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의 저항성이 기술에 기반을 둔 열정과 참여로 주로 설명되면서 주로 긍정적인 팬덤 실천이 연구 및 대중 담론에서 부각되고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팬덤의 다양한 행위 양상 중에서 팬덤의 위계 구성 및 경계 짓기 실천의 문화적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팬덤은 열정적 소비를 통해 소비자–팬덤 정체성을 구성하는 한편으로, 아이돌 스타와 함께 ‘같은 것’을 추구한다는 허구적 공동체성을 소비한다. 이때, ‘같은 것’의 가치는 신자유주의 체계 하에서의 성공이라는 의미로 치환되어, 생산성 선망 구조 속에서 아이돌에게 상업적 성공을 위해 개인성을 유예할 것을 요구하고 팬덤 역시 이를 위해 희생한다는 담론을 구성하고 있다. 이는 교환 가치의 틀과 소비자 담론 안에 팬덤의 실천을 한정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 글은 교환 가치 중심의 소비자-팬덤 담론은 산업의 착취적 구조나 아이돌 감정 노동의 문제 등을 성공이라는 가치 뒤로 유예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교환 가치의 문제가 팬덤에게도 동일한 억압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였다. 또한 어머니라는 젠더화된 정체성을 통해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팬덤의 실천이 표상되는 것의 문제를 논의하고 이의 대안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할지를 논의하였다.
As the resistance of fandom is mainly being explained to be participation based on technology in recent fandom studies, only parts of the aspects of fandom are relatively standing out. This article attempted to reveal the cultural meanings of multi-layered aspects for the hierarchical order composition and boundary-policing of fandom. Fandom construct consumer-fandom identities through passionate consumption and it is a community that makes consumptions of a communal nature, pursuing the ‘same things’ with idol stars. When this happens, the values of having the same things are being substituted as meanings of success under neo-liberalism systems. It was observed that demands are being made for idols to suspend their individuality for commercial success within productivity envy systems and aspects that compose exchange values are appearing through construction of discourse that fandom is also making the same sacrifices. Consumer-fandom discourse focused on such exchange values pointed out that there are problems in which the exploitative structures of industries or problems with the emotional labor of idols are being granted grace behind the value of success, and such dynamics are operating as identical forms of suppression on fandom as well. Also, discussions were made regarding the issue in which fandom is being symbolized based on a meritocracy through the gendered identity of ‘mother’. Discussions were made of how other alternatives should be constructed.
이 글은 팬픽 연구 내에서도 비가시화되어 온 여성 동성성애 팬픽을 통해 여성 팬들이 여성 스타에 대한 자신들의 응시를 구성하는 전략과 그 효과를 탐구한다. 특히 남성에게 소구하는 성애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며 ‘삼촌팬’ 담론을 불러일으킨 여성 아이돌 소녀시대의 팬픽을 분석 사례로 삼는다. 주로 여성 멤버 간 동성애를 묘사하는 소녀시대 팬픽은 팬층의 상당수를 차지함에도 기획사의 전략에서 주변화되어 온 소녀시대의 여성 팬덤 내에서 생산되고 향유된다. 여성 아이돌 팬픽은 여성 스타를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소비하는 지배적/남성 응시와 차별적인 것으로서 여성/팬의 응시를 구성하려는 열망을 보여준다. 팬픽의 여성 동성애 서사는 불감증이라는 장치를 통해 여성의 성적 도구화를 당연시하는 이성애에 대한 거부와 함께 페니스의 발기가 약속하지 않는 여성 오르가즘에 대한 여성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여성 팬들은 여성 아이돌 멤버를 남성과의 이성애적 관계라는 지배적 각본에서 탈구시키고 여성 동성애에 대한 환상을 전개함으로써 성적 쾌락을 탐구하고 향유하는 여성의 행위성을 탐색한다. 여성 아이돌 팬픽을 읽고 쓰는 여성들은 기존 성 질서 내 남성/여성에의 동일시를 거부하고, 여성들 사이의 다양한 성적 교합과 차이를 상상하고 발굴해내는 역동적인 서사실험을 수행한다.
This article explores the strategies and effects of women fans forming their own gaze for women stars through the women homosexual fanfics, which has been unvisited even within the studies of fanfics. In particular, it analyzes the fanfics of Girls’ Generation, which aroused the discourses of ‘Uncle fans’ by using sexualization strategies that appeal to men. Girls’ Generation’s fanfics that mainly describe homosexuality among the women members, are produced and enjoyed within Girls’ Generation’s women fandom, which has been marginalized by the agency’s strategy despite its large fan base. Women idol fanfics are the distinction from the dominant/male gaze of regard and consumption of female stars as objects of male desire, demonstrating a desire to form women’s gaze. The fanfic’s women homosexual narrative reveals women’s desire for female orgasm, which a penis’ erection does not promise, along with their rejection of heterosexuality that takes female sexual instrumentalization for granted through a device called frigidity. Women fans explore women’s agency that investigates and enjoys sexual pleasure by dislocating women idol members from the dominant script of heterosexual relations with men and developing lesbian fantasies. Women who read and write female idol fanfics refuse to identify themselves as male/female positions in the existing gender/sexuality order, and carry out dynamic narrative experiments that discover and produce various sexual unions and differences among women.
본 연구는 팬덤 수행을 통해 방탄소년단을 서구 음악산업계 정상에 올려놓을 만큼 글로벌한 영향력을 가진 방탄소년단 팬덤과 서구 미디어 사이에 방탄소년단에 대한 지배담론과 대항담론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음을 조명하고자 한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성을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영어실력과 비영어 가사를 꼬투리 잡는 태도, 그들의 외모적 특질을 남성답지 못하다고 폄하하며, 팬덤을 ‘광적인 십대 여자애들’로 단정 짓는 등의 태도는 서구 사회에서 그동안 하위문화로 취급되어 왔던 K팝 일반에 대한 담론이 방탄소년단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방탄소년단에 대한 이 같은 지배담론은 해당 담론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서구의 기자, 비평가, 음악전문가 등의 문화매개자들이 내면화한 인종주의, 제노포비아, 미소지니, 영어중심주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낸다. 본 연구는 이런 지배담론이 어떤 양태로 드러나는지 개별적 사례를 통해 밝히고, 이에 대항하는 방탄소년단 팬덤의 언술적 생산이 구체적으로 어떤 대항담론적 실천의 형태로 나타나는지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서구미디어의 지배담론 지형을 변화시키기 위해 온라인에서의 독보적인 영향력을 배경으로 글로벌 팬덤이 행한 이같은 대항담론적 실천은 전통적인 문화매개자이자 게이트키퍼 역할을 해왔던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차츰 줄어들고 SNS 같은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는 현재의 미디어 상황에서, 팬덤 수용자 연구 영역에서의 전통 미디어와 뉴미디어 사이의 담론 경쟁 역학을 관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This study aims to highlight the conflict between the BTS fandom and the Western media on the dominant discourse on BTS. Western media’s not taking BTS’ musicality seriously; downplaying their English skill and their non-English lyrics, disparaging their appearance as unmanly; and defining fandom as ‘crazy teenage girls’ shows that the dominant discourse on the K-pop in general, which has been treated as a subculture in Western society, still applies to BTS to this date. This dominant discourse on BTS reveals racism, xenophobia, misogyny and English-centric ideology internalized by Western cultural intermediaries such as journalists, critics and music experts. This study aims to provide individual examples of how this dominant discourse is unfold via media representation; and it also aims to look into the fandom practices as the counter discourse cases. Such counter discursive practices, carried out by global fandom backed by unrivaled influence on social media landscape, are meaningful in terms of audience study case that we can observe the dynamics of discourse competition between traditional media and new media at a time when the legacy media, which has long served as a traditional cultural intermediary and gatekeeper, gradually loses its influence.
본고는 ‘베어 커버 댄스 팀’이 걸그룹 댄스를 커버하며 귀여움을 구현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게이 공동체에서 일반적으로 ‘베어’는 표준적인 체형보다 큰 체구의 게이들을 통칭한다. 최근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젊은 베어들이 커버 댄스 팀을 만들어, 주로 케이팝 걸그룹의 춤을 추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곤 한다. 케이팝 아이돌 팬덤에 기반한 커버 댄스 영상의 전지구적 확산과 관련 댄스 팀의 전문화 경향 속에서, 그 커버 댄스는 동아시아에 특화된 베어 하위문화이자 정체성 수행의 의미를 지닌다. 케이팝 걸그룹이 보여주는 의무적 귀여움이 여성의 상품화와 관련이 있다면, 베어 커버 댄스는 미학적 완성도보다 돌봄의 정동적 요청에 따라 서툴지만 아이 같은 귀여움을 추구한다. 본고는 그 귀여움을 ‘돌보는 귀여움’ 이라는 퀴어 친밀성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This article focuses on the way which ‘bear cover dance teams’ perform cuteness covering girl groups’ dance. In gay community, ‘bear’ generally means big gay men who are overweight. Recently, the young bears in several East Asian countries made their own cover dance team to copy K–pop girl groups’ dance moves, record them and upload the videos onto Youtube. The cover dance is considered as both the bears’ subculture and their identity performance localized on East Asian countries, in line with globally spreading cover dance videos on Youtube and tending to make the cover dance teams specialized based on K–pop idol fandom. While the mandatory cuteness of K–pop girl groups is related to the commodification of women’s bodies, bear cover dance looks clumsy in aesthetic perspective but pursues childlike cuteness according to affective requirement of caring, which also is called ‘caring cuteness’ as kind of queer intimacy.
1950년대는 식민지기와 비교해서 수적으로 많은 여성 작가가 데뷔해 문단과 독서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던 여성문학의 르네상스기였다. 그러나 1950년대 여성문학은 “부르주아 여류”라는 명명(命名)의 젠더 정치로 인해 적극적으로 평가되지 못했다. 더욱이 모윤숙, 최정희, 장덕조, 손소희등 여성문학 장에서 주류를 차지한 작가들은 연성(軟性)의 힘을 동원한 전쟁에서 ‘전사로서의 남성성’을 찬미하며 전쟁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문화 활동에 나서 한반도에 냉전체제가 형성되는데 공모했다는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러나 강신재, 박경리 등 신진 여성작가들은 해방기 남녀평등의 이상이 좌절되고 성차별주의가 사회의 정상 질서인 양 작동했던 전후 냉전체제 하에서 여성이 처한 억압적 현실을 문제 삼으면서 가부장제 사회에 균열을 내는 방식으로 여성 글쓰기의 정체성을 형성해 갔다. 이 글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여성문학사에 대한 다시 읽기의 일환으로서 여성 작가의 ‘저자성’ 획득과 여성문학의 정전(canon)화를 염두에 두고 강신재의 초기 단편 소설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강신재는 그간 여성적 섬세함과 부르주아적 세련됨으로 여성의 운명을 그리는 여성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 여성의 운명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며 “인간의 생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듯 결정적인 어떤 순간을 포착”하는 데 흥미를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강신재는 진화심리학자처럼 경쟁과 유혹의 전략을 통해 사회의 도덕 규범을 어지럽히는 색정증적 여성들을 즐겨 그렸다. 그러나 같은 성 내 경쟁(intra-sexual competition)과 다른 성에 대한 유혹과 질투 같은 성 전략(sexual selection) 이 성공적인 짝짓기, 즉 종족 번식을 위한 투쟁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강신재 소설은 진화론과 결정적으로 구별된다. 번식상의 목표와 무관한 성적 쾌락에 대한 추구는 ‘나쁜 여자’가 여성성 규범을 수행하는 것을 거부하고 가부장제 바깥에 서기 위한 여성의 해방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한국전쟁에 대한 젠더화된 인식과 비판이라는 범주에서 지금까지 연구장에서 미흡하게 논의됐던 박경리의 장편소설 『재귀열』과 『애가』를 전쟁, 여성, 선정주의라는 하위장르의 특성을 구현한 박경리 글쓰기의 전통의 출발점에 있는 프로토텍스트(prototext)로 보고 적극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먼저 『재귀열』과 『애가』에서 청년–여성의 생존과 일상에 기입된 전쟁은 양공주라는 섹슈얼리티의 낙인, 코뮤니스트의 가족이라는 사상적 낙인으로 형상화된다. 두 소설은 초기 단편소설에서 맹아적으로 제시되었던 전시 하 여성의 조건을 여성인물의 열정적이거나 낭만적 사랑, 납치, 성폭력, 실종과 같은 선정적이고 멜로드라마적인 요소에 녹여냈다. 또한 두 소설은 전쟁미망인의 섹슈얼리티를 남편의 동생에 대한 연정이나 애욕, 친족간의 불륜이라는 선정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한편, 낭만적 사랑, 열정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이상을 제시함으로써 전후를 책임질 남녀 청춘 세대가 개인과 감정, 열정을 통해 소통과 연대를 모색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두 소설은 전후의 불안한 사회를 남성의 서사와는 다르게 그렸다는 점에서 남성 중심의 정전 외부에서 정전의 유동성을 심문한다. 50년대 후반에 발표된 두소설의 주요 모티프들은 이후 60년대 장편소설들에서 전쟁미망인의 섹슈얼리티나 생존의 서사(『시장과 전장』)로, 여성–청년의 불안한 사랑의 서사(『파시』, 『푸른 운하』, 『녹지대』)로 확장되어 간다. 그런 점에서 『재귀열』과 『애가』는 이후 장편들의 세계를 예시하는 프로토텍스트로서, 박경리 고유의 여성글쓰기의 전통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지위부여 이론을 활용하여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 나타난 여성화자의 정체성을 비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지위부여 이론은 개인이 대화 상황 속에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담론적 지위와 그에 맞게 조정된 언어를 통해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사미인곡」의 여성화자는 자신에게 사대부 여성의 지위를 부여하면서 사대부 남성이 애용한 한시의 레퍼토리와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권력을 향한 욕망을 암시한다. 「속미인곡」의 여성화자는 자신에게 궁녀의 지위를 부여하고 순수 국어만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권력에 대한 욕망이 없이 오직 임만을 사랑하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낮음’이라는 자질때문에 역설적인 호소력을 갖게 되는 ‘토착어로 말하는 여성’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구성한 「속미인곡」은 고도로 정치적인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진실된 노래라는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The goal of this paper is to compare the identities of the female speakers in Samiin-gok(a song of longing for a king) and Sokmiin-gok (a sequel to Samiin-gok) based on the positioning theory, which insists that one is able to understand an individual’s identity by analysing the way that he/she is positioning himself/herself and using the languages accordingly in a discursive situation. The female speaker in Samiin-gok positions herself as ‘a woman of the Neo-Confucian literati class’ by adopting the poetic lines of the Neo-Confucian literati and Chinese words, which imply the desire for political power. The female speaker in Sokmiin-gok positions herself as a ‘Gungnyeo (palace maid)’ and uses the colloquial languages of the uneducated woman, which are in the Korean vernacular. This implies that she has no desire for political power, yet only has the yearning for a man’s love instead. She constructs her identity as ‘a woman speaking in the vernacular’ which has paradoxical power due to the absolute nature of ‘humilis’, therefore Sokmiin-gok has been highly regarded for its presentation of an authentic voice notwithstanding its political message.
『청맥』이 제시한 제3방안의 탈냉전지(知)는 크게 얄타체제 및 자유/빵의 이분법비판, 자주적인 내포적 공업화, 문화식민론의 극복이라는 세 축으로 집약되었다. 최종심급은 민족모순(분단, 평화 통일)이었다. 『청맥』은 평화통일을 언급한 최초의 종합교양잡지(월간)였다. 정치기획의 첫 번째 특징은 ‘얄타체제를 거부하면서 트랜스내셔널/트랜스로컬의 관계를 재사유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는 점이다. 『청맥』의 탈식민 주체성은 ‘저항적 아시아민족주의’로서 반둥정신을 반영하고 있었다. 『청맥』의 리저널리즘은 자주적 민족주의와 결합한 것이어서, 자유민주주의인 『사상계』의 저항담론 또는 박정희정권의 민족적 민주주의와 차이가 있다. 정치기획의 두 번째 특징은 ‘빵/자유’라는 이분법을 거부한 점이었고, 세번째 특징은 미국을 전면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극적 반미로서, ‘실질적인 우방개념을 설정하여, ‘공존 시대의 우방’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청맥』은 발전론이 함유하고 있는 신식민주의적, 제국주의적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50년대 이승만 정권 및 『사상계』와 방법론 상에서 차이를 보였다. 『청맥』의 발전론은 발전론 자체의 속성과 다르게 반제·반식민을 확인시켜주었다. 『사상계』가 국가주도의 산업화 정책을 추구하면서 미국 원조 및 차관을 기초로 한 경제개발계획을 정책적으로 삼았다면, 『청맥』은 위 정책의 경제적 종속성, 매판성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자주적인 내포적 공업화를 강조하였다. 이는 70년대 민족경제론으로 이어지는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화기획에서는 ‘민족성론’으로부터 출발하여 ‘문화식민론 극복’ ‘민족문화론’ ‘근대의 기점’ 문제로 이어지는 기획을 펼쳐 보였다. 식민문화를 트랜스내셔널/트랜스로컬의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역사적 형성물로 자리매김하고, 특히 ‘발전’의 관점에서 이를 재사유하고 있었다.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호명한 것도 『청맥』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이다. 이들은 당대의 여타 잡지와 다른 특징이었다. 미국(문화)이 부정되는 글에서는 젠더의식이 확연히 드러났다. ‘남성’이 미국=한국=아비로 설정되면서, ‘미군 기지라는 맥락을 은폐하고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정신 없는 아비’로 부정되었다. 이는 세대론의 관점이 투영된 것으로서, 남성성을 부정성의 영역으로 배치한 점은 당시로서는 매우 새로운 관점이었다. ‘아비부정’을 통해 강조되는 것은 제국주의의 ‘침략’적 성격 및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정치세력과 그들의 젠더의식이었다. 이것이 『청맥』이 파악한 ‘냉전의 젠더’의 한국적 특수성 중 하나이다. 『청맥』의 아비부정은 미·소라는 아비를 부정하고 새로운 보편을 상정하려 한 반둥정신과 호몰로지였다. 경제기획에서는역사, 학문, 대중, 시민 등의 개념 속에 ‘여성’이 아예 ‘소거’되어 남성젠더화의 경향이 목도되었으며, 문화식민론의 핵심인 ‘엽전의식’과 ‘소비’는 여성젠더와 결합되어 있었다. 이것이 『청맥』에서 내셔널리즘과 엽전의식 및 내셔널리즘과 소비가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청맥』에서 개발의제와 젠더의제는 여전히 통합되지 못한 상태였다. 발전· 탈냉전의 주체는 ‘남성젠더’였지만, ‘이중부정’을 통해 ‘발전의 주체–남성성’이 희석되면서 가까스로 확립된 것에 불과했다. 허약한 남성성은 ‘아버지’ 대신 ‘젊은 아들’을 주체로 설정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타의 진보적 방법론이 허용되지 않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좌절될 방법론’임을 ‘스스로 예증’ 하는 것이기도 했다. 경제개발계획 등으로 장밋빛 청사진이 제시되던 개발독재하에서 ‘발전의 주체’가 ‘허약한 남성성’으로 설정된 것 자체가 ‘냉전–한국’의 역설이자 ‘냉전의 젠더’의 한국적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고는 임희재의 장막극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1958)에서 나타난 ‘전후 남성성 재건의 욕망’과 ‘여성의 대항 전략’을 살피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는 극의 연속과 지연 양상을 파악함으로써 가능하다. 극은 ‘비밀에 싸인 여성 인물, 영자의 정체를 밝히려는’ 연속적 양상과 이를 유예하는 지연의 양상으로 이뤄져 있다. 이 두 양상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여 서스펜스의 반복 구조를 만듦으로써, 여성문제에 대한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한다. 서스펜스의 반복 구조 속에서, 여성 인물(영자)을 폭력적으로 규정·대상화하고자하는 남성 인물들의 욕망은 거듭 강렬해지며,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것’으로서 전경화 된다. 또한 이를 지연하는 영자의 모호한 발화/행위 역시 점차 강화된다. 이 모호성은 영자의 정체에 이분법적 자명성을 요구하는 남성 인물들의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모호한 발화/ 행위는 남성 지배 집단으로 하여금 그녀의 정체를 함부로 규정·전유할 수 없도록 만드는 대항 전략이 된다.
This study aimed to explore ‘desire to rebuild post-war masculinity’ and ‘women’s counter- strategies’ in the play. By interacting with each other repeatedly, the continuity aspect and delay aspect build repeating structure of suspense and create a unique view of feminism. In the repeating structure, the violent desire of male characters to define female character (Young-Ja) becomes intense. It is foregrounded as a heavy locomotive in the play. But also Young-Ja’s ambiguous reaction dodging male characters’s desire gradually becomes strengthened. As Young-Ja’s ambiguity disturbs male characters who demand dichotomous self-evident to her, the male ruling group cannot recklessly define her identity.
스피노자에 의하면 인간은 현실적으로 실존하게 되는 순간 코나투스적 존재라고 한다. 코나투스는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촉발 장치를 필요로 한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에 의한 기쁨과 슬픔의 상태는 『토지』와 『혼불』의 생명력이 진행하는 방향과 일치한다. 『토지』는 기쁨의 방향으로 진행하고 『혼불』은 슬픔의 방향으로 진행한다. 스피노자는 능동의 경우에는 오직 기쁨의 감정과 그에 따른 능동적인 욕망만 존재한다고 했다. 기쁨에서 생겨난 욕망은 코나투스이기는 하지만 외부의 원인에 의해 증가된 완전성으로 인해 배가 된 욕망이라는 것이다. 서희가 간도에서 자신의 주체적인 아이디어로 길상이와 일체가 되어 재산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혀를 두를 정도로 용의주도하다. 자신의 피붙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서희가 평사리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간도를 떠날 때는 홀로 선 자신의 위기를 그들과 함께 극복해보겠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다. 즉 처음부터 서희는 최참판댁의 영광을 되찾고 자신의 실존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이웃들과 함께 연대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희라는 홀로 선 개인이 아니라 함께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한 김훈장이나 용이네, 공노인 등을 비롯한 이웃들과의 조화로운 삶은 서희가 최참판댁을 지켜야겠다는 최참판댁 가문 이상의 민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염원 때문이다. 이에 비해 『혼불』 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 강모와 효원의 결혼, 청암부인의 죽음, 강모의 만주로의 도피, 강모와 강실이와의 근친상간, 춘복이의 강실이의 강간, 강실이의 피신, 고리 배미의 천민인 백단이와 만동이 아버지의 뼈를 청암부인의 묘에 투장하는 사건 등 중간 중간 끼어드는 풍속이나 신화 이야기, 액막이 연 이야기, 백제 이야기, 만주 이민 역사 등, 대부분의 이야기는 도도한 작가정신에 의해서 인물들의 삶을 규정하는 객관적 현실과 유리된 채 상징, 언어의 반복, 시각적 이미지인, 자연 제재물이나 사물에의 감정 이입, 모티브의 반복과 불연속적 사건들의 병치 등 ‘순간의 상태성’을 표현하는 수동적 정념에 휩싸인 인물만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 의식에 의해서 『혼불』이 전달하려는 것은 서사적 성격을 초월한 영원의 본질적 고양을 경험한다는 것은 오직 작가의 관념으로써의 발현이지 작품 속에서는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인물로만 드러날 뿐이다.
본고는 박완서가 『여성동아』 ‘여류장편소설공모’를 통해 『나목』으로 등단한 이후 1970년대 여성문학장에서 여성 작가로서 자의식을 형성하는 과정 및 여성 작가와 네트워크를 설정하는 과정을 통해, 1970년대 여성문학장의 세대적 특성을 살펴보고자 했다. 1950-60년대에는 『현대문학』과 『여원』이라는 두 매체를 기반으로 하는 ‘여류’ 문인들에 의해 여성문학의 생산과 유통이 주도되었으나, 1960년대 중후반 이후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여류’의 자장 밖에서 활동하는 새로운 여성문학 세대가 출현할 수 있었다. 아울러 여성 리터러시 활동이 도시 중산층 여성을 중심으로 대중화되면서 식민지기 이래 1960년대까지 지속되어온 ‘전문학교 출신 여기자’라는 ‘여류’의 아비투스도 점차 와해되어갔다. 여성문학장의 재구조화 속에서 등단한 박완서는 어떠한 여성 작가의 아비투스가 새롭게 구축되어갔는지 잘 보여준다. 기존 ‘여류’가 ‘보통’ 여성과 구별되는 ‘특별한’ 여성으로서 인정받고자 했다면, 박완서는 ‘특별한’ 여성이 아닌 ‘보통’ 여성이 새로운 문학 행위자로 등장했음을 단편 「어떤 나들이」(1971)를 통해 그려보였다. 그러나 박완서를 비롯한 1970년대 문학장에서 여성 신인 문인들 특히 여성지와 같은 비주류 매체에서 등단한 여성 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작았다. 대다수 1970년대 여성 신인 문인들은 동원할 수 있는 어떠한 사회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문학장에 들어섰으며 거의 등단 직후 사라졌다. 이와 달리 1950-60년대 여성 문인들은 『현대문학』에 매체를 기반으로 구축된 ‘여류’ 네트워크를 197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었기에,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1970년대신인 여성 문인들 가운데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소수의 작가 중 한명이었던 박완서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비판적 대응으로 자신이 처음 문학장 내에 처해있었던 피지배적 위치로부터 탈동일시하지 않았으며, 자신과 같은 경로로 등단한 여성 문인들과 ‘여성동아 문우회’를 조직하여 문학장 내에서 시민권 주장을 지속했다.
This paper examines the process of forming a self-consciousness as a woman writer and building a network with women writers with in the 1970s, after Park Wan-seo started her career as Namok was published by Women’s Dong-A. In the 1950-60s, ‘YeoRyu(女 流)’ based on two magazines, Modern Literature(現代文學) and YeoWon(女園) led 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women’s literature. However, when many new magazines came out after the mid and late 1960s, new generation of women’s literature emerged who could work outside ‘YeoRyu(女流).’ In addition, as women’s literary activities became popular among urban middle-class women, ‘YeoRyu(女流)’s Habitus called ‘college graduated women reporter’ gradually collapsed. Park Wan-seo who emerged when the restructuring the Women’s Literary world shows what new women writer’s Habitus was established. As the short story “A Going Out”(1971) shows, Park Wan-seo wanted to be recognized as a ‘normal woman’ and distinguished from ‘special’ women, This is very different from ‘YeoRyu(女流)’ who wanted to be distinguished from ‘normal women.’ However, in the 1970s, new women writers especially who came from marginal magazines like women’s magazine were not possible to perform actively. New women writers entered the literary world without any social capitals to mobilize, so they disappeared immediately after they published their first work. On the other hand, ‘YeoRyu(女流)’ who had a solid magazine basis were more active than new women writers. Park Wan-seo was one of the few new women writers who were able to survive in the 1970s. She could be in the dominant position in literary world at the end but she continued to assert literary citizenship within the literary world with some women writers who had the same Habitus with her. This is why she organized the “Women Dong-A’s Literary Friends.”
본고는 1990년대가 누구의 어떤 입장에서 경험되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드라마틱한 양적 팽창으로 특징지어지는 1992년을 연구 대상 시기로 삼아, 서로 다른 행위주체들이 남긴 도전과 성취의 흔적을 탐색해본 것이다. 1992년경 정점에 다다른 포스트모더니즘 논란 속에서 학계와 문단의 비주류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례 없이 좋은 기회를 얻은 듯했다. 그러나 ‘베끼기에도 수준이 있다’는 장정일의 일갈에 드러나듯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예술론은 표절 논란에 휩쓸려 표류하게 되고 문단 권력은 더욱 공고화되는 양상마저 보이게 된다. 이처럼 기성 평단의 헤게모니가 공고히 유지되는 문학 장 안에서 프랑스 페미니스트의 탈근대 철학은 기왕의 여성해방문학운동을 위협하는 위험한 박래품 이상의 의미를 띠지 못하고, 포스트모던여성해방론이라는 모더니즘의 어떤 왜상(歪像)이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담론의 수준과 폭이 이렇듯 제한된 포스트모던 조건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이론적 제휴로 기대될 수 있는 사유의 새 지평을 연 것은 문단 바깥의 페미니스트들이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자신들의 자본과 기술로 직접 잡지를 기획· 편집·인쇄·출간하게 된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은 문단 내 비주류의 좌절이나 기성 평단의 헤게모니 재생산이라는 제한된 포스트모던 조건을 문단 바깥에서 거꾸로 제약하면서, 기성 학계와 문단의 ‘주류 콤플렉스’를 가시화하고 차세대 페미니스트의 교본이 되는 전위적 콘텐츠를 개발한다. 동시에 또문은 주변부의 인식론적 특권을 바탕으로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에 천착함으로써 민족 문제와 여성 문제의 연쇄적 해결을 꾀한다. 1992년 한 해만 관찰해 보더라도 지금껏 우리에게 알려진 ‘90년대적인 것들’은 대단히 제한된 목록으로 구성된 것이었음을 알수 있다. 적어도 이성욱, 장정일 같은 문단 내 비주류나 문단 바깥 페미니스트 또문에게 이 시기는 ‘집단적 붕괴감’에 빠진 우울한 날들로 경험되지 않았다.
Being critical of the fact that the 1990s was experienced differently depending on the individual, this study traces the attempts and achievements of various actors in 1992, which was a year of dramatic quantitative expansion of postmodern discourses. As postmodern controversy peaked in 1992, the non-mainstream groups of academia and literary circles seemed to have found an unprecedented opportunity to voice their opinions. However, as claimed by Jang Jeong-il that “even copying comes in different levels,” postmodern theories of literature and art were swept up in controversy, and literary circles solidified their authority. Given the strong hegemony of literary critics, the postmodern philosophy of French feminism was seen as no more than an imported good that threatened literature of women’s liberation, resulting in an anamorphic concept of modernism known as postmodern theory of women’s liberation. Amid the limited standard and breadth of postmodern discourses, feminists outside literary circles were the ones who opened a new window to a possible theoretical alliance between postmodernism and feminism. Like-minded individuals came together in the 1990s to form Alternative Culture (Ttomoon), which utilized its own capital and technology for the planning, editing, printing and publishing of magazines. Working against postmodern conditions such as the collapse of non-mainstream writers and reproduction of hegemony of critics, they visualized the “mainstream complex” of existing academia and literary circles, and developed radical content for next-generation feminists. At the same time, Ttomoon examined postcolonial feminism based on epistemological privilege of the periphery, thereby seeking a series of solutions to ethnic and women’s issues. Looking at 1992 alone, it is evident that the list of what we associate with the 1990s is highly limited. This period was not perceived as a depressing time of “collective collapse” in the eyes of non-mainstream writers such as Lee Seong-uk and Jang Jeong-il, and feminists outside literary circles who were members of Tto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