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OTT 서비스와 ‘여성 서사’의 연관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최근 문화판에서 ‘여성 서사’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변화의 기저에는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역사적 계기와, OTT 서비스의 활성화라는 미디어환경의 변화가 놓여있다. 넷플릭스, 왓챠 등 OTT 서비스 플랫폼에서는 적극적으로 ‘여성 서사’를 수입, 배급, 제작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이 플랫폼에서 ‘여성 서사’가 하나의 ‘취향’ 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자본이 주목한 ‘여성 취향’은 서브컬쳐 내에서 이중의 주변화를 통해 철저히 배제되었던 ‘여성향’의 개념과 포개어지며 확장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왓챠가 배급한 드라마 「킬링이브」는젠더 미러링을 통해 관객들에게 쾌감을 안겨주는 한편, 두 여성 인물의 퀴어적인 관계를 전면에 내세우고 여성의 욕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킬링이브」가 서사에서 보여준 파격성은 현재 OTT 서비스가 주목한 ‘여성 취향’이 놓인 지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OTT 서비스의 ‘소수자성’에 대한 관심은 어디까지나 소비 가능한 ‘취향’일 때 의미를 지닌다. 또한 OTT 서비스의 플랫폼이 내세우고 있는 ‘개인화 된 취향’은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여성 서사’의 역동성을 지운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This study amis to highlight the relationship between OTT service and ‘female narrative’. At the base of the recent change in the cultural landscape in which “Women’s Epic” has become a trend lies the historical opportunity of feminism reboot and the media environment of the activation of OTT services. OTT service platforms such as Netflix and Watcha actively imported, distributed, and produced “female narrative” which is important in that platform is integrated into a “favorite.” And the “taste of women/female taste” that these capital has paid attention to tends to expand and spread with the concept of “female orientation,” which was completely excluded through double marginalization within subculture. In this situation, Watcha’s drama “Killing Eve” gives audiences pleasure through gender mirroring, while putting the queer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female figures at the forefront and asking questions about women’s desires. “Killing Eve” shows the point where the “taste of women/female taste” is placed, which OTT service is paying attention to. However, the OTT service’s interest in ‘minority’ is meaningful when it is a ‘taste’ that can be consumed to all extent. Also, the “personalized taste” presented by the platform of OTT service is problematic in that it erases the dynamics of the “female narrative” that has emerged as a new trend.
본 연구는 최근 몇 년 동안 케이팝 아이돌의 팬덤이 스타에게 자필 사과문을 쓸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음에 주목한다. 자필 사과문을 쓰고, 쓰게 만드는 현상 속에는 연예인에게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대중문화 전반의 도덕주의가 반영되어 있다. 더불어 아이돌 산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는 아이돌 팬덤의 독특한 친밀성 규범이 얽혀 있다. 따라서 본연구는 1) 아이돌 팬덤 문화가 아이돌 산업과 함께 변화해 온 양상을 개괄하고, 2) 한국 대중문화 장에서 자필 사과문이 하나의 문화적 양식이자 실천으로서 일반화, 보편화된 과정을 살필 것이다. 또한, 3) 자필 사과문은 손글씨를 카메라로 촬영하여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되기에, 뉴 미디어시대 손글씨가 담지하는 ‘진정성(authenticity)’에 대해 분석한 미디어 연구를 경유하여, 손글씨의 진정성이 케이팝의 진정성(또는 성실성) 담론과 접합하는 지점을 짚어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4)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아이돌 팬덤 내외부에서 발생한 여성혐오 피드백 요구와 팬덤의 자필 사과문 요구를 나란히 두면서, 자필 사과문 요구가 일종의 소비자 피드백 운동이며, 자필 사과문이 아이돌 팬덤의 ‘팬심(fan心)’을 안정화하는 기능을 수행함을 보이고자 한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많이 논의되지 않았던 손글씨 혹은 손으로 글을 쓰는 행위에 함축된 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한다는 점, 그리고 현대 사회의 진정성 문화가 케이팝 아이돌 산업의 독특한 친밀성 구조와 접합하는 지점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있다.
This study notes that in recent years, fandom of K–pop idols has been actively demanding stars to write an apology with their own handwriting. The phenomenon of writing an apology reflects the unique moralism of Korean pop culture, which puts high moral standards on celebrities. In addition, it is intertwined with the K–pop fandom’s unique norms of intimacy, which are becoming increasingly complex as the K–pop industry is becoming more sophisticated. First, I will outline the changes made in K–pop fandom culture along with the K–pop industry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Second, I will examine the generalization of writing an handwritten apology as a cultural practice in Korean pop culture. Third, for the handwritten apology is completed through the process of taking photo and uploading it to social media, I will focus on media studies that analyze the “authenticity” of handwriting in the age of New Media. Then I will point out where the authenticity of handwriting combines with the distinctive “authenticity” (or sincerity) o f K –pop culture. Fourth, I will put this fandom’s demand for handwritten apology side by side with the fandom’s demand for ‘feedback’ about mysogynist lyrics, words, or behaviors of K–pop idols which took place after the popularization of feminist activism in South Korea. By doing so, I want to show that the handwritten apologies stabilize the “fan–sim[heart]” of K–pop fandom.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analyzes the social and cultural implications of handwriting, which have not been discussed much so far. Furthermore, it specifies the point where the ideals of authenticity prevalent in contemporary culture combines with the unique structure of intimacy made by K–pop industry.
이 글은 영화적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를 중심으로 게임의 젠더 다양성 재현이 게임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즉 젠더적 관점에서 게임 플레이어와 캐릭터 간에 동일시와 비동일시가 작동하는 방식을 탐색하고자 한다. 그를 통해, 게임 플레이어의 행위자성이 복수적이고 산포적이고 이질적인 신체들의 프랙탈적인 연합으로 구성되며 그러한 게임 플레이어의 성격이 윤리적이고 교육적인 가능성을 지닐 수 있음을 주장한다.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13)와 달리 후속편인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2020)는 양분된 반응을 얻었다. 특히 기존 남성중심적 게임 문화에 익숙한 일부 이용자들은 새로운 플레이어 캐릭터인 애비에 대해 분노와 혐오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러한 반응은 소수자차별적 문화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후속편이 플레이어 행위자성을 복수화하고 산포시키고 마찰을 불러일으키게 설계하면서 생산된 효과이기도 하다. 서로를 적대하지만 거울상인 두 플레이어 캐릭터, 젠더 이분법을 이탈한 여성의 남성성 재현, 감정적 보상을 주지 않는 서사, 이질적인 게임적 신체성(캐릭터, 배우, 플레이어, 게임머신 등) 등은 동일시와 비동일시를 오고가게 하고 플레이어 행위자성이 긴장하고 불화하는 행위소들로 구성되어있음을 감각게 한다. 또한 플레이어/엘리/애비는 정체성의 불안정성과 실패를 수용하고 타자의 제거를 통한 주체의 트라우마 극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때만 게임을 끝까지 완료하고 공존의 윤리학을 배우게 된다.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how the gender diversity of game characters affect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ame player and the character in The Last of Us series, which has been appreciated as one of the most cinematic games. In other words, I would like to ask the correlation between the video game characters’ identity and the game player’s agency. In particular, The Last of Us Part 2, in which two women, Ellie and Abbey, appear as player characters, received a hate attack from the fandom, which mainly consist of male gamers. This is because both of Ellie’s body and Abby’s, which exceed and deviate normative gender system. However, The Last of Us Part 2 is also designed to make a player’s agency instable and cause the trouble of identification. This game, which has lower degree of freedom in the choices of narratives and actions of player characters, compels players to play as and identify both Eli and Abbie who are hostile each other. It allows players to experience the gender differences among/within women, female masculinity, and multi-layered game bodies (character’s, actor’s, player’s, game machine’s, etc.). A player/Ellie/Abby can complete the game to the end only when they accept the instability of subjectivity and failure of their identity and acknowledge that it is impossible to overcome the trauma of the subject for others’ pains. The Last of Us Part 2 navigates the ethical coexistence of different actants only possible when revealing vulnerability and finding traces of oneself from strangers.
1968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1970년대 대중소설을 쓰던 윤정모는 1980년대에는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고삐』 등의 문제작을 쓴 작가이자 이른바 ‘여류’ 문학의 한계를 극복한 작가로 주류 문단에서 평가받았다. 1980년대 후반은 여성문학인들이 ‘여류문학’으로서가 아닌 ‘여성문학’으로서 문단과 문학사에서 새로운 시민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시기였고 윤정모는 이러한 새로운 여성문학에의 요청에 걸맞은 작가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윤정모의 소설들은 여성 재현에 있어서 여성혐오라는 뚜렷한 한계를 다음과 같이 드러낸다. 첫째 윤정모 소설은 성적으로 방종하거나 훼손된 어머니를 소설 속에서 지속적으로 그려낸다. 윤정모의 초기 장편소설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모티프는 1980년대 소설에서는 민족주의와 접속되어 이들 여성들을 민족공동체 속에서 타자화 시킨다. 윤정모의 초기 소설에서는 분열적이고 기괴한 남성성을 혐오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여대생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1980년대 소설들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혐오스러운 나쁜 모성과 민족과 공동체에 복무하는 훌륭한 모성이라는여성재현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형상화하고 있다. 둘째, 윤정모의 소설은 민족을 위협하는 외세를 중간계급 여성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형상화시킨다. 이러한 재현방식은 교육받거나 경제력이 있는 중간 계급 여성을 배제하고 혐오하던 민중담론의 가부장제적 사고와 관련이 깊다. 결국 윤정모는 1980년대 후반, 문단에서 남성과 부계를 표준으로 삼는 민족, 역사를 소설의 소재로 적극 끌어온‘탈여류’의 여성작가가 되었지만 여성혐오를 드러내고 남성 지식인을 훌륭하게 묘사하면서 남성폭력을 용인하는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재현의 방식은 윤정모가 자신의 개인사를 재현하고 서술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상상된 부계혈통의 중요성은 단순히 민족주의적 정당성을 뛰어넘어 작가 개인의 실존적 고민에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윤정모의 문학이 1990년대의 달라진 상황에서 유연하게 변화될 수 없었던 이유로 작용한다.
Jungmo Yoon who started her work activities from 1968, and then wrote popular novels in the 1970s, is not only a writer who wrote such controversial works like 「Night Road」 representing the May 18 Gwangju Democratic Movement into a novel for the first time, 「Your Ma’s name Was Chosun Whore)」taking the comfort women for Japanese soldiers as its material, and 『Rein』 known as an anti-American novel in the 1980s, but also evaluated as a writer who overcame the limitation of so-called ‘feminine’ literature in the literary world. In the late 1980s, the female writers started asserting the new citizenship in the literary world and literary history not as ‘feminine literature’, but as ‘women’s literature’. At that time, Jungmo Yoon was also evaluated as a writer suitable for the new requests of women’s literature. However, Jungmo Yoon’s novels are overwhelmed by the nationalistic perspective, so they reveal the limitations of misogyny in the representation of women as follows. First, Jungmo Yoon’s novels in the 1980s, regarded as popular novels fully represent the stereotype in the representation of women as hateful bad maternalism and excellent maternalism. Second, Jungmo Yoon’s novels represent the ‘foreign power’ threatening people through the characters of middle-class women. In other words, the female characters symbolizing the foreign power are set up as luxurious and selfish middle-class women who are connected to the United States or excessively like foreign goods. This method of representation is highly related to the fact that the national/popular movements discourse of the time embraced the lower-class women as people and the public, and on the other hand, it excluded the middle-class women. Eventually, Jungmo Yoon became a female writer of ‘post-feminine literature’ by actively using the time, people, and history as the materials of her novels. However, her novels show the limitations of showing the tolerant perspective on men’s violence while revealing the misogyny. This method of reproduction is similar to the way Yoon Jung-mo reproduces and describes his personal history. The importance of the imagined paternal lineage was also the reason why Yoon Jung-mo’s literature could not be flexibly changed in the changed situation of the 1990s, as it was more than just nationalistic justification.
본 논문에서는 18세기에 창작된 〈옥원재합기연〉의 ‘소송’이라는 인물을 통해 ‘부성’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하였다. 부성과 모성이 선천적인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논의가 분분한 요즘, 엄부자모(嚴父慈母)의 통념화된 부모상에서 벗어나 친구 같은 아버지(friendy), 새로운 아버지(new father), 양성적 아버지(androgynous father) 등 자녀양육과 교육에 적극적인 자상한 아버지상(intimate fatherhood)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는 부성과 모성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옥원재합기연〉의 소송은 종법제도가 공고화된 18세기에 오히려 이러한 새로운 부성상을 이미 구현하고 있기에 의미가 크다.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는 것처럼, 소송은 아내가 죽은 후 재취까지 마다한 채 자기희생적인 자식사랑을 실천하고, 수평지향적 소통과 공감을 통해 자식과 관계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자식은 물론, 며느리, 손자 등 가족구성원 모두를 손수 돌보고 배려하는 삶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는 소송이 아내가 요절한뒤 홀로 지내면서 부성으로 모성까지 아우르게 된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옥원재합기연〉에서는 엄부(嚴父)인 이문정공과 달리 자부(慈父)인 소송을훨씬 더 비중을 두고 긍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더욱이 당대의 모성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난 여주인공까지 함께 그려냄으로써 〈옥원재합기연〉에서는 새로운 부모상에 대한 갈망을 여실히 보여준다. 부성과 모성이 ‘완성형’으로 고착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진행형’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요즘, 〈옥원재합기연〉은 새로운 부성상을 선취함으로써 맞벌이가정, 이혼가정이 급증하는 오늘날 이상적인 부성상을 정립하는데 큰 발판이 되고 있다.
In this paper, I tried to explore new possibilities for ‘fatherhood’ through the character ‘Sosong’ in Okwonjaehapkiyeon(玉鴛再合奇緣) created in the 18th century. These days, when the debate is divided over whether fatherhood and motherhood are innate or acquired, a new generation of intimate fatherhood such as friendy father, new father, and androgynous father is emerging breaking away from the stereotyped image of ‘strict father and loving mother’. This shows that the fatherhood and motherhood can be changeable with the times. However, Sosong of Okwonjaehapkiyeon is significant because he already embodies this new fatherhood image in the 18th century when the code of clan regulation was consolidated. Just as a mother raises a child, Sosong practices self-sacrificing love after his wife died, show a relation oriented attitude to his children through horizontal empathy and communication, and takes care of all family members, including children, daughtersin- law and grandchildren. This is due to a special situation in which Sosong has involved the motherhood as a father while staying alone after his wife died. However, Okwonjaehapkiyeon is problematic in that unlike duke Lee Mun-jeong as a strrict father, Sosong, the loving father, is portrayed in a much more positive way. Furthermore, Okwonjaehapkiyeon clearly shows the longing for a new parent image by portraying female figures who are out of the conventional wisdom of motherhood of the time. Nowadays, the fact that the fatherhood and motherhood are not stuck in a ‘complete form’ but are in a ‘progressive type’ that changes with the times is gaining traction. In this reality, Okwonjaehapkiyeon has already won a new fatherhood aspect in the late Joseon Dynasty, setting a foothold for establishing an ideal paternal image in today.
작가는 오랜 시간 ‘찔레꽃’을 인간의 행복에 비유하여 사유해온 듯하며 그렇기에 소설 『밀림』에서도 『찔레꽃』에도 「찔레꽃」 노래가 등장하며 작가의 말에서도 “사람은 모든 대가(對價)를 다 밧첫슴에도 불구하고 손에 쥔 것은 왕왕이 쓸쓸한뷘 가지뿐일 때가 많음에랴! 참으로 꺽기 어려운 찔레꼿!”이라 하였다. 『찔레꽃』 의 주인공 안정순은 가시에 찔리면서도 모성의 전형처럼 주어진 길을 걸어간다. 작가는 자신의 개신교 신앙을 넘어 가톨릭의 성모상을 등장시키고 주인공 안정순을 이 성모상과 함께 찔레꽃의 상징으로 그렸다. 성모와 안정순은 모성의 전형이면서도 가시 돋친 빈 가지의 슬픔을 감내하는 존재들이다. 어렵게 피어난 꽃은 어느새 하르르 지고 안정순을 향하여 사랑하고 오해하며 멸시하고 짓밟던 사람의 부끄러운 얼굴들이 정순의 모성에 기대어 있다. 작가는 안정순의 가시밭길만을 그리고 있지 않다. 휘트먼이 선과 악, 남자와 여자, 백인과 흑인, 부자와 빈민 등 분리 대립된 가치와 제도로 인한 차별과 핍박을 모두 긍정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듯이 소설에서 제도에 의해 분리되고 억압받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은 휘트먼의 사상을 드러내는 역할을 맡아 찔레꽃의 상징에 응한다. 작가는 대중소설에 사상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인물에 잠입시켜 흥미를 유지하면서 사상성을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강원도에 농업공동체를 구상하고 실천해 나아가려는 경구의 기획을 중심으로 적서차별 철폐와 농촌공동체의 재건, 빈부격차의 해소, 죽음의 묘사에서 종교의식의 합일 등을 보여주고 가부장주의와 남성우월주의를 비판하면서 남녀평등을 웅변으로 부르짖기도 하였다. 본고는 휘트먼의 혁신적사상을 받아들인 아리시마 다케오의 사상적 역정이 김말봉의 휘트먼 수용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휘트먼의 사상과 함께 참고하여 『찔레꽃』의 사상을 규명해보았다. 찔레꽃의 사상을 육화해 보여준 존재 안정순은 작가의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나타내며 동시에 성모마리아 이미지로 그린 찔레꽃이다. 신 구교의 경계를 넘어 찔레꽃을 삶의 상징으로 제시한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돈과 사랑을 좇는 꽃들이 모두 진 빈 가지의 성모 이미지 또는 모성이야말로 우리 삶의 구원이라는 사상이다.
이 글은 해방기 광장과 거리의 대중정치 장에서 여성들이 대대적으로 등장했음을 말한다. 동시에 이같은 여성봉기가 여성작가에 의해서 잘 재현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이 간극을 사유하기 위해 우선 해방의 소용돌이에서 여성이 단체로 집결하는 운동의 순간을 최대한 재구했다. 다음으로 이 기록들을 당대의 관련 서사와 교차해서 살펴보고자 했다. 이때 오히려 탈식민 민족/국가의 틈바구니에서 여성대중이 내세워지기도 하지만, 전략적으로 말해지지 않기도 했음을 드러낼 것이다. 해방기 대중운동의 앙등기에서 여성대중의 봉기는 좌우남북의 급박한 정세를 반영했다. 좌우 여성들의 차이가 폭발적으로 가시화하는 동시에, 이들이 연대한 공창제폐지운동의 맥락에서 기생들의 파업은 거의 주목되지 못했다. 또한 우파 여성이 승기를 쥔 이후, 여성들의 쌀배급 데모는 종종 사회주의자들의 시위로 진압됐다. 해방의 기운을 드러내고자 하는 좌파적 입장에서 여성봉기는 군집적으로만 재현됐고, 탈/식민 문학 장에서 여성작가들은 당대 여성들의 집단적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서사화할 수 없었다. 이는 탈/식민 대중을 둘러싼 속성, 즉 변혁의 원천이자 잠재적 혼란 사이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글은 1962년 한국일보 현상모집에 당선된 장편소설 『회전목마』를 대상으로 60년대 여성 정신병이 문학작품에서 재현되는 방식을 당대 의학지식과의 관계속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정신의학지식의 체계화와 대중화로 정신병에 대한담론이 확장되었던 60년대 작품에 역동정신의학으로서의 정신분석과 일제 식민지기 우생학, 그리고 가부장이데올로기가 여성을 어떻게 중첩적으로 규율하고 단속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작품에서 여성은 공동체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과잉 성애화 되고 정신병을 가진 여성들은 초자아에 의해 관리되지 못한 미성숙한 아노미로 재현된다. 또한 정신병을 세대를 통해 유전되는 죄로 규정함으로써 우생학적 처벌의 필연성을 강조한다. 여성이 60년대 기초 공동체인 가족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재현된 것으로 일제 시기 우생학과 최신 서구 의학지식인 정신분석이 이중으로 개입하여 여성을 억압한다. 나아가 여성 정신병의 원인과 구제 방식에서도 정신분석이 가부장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여성을 공격한다. 정신병의 원인을 금기를 어긴 사촌과의 사랑 때문인 것으로 제시하고 문제의 초점을 병리적 질병이 아닌 부계 윤리의 파계에 맞춤으로써 전통과 집단의 질서를 이탈한 죄를 정신병의 응징이라는 방식으로 여성에게 전가한다. 낭만적 사랑에 의해 아버지를 배반하고 개인적 사랑과 결혼을 실행한 아들의 죄의식이 작동한 것으로 죄의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함으로써 여성의 정체성은 과잉 에로스화 된다. 정신분석학이 가부장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유혹하는 에로스로 여성을 성애화하는 것으로 이러한 성차별은 구제 방식에서도 확인된다. 여성이 자살, 살해, 병사로 죽거나 수녀원에 스스로를 가두는 자아 부정을 통해 생명을 보존하는 것과달리 남성은 죄의식을 적절하게 억압하고 승화시킴으로써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는 고뇌하는 지성으로 나타난다. 남성은 리비도를 관리하는 성숙한 문화적 창조자로, 여성은 가족 공동체를 위협하는 에로스 과잉의 미성숙한 아노미적 존재로 재현된다. 미성숙하고 성애로 채워진 여성의 내면은 언제든 공동체를 위협하는감시와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정신의학은 가부장이데올로기, 우생학 등과 중첩적으로 결합하여 젠더화된 과학/지식으로 체계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 글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전혜린의 독서 노트를 통해 베스트셀러로 재탄생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함으로써 교양소설의 독자로서 여성의 존재를 문제화하고 그 문화사적 의미를 고찰한다. 1960년대 초반 한국에서 헤세는 전후 독일의 정신적 위대성을 알린 구도자이자 문호로 조명되었다. 그러나 전혜린의 수필집에 수록된 독서 노트를 계기로 『데미안』이 베스트셀러에 오름에 따라 헤세는 성장기의 애독서 『데미안』의 작가로 각인되기 시작한다. 독서 노트의 서두에서 전혜린은 『데미안』을 품에 안고 무덤에 들어간 여학교 동창에 대한 기억을 꺼낸다. 이 기억의 고백을 당시의 맥락 속에서 다시 읽을 때, 전혜린을 매개로 한 데미안 의 베스트셀러화는 교양소설이 형상화하는 근대의 상징적 가치에 대한 여성 독자의 욕망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새로 읽히게 된다. 『데미안』이 상징하는 관념의 세계에 대한 매혹은 전혜린이 보편에 함몰되어 현실인식을 결여했다는 비판의 요인이 되어왔다. 그러나 전혜린의 수필은 그녀가 보편의 세계에 매혹되었으되 바로 그런 이유로 결코 보편이 될 수 없는 자신의 위치를 의식하며 소외를 경험하였음을 시사한다. 한국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중의 타자로서 보편의 언어를 욕망하였던 전혜린의 글은 서구 대 한국이라는 이항 대립을 가로지르며 그 내부적 균열들을 드러낸다. 독문학을 읽고 번역한다는 것은 이 같은 소외의 조건 속에서도 자율적인 내면을 소유한 인간으로서 자기를 주장하기 위한 과정이었거니와, 전혜린이 하나의 시대적 기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보편을 분유하고자 했던 그녀의 욕망이 수많은 여성 독자들의 것이기도 했던 까닭이다.
This essay investigates the phenomenon of Herman Hesse’s novel Demian being reborn as a bestseller owing to Jeon Hyerin’s essay on the novel. It also complicates the position of female readers of this novel as a bildungsroman to examine the importance of its cultural history. In the early 1960s Korea, Hesse was recognized as a literary giant and a spiritual leader of post-war Germany. However, it was Jeon Hyerin’s essay which prompted Hesse’s novel Demian to become a bestseller, and for the German writer to be known as a writer of the most beloved coming-of-age novel. In her essay, Jeon Hyerin described Demian as a youth obsessed with pursuing existentialist questions and exploring the ‘idea’ of a human. She also wrote about a classmate of hers from girls’ school who had died after reading the novel under discussion. This, perhaps, could also hint at the reason why women who read her essay took an interest in Demian. The readers were captivated by the universal symbols of the modern age embodied in the novel as argued by Jeon Hyerin. I intend to argue that Jeon Hyerin’s essay suggests that she experienced alienation as a Korean woman, which encouraged her interest in universality despite the fact that the same universality would be denied to her for that very reason. It was also this very ‘universality’ that rendered Jeon Hyerin susceptible to criticism. Her emphasis on universality was seen as abstract and thus, lacking a historical consciousness. As a Korean, and as a woman, Jeon Hyerin experienced double othering which also ignited the need in her for a universal language. Her aspirations for universality revealed the internalized cracks which exist between the dichotomy of the West and Korea. Reading and translating German literature was a process for her to reclaim her position as a Subject within this framework. Jeon Hyerin is remembered as a cultural symbol because she was not the only one who desired to share universality through literature in that time. It was also the female readers of the time who also displayed the same desire.
본고는,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2016)이 2018년 일본에 번역된 이래로 읽히고 유통되는 상황을 검토한다. 이 소설은, 2017년 한국의 문학계에서도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고, 특히 이 소설과 관련한 ‘정치적 올바름’ ‘대중 페미니즘’ ‘재현 형식’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지금도 불식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 현상이 근대 미학의 원리를 전방위적으로 질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방식의 출구가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이때 이른바 외부의 관점, 즉 이 소설의 해외 번역 상황을 살피는 일은, 현재 한국에서의 논의틀을 갱신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우선 이 소설은 일본 내 K페미+K문학 붐의 마중물 역할을 한 것으로만 알려져있지만, 2000년대 이후 일본의 신자유주의 저항 언설의 ‘표현’을 이어받으며 받아들여진다. 일본의 2000년대 중후반 대중적 세대(프레카리아트) 담론·운동은, 2010년대 중후반 페미니즘 담론·운동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흥미롭게 볼 것은, 세대 운동과 젠더·페미니즘 운동의 결정적인 차이로서 당사자가 가시화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재현법이다. 단적인 사례로, 아마미야 가린이 주도한 세대 투쟁이 당사자를 가시화하는 재현전략에 관련된 것과 달리, 『82년생 김지영』을 매개로 한 일본 내 대중 페미니즘의 발흥은 당사자 얼굴을 비가시화하는 전략에 상응한다. 얼굴을 드러낼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둘러싼 차이는, 단일한 주체를 상정하는 운동이냐, 무명의 복수성을 호환시킬 방법적 탈주체의 운동이냐의 차이다. 또한 『82년생 김지영』은, 신자유주의, 정치적 신보수주의가 전개되는2010년대 일본의 혐오발화(hate-speech)와 여성혐오(misogyny)에 적극적으로 항거하는 메시지로 읽히기도 했다. 이 점은 소설의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단일하고 소박한 여성연대 이미지(혐의)를 다양하게 분할하는 독법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내용은 본 논문의 2-4절의 내용에서 다루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소설에 대한 열광 자체는 대중 페미니즘의 사례로 지목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뉴미디어가 이 소설 유통의 중요한 플랫폼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의 대중 페미니즘이나 진영논리에 대한 우려가 일본 내 번역붐에 그대로 투사되기도 쉽다. 하지만 소설의 번역, 유통 과정 자체가 일본 내 전통적 공론장의 젠더 역학을 정면에서 질문한 측면은 중요하게 보아야 하고, 오늘날 일본군 위안부 운동, 한일 미투 연대 등의 활동과 연결되는 지점도 주목되어야 한다. 본 논문의 5절에서 이러한 내용을 규명했다. 계속 진행중인 『82년생 김지영』 현상을 간명한 구조로 맥락화, 의미화하는 것은 연구작업에서 필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사안마다의 상황이 숨가쁘게 유동하고 변화한다. 지금 그 사안을 간명하게 프레이밍 하기 이전에 우선필요한 것은, 기존의 표상체계로 쉽게 회수되지 않는 감수성, 정동에 대한 직시(直視)일지 모른다. 특히 근대적 재현=대표=표상(representation) 체계로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독자의 욕망과 정동, 그리고 개체적 저자성의 의미로 환원시킬수 없는 이 소설 현상은, 가치 판단 이전에 오늘날 문학의 달라진 조건을 가늠케한다. 정동이란 본래 특정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초개체적 웅성걸림이다. 표지의 '얼굴없는 두상 이미지가 일종의 표상처럼 유통되고 있지만 오늘날 무명의 독자들은 그 비어있는 얼굴에 각자를 투사시킬 가능성을 찾는다. 이것은 소설이나 독자에 대한 규명을 넘는다. 또한 개별 작가나 활자화된 작품 등으로만 환원될 수없던 문학의 오랜 기억을 상기시킨다.
이 글은 희생자 중심적 기억 담론의 한계를 넘어 제주 4.3을 재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대표되는 희생자중심적 기억 담론은 제주/육지, 과거/현재 등의 시공간적 분할을 전제하는바, 당사자/제삼자의 분리를 고착시키며 근본적인 층위에서의 양자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글은 그러한 시공간적 분할을 문제 삼으며, 4.3을 더욱 포괄적인 의미의 공간적 차원에서 사유하기를 제안했다. 공간을 변이하는 시공간의 연속체로 간주할 때, 우리는 기억 담론이 내포하는 시공간의 분할을 본질적인것이 아닌 잠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탈장소’라는 개념은 장소를 지정학적 경계에 의해 구획되는 것이 아닌, 상이한 시공간적 맥락들의 교차 혹은 이질적 신체들의 마주침이라는 사건으로 설명하는바, 과거사 문제에 관한 대안적 접근법을 상상하기 위해 요청된다. 특히 이 글에서는 4.3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재일제주인 여성이 그려지는 방식에 주목했다. 선형적인 시간성을 전제하는 기억서사의 구조를 차용한 다큐멘터리들은 재일제주인 여성들의 생애를 탈향의 서사를 통해 재현하며 결과적으로 그녀들의 정체성을 희생자다움에 정박시켜 버린다는 문제가 나타난다. 이 경우 스스로를 국민으로 정체화할 수 있는 다수자의 입장에서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수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고국 혹은 국민국가라는개념을 불변하는 장소로 자연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임흥순의 영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9)은 제주/육지, 한국/일본, 과거/현재, 그리고 우리/그들 사이의 시공간적 분할을 넘어 제주 4.3을 다루고자 시도한 사례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특정 공간에 내재된 기억을 직관할 수 없음을, 다만 우리는 오로지 과거–이미지에 의존해 장소의 역사성을 일시적으로 재구축할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영화는 이질적인 신체–이미지들이 충돌하고 분기하는 장소로서 동시대 한국을 포착하며, 우리라는 장소의 유동적임과 불확실함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우리 각자가 연결될 수 있음을 발견한다.
This article sought to explore the possibility of rethinking Jeju 4.3 beyond the limitations of victim-centered remembering discourse. The victim-centered remembering discourse, represented by the sentence “We won’t forget,” presupposes the division of Jeju/land, past/present, and so on, thus entrenching the separation of the parties/third parties and making it impossible for the two to form a solidarity at the fundamental level. Therefore, this article takes issue with such temporal and spatial divisions, and suggests that Jeju 4.3 be thought on a spatial level in a more comprehensive sense. When we consider place as a continuum of time-space that mutates, we can accept the division of time-space implied by the remembering discourse as provisional, not essential. The concept of “deplacement” was asked to imagine an alternative approach to historical issues, describing a place as an event that is not divided by geological boundaries, but rather an intersection of different temporal and spatial contexts or an encounter of heterogeneous bodies. In particular, this article noted how Jeju Island Women in Japan are portrayed in documentaries about Jeju 4.3. Some documentaries borrowing linear time structure have the problem of recreating the lives of these women through narrative of losing homeland and anchoring their identities to victimhood. In this case, by receiving diaspora’s memory from the standpoint of the majority who can identity themselves as nation, it can ultimately have the effect of naturalizing the concept of homeland or nation-state as an unchanging place. However, Im Heung-soon’s film Things That Do Us Part(2019) is an attempt to deal with Jeju 4.3 beyond the temporal and spatial division separating Jeju/Land, Korea/Japan, past/present, and us/them. The film reminds us that we cannot intuit the memories inherent in a particular place, but rather rely on the past-image to temporarily rebuild the historicality of the place. It also captures contemporary Korea as a place where heterogeneous body-image collide and diverge, and finds that each of us can be connected through the fluidity and uncertainty of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