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적인 정치를 강하게 지향하면서도 자유주의를 제약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상계』속에서 종종 드러나는 이러한 모순적 입장에 대해,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모순적 입장은 인구가 정치의 영역이 아닌 지식의 문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사회적 몸으로서의 인구에 주목한다는 것은, 객관적이고 자명한 문제로서 인구를 바라보는 것을 포기하고 당시 어떤 정치적 상상과 인식 속에서 인구를 제한해야만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아 갔는지, 거꾸로 인구를 제한하기로 했다는 것은 어떠한 정치적 미래를 기획하는 일이었는지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이 논문은 통해서 당시 재생산 영역에서의 자유에 대한 의미는 정치적 의미의 자유와 무관할 수 없었음을 보이고자 한다. 당시 인구정책이 여성의 관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여성의 몸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해주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일 것이나, 근대국가의 인구관리란 그 속성 자체가 개인의 권리를 노골적으로 제한하지 않으면서 제한하는 일이다. 따라서 인구 담론의 위력은 바로 객관적인 지식의 지위를 통해서 남한이라는 정치적 단위를 공고화하는 것에서부터 빈곤의 원인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내면화하는 일, 과거를 해석하고 현재의 삶을 만들어 나가며, 동시에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일,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와 윤리적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현상들을 가능하게 했다는 데 있었고 할 수 있다.
Sasanggye often revealed a contradictory position of simultaneously pursuing the liberalist political orientation and the necessity to limit the liberalism. This paper intends to delineate the ways the politics of knowledge in the discourse and practices of population made this seemingly contradictory position possible. The idea of population as a social body was often based on liberalism, but was still able to limit the liberal rights without overtly denying them. Population has been understood as a matter of knowledge, not a subject of political concern. Yet, rather than being an object and stable entity or a politically neutral notion, the concept of population has drawn on a genealogy of concepts with political plentitude, and has changed over time. In this context, this paper aims to analyse what kind of political imagination was behind the practices of population control in the 1960s. Therefore, this paper argues the South Korean state’s management of population crises was not merely as the administration of a demographic problem, but also as a specific way in which the state constructs reality and induces public interventions based on a specific imaginary of the political future. The family planning program was intended to reduce not just the number of childbirths in South Korea, but to limit and eradicate communism in the country. In this sense, the reproductive technologies introduced in this period were essential not only in the family planning program but in the ideological building of the cold war regime of Park Chung Hee as such.
이 논문은 1950년대의 한국(남한) 과학기술계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당대 지식인들의 과학기술관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으로서 당시의 과학기술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이 글의 첫 번째 목적이다. 그리고 과학기술계의 현황을 이해함으로써 당대 지식인 사회에서 과학기술 담론이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것이 또 하나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일제강점기 과학기술인력의 첫 세대가 형성된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고, 이어서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을 지나 분단체제가 고착될 때까지 주요 과학기술인의 이동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1950년대 말 초반 남한의 과학기술계는 어떠한 현실인식과 요구사항을 정립하게 되었는지 『사상계』의 필진과 기사 목록을 분석함으로써 살펴볼 것이다.
This article traces the formation of the (South) Korean scientific community, from the liberation of Korea in 1945 through the early 1960s, to provide background for understanding Korean’s percep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 To illuminate the historical events that had shaped the South Korean scientific community, this research begins with the story of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 scientists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before 1945, and goes through scientists’ migration to North Korea during the conflict between two Koreas. With the armistice, Korean scientific community had been also divided, and the scientists in the South appealed for social support for rebuilding and developing scientific enterprise throughout the 1950s, including the “Atoms for Peace” programs initiated by the US. This paper especially focuses on articles related to science or technology in Sasanggye, an intellectual monthly magazine, to show who the contributors were and which topics they prioritized.
1950년대 『사상계』가 탈후진 전략으로 채택한 자유민주주의는 냉전 자유주의, 냉전 민주주의였고, 여성-개인의 자유, 권리, 평등에 대해 고려하지 않거나 실질적으로 허용치 않는 ‘젠더화 된 자유․민주․평등’ 개념이었다. 여성을 ‘보편-인간’의 범주로 논의한 긍정성은 있었으나, 근대 주체로서의 ‘여성-개인’은 ‘제거’되어 있었으며, ‘반공 로컬’ 중의 ‘또 다른 로컬’로서 ‘중첩 로컬’로 재구획되고 있었다. 개발담론이라 불린 경제적 근대화론에서는 경제적 근대화를 위해 정치적, 경제적, 사상의 자유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첫 번째 계열이 자유를 위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면, 여기서는 빵을 위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었다. 특히 여성들은 ‘타락의 주체’로 명명되면서 ‘개발담론의 주체’에서 ‘소거’되었다. 개발담론은 ‘여성-개인’을 소거하는 대신 ‘현모양처’를 호명하였고, 남녀 역할 분담론에 입각하여 여성을 ‘주부’로 위치시켰다. 즉 현모양처(주부) 주체성으로 한정하였다. 함석헌의 여성은 대모신 개념의 ‘어머니’로서, 고난사관은 이 어머니를 ‘수난의 여왕’으로 위치시켰다. 외세=남성, 민족=여성이란 성적 은유의 방식으로 여성성을 동원하면서, ‘받은 고난 그 자체’로 인해 정화되는 존재로 ‘어머니=창부’로 동일시하였다. 창부=민족=예수라는 등가관계가 제시되면서, 여성 수난사와 관련한 기존의 문법이 파괴되고 해체되고, 세계 구원자=한국이라는 새로운 제3세계 인식을 보여준 긍정성이 있었다. 이는 기독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한 결과였다. 하지만 함석헌의 씨-민중사상에서도 여성은 근대적 개인이나 정치적 주체로 설정되지 못하였다. 민중 논의에서도 ‘여성’은 ‘소거’되어 있었다. 세 계열에서 공통적으로 호명한 여성은 ‘어머니’였지 ‘여성-개인’은 아니었다. ‘반공 로컬’ 『사상계』는 ‘학술교양’이란 이름 하에 ‘반공 로컬’의 정치적 경제적 철학적 과제를 ‘운동’으로서 착실히 수행한 남성젠더-이데올로그였고, 학술 교양의 내포 및 외연은 ‘보편으로서의 근대지(知)’라기보다 ‘신식민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냉전지(知)’였음이 밝혀졌다. 개발담론에 의해 ‘전후(戰後)’는 근대와 전근대로 양분되었으며, 근대는 전세계 담론의 기준이 되었다. 개발담론은 한편으로는 자본 중심국의 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저개발 로컬들의 청사진을 위해 동시적으로 동원되었다. 『사상계』가 근대국가 만들기의 방법으로 주장한 ‘과학적 방법’은 자본 중심국들의 ‘방법’을 내면화 한 것으로서,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냉전 자유주의․냉전 민주주의․자본주의․제국주의․식민주의의 방법이었고, ‘여성 소거의 사상화(思想化)’였다. 여성-개인 문제는 『사상계』의 근대화 전략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사상계』는 자유주의․민주주의․민족주의와 여성의 불행한 결합을 보여 주었으며, ‘개발(재건)과 여성’은 배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상계』의 개발담론은 ‘왜곡’된 개발의제인 동시에 ‘실종’된 젠더의제였다.
이 논문은 195․60년대 여성-문학의 배치 양상을 『사상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상계』를 연구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사상계』가 195․60년대 지식 및 교양생산의 맥락에서, 그리고 현실참여의 매체로서 ‘문학’을 중시했고, 그것이 『사상계』수록 여성작가들의 작품에도 모종의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가정 때문이다. 둘째, 『사상계』가 새로운 세대의 문학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여성작가와 문학 장의 세대교체를 견인해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사상계』에 수록된 여성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서지사항 소개 및 분석뿐만 아니라 여성작가 작품에 대한 비평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2장 ‘사상계의 문학 기획’에서는 예비 작업으로서 권두언과 문예특집증간호, 문학심포지엄 등의 기획을 중심으로 『사상계』가 당시 순수문학 장과는 다른 사상과 이념 중심의 문학 장 형성에 주력했음을 실증적으로 밝히고자 했다. 3장 ‘사상계는 여성문학을 어떻게 배치했나’에서는 여성작가 작품에 대한 월평, 단평류 글에서 여성을 감수성, 섬세함, 내성적과 같은 어휘들로 유표화 하였음을 밝혔다.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남성과는 ‘다른’ 특성을 지닌 것으로 여긴 것이다. 또한 195․60년대 신진 여성작가군의 등장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4장 ‘여성-청춘의 표상과 세대론적 구별짓기’에서는 『사상계』 수록 여성작가 소설의 특성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여성-청춘을 주체로 설정하였다. 이들은 전후나 4.19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비관적/비판적 시선을 유지하였으며, 근대 기획, 자유주의에 대한 갈망, 탈식민 기획과 같은 새로운 인식적 패러다임을 여성의 시각으로 다시 짠다. 첫째, 『사상계』에 수록된 여성작가들의 작품은 전후 불안과 우울, 무기력에 빠진 남성-청춘의 서사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남성들의 각성을 견인한다. 둘째, 여성-청춘의 주체적 시각으로 가부장적 질서 및 구세대의 억압적 질서를 비판하고 자유에의 갈망, 주체적 삶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셋째, 전후의 불안한 지적 토양에서 성장한 기혼여성들이나 미혼여성들은 낭만적 사랑과 그 결실인 결혼 제도에 대한 불신과 환멸, 거부 등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에 균열을 내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사상계』는 195․60년대 현대문학의 특징을 확정짓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지만 ‘여성’ 관련 문학 담론은 빈약한 ‘비’젠더적 매체였다. 하지만 이 잡지가 문단의 ‘새로운’ 세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문학 장에 진입하는 데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사상계』는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새로운 문학의 영토를 개척한 여성작가들을 포용할 수밖에 없었고, 여성작가들 역시 이 잡지를 통해 글쓰기 주체로서의 욕망을 인정받았고, 여성문학 장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 논문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곰 설화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핀 것이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개념을 빌려와, 동북 아시아 지역 곰 설화에서 곰이 거주하는 공간과 인간인 남성과 여성이 사는 공간을 각각 문화와 자연으로 나누어 논의를 진행하였다. 먼저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전승되는 곰 설화에서 곰이 어떤 상징을 지니고 있으며, 곰 설화의 양상이 왜 서로 유사한지에 대해 검토해보았다. 다음으로 만주-퉁구스족에 전승되는 곰 설화 가운데 남매의 동거와 여성의 이탈이 드러나는 구조를 갖는곰 설화들을 통해 이 민족들이 바라보는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살펴보았다. 곰과 결합하기를 선택하는 누이의 행동이나 곰과 노는 일에 익숙한 여동생의 성향은 남성보다 여성이 자연과 더 가까운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곰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살해 욕망은 남성을 문화의 자리에 놓고 여성은 자연과 더 가까운 자리에 놓으면서, 자연을 벗어나 인간이 만든 문화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나타냈다. 여성이 인간남성과의 동거를 깨고 자연으로 상징되는 곰과 결합하는 구도에서 곰의 성별이 수컷(남성)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 보았다. 수곰은 인간남성과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 한 쪽은 완전한 자연을, 다른 한 쪽은 완전한 문화를 상징했다. 문화로 상징되는 인간 남성은 자연으로 상징되는 곰을 제거함으로써 문화의 승리와 우월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사이에서 여성은 원래 문화의 자리에 놓여 있다가 곰이 속한 자연의 자리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성은 완전히 자연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았다. 여성 역시 자연을 초월하고자 하는 문화의 기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였다. 곧 동북아시아 곰 설화의 영역 속 여성은 자연과 문화의 중간적 위치에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 전승되는 곰 설화의 자장(磁場)에서 한국 곰 설화의 위치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한국의 곰 설화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닌 곰의 모습에서 출발했다. ‘여성= 곰’이라는 이야기 구조는 자연과 여성을 완전히 동일한 위치에 놓은 인식세계를 반영했다. 동북아시아라는 큰 틀에서, 한국의 곰 설화는 더 단순하고 분명한 자연과 문화의 대립을 드러냈다. 한국 곰 설화에서 여성은 자연과 문화의 경계자로서 애매모호한 지위를 갖지 않았다. 여성은 완벽히 자연의 본성을 지닌 곰의 모습으로 형상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내면의 욕망은 완벽히 문화를 향함으로써 여성은 남성으로 상징되는 문화로의 철저한 종속성을 보여주었으며, 본성과 욕망의 괴리 사이에서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한국을 포함한 만주-퉁구스 족의 곰 설화에서 곰과 여성은 비슷한 위치에 놓여 있었으며, 자연과 문화의 대립 및 문화와 남성의 우월성을 구축시키는 양상을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논문은 『한국구비문학대계』의 ‘고려장이 없어진 유래(436-11)’ 유형을 대상으로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노인의 공포와 위기의식이 어떻게 이야기 형식으로 재현되어 공감대를 형성했는지, 그리고 노인 스스로 자신의 사회적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어떠한 설득의 방법을 모색했는지를 분석했다. 선행 연구에서 해당 유형의 하위 범주는 ‘문제형’과 ‘지게형’으로 분류되었는데, 이 논문에서는 부모의 자애에 감동한 아들이 불효를 거두는 ‘자애형’과 노인 부모의 사회적 독립을 강조한 ‘자립형’을 포함한 네가지 범주로 유형화하여, 노인의 사회적 생존을 위한 설득의 방법과 공생 지향의 성찰적 상상력을 분석했다. ‘문제형’과 ‘자립형’이 노인의 쓸모와 능력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격 기준을 제시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한 것이라면, ‘지게형’은 ‘쓸모’라는 가치 기준을 넘어선 성찰적 지향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자애형’은 정서적 감응을 인간적 삶의 가능성으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네 가지 대응 방식은 노인과 노화를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의 공포와 불안을 반영하지만, 가장 큰 양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형’이라는 것은 지혜와 경험, 지식 등 노인의 ‘쓸모’를 입증하는 방식으로 노인의 문화적 위치가 확보되는 과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우세하게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설화 구연자의 대부분이 노인층(60~97세. 64%)인 것을 고려하면, 이는 노인 자신이 사회에 쓸모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싶다는 사회적 인정 욕구를 표출한 결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언제든 사회적 가치를 입증해야만 사회적 존재로서의 문화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생존의 스트레스가 반영되어 있다. ‘지게형’에는 노년층 부모가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효를 기대하기보다는 자신들을 보편적인 인간 존재로 바라보고 존중해주기를 기대하는 심리적 요구가 투영되어 있었다. 이 설화 유형은 ‘장유유서’나 ‘효’라는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누구나 늙는다는 생물학적 자연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공생’과 ‘돌봄’의 문화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담고 있었다. 고려장이 폐기되는 맥락에 대한 서사적 상상력은 자녀의 부모에 대한 효도라는 윤리적이고 이념적인 차원을 강조하기보다는, 노인(가족)과 공생해야 하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지점을 모색하고, 인간은 언젠가 모두 노인이 된다는 자기성찰성의 문제를 형성했다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여성가사는 지배양식인 남성가사를 모방하는 것에서 여성들의 서사로 내면화, 융성시키는 과정에서 시대 사회적인 변화를 담지하고 다른 문학 갈래와도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여성적인 소통의 장으로서의 독자성을 키워나갔다. 일레인 쇼왈터Elain Showalter는 「그들만의 문학A Literature of Their Own」(1977)에서 지배전통의 지배적 양식을 모방하고 내면화시키던 단계를 거쳐 여성들만의 문학공간을 창출해나가는 여성적 자기서사의 특징을 주목한 바 있다. 여성 가사는 바로 이러한 여성적 자기서사의 구현물로서 생각될 수 있다. 특히 낭독과 필사로 이어지는 향유 방식과 전승의 과정은 다기한 변이체들을 낳으며 고정된 텍스트 분석의 틀을 벗어나 있다. 이러한 면모는 여성 텍스트의 외연을 넓혀주는 동시에 텍스트 자체의 다중적인 목소리들에 주목하게 한다. 특히 계녀가류 여성가사는 유교적 자장하에서 시대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부각될 필요가 있다. 여성들의 관계적인 성향을 분명히 담지한 텍스트의 확장과 소통의 방식은 때로 남성적인 윤리규범의 계도를 위한 방편이 되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도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이 지점에서 지배적인 목소리와 침묵하고 있는 목소리 혹은 불투명하게 드러나는 목소리들을 감지해낼 필요가 있다. 특히 시대가 요구하는 지점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여성적 정체성을 모색해내는 과정은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여성 가사는 개화기라는 시대적 격변 속에서 또다른 변모를 보이는데, 형식적인 쇠퇴 혹은 소멸의 측면 보다는 그 시대적 소명을 담아내는 지점이 부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조선의 전면적인 재구성을 요구하는 시대 속에서 조선적 윤리의식을 계도하였던 계녀가류 여성 가사의 시대인식의 면면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지점들을 <경계사라>라는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자 했다. 개화기는 문명개화를 시대적 과제로 삼으며 그 중심에 여성을 두었다. 따라서 계몽의 대상은 여성이었으며 쏟아지는 여성담론들은 또하나의 여성 지침서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계녀가류 여성가사와 개화계몽류 여성 가사가 내용적 형식적 측면에서,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여성에게 익숙한 양식으로 전달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만나고 있다. 다만 여성의 자각은 주지의 사실이었으나 실제 여성의 삶은 급격히 변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여성들은 전통과 근대의 경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있었으며 이러한 지점들을 <경계사라>와 다른 여성가사들을 통해 방증해보고자 했다. 이 시기 여성가사에 나타난 여성들의 정체성 모색의 과정은 신소설의 면면들, 이후 근대 여성 소설의 면면과도 이어지는 것으로 이는 차후의 과제로서 남겨둔다.
이 논문은 여성시에 나타난 ‘섹슈얼리티와 전복의 전략’을 신현림․김선우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살폈다. 여성시에서 섹슈얼리티는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지, 그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탐색하기 위하여 여성의 몸으로 성차와 체현을 강조하는 프랑스페미니스트 이리가레이의 논의를 참조하여 두 시인의 시를 읽었다. 이리가레이에 따르면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성적 쾌락의 대상이거나 생산을 위한 도구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여성은 남성의 대상이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이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성적 존재로서 주체성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하나는 가부장적 질서 내에 각인되어 있는 남성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에게 긍정적인 성 정체성을 제공할 수 있는 여성적 의미질서를 구성하는 것이다. 신현림․김선우는 타자의 자유와 주체성을 강조했던 90년대 시인들로, 이리가레이와 유사한 전략으로 타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시는 가부장적 질서가 배제하고 소외시킨 (여)성의 진실을 보여주면서, 성적주체로서의 여성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한다. 신현림의 시에서 여성은 주로 남성의 성적 쾌락과 생산을 위한 도구로 재현된다. 따라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는 가부장적 질서를 수용하는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여성 육체에 대한 남성의 시선과 환상을 위반하기 위한 전략이다. 김선우의 시에서 여성은 더 이상 남성의 욕망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허구적 (여)성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시에는 모든 만물이 서로 교류하고 사랑을 나눈다. 이는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서 유토피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시는 억압과 피억압이라는 불평등한 관계를 넘어 모두가 조화로운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 논문은 오정희의 「유년의 뜰」과 「중국인 거리」, 그리고 「저녁의 게임」을 대상으로 그녀의 소설에서 ‘죽음’이 형상화되고 의미화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죽음에 대한 유의미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는 이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여성인물의 세계인식, 특히 죽음에 대한 인식을 중점적으로 고찰하면서, 여전히 모호하고 불투명하게 남아 있는 텍스트의 다양한 의미들을 검토했다. 이러한 해석 작업은 오정희의 소설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를 유형화하고 아울러 유년과 여성의 성장, 그리고 죄의식 등이 갖는 의미들을 탐구하는데 유용한 토대가 될 것이다. 「유년의 뜰」에는 우리를 매혹시키는 ‘유년’이라는 상실한 대상 자체에 이미 어떤 상실이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유년의 뜰」의 논리에 따르면 삶의 유기적 충만함은 죽음이라는 장막이 드리워짐으로써만 가능하다. 「유년의 뜰」에서 노랑눈이가 상실하게 되는 것은 결핍되지 않은 원형적 직접성이라는 대상 그 자체이기보다는 상실 그 자체를 전제함으로써 가능하게 된 유기적,직접적 소유의 체험인 것이다. 반면 「중국인 거리」에서 초조로 상징되는 나의 육체적 성숙은 죽음을 향한 실질적 첫 걸음인 동시에 섹슈얼리티라는 환상의 완성을 향한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머니의 삶을 향한 첫 걸음인 동시에 부네의 삶을 향한 첫 걸음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죽음을 향한 첫걸음이자 죽음 뒤의 삶을 향한 첫걸음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녁의 게임」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더러운 게임”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하나의 증상으로 작용한다. 여기에서 죄의식은 종속에 대한 진정한 자각을, 근원적인 죄의식으로부터 끌어내는 외설적인 과잉의 쾌락에 대한 자각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현실적인 결핍과 죄의식을 통해 아버지를 배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행위 자체가 아버지에대한 또 다른 복종의 양식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공범끼리의 적의와 친밀감의 토대가 되는 죄의식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는 배반감의 토대가 되는 죄의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더욱 견고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정희 초기 소설에서 여성 서술자에 의해 초점화된 시선은 여성 소설의 미학적 차원을 열어주며, 새로운 여성 주체의 존재를 드러낸다. 시선 주체는 참혹한 모성과 모성을 제거한 여성성에 대한 응시를 보여주는 한편, 부재와 현존의 틈새에 위치한 남성을 응시한다. ‘여성적 응시’의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여성인물의 시선이 등장한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오정희 소설의 시선의 모험이 남성 시선 중심의 상징질서에 균열을 가하는 새로운 미학적 응시의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정희 소설에서 여성이 본다는 것은, 여성이 처한 상징질서의 완강함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것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분열증적인 여성 주체의 고통과 거부의 지점을 드러낸다. 이것은 오정희 초기 소설의 담화적 특징인 분열자의 독백적인 언어, 서사적 완결성을 향하지 않는 무한 독백의 언어라는 특이성과 연관되어 있다. 여성적 응시의 언어는 무의식적, 분열증적 자기 응시와 존재 생성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남성 주체의 시선의 지배적 관철을 보여주는 한국현대소설사에서 여성적 응시의 문제를 미학적 차원으로 문제화했다는 측면에서 오정희 소설은 한국문학에서 지울 수 없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Novels written by Oh Jeong-hee provide a possibility for a new ‘feminine gaze’ by talking about desire for breakaway and senses of guilt and nervousness caused by the gender system since modernization. The gaze by a woman narrator initiates an aesthetic world of female novels revealing the presence of a new female subject. The subject with the gaze describes some gaze for feminity with cruel motherhood and motherhood eliminated. Meanwhile, the gaze also lies upon male located between absence and existence. This feminine gaze beautifies a point where unconscious pain and refusal of patriarchal symbolic order would coincide. That is found to be related to some peculiarity the infinite monologue that would never pursue monologue language and narrative completion, the discourse features found in early novels by Oh Jeong-hee. The language of the feminine gaze can be described as a language of personal gaze and existence creation by a unconscious, schizophrenic subject. Oh Jeong-hee’s novels have been proving the aesthetic possibility beyond the privilege of male subject, and because of such achievement, Oh’s novels are considered a problematic example on the aesthetic modernity as a breakaway to another modernity as the society system order.
이 논문은 현대소설에 나타난 이주여성의 재현양상을 살피고, 여성이 이주의 경험을 통해 정체성이 형성되는 측면을 밝히고자 한다. 나아가 이주여성의 재현양상을 통해 서사적 상상력이 다문화 사회에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를 성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주의 여성화 속에서 이주여성의 정체성과 젠더가 몸, 섹슈얼리티, 노동의 범주뿐만 아니라 계급, 국적, 인종, 문화의 위계화 등 다양한 맥락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살폈다. 먼저 결혼이주여성은 맞선 과정에서부터 남성에 의한 시각적인 응시의 대상이 되며 결혼생활에서 가부장적 가족규범에 부합하는 아내와 며느리로서 유순한 몸을 요구받는 등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해 대상화 된다. 노동 이주여성의 경우 주로 감정노동이나 돌봄노동에 종사하거나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한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브로커에게 속아 임금을 착취당하고 신체를 유린당하는 등 기본적인 인권마저 보호받지 못한다. 이는 여성의 결혼 및 노동이주의 양상이 몸과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하는 성별화된 이주의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한편 이주여성은 떠나온 공간과 새로 거주하는 공간 ‘사이에 낀’ 존재로서 이질적인 문화의 다양성과 차이를 통해 문화적 혼종성을 경험하는데, 가부장적 문화와 언어 그리고 음식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이주여성의 문화는 이주한 공간의 문화와 상호교섭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동화되도록 요구받는다. 이주여성은 경제적, 문화적, 언어적 위계관계 속에서 자신의 견해를 스스로 말할 수 없는 하위주체이다. 이주여성을 그린 작품에서는 이러한 하위주체를 재현하기 위해 서술자나 작가의 개입이 최소화된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과 1인칭 관찰자 시점에 의한 증언의 서술방식이 지배적이다. 「잘가라 서커스」, 「파프리카」, 「가리봉 연가」, 「그곳에 밤 여기의 노래」와 같이 인물의 내면이 번갈아 초점화되는 3인칭 전지적 시점의 서술방식은 독자가 인물의 욕망을 직접적 으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그 여자가 사는 곳」, 「타인과의 시간」, 「꽃가마배」와 같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서술방식은 이주여성의 삶을 지켜 본 목격자로서 분열되는 이주여성의 정체성을 증언한다. 이러한 서술과정에서 드러나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이해는 독자에게 시민의식과 다문화감수성을 불러일으키면서, 문학의 “서사적 상상력이 시민적 상상력을 계발하는 데에 이바지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요컨대 이주여성은 배타적인 시민권과 국민국가의 경계에 의문을 던지는 존재로서 독자가 이주여성의 재현을 통해 깨닫게 되는 공감의 공적이익은 올바른 시민권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2012년작 드라마 「아랑사또전」을 대상으로 현대에 이르러 새롭게 생산된 설화 텍스트의 변용양상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연구 텍스트는 「아랑설화」와 함께 2012년작 드라마 「아랑사또전」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표층적 구조, 즉 서사구조와 행위자의 관계들을 비교해서 분석했고, 3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두 텍스트 간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기술했다. 4장에서는 이러한 의미의 변용을 가능하게 한 것을 ‘기억’과 ‘질서’라는 기제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본고에서는 해당 설화가 여타 원귀 설화와 구분되는 지점을 원귀의 해원이 직접 이루어지지 않고 대리인에 의해서 행해진다는 점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아랑설화」는 삶과 죽음의 세계, 질서와 무질서의 세계가 명확하게 구분되며 그 경계를 명확히 유지하고자 하는 함의를 드러내는 텍스트이다. 이 현대적 변용이라 할 수 있는 「아랑사또전」에서는 그러나 그 경계가 보다 유연하며, 질서의 회복과 문제의 해결이 체계의 유지가 아니라 개인의 복원으로 나타난다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순환하며 최초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아랑설화」의 질서라면, 돌아오지만, 최초의 상태와는 다른 질서를 보여주는 것이 「아랑사또전」의 세계이다.
70년대 독재 권력은 국익과 개발의 이름으로 국민 동원과 통합을 도모하기 위해 구성원의 살아있는 신체, 삶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고 정치적 영역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생체권력이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전제하에 개발독재라는 특정한 한국의 정치사회적 문맥 하에서 몸/삶을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의 장이자 의미투쟁의 장으로서 대중 영화 텍스트들을 읽고자 했다. 여기서 본 논문은하이틴 영화와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에 집중했다. 주체화 및 근대성과 관련하여, 하이틴 영화 「고교얄개」는 청소년의 재주체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10대 남성주체는 훈육, 역량 강화, 정신개조, 남성 우정신화 등을 통해서 자본주의에 기반한 개발 국가에 적합한 유용성 있는 건전한 주체로 다시 태어난다. 반면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는 하층계급여성들의 몸을 유순한 몸으로 치환시켜 포섭하거나, 그들을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지속적으로 배제시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유교적이고 권위적인 개발독재 국가가 근대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체정치를 통해 성원들을 ‘국민’으로 구축하고 주체로 호명하는 방식은 이처럼 성별 정치에 기반한 것이었다.
The dictatorial government in the period of Yushin regime (1970s) carried out various of bio-political techniques such as birth control, the new community movement, a curfew etc. to unify the people and integrate nation consciousness. So-called Park's regime was a bio-pouvior that involved people's lives and bodies into political sphere to accomplish national development and modernization rapidly. For this reason, this thesis considers specific Korean popular films in 1970s that revealed consciously and unconsciously the dynamics of bio-political technique, bodies, subjectivation and modernization of those days. Focusing on melo-drama and teenpics gained in popularity at that time, this study examines the relation of gendered bio-politics and constructing subjectiv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