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920~1930년대 한국번역지식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논의되어야할 여성 번역가를 고찰해 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 번역지식문학사에 수많은 여성번역가가 있지만, 그 중에서 김명순, 김자혜와 모윤숙, 노천명 등 여류문인들을 연구 대상으로 하고자 한다. 근대 이후 여성 번역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논구된 적이 없다. 이러한 점은 여성지식인 자체가 드물었던 근대 초기에서부터(김명순), 지식인으로서 여성 번역가의 존재성을 은폐시켰던 1960년대(전혜린)까지, 한국지식문화사에서 한국여성지식인이 묵인되었던 과정과 무관한 일이 아니다. ‘여성번역가’는, ‘번역가’의 존재성을 단지 도구적인 언어 전달자의 위치로 파악했던 한국지식사의 인식 패러다임 안에서 더욱 그 존재성이 인정받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에서 번역이 지식 장을 연동시키는 주동적인 위치를 차지했던1920~30년대 번역가는 지식 전위부대로서 그 존재성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여성번역가의 경우 그 행위는 수적인 열세 속에서도 전위적 지식인으로서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받고자 했던 인정투쟁으로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때론 당대 남성들보다 먼저 첨단의 근대 이론을 번역하기도 했고, 여성으로서자신의 정체성을 걸고, 여성해방이론을 번역하여 새로운 주체성을 구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김명순의 에드가 알렌 포우, 보들레르 번역은 전자에 해당하는 것이며, 김자혜의 「붉은 연애(赤戀)」 번역은 후자에 해당하는 행위일것이다. 특히 김명순은 때론 창작이 곧 번역 행위의 일환이기도 했으며 그 과정이곧 자신을 억압하는 제도나 편견과 싸워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는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문화 번역, 리디아 리우 식으로 표현하면 ‘언어횡단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경지인 것이다. 번역가를 여타의 인식론적 경계를 넘나드는 경계인으로 볼 수 있다면 전위적 ‘여성지식인’이라는 소외된 정체성을 떠안고 있는 여성번역가야말로, 지금까지 한국 지식문학·문화사 내부에서 위태로운 정체성을 안고 경계를 횡단하는 전위적인 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논문은 여성의 정조에 대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가득 담겨있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Othello)를 중심으로 번역자의 젠더가 어떻게 서로 다른해석과 번역을 낳는 지를 분석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세 명의 남성 번역가들의 번역과 세 명의 여성 번역가들의 번역을 중심으로 주로 성담론이 담긴대사들의 번역을 중심으로 여성 번역가와 남성 번역가의 문체를 비교하여 번역자의 성별에 따른 어휘, 호칭 표현 등의 차이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 그리고이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제기되어온 번역가의 성정체성과 번역 결과물 사이에는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본 연구를 통해 가부장적이든 여성주의적이든 성정체성이 강하게표출된 번역은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선 지나친 가부장적 번역은 자칫 독자들에게 셰익스피어의 성(性)에 관한 정치적 입장을 왜곡시킬 수 있고 또 너무 적극적인 여성주의 번역도 원전의 의도나 문맥의의미에서 벗어난 번역을 낳았다. 따라서 이 연구를 통해 내린 결론은 번역가는원전의 의도나 의미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현대의 독자들에게 수용가능한 번역을 가능한 객관적 입장에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규훈서(閨訓書), 즉 조선시대 여성교육서는 여성을 교화하기 위해서 번역되어 간행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의 문자교육서로 기능하였다. 한글사용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간행된 『내훈』의 언해문은 한글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줌으로써 한글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여훈언해』와 『여사서』는 한문원문에 독음과 구결을 달고 있는데, 이는 사대부 남성이 경전을 학습할 때 이용하였던 경전언해와 동일한 방식이다. 이러한 언해방식은 여성이한글뿐 아니라 한문까지도 익힐 수 있는 방편이 됨으로써 여성-한글, 남성-한문으로 구별되는 문자체계의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규훈서는 필사본을 통해서도 널리 읽혔다. 규훈서의 필사본은 간행본과 달리 한글로만 필사되어 있으며, 원본의 내용을 선택과 배제에 의해서 재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원문텍스트를 생략과 축약, 부연함으로써 텍스트를 변형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밖에 주석과 원문을 구분하지 않거나 주석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텍스트의 맥락이 원문과 달라지는 사례도 발견된다. 이 같은 필사본 규훈서의 변이는 원문에 대한 의식이 약화된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있는데, 어구의 변화를 넘어서 규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규훈서 학습의 능동적 측면은 문자를 통해 형성된 반성적 사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한국 근대 번역문학사에 젠더 관점을 접합하여, 여성번역문학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 가정소설 「호토토기스」가「불여귀」-「두견성」으로 번역/번안된 과정을 분석했다. 「불여귀」-「두견성」은 그동안 눈물-신파-여성 서사물의 원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실제 텍스트의 분석 결과, 작품에서 드러나는 남녀의 ‘눈물’은 질적ㆍ양적으로차이가 없고, 전체적으로 감정과잉이라 규정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1910년대이후 작품의 수용과정에서 감정의 성별화가 이루어졌고, 이후 식민지적 감정으로 대표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번역/번안이 1차 텍스트 수용 과정이후, 사회적ㆍ역사적 의미를 획득하면서 재규정되고, 이에 따라 새롭게 생성된 의미들이 텍스트를 다시금 의미 규정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일본 가정문학의 번역/번안은 문학텍스트가 수용대중과의 소통구조에 의해 의미를 생산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번역이란 텍스트 간의 언어교환이 아니라 원본과번역본의 ‘사이’ 세계에서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는 과정임을 입증하고 있다. 나아가 여성번역문학사란, 기존 번역문학사에 누락된 여성번역주체를 복원하는 것은 물론 번역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그 의의가 있다.
This paper examines women's translation literature history in connection with the gender viewpoint in Korea's early modern translation literature history. Thus, the Japanese home novel of 「Hototogisu」, which was translated/adapted into 「Little Cuckoo」-「Cuckoo's Crying」, was examined as to its process of translation/adaptation. 「Little Cuckoo」-「Cuckoo's Crying」 were regarded as symbols of tears, tear-jerking stuff and women's epics. However, an analysis of the novel text revealed that there was no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difference between men's tears and women's tears as described in the work, and that it was difficult to indicate the novel as being overly emotionally charged. Thus, in the process of accommodating the novel after the 1910s, it is assumed that emotion was discriminated by gender, and afterwards, that such emotion represented colonial emotion. The translation/adaptation, after the text was accommodated for the first time, gaines social and historical meaning, and was redefined,and accordingly, newly created meanings defined the text. This process was repeated. Therefore, the translation/adaptation of Japanese home literature shows the process of literary text producing meanings through communication with the readers,proving that translation is not a language exchange between texts, but the process of creating new meanings between the original text world and the translated world. Furthermore, women's translation literature history not only restores the deleted facts about women's translation/women translators in the existing translated literature history, but also enables a fundamental examination of translation.
이 논문은 『신여성』 매체 내에서 찾을 수 있는 번역의 특성과 전략을 젠더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1920년대와 1930년대 「신여성」 에 실린 번역들이 그 시대가 요구했던 새로운 여성의 모더니티를 규정하고 근대 여성, 구체적으로는 신여성의 정체성의 범주를 공고히 하는 데 영향을 준 모종의 전략적 지점이었음을 분석하였다. 본고는 목표 텍스트였던 한글 번역에서 시작하여 목표 언어로 가시화 된 번역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젠더적 특성을 규명하였으며 이를 번역 연구에 있어서 번역 텍스트의 젠더화라고 명명하였다. 본고는번역 주체의 문제, 번역 텍스트의 장르와 내용, 마지막으로 이러한 번역 텍스트에 드러나는 전략을 중심으로 과연 「신여성」의 번역 텍스트들이 당시 한국의 여성 모더니티를 위해 담론화 하였던 근대 지식담론은 무엇이며 그 공과를어떻게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가에 대해 분석하였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신여성」의 번역은 여성 젠더에게는 모더니티 형성이라는 긍정적역할을 수행한 동시에 남성들에 의해 선택되고 왜곡된 젠더적 특성을 보여줌으로써 근대적 규율과 가부장 질서의 존속이라는 한계를 지닌 비판과 저항의텍스트이기도 하였다.
This article with an aims to consider from the gender perspective the characteristics & strategy of foreign translation that can be found in the media <Shin yeosung-New age women> to determine the modernity of those translations published in <Shin yeosung> in 1920s & 1930s and analyzed that it was a certain strategic point to have given an influence in solidifying the criteria of identity of modern women specifically new generation women. This article identified gender characteristics appeared in the Hanguel translation text of its beginning and the translated text of its target language is to be determined and named this process as gendering in this translation study. This article examined what was the modern knowledge argument that was attempted for modernity then Korean women by the translated text of <Shin yeosung> based on style, genre & content,of the subject of translation, finally focused on the strategy appeared in such text, and how the merits and demerits can be evaluated from the perspective of feminist. From the feminist view point, the translation of <Shin yeosung>performed positive role in developing modernity to female gender but at the same time, indicated biased characteristics of gender as they were selected by male gender thus it also was a text of criticism and resistance that contains the limitation of the existence of the modern discipline and patriarchal order.
제국/식민지 체제 내의 조선여성이 어떻게 국제/지역 구도 속의 남한여성이 되는가. 이 글은 펄 벅(Pearl S. Buck)의 참조 및 번역을 통해서 해방기여성의 정치적 행보를 더듬고자 한다. 새로운 세계여성 모델이라는 측면에서다른 누구보다 빈번히 언급되고 있는 펄 벅이, 해방기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작 『대지(The good earth)』를 비롯한 유명한 장편소설들이 아니라, 그 이전혹은 그 이후에도 찾아볼 수 없는 낯선 단편소설들 중심으로 수용되고 있었다. 또한 동양적 세계가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소민족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와 관련되어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때 펄 벅은 미국 내에서는 국수주의에 대항하여 아시아의 입장과 동서화합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었지만, 조선에서는 신탁통치 반대의 입장에서 남한만의 정부를 수립하자는 우익의 주장과 더불어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적대적 반공이 아니라 실질적 지원으로 세계대전을 방지하자는 펄 벅의인도주의도, 해방직후 한동안 침묵했던 우익 남한여성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논리가 되었다. 여기에는 물론 38선의 실정화에 따라, 북조선과 남한이구분되기 시작한 한반도의 정황이 존재한다. 이때 남한여성은 해방직후 소개되었던 소련과 중국의 이름 없는 혁명여성들이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몇몇 유명여성들, 즉 루즈벨트의 부인 엘리노어,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 등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콜론타이, 베벨, 엥겔스 등의 사회주의 여성해방이론이 아니라, UN의 성립과 활동을 배경으로 하는 아메리카 인도주의에 접근하게 된다. 이는 물론 물리적으로 미군의 지원과 미국의 영향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펄 벅은 미국에서는 좌파 공산주의 동조자의 혐의에 시달렸지만, 남한에서는 우익 남한여성의 모델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방의 열기가 지나가고 생활의 문제가 대두하자, 이들 남한여성은여성을 대상으로 계몽적인 정책들을 실현해나갔다. 그리고 아직 국가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남한에서, 그들은 당시 국제무대에서 세계여성들과 평등을 전시하며 유사 독립을 느끼게 했다. 물론 이때 UN의 영향 하에서 제기된 여성평등의 국제적 표준은 여전히 현재까지 긍정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해방기 남한에서 펄 벅의 수용은, 해방기 사회주의 이론이 인도주의 정책으로전치되는 그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해방기 남한에서 특출한 아시아관계 여성명사로 받아들여지던 펄 벅은, 다시 대한민국(R.O.K)에서 가장 널리 읽혀지는 대표적인 서구의 여류, 즉 『대지』의 작가로 낙착될 것이었다. 이글은 기억에서 사라진 해방기 참조되고 번역되었던 펄 벅의 비판적 발언과문제적 작품을 더듬어 보고자 했다.
이 논문은 월간 여성잡지 「여원」에 실린 번역을 통해, 다양한 차원의 시․공간을 대상으로 수행된 ‘번역’이 그 이질성과 차이를 봉합하며 대중적으로 유통되고 수용되는 소통의 역학을 젠더적 관점으로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둔다. 「여원」에 수록된 번역문학은 크게 소설, 수기, 위인전기, 동화 등으로 구분할수 있는데 주로 미국,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독일, 덴마크,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 등 유럽 국적의 작가와 과테말라, 브라질, 칠레 등 남미출신 작가, 그리고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적 작가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 번역문학은 17C 중국의 청나라 때 작품으로부터 「여원」이 발행되던1950, 60, 70년대 당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걸친 다채로운 국적만큼이나 광범위한 시대에 걸쳐 있다. 이처럼 「여원」의 번역문학은 매우 넓은 시․공간에 걸쳐 있어 그 사이에서 국가 간 정보의 이동과 변화, 혼종이 활발하게 일어났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여원』이 발행되는 1950년대~70년대는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려는 전후의재건 활동이 필요불가결 했던 시기였다. 재건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새로운국가 건설에 대한 욕망은 세계를 향한 다양한 정보 입수에 대한 욕망을 부추겼다. 민족의 전통적인 문화와 가치관이 더 이상 ‘역할 모델’이나 ‘삶의 정향’이되지 못하는 와중에, 「여원」이 기획하고 실천했던 ‘번역’은 전통에서 근대로,토착적인 것에서 외래적인 것으로의 변화가 생산되기를 바라는 기대 심리를불러 일으켰다. 번역이란 널리 알려진 대로, ‘타자의 언어, 행동양식, 가치관 등에 내재된 문화적 의미를 파악하여 자신의 ‘맥락’에 맞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번역은 원작(the original)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행위지만, 정작 옮김의대상이 되는 것은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원작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이다. 따라서 번역 발신 텍스트의 이국성과 이질성은 번역을 통해 이러한 문제적국면을 넘어 상호 교통과 교류를 견인해낼 수 있는 새로운 소통 모델의 개발로 나아감으로써 해소가 가능하다. 그런데 「여원」에 개재된 번역은 원본 속에 잠재되어 있는 역사적 가능성을찾아 해방의 길을 모색하는 새로운 소통 모델의 개발로 나아가지 못하고 상당부분, 기존의 사회질서와 의미질서에 현대적인 외피를 입혀 공고히 함으로서잔여태로 존재하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여원」 발간 초기에는 개체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삶에 주목하는 듯 했으나 점차 미혼 또는 비혼 여성과결혼한 여성을 구분 지으면서 특히 결혼한 여성은 아내와 어머니라는 상징적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를 더 많이 발산하고 있다. 이로써 여성은 스스로 아름답게 갈고 다듬거나 쾌락을 향유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남성이나 가정, 육아를 위해서 지원되고 마모되어야 하는 기능적인 존재로, 여전히 탈신체화되고 상징화되는 길을 가는 것이 보다 더 긍정되는 양상을 보인다. 「여원」의 이러한 보수성은 역으로 ‘현명한 아내’, ‘희생의 어머니’라는 기존의가부장적 관념에 길들여진 대다수의 많은 한국 여성들에게 여지껏 자신을 안전하게 유지시켜주었던 전근대적인 심리적 보호막을 여전히 지켜갈 수 있다는 안정감을 줌으로써 외상적 박탈 없이 낯선 이국성과 편안히 조우할 수 있는유용한 길잡이가 되기도 했다.
이 논문은 번역서를 통해 1980년대 한국 여성해방운동의 탈식민성에 대해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980년대 여성해방운동은 ‘제2의 물결’의 영향권하에서 출발한다. 이때 영미의 여성해방이론은 수용해야 할 전범인 동시에 부정해야 할 타자로 기능한다. 이로 인해 여성해방이론의 번역은 단순한 수용이아니라 모방과 오염이 일어나고,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이 생겨나는 혼종성의공간이 된다. 교양교육의 일환으로 전개된 여성학 강좌에서는 에세이와 같은 가벼운 읽을거리를 교재로 사용한다. 이는 학습자의 눈높이와 생활환경 등에 맞추어 여성학적 문제의식을 품게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에세이류의번역서는 의식 각성의 계기를 제공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여성해방운동진영에서 번역을 기획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변혁 운동 진영에서는 필요에 따라 여성해방운동에 관한 편역서를 펴내는 등 번역의 수신자가 오히려 발신자가 되는 기획을 진행한다. 발신자와 수신자의 위치가 뒤섞이고 역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제3세계라는 또 하나의 보편을 획득하기 위한 기획 속에서 탈구된다. 순수와 비순수의 구도는 원본-가짜의 이분법을 무한히 반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제3세계 여성을 낭만화, 전형화함으로써 운동의 도구로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탈식민적 극복을 전제로한 한국의 여성해방운동이 다시금 이분법적 구도로 환원되는 역설이 번역서를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조선후기 대하소설은 당대의 문화를 섬세하게 재현해냄으로써 단순한 ‘서사물’을 넘어서 ‘문화의 집적체(集積體)’로서의 면모를 지닌다. 그 중 「유씨삼대록」은 특히 당대의 문화를 실제에 근접하게 재현하려는 의식이 강한 작품으로,작시(作詩), 연회(宴會), 잡기(雜技), 친잠의(親蠶儀) 등의 여성의 놀이문화에관한 형상화가 매우 구체적이었다. 먼저 여성들의 작시 문화에서는 한 집안의 여성들이 모여 시를 짓는 데서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도 참여하여 시에 대해 품평을 함으로써 남녀 간의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이를 병풍으로 제작하여 남김으로써 두고두고완상했던 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여성들 간의 깊이 있는 연대의식, 그리고 여성과 남성 간의 깊이 있는 소통이 작시 문화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여성들의 연회 문화에서는 여성들끼리 모꼬지를 열어 즐기는 과정에서의 상을 차리는 방식, 상에 올리는 음식, 연회자리에서의 예절 등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상층의 가문에서는 상을 개인별로 차려서 먹었고,이러한 음식에는 산해진미와 더불어 그간 아껴두었던 술까지 내어와 즐겼으며, 이런 과정에서 때로는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던 정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윤리교과서적인 연회 문화의 재현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기 쉬웠을 생생한장면들이 이들 연회에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세 번째로, 바둑, 투호 등의 잡기 문화는 여성의 놀이문화 중 일상적이라고할 만큼 빈번히 등장하며, 여성이 자발적으로 하기보다는 어른의 명령을 받고어른들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남녀 간에 하는 경우도 부부 혹은 남매간의 범위를 넘지 않아 일정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있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아내가 자신을 박대한 남편을 잡기에서만큼은 손쉽게 이기는 장면을 설정함으로써 놀이문화가 주는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라는통쾌함을 표출하고 있었다. 네 번째로, 친잠의는 일종의 궁중의식이지만 성대한 놀이문화로서의 성격을띠면서 최상층 여성들의 놀이문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궁중에서 친잠의를 준비하는 입장이 아니라 친잠의에 초대받은 최상층 가문의 여성들의 입장에서 친잠의에 관해 형상화함으로써, 친잠의 자체에 대한 절차뿐만 아니라이런 연회에 참여하는 기대와 흥분, 그리고 영광스러움까지 담아내고 있었다. 이처럼, 「유씨삼대록」에서는 상층 여성들의 놀이문화를 섬세하게 형상화하고있으며, 이 중 시를 병풍으로 만들어 향유하는 장면, 궁중의 연회인 친잠의에참여하는 장면 등은 「유씨삼대록」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유씨삼대록」에 묘사된 여성의 놀이문화는 실록, 문집 등의 문헌기록에도간혹 보이는데, 이들 기록은 「유씨삼대록」에 재현된 여성의 놀이문화가 사실에 바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한편, 실록 등에서는 놀이문화에대해 소략하게 서술하고 있어 여성들이 이를 즐겼을 때의 감흥 등에 대한 내용은 소거되어 있기 쉬운데 「유씨삼대록」에서는 이런 놀이문화를 하나의 영상처럼 선명하게 형상화함으로써 구체성을 확보한다. 이처럼 실제 역사 기록 속의 여성의 놀이문화와 「유씨삼대록」 속의 여성의 놀이문화는 상보적으로 공명하면서 조선후기 여성의 놀이문화를 재구해 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최근의 옛 놀이문화에 대한 연구가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간혹 보이는 여성의 경우에도 일반 여성들의 놀이문화를 위주로 이루어진데 반해, 「유씨삼대록」 등의 대하소설은 상층 여성들의 고급한 놀이문화를 부각시킴으로써 조선시대 여성의 놀이문화를 재구해내는 토대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사도세자의 친모 선희궁 영빈 이 씨가 쓴 「여범」의 독해 방식을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또한 지금까지의 규훈서 연구들이 주로 텍스트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보고, 이와는 다르게 텍스트의 형식을 보다 면밀하게 검토함으로써 다른 규훈서들과 구별되는 「여범」 고유의 특질 및 문학사적 위상을 드러내려고 했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여범」과 가장 유사한 방식으로 쓰여진 「열녀전」 및여러 규훈서의 서술상에 나타나는 특징을 찾아내어, 이 규훈서들이 독해되는방식을 체계화 했다. 그 결과 이 규훈서들에서는 인물을 둘러싼 사건이 보편적도덕 원리를 입증하는 방식으로 재현되며, 따라서 독자들은 텍스트 외적 요인들이 가리키는 바에 따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해석한다는 것을 알았다. 3장에서는 「여범」의 서술 방식 또는 독해 방식이 전 장에서 살펴본 규훈서와 동일한가라는 물음의 해답을 찾고자 했다. 그 결과 「여범」은 주석이나 논평대신 텍스트 내적인 구조와 이야기 세계 내부 인물들의 발화를 통해 입전 인물들에 대한 규범적 해석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규훈서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해될 수 있는 텍스트임을 알았다. 결론적으로 『여범』에는 한문 텍스트를 읽고 쓰는 방식뿐만이 아니라 한글텍스트를 읽고 쓰는 방식, 즉 탈맥락적인 독해방식이 새롭게 적용되었으며, 이두 가지 방식의 대화적 상황은 전자의 방식이 지배적이던 체계에 도전한다는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보았다.
이 논문은 조선후기 양반 여성의 삶과 유교화의 관계, 즉 여성과 유교적 규범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서 조선후기 양반 여성을추모하는 제문, 행장, 묘지명 등과 여성을 교육하기 위한 규훈서에 나타나는,‘세속(세상)의 부녀자’라는 표현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들은 부정적으로 표현되는데, 여성 관련 규범을 지키지 않거나 이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고 판단되기때문이다. 본 논의는 ‘세속의 부녀자’ 담론에서 미시적으로 드러나는 여성-규범의 관계와 그 규범의 실천적 위상, 그러한 위상이 드러나는 이유 등에 대해분석한다. 나아가 본고는 조선후기 여성들의 삶을 유교적 규범 혹은 도덕과의관계에서 체계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세속의 부녀자’ 담론을 조선후기 문화라는 큰 틀 내에서 해석한다. 그때 ‘세속의 부녀자’ 담론을 대상으로 도출된 논의들에 좀 더 선명한 의미가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문, 행장, 묘지명에서는 대상 인물이 세속의 여성들과 달리 긍정적 자질을가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규훈서에서는 여성이 지향해야 할 규범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세속의 부녀자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에는 개별/집단, 부덕/실덕, 규범/탈규범의 약호들이 개입한다. 일련의 항은 서로 관련을가지는데, 소수의 대상 여성들은 규범을 따르며, 다수의 세속 여성들은 규범을따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개별:집단, 소수:다수=부덕:실덕, 규범:탈규범, 부덕(婦德):부덕(不德)으로 표현 가능하다. 반(비)규범적 여성, 즉 탈규범적 여성은 여성 관련 규범을 따르지 않거나 이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위반하는 규범의 내용은 언행․종교․가사 노동․경제적 차원 등으로, 일상의 영역에 걸쳐 광범하게 나타난다. 세속의 부녀자들이 일상-가사 영역에서 탈규범화 되었다는 것은 이들이 모든영역에서 탈규범화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후기 문화에서 소통된 다른 대표적인 여성 담론인 열녀 담론을 참고하면서 논의를 진행한다. 결국 조선후기 여성-규범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할 때, 한 마디로 이들이 규범화되었다던가 탈규범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들은 여공을 비롯한 일상적 차원에서는 탈규범화의 경향을, 열절과 같은 성적 차원에서는 규범화의 경향을 보인다. 또한 이들을 제약했던 유교적 규범의 위상에 대해서도 한 마디로언급할 수는 없다. 일상-여공 관련 규범은 규약적 차원에서는 확고하지만 실천력은 미약했으며, 성적 규범은 규약적 차원에서는 미약하지만 실천력은 확고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가지 상이한 차원들이 내재함으로써 여성들은 규범에 대해 역동적이면서도 다양한 태도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논문은 고령화 사회를 맞아, 전통사회와는 달리 노인의 사회문화적 위상이 달라짐에 따라, 자존감의 위기를 겪는 노인 세대의 자식에 대한 기대 수준과 가족관의 문제에 대해 새로운 담론의 지형을 재구하기 위한 자원탐색적 연구로서의 시작되었다. 특히 ‘재산증여’를 매개로 한 노인 부모와 자식 세대의관계 변화에 주목하여, 가족 관계의 질적 변화요인으로서의 돈의 문제, 맹목적인 혈연적 유대보다는 부모에 대한 충실성과 보호가능성을 담보하는 효에 대한 질적 기대가 강조되는 노인의 심리와 상상력의 추이에 주목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 노인의 자식에 대한 기대 수준이 상상적 내러티브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구비설화’의 유형인 ‘친딸보다 나은 양아들(양아들이 효도하기/411-5)’유형을 분석 대상으로 선정했다. ‘친자’의 불효는 부모와의 동거가 장기화되거나 재산 증여를 기점으로 노골적으로 행동화되었다. 자녀는 재산 증여의 정도에 따라 부모에 대한 책임감이가중된다는 판단을 내세웠지만, 심리적으로는 모두 자신을 부모에 대한 애정결핍의 피해자로 위치지음으로써, 불효에 대한 심리적 면죄의 논리를 생성했다. 재산을 자식에게 증여한 부모는 자녀로부터 ‘잉여 가족’으로 처우되었으며,경제적ㆍ사회적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부모는 이로 인한 고통을 내적 감정의 문제로 수용했으며, 가출할지언정 자녀에게 불만을 토로하거나 효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해당 설화 유형에서 노인 부모는 자신을 불편해하는 자식과의 동거보다는유랑ㆍ걸식ㆍ자살을 택함으로써 사실상 가족의 해체를 행동화했다. 나아가 자신을 환대하는 타인의 처신을 ‘진정한 효’로 간주하고 양자로 삼음으로써, 가족의 재구성을 도모했다. 그 과정에서 ‘양자’가 ‘자식 사랑’보다 ‘효’를 중시하는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극단화된 불안 심리를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양자와 친자 사이에 재산권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친자의 요구와 계략에 의해파양되는 가족의 해체가 발생했다. 해당 설화의 구연자중 90%가 60대 이상의 노인인 만큼, 여기에는 노인 세대의 효에 대한 기대 수준과 자식의 효심에 대한 불안 심리가 투영된 상상의논리가 작동하고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해당 설화는 노인 부모에게 ‘진정한 효’란 자식이 그 자식의 생명보다 부모에 대한 관심과 애정, 배려를 우선구비설화에 나타난 노인 세대의 자식에 대한 기대 수준과 가족관∙최기숙 371시하는 수준의 봉양과 존중을 의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재산 증여가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의 매개로 작용함으로써, 혈연 우선주의를 넘어선 인간적 애정에 대한 기대와 돌봄의 가족 관계에 대한 기대가 요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논문은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 현정건(玄鼎健)이 죽은 지 40일 만에 뒤따라 음독자살한 윤덕경(尹德卿)의 삶과 그녀가 남긴 유서, 이 사건에 대한 당대인의 보도 및 논평 등을 분석하여 일제시대 상황에서 ‘열녀’와 ‘순종(殉終)’의의미 맥락을 살핀 것이다. 상층 양반집안의 딸로 태어나 현정건과 가문 결혼을 한 윤덕경은 실제로 남편과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다. 남편은 곧바로 집을 나가 독립운동에 투신했고그 기간 동안에는 기생 출신의 현계옥이란 기생과 애인이자 동지인 관계에 있었다. 초기에 윤덕경은 남편을 찾아 상해에 갔으나 남편은 윤덕경을 돌려 보내었고 돌아와서는 신식 교육을 받아 교사로 생활하기도 했다. 현정건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나온 후 윤덕경은 비로소 남편 곁에서 병수발을할 수 있었다. 그러나 6개월 뒤 현정건이 죽고 윤덕경은 뒤따라 ‘순종’했다. 그동안 현계옥과 현정건의 연애담을 전했던 유수한 신문 잡지는 이번에는 윤덕경의 죽음을 크게 보도했다. 윤덕경이 살아 있는 동안 공적 담론 공간에서 현정건의 아내는 현계옥이었고 윤덕경이 죽음을 선택한 뒤에야 당시의 신문 잡지는 윤덕경이 현정건의 아내였음을 대서특필했다. 또한 당시 윤덕경의 죽음에 관심을 가졌던 민족주의자들은 윤덕경의 죽음은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으며 그 열정으로 살아서 남편의 사업을 잇는 민족의 아내, 민족의 어머니가 되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역으로 윤덕경이 열녀도, 민족의 어머니도 아닌 존재로, 그런 공동체의 가치에 속하지 않는 자기 결정권을 행사한 것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윤덕경은 공적 담론 공간에서 처음으로 현정건의 아내임을 인정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윤덕경의 죽음은 ‘도리(道理)’에 내어 몰린 이전 시대의순종’과는 달리 자기의 감정에 충실한 ‘낭만적 사랑’의 한 형태인 ‘정사(情死)’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윤덕경의 ‘순종’과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열녀전은 이제 더 이상 열녀 담론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소녀는 소년의 의미론적 짝이되 소년에 가려진 기호이다. 우리의 경우 일본과 달리 ‘소녀 소설’로 부를 만한 작품도, 소녀 표상의사회학적 의미를 분석한 연구도 드문데, 이는 소녀=여학생이라는 인식 탓이크다. 그러나 기실 근대 텍스트를 흘끗 들춰보기만 해도 가출하고 월경하는 숱한 ‘불우 소녀’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논문은 소녀=여학생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계급적 관점에서 1920년대 이후 근대 조선의 불우 소녀들에 주목해 이들의행적을 1930년대 후반 ‘소녀 공출’ 전후사로 파악했다. 근대 조선의 불우 소녀들은 카프계 작가의 노동 소설, 신문․잡지 매체 등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재현된다. 대표적으로 여공이 등장하는 노동 소설의 불우 소녀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가장 노릇을 하다가 정조를 잃고 ‘혁명 처녀’로 성장한다. 이러한 성장담은 카프 작가에게서 특징적이지만 작가의 이념이투사된 이상적인 것으로, 실제로는 병고로 심신이 쇠약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비교적 가감 없는 현실을 보려면 1930년대 신문․잡지 기사의 소녀 유괴 사건을 확인해야 한다. 1920년대부터 3대 민족지는 소녀 유괴 사건을 단골로 실었는데, 때때로 그것은 반중 민족 감정이 결부된 사회적 스캔들이 되어독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렇게 재현된 불우 소녀들은, 여학생 출신으로 기생이 되는 사례를 제외하면, 재현 주체에 의해 인권 없는 객체로 사물화됨으로써 오히려 인간으로서 고유성이나 개별성은 지워진다. 이른바 ‘소녀 애화(哀話)’나 ‘기생 애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1930년대의 ‘처녀 공출’은 이러한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그들의 소녀기를 살해당한 최악의 케이스이다. 반식민주의나 민족주의로 충분히 규명될 수없는 위안부의 역사적 위치는, 증언의 (불)확실성을 포함하여, 이들이 누구였는가를 되묻는 역사적 관점이 필요하다. 이 논문이 밝힌 근대 불우 소녀들의행적은 이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장덕조는 식민지 제2세대 여성작가군을 대표하는 작가로 1932년 19세의 나이로 등단한 이래 2003년 작고할 때까지 60여 년 동안 다종,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본고에서는 그간의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누락되어온 초기소설을 중심으로 작가의 문학적 출발에 대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장덕조는 식민지 여성의 생활과 감정에 밀착되어 있는 소재를 채택하여 서사화한다. 가정소설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소설은 ‘아내’와 ‘남편’을 주인공으로부부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갈등의 주요 원인은 자녀 출산의 문제와 부부사이에 제삼자의 개입으로 인한 질투이다. 이는 1930년대 이상화된 젠더담론으로서 현모(賢母)와 양처(良妻)의 문제와 연결된다. 건강한 부부 사이에서 자녀를낳지 못한다는 것은 아내의 자질 부족으로 현모(賢母)가 될 수 없는 결핍의 징후이다. 투기 또한 아내로서의 덕을 갖추지 못한 행동으로 양처(良妻)가 될수 없음을 보여준다. 구래의 칠거지악(七去之惡)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이혼대상이다. 하지만 이들의 결말이 비극적이지 않은 것은 이들은 재래의 부부/가정과는 다른 ‘사랑’으로 맺어진 1930년대적 ‘신 부부/가정’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애정갈등의 한 양상으로 다루어지는 출산과 질투의 문제는 개입된 인물들간의 비난보다는 구성원간의 반성의 계기가 됨으로써 갈등이 조화롭게 해결되고 신가정의 새로운 부부도(夫婦道)가 건설된다. 신 ‘부부도’는 부부애(夫婦愛)를 바탕으로 하는 아내와 남편의 강화된 역할론이다. 아내는 가정에서 살림살이에 힘쓰고 자녀를 출산하고 투기를 금하며, 남편은 공적 영역에서 경제활동에 충실하고 아내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다. 부부애를 바탕으로 한 부부역할론은 1930년대 신가정에 적합한 가정 윤리로 재탄생된다.
이 논문은 초기 극장에서 성별화된 배역을 연기하는 여성 연기자로서 여배우가 등장하고 근대 문화 제도의 하나로 정착하는 일련의 과정을 당대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살피고, 그 역사성을 추적한 것이다. 초기 관객은 여형배우의 ‘연기’를 신체적인 성별에 관계없이 맡겨진 배역을 수행하는 ‘기예’로 받아들였으며, 연기자의 성별에 구애되지 않고 배역에 집중하여 공연을 관람하였다. 그러나 서양 활동사진의 영향,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 1920년대 초반의 문화적 분위기 등 극장을 둘러싼 내외적 계기들이 기존의 관람 경험에 균열을 일으키고, 여성성이 연기의 결과가 아니라 여성의 생물학적이고 물질적인 신체에 근거하는 것으로 인식을 전환시켰다. 이월화가 연기한 ‘카츄샤’는여형배우로는 대체될 수 없는 새로운 신체성의 등장을 확증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process that actress appeared as a female performer who acts a gendered character and became a modern cultural institution in the early modern Korean theatre in social cultural context. It also tries to understand the historicity of gender performance. In early theatre, the audience took the female impersonator(Onna-gatta)’s acting as a technic which he performed irrelevantly to his own sex. However, this convention had cracks due to the effect of western moving pictures, the development of media technology, the cultural environment and so on. The early 20’s audience recognized the performer’s feminity based on his/her own physical body, not the production of performance. Yi Wol-hwa’s Katyusha confirmed the rise of new body which could not be superseded by the female impersonator (Onna-gatta).
「근우(槿友)」는 근우회의 기관지로서 총 1회 발간되었다. 근우회는 좌우합작 단체였던 신간회의 자매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었는데 이후 일제의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탄압과 신간회 해소를 둘러싼 논쟁이 모든 통일전선적 단체로파급되면서 해소 결의도 못한 채 해소되고 만다. 「근우」는 근우회의 합작 당시성격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하는 발간 취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무궁화자매라는 것이었다. 민족 전통으로서의 무궁화와 이후 근우회의 지향으로서의붉은 여성은 근우회를 넘어서는 여성운동의 전통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러한전통은 운동의 역량 강화와 방향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근대민족운동의 과정에서 목도되었던, 창조된 전통의 한 사례로 분석될 수 있다. 조선을 넘어서는 한민족의 전통으로서의 무궁화가 근대적 전통(傳統)으로 재창조되는 과정에서 여성운동의 역량 강화를 위해 도입되었다면, 여성운동의 이후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새로운 전통으로 제시되었던 것이 적기(赤旗)이다. 적기는 여성운동이 노동농민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전통을 수립해가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제시되었다. 무궁화 자매와 적기는 여성운동의 방향성과 전통을 제시하는 상징이 되었다.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이 근대적 전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위한 것이었다면, 우리의 근대전통은 반제반봉건을 위한 민족의식으로서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해방 직후 잔류 일본인이 한국전쟁 전/후 남한의 문화정치적구조에서 어떠한 굴절과 변용의 과정을 거쳐 기억되고 재현되는지 살펴보았다. 해방 이후 한반도 내 일본인은 미․소 점령군의 정책에 따라 약 1년에 걸쳐 송환되었다. 이 시기 잔류 일본인과 접촉․분리되었던 조선인의 경험은 실제 이들의 송환이 완료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구체화되어 재현되기 시작하였다. 식민의 잔여인 이들은 조선인들에게 ‘지금-여기’에서 공존하는 존재라기보다는, ‘기억’의 대상으로서 부재하는 자여야만 했던 것이다. 탈식민지화와 냉전질서의 구도 속에서 잔류 일본인에 대한 재현은 한편으로는 식민․해방의 경험을 어떻게 기억(/기념)할 것인가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후식민의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구축․상상할 것인가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었다. 이 글에서는 기억․재현의 대상으로서 잔류 일본인이 ‘여성’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식민 기억의 (재)구성을 둘러싼 젠더 정치의 함의를 살펴보았다. 특히, 잔류 일본인에 대한 기억이 한국전쟁 이후에는 공산주의 치하 일본인 여성의 수난사로 구성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반일주의와 반공주의가 착종된 가운데 식민 기억의 (재)구성과 한․일 관계에 대한 상상이 이루어졌던 맥락을 살펴보았다.
This article looks into how the memory/imagination of the remaining Japanese was distorted, acculturated, and restructured in the cultural and political structure before and after the Korean War. The remaining Japanese on the Korean peninsula had been returned during one year according to the policy of the US and Soviet Union occupation troops after liberation, and the Korean people were in contact with the Japanese during that one year. The experience of contacting and being separated from the remaining Japanese at that time began to be reproduced by being made clear after the completion of the actual return of the Japanese. The Japanese, who were a remainder of colonization, had to be those who were nonexistent as the object of a “memory” rather than to be an existence that coexists “now-here” to the Korean people. Such a phenomenon is, in part, combined with the matter of how to remember/commemorate the experience of colonization and liberation, and, in part, it is associated with the matter of which way the relationship with Japan should be constituted and imagined after the colonial situation. Focusing on that most of the remaining Japanese who were established as the object of that memory and reproduction were limited to “women”, this article considered the implications of gender policy surrounding the (re)structuring of a colonial memory. In particular, regarding narratives after the Korean War, they were composed of the ordeal history of Japanese women, centering on the “38 North Korea Japanese Camp”. With a focus on that, the article took a look into the context in which the (re)structuring of a colonial memory and imagination concerning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was made while anti-Japanese ideology and anti-communism were entangled.
1970년대 박완서 소설에서는 당대의 다른 작가들이 천착했던 대학생들의학생운동 혹은 민주화운동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학생들은 연애, 결혼, 돈벌이, 취직 등이 최대 관심사이고, 사회의 부조리나 시대의 아픔에 대해 무감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완서는 대학생들의학생운동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이러한 면은 실제 1970~8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자신의 자녀들에게 누누이 ‘데모하지 말아라’라고 당부했던 작가의 삶에서의 태도와도 일관된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의 근원은 박완서의 개인사적 체험과 관련되어 있다. 주지하듯이 박완서는 오빠의 좌익 이력 때문에 사상검증에대해 원초적 공포를 갖고 있었다. 이 두려움이 그녀로 하여금 ‘데모하지 말아라’라고 당부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학생 운동을 ‘지식인’의 시선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시선에서 본 박완서만의 독특한 문학적 특질이다. 그녀에게는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것보다 후세대(의 생명)를 지켜내는 일이 더중요했다. 그런데 박완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는 소설에서 학생운동을 보다적극적으로 다룬다. 실제 1988년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어야 했던 박완서에게 1980년대 후반 대학생들의 죽음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로서 그들의 부모와 동질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모든 비굴함을 무릅쓰고서라도 지켜주고자했던 생명을 놓쳐버린 어머니에게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Novels written by Park, Wan-Seo in the 1970s hardly dealt with the ‘students’ movement' at all. Unlike other writers who were keen to discuss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of the day, Park usually described university students as not entirely sensible people interested primarily in dating, marriage, income and employment. That is to say, Park was skeptical about the value of the students’movement. She urged her own daughters, university students at the time, not to participate in demonstrations at all. This was due primarily to her fear of the so-called 'red complex' that had taken her brother, a Marxist, from her during the Korean War. It was the logic of a mother wanting to protect her children. However, she also felt ashamed as an intellectual. Thus, in the late 1980s her novels became more society-participative, and she eventually began to write positively of the students’ movement as society became more liberal and the red complex started to fade. In addition, she lost her only son, an event that taught her to empathize with mothers who had lost their sons and daughters in the fight for democracy.
이 논문은 <한국여성문학학회>를 중심으로 여성문학/문화와 관련하여 어떤 의제들을 생산했는지, 제도-아카데미 장 내로 진입한 여성문학연구 장 내부의 연구지형의 변화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지, 성과와 한계, 그리고 과제는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여성문학학회>는 여성문학 연구를 제도권안으로 견인함으로써 연구 장의 영역을 확장하고, 공론화하려는 여성문학 연구자들의 적극적인 의지가 표출된 결과이다. 2장에서는 학회가 여성문학·문화연구의 동향과 쟁점을 어떻게 선도했는지학술대회 주제, 기획출판물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학술지 「여성문학연구」의 ‘여성주의적’ 관점이라는 구속성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점검하였다. 학술지의 전체 논문을 필자의 성별, 대상 시기, 연구 분야, 대상 작가 분포도, 학술지 체제 등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았다. 여성 필자-현대문학-작가, 작품론 중심이라는 통계 및 분석 결과는 「여성문학연구」가 여성문학이라는 특정 분야의 독자성을 추구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기도하지만 자칫 여성필자-현대문학-작가, 작품론 중심의 게토화에 머물 위험성이있음을 보여준다. 여성문학 연구의 독자적 존립가능성, 신진 여성연구자의 증가 등은 국문학연구 분야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이 관철된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문학 연구의 제도화와 여성(주의) 문학론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이 모호한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 첫째, 여성문학 연구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성찰, 재정립, 둘째,여성문학 연구 영역의 확장, 셋째, 학문 후속세대의 양성, 넷째, ‘국문학’ 연구의 틀을 벗어나 동아시아 여성문학, 영미 여성문학과의 접점을 찾음으로써 지역별, 민족별로 ‘같으면서도 다른’ 여성문학의 쟁점 및 전망을 설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