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유령들에 대한 관심은 흔적도 기록도 없는 죽음으로 대표되는 애도되지 않는 전쟁 경험과 전쟁 피해에 대한 관심이다. 애도될 수 없는 ‘삶/죽음’, 발화할 수 없는 ‘과거/기억’, 언어화되지 못한 ‘고통/목소리’의 포착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이 관심이 소수자와 타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로만 한정될 수는 없다. 유령이라는 말이 환기하듯, 애도될 수 없으며 망각되지도 않은 전쟁 경험과 전쟁 피해가 시간을 관통하여 사라지지 않고 종종 출몰하며 지금 이곳의 현실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민간인 학살로 대표되는 전쟁 피해가 그것을 입증할 죽은 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기반해 있음을 상기하면서 비가시적인 전쟁 피해를 역사적 사실로서 입증하는 작업과 함께 그들이 왜 유령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질문해보고자 했다. 유령을 만드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찰하면서, 구체적으로 강용준, 윤흥길, 박완서 그리고 김금숙의 작품을 대상으로 ‘접힌시공간’에 대한 환기를 통해, 유령의 있음이 아니라 유령의 ‘자리 없음’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자리 없음’의 사회문화적 문맥 좀더 정확하게는 젠더적 맥락을 가시화하는 이 작업을 통해, 한국전쟁의 유령들에 대한 성찰이 식민과 냉전의 복잡한 뒤얽힘이 만들어낸 시공간을 돌아보는 일이자 탈식민과 탈냉전 쪽으로의 논의 진전을 이끌 수 있는 거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Interest in the ghosts of the Korean War is an interest in the costs of war, primarily death and other war experiences that have not been mourned or recorded. That is, it is an interest in capturing the “life/death” that cannot be mourned, the “oblivion/memories” that cannot be uttered, and the “pain/voices” that cannot be verbalized. This interest does not only refer to an ethical attitude toward minorities and others. Indeed, as the word “ghost” implies, war experiences and the harm war causes cannot be mourned and are not forgotten; they penetrate through time and do not disappear. Moreover, they often reappear and are deeply involved in daily life. This paper recognizes that most of the harms of war, including civilians being shot to death, disappearances, and killings, do not leave behind dead bodies that can be found to prove the damage. Therefore, I establish invisible war damage as a historical fact, and I seek to ask why the victims of massacres had no choice but to become ghosts. While focusing on the works of Kang Yong-jun, Yoon Heung-gil, Park Wan-seo, and Kim Keum-sook, I examine the social and cultural contexts that create ghosts and look at the “placelessness” of ghosts rather than their existence by evoking “folded time and space.”
이현수의 소설 『나흘』은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충북 영동에서 미군에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인 ‘노근리 사건’을 다룬다. 고향 영동으로 돌아온 다큐멘터리 감독 김진경이 노근리 사건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 마을의 과거를 살피며 자신의 집안을 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기존 관점에서는 노근리 사건이 굳건히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여러 서사가 여기에 중첩되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지적된다. 이 소설을 두고, 본고에서는 노근리 사건 ‘이후’를 그리는 이 작품이 ‘산만함’을 경유하여 가리키고 있는 바는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노근리 사건의 진실을 좇는 과정이 왜 산만하게 에둘러 표현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학살된 ‘양민(良民)’의 곁에 놓인 여성 화자를 쫓아 묻는 이 글은, 『나흘』이 ‘김진경’과 ‘뻐들네’라는 두 인물로 학살 이후 두 갈래의 삶, 즉 회복의정치학에 응하는 삶과 ‘회복’의 테두리에 들어서지도 못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추적한다. 노근리 사건의 ‘사라진 여성들’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들로구성된 이현수의 소설은 희생당한 ‘양민’을 재현하는 문제와 동떨어져, 학살 이후 여성의 삶이란 한 겹의 시선에서는 결코 거두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있다.
Lee Hyun-soo’s novel Four Days deals with the Nogeun-ri Incident, a massacre of civilians carried out by US forces in Yeongdong, North Chungcheong Province, from July 26 to 29, 1950. In the novel, documentary director Kim Jin-kyung returns to her hometown of Yeongdong and looks back on the history of the village and her family in order to plan a television program on the subject of the Nogeun-ri Incident. The narrative has been criticized for how it overlaps here, and it lacks a sense of completeness. This paper examines what exactly Lee Hyun-Soo’s novel, which depicts the period after the Nogeun-ri Incident, implies through its treatment of “distraction.” This article asks the female narrator, who exists alongside the massacred “good people” (yangmin), why the process of revealing the facts of the Nogeun-ri Incident had to be expressed in a distracting manner. The narrative traces how the two characters lived two very different lives after the massacre: One is a life that responds to the politics of reconstruction, while the other is a life that is unable to even approach the space of “reconstruction.” Lee Hyeon-soo’s novel, which attempts to get increasingly closer to the “disappearing women” of the Nogeun-ri Incident, does not engage directly with the problem of reproducing the “yangmin” who sacrificed, and it demonstrates that the life of a woman after the massacre is never confined to a single point of view.
이 논문은 허수경의 전쟁 관련 시에 주목함으로써 이전 세대 여성시인들과 허수경의 전쟁시가 변별되는 지점을 파악하고자 했다. 허수경 시에 나타나는 전쟁은 한국전쟁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원폭으로 인한 끔찍한 고통, 제국주의적 폭력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허수경은 첫 시집에서부터 전쟁에 대한 통찰을 나타내며 전쟁 이후의 참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곱씹는다. 허수경의 전쟁시에서 여성은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일상과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전쟁을 간접 경험한 세대이자 여성시인으로서 허수경은 고고학적 방법을 통해 문서바깥에 놓인 작은 조각들을 아카이빙한다. 허수경이 발굴한 ‘여성의 시간’은 대문자 역사가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는 허수경의 전쟁시가 간접 경험을 신체화하고 ‘몸’이라는 기억의 공간을 형상화하게 한다. 허수경 시에서 슬픔은 전쟁 이후 생략되거나 사라져버린 자들의 ‘작은 전쟁들’을 확장하고 기억하는 감정으로 다루어진다. 여성 이방인으로서 허수경의 시적 주체들은 전쟁으로 인해 끊어진 가장 약한 고리를 탐사하며, 언어화되지 못했던 것들을 아카이브로 만들어 시화해 낸다. 이 지점에서 허수경의 전쟁시가 여성주의적 속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By focusing on Heo Soo-Kyung’s war-related poems, this paper attempts to identify the point of divergence between the poems of the previous generation of female poets and Heo Soo-Kyung’s war poems. Depictions of war in Heo Soo-Kyung’s poetry include not only the Korean War but also the terrible pain caused by the atomic bomb as well as imperial violence. Beginning with her first collection of poems, Heo Soo-Kyung has demonstrated insight into war and has indirectly conveyed the horrors that follow war. In Heo Soo-Kyung’s war poems, women remember and record the daily lives of people left to survive in the aftermath of war. As a female poet belonging to the generation that experienced war indirectly, Heo Soo-Kyung uses archaeological methods to archive small bits and pieces that exist outside the written record. The “women’s time” that Heo Soo-Kyung discovers is meaningful in that it has not been captured by official history. This enables Heo Soo-Kyung’s war poetry to make the indirect experiences of war physical and shape the space of memory called the “body.” In Heo Soo-Kyung’s poems, sadness is treated as an emotion that expands and remembers the “small wars” of those who have been omitted from history or have disappeared since the war. As female strangers, Heo Soo- Kyung’s poetic subjects explore the weakest link broken by the war and make archives of things that have not been verbalized. In this context, Heo Soo-Kyung’s war poetry can be seen as possessing feminist attributes.
한국에서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시기에 위로부터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 아래로부터의 자주적 국가 건설 운동과 분단정부 반대 운동을 진압하는 데 전근대의 형벌인 연좌제가 활용됐다. 국가 형성 과정에 양측의 대립은 내전 형태로 전개되면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대규모로 일어났다. 연좌제는 정치적 반대자나 지역민을 소위 ‘적성(赤性)분자’, ‘적성(赤性)부락’으로 선별해 섬멸하면서 반공 종족주의를 적극적으로 실현할 때 학살 대상을 선별하는 수단이 됐다. 연좌제 기반 학살에서 전시 비전투원이 대다수인 여성들이 남성 가족 구성원 대신 학살됐고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됐다. 여성 대살과 전시 성폭력은 ① 전과(戰果) 보충, ② 교전 후 민간인 공동체에 대한 보복, ③ 보급기지 차단과 ‘잠재적 적성분자’에 대한 예방 학살, ④ 집권 세력이 적으로 간주한 남성들의 가족공동체 재생산 방지, ⑤ 군인의 전투 스트레스 해소와 전쟁 복무 보수 지급, ⑥ 점령 의례 실현 등을 목적으로 나타났다. 연좌제 기반 학살에서는 가족이나 부계 혈통의 친족공동체, 이들과 결합한 마을공동체나 특정 집단이 선별 단위가 됐고 여성과 아이도 적 공동체의 주요 구성원으로 보았으므로 이때의 여성 학살은 전시 부수적 피해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During the period beginning with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up until the Korean War, foreign powers and the upper class suppressed the efforts of the Korean people to establish an independent and sovereign nation-state. In the process of state formation, this confrontation developed into a civil war, and massacres of civilians by the military and police took place on a large scale. In the process of actively pursuing anti-communist tribalism by identifying political opponents and local people as “red” (communist) elements, pre-modern collective family punishment became a means of selecting victims for massacre. In these massacres based on collective family punishment, women— the majority of whom were wartime non-combatants—were slaughtered instead of male family members and became victims of wartime sexual violence. Massacres of women and wartime sexual violence were carried out for the following purposes: (1) consolidating war achievements; (2) retaliating against civilian communities after engagement; (3) preventing attempts to support the enemy; (4) preventing the reproduction of family communities by men who are considered enemies by the ruling powers; (5) relieving combat stress of soldiers and paying for war service; and (6) securing occupation rites, and more. In massacres based on collective family punishment, family and kinship communities of paternal lineage, as well as village communities and specific groups, became targets for elimination, and women and children were also seen as key members of “enemy” communities.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the massacres of women at this time were not simply the collateral damage of war.
이 글에서는 그레이스 조의 회고록 『전쟁 같은 맛(Tastes Like War)』을 모녀 관계에 초점을 맞춰 읽으며, 어머니의 트라우마를 공부의 대상으로 삼은 딸의 자기서사가 내포한 문학적 함의를 분석했다. 1972년에 한국인이 단 한 명도 없었던 남편의 미국 고향으로 자녀들과 함께 이주한 그레이스 조의 어머니는 사업가로 활동하며 삶의 터전을 마련했지만, 1986년 무렵부터 정신질환 증상을 나타냈다. 뒤늦게 어머니가 한국에서 성노동자로 일했다는 사실을 올케로부터 듣게 된 딸은 연이어 어머니의 자살 기도 사건을 겪으며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결국 어머니의 자존감을 무너뜨린 요인들을 학문적으로 규명해보기로 결심한다. 고통의 원인과 구조를 밝혀내고 폭력적인 세상과 싸우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그레이스조는 어머니에게 가해진 부당한 사회적 낙인을 비판할 수 있는 언어를 획득하며 어머니의 트라우마가 딸에게 전이되었다고 해서 모녀의 삶이 송두리째 뿌리 뽑힌 것은 아님을 증명했다. 그레이스 조는 모녀를 하나로 묶어준 공부의 의미와 가치를 『전쟁 같은 맛』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딸이 위대한 학자가 되기를 원했던 어머니와 어머니의 비밀을 공부로 밝혀낸 딸은 트라우마를 앎의 대상으로 삼아 공부와 글쓰기라는 사회적 실천으로 전환시켰다. 『전쟁 같은 맛』에서 그레이스 조의 어머니는 정신질환으로 사회에서 추방된 사람이 아니라 식민주의, 전쟁, 군국주의, 이산, 빈곤, 인종차별, 이민, 외국인 혐오증을 감내하고 돌파하면서 딸이 위대한 학자가 될 수 있도록 가르친 여성으로 되살아난다.
『북국의 여명』과 『벼랑에 피는 꽃』은 박화성의 자전적 이력을 재구성한 신문연재소설로서 각각 1935년, 1957년에 발표되었다. 두 소설은 한국 사회에 병존하는 전근대적 남녀 차별과 근대적 공사 이분법, 그리고 이에 따른 공간 구획 및 젠더 배분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여성성장소설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북국의 여명』은 사회주의 이념의 정치성에 공명하던 식민지 시기 박화성의 입장에 근거하고 있고, 『벼랑에 피는 꽃』은 이념과 사상의 다양성을 탈색한 식민 기억과 민족주의의 지평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도 크다. 이 글에서는 젠더 역학의 변동에 따른 공간 배치에 주목하는 젠더지리학의 방법론을 참조하며 소설을 분석했다. 『북국의 여명』이 목포, 도쿄, 경성이라는 세 공간, 그리고 ‘북국’이라는 장소성을 중심에 두고 있다면, 『벼랑에 피는 꽃』은 목포와 경성의 공간적 입지를 대폭 축소하는 대신 경성–서울에 중요성을 부여했다. 전자는 학문에서 사상으로, 자매애에서 동지애로 전환되는 이동의 궤적을 그려냈으며, 여성의 몸과 가정, 돌봄과 양육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며 여성의 사상적 실천을 새롭게 조명했다. 후자는 식민지 시기 수난과 저항의 역사에 비추어 인물과 공간을 배치하는 한편, 엘리트 여성 교육자의 성공을 국가 발전의 필수조건으로 형상화했다. 두 소설은 식민지 근대 극복을 위한 탈향–유학의 여정을 그려내는 한국근대성장소설의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주인공의 젠더에서 비롯되는 모순과 갈등, 저항과 봉합의 국면들을 상이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여성성장소설의 다양한 문법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Dawn of the North Country and A Flower on a Cliff are novels that were first serialized in newspapers,and they both reinterpret the biographical history of Park Hwa-seong. They were first published in 1935 and 1957, respectively. Both novels are so-called “women’s growth novels” that make critical interventions into pre-modern discrimination between men and women, the modern dichotomy between the public and private, and the resulting division of space and gender distribution in Korean society. These novels, however, also contain many differences. Dawn of the North Country is grounded in Park Hwa-seong’s political beliefs, which resembled the socialist ideology o fthe colonial period. In contrast, A Flower on a Cliff exists on the horizon of colonial memories and nationalism, which had eradicated the diversity of ideologies and ideas. This study sets out to analyze the two novels by employingthe methodology of gender geography to focus on spatial arrangements in the context of changing gender dynamics. While Dawn of the North Country is centered around the cities of Mokpo, Tokyo, and Gyeongseong, as well as the sense of place of the “North Country,” A Flower on a Cliff attaches importance to Gyeongseong–Seoul while considerably diminishing the spatial prominence of Mokpo and Gyeongseong. The former novel moves along a trajectory from literature to ideology and from sisterhood to comradeship while dismantling the stereotypes of women’s bodies, families, caring, and upbringing; in this way, it sheds new light on women’s ideological practices. In the latter novel, the characters and spaces are placed within the history of hardship and resistance of the colonial period and embody the success of elite women educators as an essential condition of national development. The two novels offer a chance for readers to examine the diverse grammar of women’s growth novels by revealing the aspects of contradictions, conflicts, resistance, and repair derived from the gender of the main characters in different ways while repeating the patterns of modern Korean growth novels depicting the journey of leaving home and going overseas for study to overcome colonial modernity.
학병의 자기서사에는 군 ‘위안부’의 구술 증언과 유사한 기억의 정치가 발생한다. 어떤 것을 서술하고, 어떤 것은 서술하지 않느냐는 자기서사의 행위성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와의 만남은 학병 서사에서 중요한 화소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군 ‘위안부’의 상황상 돌아온 자들의 기억 속 일본군 ‘위안부’의 흔적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고는 그동안 ‘위안부’ 서사로 읽지 않았던 텍스트들을 재독하여 ‘위안부’ 재현을 논하고자 하였다. 박순동의 수기 「모멸의 시대」는 일본군을 탈출하여 OSS 훈련을 받은 항일영웅의 모델 스토리다. 그는 전선에서 조선인 ‘위안부’를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했지만, 일본군 ‘위안부’를 박꽃으로 대상화하며 멀리서 관찰한다. 말라리아에 걸려 몸이 약해졌다는 이유로 같은 조선인 학병들에게 버림받고 혼자 남겨진 이가형은 수기 「버마전선패잔기」와 소설 『분노의 강』을 통해서 버마 전선의 기억을 서사화한다. 그는 수기와 소설에서 위안소 방문, ‘위안부’와의 만남을 상세하게 기술한다. 이는 그가 ‘위안부’, 포로감시원, 학병 등을 모두 전쟁에 동원된 희생양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가형은 ‘위안부’와 섹스를 하지 않음으로써 헤게모니적 군인되기를 거부한다. 이는 식민지 엘리트였던 그가 상징적 거세를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성장을 거부하는 것과 연결된다. 하지만 그 역시 ‘위안부’와의 만남을 낭만화하는 것은 피하지 못했다. 박순동과 이가형 모두 ‘위안부’의 행위성이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굴절된 재현에서 왜 ‘위안부’가 이야기되지 못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안부’ 서사를 아카이빙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신학대학 재학 시절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쟁에 동참했던 고정희는 이 시절을 나치에 저항한 독일 신학자들의 상황에 빗댈 만큼 엄혹한 것으로 그려낸다. 아울러 투쟁의 과정에서 지쳐갔던 당시의 모습을 성찰하며 ‘수유리’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방안을 고민하였다.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안병무에게 관심을 지니고 있던 고정희는 그의 민중신학에 영향을 받아 민중론을 발전시켜갔다. 하지만 남성편향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80년대 민중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여성주의로 전회하였는데, 이는 안병무 사상과의 단절로보기는 어렵다. 안병무 역시 여성신학의 문제의식을 수용하면서 생명·살림 운동을 전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고정희는 여성신학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글을 발표하였는데, 특히 『기독교 사상』과 『살림』에 실린 글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고정희가 여성문화운동의 종착지점으로 제시한 “모성적 생명문화”가 여성신학자 박순경에 의해 주장된 ‘민족의 어머니’와 연관성을 지니는 한편으로, 김지하를 비판하며 “해방된 모성”을 주장한 고정희의 입장이 모성이데올로기 및 젠더이원론 극복과 관련됨을 고찰하였다.
이 논문의 목적은 「단지」와 「27-10」을 중심으로 일상의 폭력이 일상툰을 통해 재현되는 양상을 살피고 이를 통해 그간 일상툰 논의에서 자명한 사실로 여겨졌던 독자의 공감을 되묻는 데 있다. 일상툰에 대한 독법은 큰 틀에서 자기 서사로서의 ‘일상’이 지니는 의미와 독자의 ‘공감’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계기로 일상툰 연구에서는 일상의 자기 재현이 지니는 정치적 함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감’은 ‘경험의 공통성’에 근거한, 자명한 것으로만 여겨져 왔다. 본론에서는 우선 「단지」와 「27-10」에서 폭력의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 주체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폭력 피해 경험과 자기서사는 어떤 연관을 맺는지 논의했다. 본론의 두 번째에서는 독자의 공감에 대해 논의했다. 이 논문은 우선 독자가 ‘피해 경험의 공통성’에 기반한 독자와 그렇지 않은 독자로 나뉜다는 데 주목했다. 경험을 공유하는 독자의 공감은 확인 행위와 발화 행위의 두 측면을 지닌 증언의 연쇄작용 속에 있는 것으로, 또 다른 독자의 공감은 ‘동일화하지 않는’, 연대의 책임을 지닌 것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이 논문의 논의가 ‘공감’의 윤리와 일상툰의 정치적 가능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시도였기를 기대한다.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representation patterns of daily violence in ilsangtoon (daily comics), focusing on Danji and 27-10; it also questions the sympathy of readers, who have been taken for granted in discussions on ilsangtoon. It seems that “everyday life” and “the reader’s sympathy” are two main elements that structure methods of reading ilsangtoon. Influenced by the “feminism reboot,” the political implications of self-representation of everyday life have begun to be discussed in research on ilsangtoon. However, “sympathy” based on a “similarity of experiences” has never been questioned. The essay first discusses the relationship between experiences of violence with the subject and self-representation in Danji and 27-10. The second part discusses the reader’s sympathy. This article notes that readers are divided into two different groups: a group composed of those who share the experience of violence and a group who do not. The sympathy of readers who share experiences is a combination of discovering acts and speech acts within a circle of testimony. The sympathy of the other group of readers is explained as “not identical” and as taking responsibility for solidarity. This article is an attempt to establish the ethics of “sympathy” and the political potential of ilsangtoon.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를 전후하여 페미니즘 SF 창작이 활성화된 문학 장에서 팬데믹 이후 돌봄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면서 돌봄의 미래를 상상하는 SF 소설이 여러 편 발표되었다. 이는 돌봄의 담론과 언어를 재구성하려 하는 작가들의 노력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 소설들은 돌봄의 문제를 기술 의존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손쉬운 결말을 거부하고 그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은 익숙한 현재가 그대로 미래로서 도래하는 시대착오의 상상력을 통해 돌봄의 현실을 전면화하는 서사적 전략을 보여준다. 사회적 돌봄으로의 인식의 전환에 바탕을 둔 성찰적 개입이 없는 한 돌봄의 부정의가 지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비관적 상상 자체를 대안의 원천으로 삼는 역설적 대안을 제시한다. 또 이 소설들은 돌봄의 문제가 ‘돌봄 로봇’이나 ‘돌봄 식민지’ 즉 기계화나 외주화에 의한 돌봄 노동의 대체나 전가에 의해서는 쉽게 해결될 수 없으며 상호 돌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함을 드러내는 사고 실험이자, 돌봄의 기계화나 외주화 상상에 흔히 개재되어 있는 돌봄에 대한 기능주의와 분리주의적 사고를 거부하고 돌봄이 공동체 내에서 통합적이며 관계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임을 말하는 사변적 우화이다. 이러한 여성 SF 의 상상력은 기술에 의해 확장된 자아의 모험과 정복된 미래의 시간을 보여주는 전통적 SF와 달리 조연이었던 여성 인물의 제한된 자아의 고투와 현재의 젠더· 돌봄 부정의의 지속으로서의 미래를 그림으로써 동시대의 돌봄 현실은 물론 기존 SF에 대한 대안적인 사유와 맞닿아 있다.
Around the time of the feminist reboot in 2015, several science fiction narratives that offered visions of the future of care work were published. This occurred in the context of increased awareness in the field of literature—which was experiencing a boom of feminist sci-fi writing—regarding the crisis of caring in response to the pandemic. This is also related to artists’ efforts to construct a new discourse, language, and knowledge of care. These stories reject the easy solutions to the problem of care that are dependent on technology; instead, these stories employ a narrative strategy that fully visualizes the problem of care through the imagination of anachronism, according to which the familiar present, which remains unresolved, arrives as the future. In addition, these stories reveal that the problem of caring cannot be easily solved by replacing care work with technology. They also recognize that certain perceptions of caring must change and that the injustice of care work will continue unless there is a reflective intervention. These works present a paradoxical alternative that uses pessimistic imagination and pessimism itself as a source of alternatives. Most importantly, these stories provide fake catharsis through powerful technological solutions, suggesting that the promise of “caring robots” or “caring colonies,” which actually contribute to obscuring the difficult problems of caring, are not an alternative or solution. In this respect, these stories can also be differentiated from existing sci-fi works. These texts show that the mechanization and outsourcing of care cannot solve the problem of care, and they reject the functionalism and separatism that are often involved in this vision of the future. They clarify that care is not a function that can be replaced but rather is a mutual relationship between humans. Since it is a relationship, it is a speculative allegory to say that it is a problem that must be solved integrally within the community. The visions of these writers reject the existing sci-fi imagination that depicts a future that is conquered by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y also try to parody the universal male subject magnified by science and technology. They are also in line with alternative and critical thinking about traditional Sci-fi works.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페미니스트로 각성한 여성들의 집단적 등장은 여성의말하기, 읽기, 쓰기라는 문화적 실천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 글은 ‘리부트’ 초기와 구별되는 2010년대 후반 ‘페미니즘 대중화’ 시기의 중요한 문화현상으로서 ‘여성 에세이’가 부상한 맥락을 살펴보고, ‘여성 에세이’가 다루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들을 분석했다. 문인이나 지식인이 아닌 평범한 여성–대중들에 의해 쓰인 에세이가 활발하게 출판되고 읽히는 것은 여성들이 동시대·동세대 여성의 삶에서 여성·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 에세이에서 임신·출산, 비혼, 대안적 여성 공동체, 여성 경제라는 주제가 두드러지는 것은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과 더불어, ‘4B’·‘탈코르셋’의 실천을 통해 성차별적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반영된 결과이다. 본고는 여성들의 에세이 읽기/쓰기를 여성의 일상적 경험을 경유하여 한국사회의 성차별적 구조를 드러내고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가 정해 놓은 생애적 각본과 역할을 거부하는 실천으로 의미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차별적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위기를 관리하고 적절한 투자 전략을 조언하면서 개별적 노력을 통해 각자도생하라는 신자유주의적 각본 또한 ‘여성 에세이’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는 점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검토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페미니스트 독서/출판의 변화 양상을 지속적으로 추적함으로써, ‘여성 에세이’가 새로운 미래에 도달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언어와 지식을 재발명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개입하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