이 글은, 이러한 근대적 주체의 시선이 가지는 편파성(partiality)을 증명하고자 했다. 『만세전』의 시선은 크게 ‘자기’를 향한 시선과 ‘타자’를 향한 시선으로 대별되는데,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판단 유보도 가치 중립도 아닌, 명백히 가치 편향적인 하나의 판단행위이며 하나의 포지션 정하기였고, 타자를 향한 시선의 본질적인 특성은 그것이 여행하는 자의 시선으로서 관계에 대한 책임성을 거세한 시선이라는 것이었다. 이인화는 아내, 을라, 정자 등 여자들에 대해서는 물론이요 자식에 대해서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인화는 자신을 얽어매는 그러한 계루를 탈출하여 보다 쉽사리 근대적 개인이 될 수 있지만, 다른 존재에게 목숨과 젖을 주는 몸을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자아를 構造하는 심리적 성향을 가진 여성은 자신의 몸 자체가 계루이기 때문에 데카르트적 현존을 가정하기 위해서는 남자보다 훨씬 복잡하고 고통스럽고 뒤틀린 경로를 거쳐야 한다. 서구전 근대의 한 특징으로서의 ‘진리에의 의지’는 『만세전』에서는 無知의 무덤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新生에의 의지’로 나타난다. 정자와 이인화 같은 문학의 徒의 본령이라는 <자유롭고 진실된 생활을 찾아가고, 이것을 세우는 것>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내의 죽음과 생명의 배제였다. 이인화가 무덤 속에서 빠져나가 찾고자 하는 ‘자유롭고 진실된 생활’이란 아내의 자유롭고 진실된 생활과 결코 일치할 수 없는 것인데도 이인화의 ‘자유롭고 진실된 생활’이 마치 조선 사람 모두(혹은 인류)의 자유롭고 진실된 생활과 일치하는 것처럼, 그러한 생활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인화의 여정이 마치 조선 사람 모두(혹은 인류)의 자유롭고 진실된 생활을 위해서인 것처럼 이 작품의 서사적 관점은 독자를 ‘자유롭고 진실된 생활을 추구하는 남성 보편자’의 정체성 속으로 호출한다. 그것이 본질적으로 여성 혐오(misogyny)에 기반한 호출임에도 근대의 新生이 본질적으로 생명과 여성에 대한 천대 위에서 이루어짐으로 해서 끝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근대인의 삶은 <진리 없이 빈손으로 남게> 된다. <여자란 진리의 비진리성에 대한 이름>이라는 해체주의자 J. 데리다의 통찰은 이런 맥락에서 빛을 발한다.

pp.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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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상 소설은 자의식이 넘치는 소설이라 규정되어져 왔다. 그러나 그의 자의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소설 속에 언제나 존재하는 타자와의 상호관계를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이 타자들은 비 혈연관계로 맺어진 일대일의 성적 대상자로서의 여성들이다. 남성성은 이상 본인이 텍스트에 드러나는 방식을 통해 구현되며, 여성성은 이상의 여성편력과 관계되어 소설에 형상화된 각 인물들을 통해 나타난다. 이상 소설의 남성성과 여성성은 각각 인물의 외모에 대한 묘사와 상징, 그리고 당대 성담론이 담고 있는 전통적 가치관과의 갈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뚜렷해진다. 여성이 머리를 ‘단발’로 자르는 것과 남성이 ‘수염깎기’하는 것은 정반대의 의미이며, 여성은 머리를 자름으로써 힘을 얻고 남성은 힘을 빼앗긴다. 이상과 그의 여성의 성역할은 언제나 기존 담론으로부터 뒤집혀진 상태로 나타난다. 그런 상태에서 여성의 정조 지키기는 가족부양과 맞바꿔질 수 있었다. 타자로서의 여성성과 이상 자신이 그려내는 남성성은 각각 식물적 상상력과 동물적 상상력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또한 시간성과 공간성을 통해서도 파악될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의 만남은 무화된 ‘시간’으로부터 개별화된 ‘세월’로의 전이과정이다. 또 여성성의 공간이 화려하면서도 가변적이고 변화무쌍하며 수시로 걸치고 돌아다니는 ‘옷’이라면 남성성의 공간은 음침하게 정체되어 있는, 폐쇄된 ‘방’인 것이다. 양성 공간의 대립은 ‘옷’과 ‘방’으로써 확인된다. 이상의 피해의식은 자신 또한 여성에게 있어서 수시로 입었다. 벗었다 갈아입을 수 있는 수많은 옷처럼 임의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 시작된다. 남성성의 상징물인 ‘방’은 하나뿐이고 움직일 수 없는 정형화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상에게 있어서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의 갈등과 이해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여성의 공간성이 유동적인 옷으로 규정되었던 것처럼, 여성의 성적 정체성은 ‘양파’로 규정될 수 있다. 남성들이 기대하는 알맹이가 없는 존재, 벗겨도 벗겨도 껍질밖에 없는, 껍질 그 자체가 양파의 본질이다. 양파야말로 이상 소설에 나타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의 상징인 것이다. 남성적 섹슈얼리티로서 똑바로 걸을 수 없는 ‘절름발이’의 인생은 상징계적인 도덕성이 남성위주의 가부장제로서 억압할 수 없는 여성성을 만났을 때로 규정된다. 여성과 남성의 끝없는 경합을 통해 자기 우월감을 확보하려는 의식을 버리고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지닌 속성을 ‘양파’와 ‘소수’(素數)라 받아들일 때, 이상은 자기 존재에 대한 규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걸맞게 남성성 또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선택하는데, 이상은 그것을 절름발이의 인생이자, 자기 정체성을 지워버린 형해의 흔적이라 규정함으로써 새로운 날개를 얻는다. 전통적 가치관의 질서의식이 부여하는 억압으로부터의 일탈, 그것은 이상소설이 보여주는 양성구유의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p.11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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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여인 수난이야기’는 우리 문학사에서 담화를 이루거나 구조화하는데 작용하는 하나의 내적 형식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이야기 형식은 설화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본격문학과 대중문학 모두에 비교적 넓게 분포되어 있으므로, 우리 고유의 특징적 담화 양식으로 볼 만하다. 여인 수난이야기는 말 그대로 여인이 수난을 겪는 것을 중심사건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수난’이라는 용어의 성격상 일종의 수동성을 전제한다. 이 이야기에서 여인은 본인이 자초했건 그렇지 않았건 ‘원치 않은’ 수난을 당하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진다. 따라서 그것이 어떤 수난이냐, 또 어떻게 해결되느냐는 이러한 이야기 형태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수난의 성격과 해결 양상을 규명하는 일은 작품 자체의 논리에 접근하는데 중요하다. 이 글은 신소설을 대상으로 여인 수난이야기의 구조를 분석하여 밝히고, 이것을 바탕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생산하고 지배한 당대의 규범이 무엇인지 하는 문제에 접근한다. ‘수난의 성격과 대응 방식’을 살핀 결과, 여인 수난이야기에서 인물의 성격과 수난의 성격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이 점은 여인이 수동적 인물이라는 점과 관련된다. 또한 여인이 수동적이기 때문에, 신소설의 여인 수난이야기에서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경우 반드시 조력자가 존재한다. 이 점은 여성을 남성에 의하거나 남성을 통해 행복해지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사회적 맥락이 작용한 결과로 생각된다. ‘수난의 해결 과정과 원리’에 주목하여 살핀 결과, 대부분이 ‘권선징악’의 지배를 받고 있음이 드러난다. 작품 내의 대립소를 중심으로 여인 수난이야기의 선악 개념을 분석한 결과 선은 악에 비해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고, 악은 본성적인 것, 무지몽매함, 어지러운 세태, 땅에 떨어진 도덕성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작품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에 접근하면, 신소설의 여인 수난이야기는 역사적 문맥을 도외시하고 독자에게 운명론적이고 순응적인 사고를 갖게 하여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신소설의 여인 수난이야기가 지닌 한계점이다. 이 글은 신소설의 여인 수난이야기로 범위를 한정하였지만, 여인 수난이야기는 우리 문학사에서 그 전통이 오랜 만큼 이를 통시적ㆍ공시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우리의 문학적, 혹은 문학적 맥락을 읽기에 중요한 텍스트라고 생각된다.

pp.13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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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article has analyzed literature of Giyeong I, one of the renowned writers in the colonial period in view of feminism. The writer who had literary view of Marxism and women's liberation revealed confused aspects due to his growth in a feudalistic family of patriarchal confucianism. First, seeing the idealized aspect of woman described in male oriented view, it is as a result of early separation by death of his mother and heart broken experience from early marriage in his childhood. The classified characters described such as warrior and fighter is the result that the writer has just infused ideology without proper understanding on the reality of women in agony. Also, all the wives in his works described as selfish or hypocritical and completely materialistic person, opportunist, and realist with strong sexual and material desire while the women in his novels are referred to as beautiful and mystified sexual objects. In the sexual difference of man and woman with the view of awakening, it is noticeable part that there is difference in the process of recovering subjectivity for a woman from that for a man. A woman became to undergo the world of man in order to achieve self-awakening and if a man's personal process of problem is to say as a result of aspiration for self-improvement or internal suffering, most of women appeared to have self-awakening after suffering from broken heart with a man and even a man intellectual is related in the process of self-consciousness. Also the hero became to run away from home to be an individual of trouble and return home and to the farm after a few years. Then he solve difficulties in his hometown. But on the other hand, most of heroines do not return to their home and break from the border of the dichotomy of public and private. Such factors indicate that still woman is the object dependent and to be trained and enlightened by man and it is because the writer sticks the man initiative view not getting out of fidelity ideology. Finally, the inferior position of Korean women in colonial period is frankly revealed in the motive of purchase marriage and Simcheong under the triple suppression of gender, people and class. It displays the reality that woman does not establish identity of herself due to failure to acquire decision making authority on sexuality, be under control by the head of family such as father or husband and shared as property of man. Though the writer had the literary view of Marxism and women's liberation with the attitude of anti-feudalism and anti-imperialism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he left contradictory world of his works with the limit of Marxist feminism focused on liberation of the class without awareness on characteristics of gender. Because his growth process under the feudalistic patriarchal family contended tightly with his literary view and his works. However, the issue on woman continuously pursued in his literature has considerable meaning and it is left as the matter of today in the fact that his weak point still reappears in the works of male writers today.

pp.159-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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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상 문학에 대해 육 백 여 편에 달하는 많은 글들이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문학을 발생시키는 본질적인 토대인 몸을 배제해 왔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 특히 그의 소설이 드러내는 근대 및 근대성은 몸으로 말해진 혹은 몸으로 구현된 실체들이다. 몸으로 근대 및 근대성을 체험한다는 것은 그의 소설이 근대 및 근대성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몸이 근대의 현상과 본질, 인식과 실천, 의식과 무의식, 과정과 실재 등을 모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본고에서는 몸 체험에 주목하여 그의 소설이 드러내는 근대 및 근대성을 탐구해 보았다. 몸은 그 특성상 역동성을 강하게 드러내며, 이것은 소설의 말과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육화로 이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즉 몸은 텍스트와 발생론적인 인과성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주목하여 이상 소설의 글쓰기 주체가 보여주는 자신의 주관화된 각혈하는 몸과 그것을 객관하고 타자화한 창부의 몸 중에서 먼저 각혈하는 몸을 통해 어떻게 근대성을 발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말하기 주체 자신의 각혈하는 몸, 다시 말하면 피를 쏟으면서 점점 탕진되어 가는 몸을 통해서는 육체와 정신의 아이러니와 페러독스, 자기 소외라는 이중화된 근대의 구조와 근대적인 실존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읽어낼 수 있었다. 글쓰기 주체 자신의 각혈하는 몸을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특성은 모두 근대의 본질에 닿아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중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근대는 이미 출발부터가 이중적이었다. 이를테면 근대를 성립시킨 계몽이성이 자유로운 인간의 탄생을 가져온 동시에 인간에게 새로운 압제와 질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거나 주체성의 원리에서 비롯된 지복(至福) 자유가 인륜적 조화의 상실을 가져왔다는 점, 혹은 자연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계몽의 형식 바로 그것 속에 인간을 복속 시키는 야만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 등은 근대의 이중성을 잘 말해주고 있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근대의 본질을 내장하고 있는 이러한 이중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작가의 근대에 대한 통찰이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그것이 관념이나 인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몸에 대한 체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pp.19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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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고는 박범신의 「죽음보다 깊은 잠」을 통해 1970년대 대중소설의 면모를 점검하고자 하는 시론이다. 일반적으로 1970년대 대중소설은 도시성, 성, 그리고 일상성의 문제를 중심과제로 타자, 특히 여성의 생존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소설은 도시성, 성, 그리고 일상성을 통해, 자율적인 주체 구성과정을 보여주는 요소가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왜곡된 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1970년대 타자, 특히 여성의 문제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별들의 고향」이나 「겨울여자」에서의 주인공들의 타자로서의 삶은 결코 한 개인의 위선이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사회에 의해서 왜곡되고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한다. 이러한 타자의 삶의 왜곡은 산업사회의 모순과 연결되면서,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삶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한다. 반면에 「죽음보다 깊은 잠」의 주인공들은 그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타자로서의 삶을 인식하고, 그것으로부터 탈주하여 상류 계층에 편입되려는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위선이나 비윤리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도 불사한다. 즉 그들은 상류 계층의 삶에 자신의 삶-주변부인의 삶을 잘못 투사함으로써, 환상과 실재사이에 경계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곧 환상과 실재의 경계마저 사라지고, 환상을 실재로 착각하게 된다. 이러한 착각이 수직 욕망의 질주를 더 가속화시킨다. 그러나 타인에 의해 실재가 폭로되면서, 주인공들은 더 철저하게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산업사회의 소외된 계층이나 여성의 삶의 문제를 깊이 있게 접근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주인공의 좌절이 개인의 위선과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환기한다. 이 소설에서 주목하는 것은 건강한 삶과 대비되는 주인공들의 욕망과 환상이 보여주는 비도덕성과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도덕적인 잣대를 가지고 주인공의 이기심을 질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욕망과 환상으로 질주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얼마큼 도시적 환상에 빠지는지, 성적 자유를 만끽하는지, 수직 상승에의 욕망을 위해서 어떻게 노력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비참하게 좌절하는지에 주목할 뿐이다. 요컨대 이 소설은 주인공의 도덕성이나 이기주의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듯하다가 다시 도시적 경험과 도시적 환상에 푹 빠지게 한다. 이러한 애매한 자세는 사회 전체를 상황을 해석하는 힘이나 사회의 미래를 반영할 유토피아를 선취하거나 잠재적으로 구성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취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타자, 특히 여성의 삶에 문제제기 하고 있는 듯하나 실제적으로는 당대의 사실주의적 묘사, 그리고 도덕적 경험 및 일탈 등 다양한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산업사회의 소비 상품의 유형적 특질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pp.226-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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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고는 문학이란 심미적 자율성과 독자들의 정서구조를 반영하는 차원의 상품성이 적절하게 접합이 되었을 때 진정한 문학성이 구축될 수 있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본고는 이른바 ‘감상주의적 연애소설’의 상품화 전략을 통하여 심미적 자율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상품성만을 추구하는 작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이른바 ‘감상주의적 연애소설’은 20, 30대 직장 여성들이 출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가볍게 읽을 거리를 제공한다는 마켓팅 전략에 따라 여성 독자들의 감상적 취향에 맞도록 만들어진 상업주의적 문학상품에 해당한다. 순정파 남성의 헌신적인 사랑, 시한부의 한시적 삶을 통한 영원한 사랑, 유토피아적 자연에서의 아름다운 사랑 등에 대한 예찬을 통하여 도시의 일상에서 피로한 여성들의 심신을 위로하고자 한다. 물론 여성에게 불합리한 가부장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 인간 정신의 물화현상이나 인간 소외 또는 물질문명이 초래한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통찰 등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시간이 너무나 짧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유토피아적 자연으로 회귀하여 마지막 남은 사랑을 불태우는 데 몰입할 뿐이다. 지극히 단순한 서사에 소녀적 감수성을 자극할만한 정도만큼의 감성적 언어를 곁들인 이런 작품들은 문학적 키취에 해당한다. 이른바 ‘감상주의 연애소설’은 피곤하고 무서운 현실 세계가 두려워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요즈음의 여성 독자들을 위한 여성용 동화에 다름 아니다. 대중문학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문학의 상업성에 대한 논란과 맞닿게 된다. 대중문학을 평형 저울에 달아보면 심미적 자율성보다는 상품성 쪽으로 기우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학의 속성상 심미적 자율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전적으로 상품성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오늘날 대중문학이 매우 혼탁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중문학의 범주에 대한 규정이 애매하고, 성인용 동화나 키취, 문학으로 보기 어려운 메모 수준의 잡스러운 글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벼운 이야기 거리에 불과한 것을 문학이란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모두 대중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상업주의적 문화의 물결에 가세하여 혼탁성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므로, 올바른 대중문학을 정립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pp.252-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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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옥주호연」은 자주ㆍ벽주ㆍ명주 등 3인 여성영웅이 등장하는 여성영웅소설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옥주호연」에 나타난 여성 영웅성의 표출 양상을 살펴보는 데 있다. 논의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삼옥주가 자신의 여성 영웅성을 발휘하게 된 계기, 즉 차별적으로 여성에게만 강요된 전통적 효의 이중성을 부정하게 되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전통적 효는 남성(아들)에게는 공적(사회적) 영역으로 진출하여 입신양명함으로써 가문을 빛내는 것을 요구하고, 여성(딸)들에게는 사적(가정적) 영역에서 여성적 일(침선방적, 아들 출산, 양육, 시부모 봉양, 남편의 내조 등)에 전념하여 가문에 공헌하는 삶을 강요함으로써 남녀 양성에게 이중적으로 적용되었다. 그런데 주인공 삼옥주는 유씨 집안의 무남독녀로서 딸도 아들과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여 입신양명함으로써 가문을 빛낼 수 있으며, 여성도 능력만 있으면 사적 영역으로 제한된 여성적 삶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에서 남성과 대등하게 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 여성들이었다. 그리하여 삼옥주는 출가외인(현모양처)의 삶으로 고정된 전통적 성역할 고정관념을 거부할 것을 결심한다. 둘째, 전통적 효의 이중성을 부정하기 위해 사적 영역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방편으로 남장(男裝)을 한 채 가출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삼옥주는 사적 영역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복(男服)으로 변복하고 가출한다. 삼옥주의 남장은 여성의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이 근본적으로 제한된 시대에 여성들이 자신의 여성성을 공적 영역에서 발휘하고자 하는 우회적 방법으로 대리인(배우자, 아들 등 남성) 내세우기, 변신하기 등과 함께 관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략적 방편이다. 따라서 여성 영웅 삼옥주의 남장은 여성 영웅성의 허구성을 드러내거나, 성구분의 유효성이나 남성성에 대한 경도 또는 성차의 경계에 대한 문제로 보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여성 영웅 삼옥주가 살았던 시대는 공적 영역이 남녀 양성에게 평등하게 개방된 오늘의 시각에서 평가해서는 않되기 때문이다. 셋째,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활동이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에 삼옥주가 공적 영역에서 남성들과 같이 전포(戰袍: 전투복)를 입고 공훈을 세우는 과정을 탐색해 보았다. 공적 영역에서 전포를 입고 영웅적 능력을 발휘하고자 한 삼옥주의 목적은 단순히 무남독녀로서 공적 영역에서 입신양명함으로써 가문을 빛내는 ‘효’를 실행하고자 하는 개인적 욕구에서 벗어나, 위기에 처한 국가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국가를 창건하는 등 공동체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에 있었다. 삼옥주는 그 공적으로 공적 영역의 대변자인 왕으로부터 자주는 ‘화수장군’으로, 벽주는 ‘매향장군’으로, 명주는 ‘옥두장군’이란 벼슬(작위)을 부여받는다. 이렇듯 삼옥주에게 부여된 작위명은 삼옥주가 남복으로 변장한 여성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남복 속에 가려진 여성성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어서 특이하다. 왕은 이러한 작위명으로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그들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넷째, 삼옥주가 공적 영역에서 다시 사적 영역으로 복귀하기 위해 전포(戰袍: 전투복)를 벗고 붉은 치마(紅衣: 女服)로 갈아입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여성 영웅 삼옥주는 ‘쓸데없는 여자’로서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장으로 가출하고, 남장을 한 채 공적 영역에서 ‘남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모든 목적을 달성한다. 그리하여 결말부에서 삼옥주는 스스로 ‘거울을 보고, 얼굴에 분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는’ 여성적 일을 환기하고 그리워한다. 삼옥주는 남자 주인공 최완 삼형제, 조정의 문무백관, 왕 등 공적 영역에 있는 모든 남성들 앞에서 남복 속에 숨겨온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고, 전포를 벗고 붉은 치마로 갈아입는다. 이 과정에서 남자 주인공 최완 삼형제는 여성 영웅 삼옥주와 남녀 양성간의 첨예한 성갈등 대신 남녀 양성이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는 동료애를 발휘한다. 조정관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왕은 삼옥주의 성 정체성이 여성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적과 역할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또한 왕은 삼옥주가 최완 삼형제와 ‘동등(同等)한 입장’이 되도록 배려한 후 결혼을 주선한다. 그러므로 여성 영웅 삼옥주와 최완 삼형제의 결혼은 남녀 양성의 대등한 만남을 뜻한다. 결말에서 여성 영웅 삼옥주는 결혼과 함께 다시 가정으로 복귀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공적을 무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성 영웅 삼옥주가 결혼하고 복귀하는 가정은 부모, 최완 삼형제, 문무백관, 왕 등 모든 남성중심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적 영역에서 여성 영웅 삼옥주의 역할과 공적에 대하여 모두 인정하고, 남녀 양성이 대등하고 평등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세계이다. 따라서 결말에서 제시된 가정은 소설의 초입에서 전통적 효의 이중성으로 문제된 가정이 질적으로 변화된 것이어서 차이가 있다. 다섯째, 이러한 논의는 최종적으로 여성 영웅 삼옥주가 남장을 한 채 사적(가정적) 영역에서 벗어나 공적(사회적) 영역으로 진출하면서 꿈꾸어 왔던 사회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데 있다. 여성영웅소설 「옥주호연」에서 여성영웅 삼옥주가 남장을 하고 실현하고자 한 사회는 사적(가정적), 공적(사회적) 영역에서 성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는 삼옥주가 ‘남장(男裝)의 굴레’를 벗고, 남성과 함께 대등하게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자유로운 선택이 되는 사회이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여성영웅 삼옥주가 꿈꾸어 온 평등한 사회는 여성영웅 삼옥주와 남성 영웅 최완 삼형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성갈등의 단계에서 벗어나, 남녀 양성이 함께 협력(協力)하고 조화(調和)를 이룰 때 비로소 실현된다. 따라서 여성영웅소설 「옥주호연」은 최근의 여성문제를 다루고 있는 「안토니아스 라인」(여성영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만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이갈리아의 딸들」 등 ‘여성 영웅의 서사’에서 보여준 여성문제 해결의 비극적 인식과는 다른 전망을 제시하고 있어서 차이가 있다. 「옥주호연」은 21세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성문제를 극복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 즉 남녀 양성의 인간화ㆍ평등화의 경지에 이르는데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pp.288-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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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Lillian Hellman is considered as one of the great American woman dramatists. She is the feminist ideal woman, though she is not a feminist. She had an independent and active life during her life. Her refusal to live within the narrow boundary of traditional woman's life is impressive. This refusal to accept a traditional role made her personal life a subject of interest. People were fascinated by her love with Hammet and her fight against the Fascism and McCarthism. She maintained the liberal politics and fought against the Fascism and the extreme-right politicians. The Fascist and the McCarthist are the people who "eat the earth." Our responsibility against these rogues are important, because we should not "stand around and watch them eat the earth." In 1950s, Hellman had a hard time because her movie 'North Star' was blamed as pro-communist. The movie produced during the World War II showed the positive side of Russian people and supported Russia's fight against the Nazis. When the cold war ends, this movie and other anti-Fascist works were blamed. Many playwrights and directors in Hollywood were suspected of supporting communism. They were forced to confess their sins in front of HUAC, but Hellman refused to confess. She thought this process of confession was the attack upon the principle of American democracy. She fought for the idea of liberalism which is written down into her plays and her movies. To show the fight between good and bad, she showed the strong and iron-willed woman(bad or good) in her writings.

pp.32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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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필자는 페미니즘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으로 간주하였다. 첫째는 여성의 성적 소외, 불안, 갈등,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며, 둘째는 여성의 성 정체성 형성이고, 셋째는 여성의 성평등과 수월성 추구이다. 한편 아동문학에 대한 네 가지 준거는, 아동을 위해 쓰여진 문학, 아동에 적합한 것으로 인식된 문학, 아동에 의해 수용된 문학, 행위 및 상징체계로서의 문학이다. 이같은 준거에 의해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아동문학에 나타난 페미니즘적 요소들을 분석하였다. 1. 전래동화에 투영된, 현실원칙과 쾌락의 원칙에 나타난 여성2. 남녀의 균형적인 성역할 모델3. 이니시에이션과 여성의 성적 성숙4. 한국 전래동화에 나타난 남녀의 성대결5. 안데르센 동화에 나타난 페미니즘6. 동시에 나타난 페미니즘이같은 분석을 통해서 나타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전래동화 속에는 여성의 성적 소외, 불안, 갈등,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도와 줄 수 있는 내용이 많다. 둘째 전래동화 속에는 성장기 아동이 겪게 되는 격리불안의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는데 이때 불안의 근원은 대부분 모성으로부터의 분리이다. 셋째 전래동화의 주요내용은 이니시에이션(initiation)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여성의 탄생과 성적 성숙, 성적 정체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넷째 안데르센의 창작동화나 동시에 나타난 여성은 성의 평등과 정체성은 물론 여성의 수월성을 분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다섯째 페미니즘 관점에서 아동문학은, 여성의 성적 소외, 불안, 갈등,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여성의 성 정체성 형성, 여성의 성평등과 수월성 추구 등의 내용을 보편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pp.355-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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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동화는 단순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도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으로 인해 어린 시기 아동들의 인식과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최초로 접하게 되는 동화문학에서 남녀는 공평하게 다루어야 할 주체이다. 서구에서는 아동문학 분야에도 페미니즘이 확대되어 있고 우수한 동화들이 성인문학과 똑같이 여성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 동안 한국 동화는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정형화된 성차별을 너무도 당연시해온 경향이 짙다. 이에 대한 작가와 독자의 자각이 필요하다. 특히 동화를 쓰는 작가들이 양성 평등 문제에 지금보다 진지하게 대처해 나가지 않는다면 여성 정형화에 대한 편견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성이 올바로 자아를 인식하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헤쳐나가는 것이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것이라면, 현대 사회에서 어린이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아동문학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렸을 때 인지된 개념은 성인이 되면 쉽게 고쳐질 수 없기 때문에 양성 평등 의식은 아동기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아동들은 동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투사하는 성향이 짙기 때문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아동문학은 평등한 성 역할과 미래 지향적 여성 이미지 형상화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pp.37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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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현재 창작되고 있는 한국동화의 작가, 독자, 구매자, 평가자의 대부분이 여성으로서 페미니즘적 관점은 유효성을 지니고 있으나, 실제의 작품창작과 평가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제적 관점이 지배적이다. 이 글은 한국 창작동화에 나타난 엄마의 형상화를 분석함으로써, 어린 자식과의 관계 속에 비쳐지는 오늘날 ‘엄마’가 보여주는 이중적인 이미지를 살펴보고, 어린이의 성 역할 교육에 미칠 영향과 문제점을 아울러 지적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현대의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어머니의 신화’에 의해 자식 재생산의 희생물이 되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자식에 대한 의존과 대리 만족으로 인한 부정적인 모성으로 변모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병적으로 확산된 교육열, 사교육의 증가, 과도한 경쟁심리 등에 의해 어머니 개인의 욕망은 아이의 성장기 동안 지연되거나 억압, 포기되고 만다. 그리하여 현대의 어머니에게서는 희생적이고 복종적이며 이타적인 면모와 억압적이며 비합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면모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오정희의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의 엄마는 양육과 가사를 위해 문학의 꿈을 접은 인물이다. 하지만 서술자인 딸은 그런 엄마에게 연민을 가지면서도 아들과 차별하는 어머니를 계모라고 말함으로써 어머니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모성상과 결별하고 있다. 임정자의 일련의 환상동화와 남찬숙의 『괴상한 녀석』에 나오는 엄마는 때리고 잔소리하고 말이 안 통하며, 아이들의 교우관계까지 간섭하고 아이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 사로잡혀 있는, 아이의 지배자로서의 ‘엄마’이다. 이들 동화에서 엄마는 평면적인 인물로만 형상화됨으로써 왜곡되고 부정된 모성을 회복할 희망을 남기지 않아 더욱 문제적이다. 아이들은 주로 부모를 통해 성역할을 학습, 혹은 모방하며, 평등한 부부관계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역할에 대해 자유로운 태도를 지닌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족이 가사일 돕기를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김희숙의 「엄마는 파업중」이나, 자신의 일과 이름을 찾은 엄마의 이야기인 선안나의 「엄마의 이름」, 목온균의 『아빠는 요리사, 엄마는 카레이서』 같은 작품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더불어 사는 삶’의 긍정적인 전망을 발견할 수 있다.

pp.405-418
pp.421-432

여성문학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