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페미니즘(Technofeminism)’은 포스트휴먼 담론처럼 기술공포증과 기술애호증을 모두 벗어난 제3의 입장에서 과학기술과 여성이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수행적 실천에 관심을 둔다. 이런 이유로 테크노페미니즘은 ‘과학기술 안에서의 페미니즘’보다는 ‘페미니즘 안에서의 과학기술’을 더 중시한다고할 수 있다. 이런 테크노페미니즘을 대표할 수 있는 윤이형과 김초엽의 소설 또한 ‘지구‐되기’, ‘모성‐되기’, ‘기계‐되기’의 층위에서 과학기술과 여성이 어떻게 여성적 수행성을 보여주는지 서사화하고 있다. 에코페미니즘적 입장에서 자연 친화적 성향을 보이는 가이아가 아니라 박탈된 자연을 다시 박탈하는 판도라의 입장에서 지구를 탈신비화하거나(2장), 관념적이고 신비화된 모성 체험을 ‘포스트바디’의 측면에서 가시화함으로써 모성 자체를 물질화시키고 있으며(3장), 여성 사이보그가 지닌 생기성(vitality)을 통해 ‘인간‐여성’과 ‘진품’으로서의 진정성을 공유하기도 한다.(4장) 이런 양상들을 통해 윤이형과 김초엽 소설 속 테크노페미니즘은 과학기술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와 무질서,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체험시켜주고 있기에 여성주의와 과학기술의 결합을 확장시켜 주는 텍스트들이라고 할 수 있다.
The Technofeminism makes an issue not of ‘feminism in technoscience’ but of ‘ technoscience in feminism’. The writers representative of the 21st century’s female SF, Yoon Yi‐hyung and Kim Cho‐yeop are embodying the new female subject from a perspective of such technofeminism. Firstly, both writers present Pandora of Self dispossession rather than nature‐friendly Gaia from a viewpoint of ‘Earth Becoming’. Hence, they emphasize dis‐possession of the earth and the female is the key of the technofeminism. (Chap. 2) Besides, the ‘Post‐body’ appears in order to secure characteristics of ‘Mother‐Becoming’. They pursue extending its range to the mechanical and materialized maternal body rather than to the biological and sacred one. (Chap. 3) Finally, they show coexistence of human and machine is the value too difficult to be realized through ‘Machine‐Becoming’. as a solution, they propose co‐evolution through hybridity of a female cyborg. (Chap. 4) As such, it may be said that their technofeministic novels highlighting interactions between the ‘earth‐mother‐machine’ and females reveal ‘positive politics’ which allows us to overcome limitations of the male‐centered technological determinism. (*)
본고는 한국 페미니즘 대중화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SF와 페미니즘의 동시대적 조우에 주목한다. 한국의 SF 작가들이 페미니즘의 정치적, 이론적 논의와 문화적 풍조를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면,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사유하는 SF 텍스트를 페미니즘 논의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논의에의 기여로서 적극적으로 독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두 편의 SF 중편소설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2017)와 듀나의 「두 번째 유모」(2017)를 독해한다.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는 성차별이 온존하는 미래의 한국 사회를 인공지능 화자의 시선을 통해 낯설게 함(defamiliarization)으로써, 동일성의 폭력에서 벗어나 차이를 긍정하는 데 젠더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듀나의 「두 번째 유모」는 아버지의 폭력성으로 인해 균열이 난 기존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욕망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새로운 삶의 조건을 찾아 나서는 모험 서사의 주인공으로 소녀를 내세우면서 새로운 주체성을 형상화하고, 세계의 안티‐오이디푸스적 재편을 꾀한다. SF가 그리는 세계는 그 배경이 연대기 상으로 미래이던, 과거이던, 현재이던지 간에 단 한 번도 도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언제나 잠재적인 위상을 가지며, 미래를 향해 있다. 이러한 SF의 잠재성/미래성은 차별이 온존하던 과거를 의식하면서 차별이 사라진 더 나은 미래를 열망하는 페미니즘의 동시대적 시간성과 교차하면서 페미니즘 대안 세계를 생성한다. SF의 잠재적인 대안 세계는 현재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미래의 결정에 비판적으로 개입할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힘을 갖는다. 이와 같은 SF의 장르적 특성이 작가들, 독자들 모두에게 젠더 권력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페미니즘의 주요한 자원이자 방법으로 인식됨에 따라 ‘한국 페미니즘 SF’의 저변이 확장되고 있다.
이 논문은 최정희의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헤게모니적 남성성과 이것에 맞서는 사람들을 분석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R. W. 코넬의 ‘헤게모니적 남성성’과 주디스 버틀러의 ‘연합적 정치’ 개념을 사용하였다. 최정희의 해방기 소설은 미군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상징하는 남한사회에서 농촌과 도시를 배경으로 이 남성성과 불화하는 사람들을 재현한다. 각 소설에 나타나는 이러한 인물들은 헤게모니적 남성성과 적극적으로 맞서지는 않지만, 이 남성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들의 욕망은 연합적 정치를 구성할만하다. 이를 통해 최정희의 소설이 냉전 체제 하의 이념적 이분법을 넘어서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의해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을 재현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people against the hegemonic masculinity in Ch’oe Chŏnghŭi’s short stories between 1945 and 1950. For this purpose, I apply hegemonic masculinities by R. W . Connell and the coalitional politics by Judith Butler to read her stories on a par with her literature in colonial period and post‐Korean war. The people who disagree with the hegemonic masculinity masculinity do not resist it actively. However, their desire to escape from the masculinity to consist of coalition politics. Therefore, I argue that her narratives realize the new society under the solidarity among ignored and excluded people.
이 글은 한무숙의 소설의 역사주의적 충동과 그것이 무엇보다 그의 소설들을 한국문학이 근대적 주체를 주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젠더의 지배적 위상을 메타화하고 있는 텍스트로서 독해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한무숙의 소설들은 인물들의 감정이나 심리적 양태를 치밀하게 좇는 것으로 서사적동력을 얻는 특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인물의 감정이나 심리를 개인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기보다 폭넓은 역사적 맥락화를 통해 그 기원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한다. 말하자면 그의 소설에서는 한 개인과 개인의 가장 내밀한 감정이나 심리가 늘 과거의 어떤 것들이 도달한 결과로서 착종되어 있는 복잡성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인물들은 더욱 젠더적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 비판을 유도하는 역사주의적 관점은 근본적으로 주체가 역사적 조건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시각이다. 이 조건에 대한 엄정한 태도야말로 젠더적 삶에 대한 이해와 불가분하게 관계한다. 감정이나 심리처럼 개인의 가장 내적인 공간에 개입된 역사적 계기를 의미화하는 작업은 인물들이 삶의 세목 속에서 여자의 역사나 남자의 역사를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드러낼 가능성을 확대시킨다. 한무숙의 역사적 관점은 젠더를 식민지 근대성에 기원을 둔 ‘자아 이상’의 파열을 관찰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영역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근대사에서 주체의 자기 정체화는 팔루스적 공적 영역으로부터의 인정이 국한된 가운데 이상적인 젠더 이미지에 크게 의존해온 경향이 있다. 젠더는 여성 차별을 확인하는 영역인 것만이 아니라 주체가 자아 이상의 환상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핵심적인 질료다. 자기 삶의 역사화를 통해 자아 이상의 환상을 확인하는 과정은 자신의 젠더적 삶이 드러나는 과정을 포함한다.
본풀이는 신들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로 신화적 서사이며,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의례를 전제로 구송되었다는 점이다. 즉, 주로 신화 서사로서 문학 연구의 영역에서 논의되는 본풀이의 의미작용은 실제로는 그 다층적인 층위들을 고려하여 분절하고 다시 통합하는 과정에서 완결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차사본풀이〉를 중심으로 하는 삶과 죽음의 서사에서 신격으로 좌정하여 그 신화성을 구현하는 주체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주체인 강림이다. 제의적인 측면에서 이는 임시로 삶의 공간에서 열린 제의의 공간으로 오가는 신격들의 유비로도 이해된다. 그런데 저승으로 가는 문을 열고 이동의 주체가 되는 것은 강림이지만 그것을 가능하도록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강림의 부인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다시 말해 신화적 변형의 주체, 즉 서사의 신화성을 생성하는 인물로서 강림 부인에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림의 부인은 준거의 주체로 삶의 공간을 지키며 강림을 기다리는 피동적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동의 행로는그 앎을 전달해준 강림의 부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그러므로 강림 부인은 단순히 기다리고 희생하는 조력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의미의 신화적 공간 생성 주체가 된다. 그러므로 죽음을 거슬러 삶의 공간에 이르는 판타지성만이 신화성의 기반이 아니라 일상의 행위들이 가지는 제의적 속성이 신화성의 기반이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일상이 가진 제의성을 소환하고 강림 부인을 통해 이와 관련된 삶의 국면 즉, 제주와 여성적 삶의 파롤을 소환한다. 가장 변방의 삶으로부터, 여성의 삶으로부터, 제주의 말로부터, 사소한 이야기들로부터, 지나간 경험의 재현으로부터 〈차사본풀이〉의 신화성이 구축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조선 후기 이모 대상 기록을 토대로 이모에 대한 관계 규정과 인식, 감성을 살펴보고 친족으로서 이모의 위상과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다. 모계친에 대해서는 부계친에 비해 친족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협소하였고 제도적으로도 의(義)의 실천에 대한 부담이 가벼웠다. 이모는 모계친 가운데에서도 다른 집안에 편입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외친의 경계에 놓이게 되지만, 모친의 동기로서 정(情)에 기반한 관계로 친밀하게 인식되었다. 이모 기록에서 이모가 환기하는 모성은 자식의 도리로 응답해야 하는 것이라기보다 모친과의 관계성을 전제로 한 향수이자 감성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특성은 이모 대상 글에서 그 굴곡진 삶을 규범적으로 의미화하는 대신 인간적인 시선과 안쓰러운 감정으로 생애를 기억하게 한다. 감정적 이해와 공감 역시 가능하게 하는 친족의 위치에 이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모는 정이 두터울뿐 이질적 친족이다. 이러한 이중적 정체성은 여성의 경험을 가공되지 않은 형태로 보여줄 수 있는 틈을 마련한다. 이모 기록에서 서술되는 끈끈한 자매애, 친정에 대한 부조, 시가와의 갈등, 규문 밖 세상을 향한 염원, 문식에 대한 두려움 등은 이모에 대한 의리상의 ‘거리’가 존재했기에 노출될 수 있었다. 이모는 유사 모성으로 의미화되고 정서적으로 긍정되었으나, 그 모성이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이를 통해 친족의 위계 내에서 모성의 이미지로만 소비될 뿐 권력을 갖지 못하는 지점에 존재하고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글은 김말봉 작가연구의 일환으로 첫 장편 『밀림』의 사상성을 규명해 본 것이다. 김말봉의 통속소설이 본격소설의 분열을 조화 융합한, 즉 성격과 환경의 불일치를 통일한 문학사적 성과라는 평가는 이미 부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시기, 김말봉의 통속소설 평가에서 『밀림』을 읽고 논의한 평론가는 한 사람도 없었다. 『밀림』은 3년 동안 400여회 연재된 2백자 원고지 6천여 장의 대작인데다 두 차례, 중간에 한 달, 또 몇 개월 쉬기도 하여 그 긴 연재소설을 다 챙겨읽기 어려웠을 것이다. 임화는 통속소설은 상식에서 시작하여 상식에서 끝나기때문에 사상성을 띨 수 없다고 하였으나 김말봉의 『밀림』에는 사상성이 뚜렷이 나타난다. 본고는 당시 지식인과 엘리트에 널리 읽힌 크로포트킨의 ‘청년에게 호소함’ 의 주장이 소설 『밀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을 원용하여 분석적 읽기를 해보았다. 『밀림』에는 ‘청년에게 호소함’과 함께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의 영향으로 보이는 공동체 지향의 아나키즘 성격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김말봉은 첫 남편 이의형과 둘째남편 전상범, 셋째 남편 이종하와 함께신문화운동을 함께 했는데 이들이 모두 아나키스트였던 점은 그의 문학에서 주목해야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김말봉의 아나키즘은 사회주의를 철저히 비판하는 입장에 섰으며 아나키즘 역사상 특징으로 알려진 바쿠닌의 폭력이나, 일본이나 미국 아나키스트 저작에서 보이는 자유연애, 성적 방종 등이 드러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밀림』에 통속소설 일반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점, 기독교 정신을 소설화하여 비판적으로 문제삼은 점 등과 함께 주목된다. 김말봉은 어린시절부터 기독교 신앙이 깊은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학교도 어을빈선교사가 세운 어을빈 소학교에서 시작하여 미션계로 계속 진학하여 일본 도시샤 여자전문부 영문과까지 이어갔는데 거기에는 어을빈부인과의 지속적인 연락과 지도가 있었던 듯하다. 그의 신앙에 영향을 미쳤을 도시샤대학 인물들과 자료를 찾아 제시했다. 그러나 김말봉은 아나키즘의 영향으로 불신자와 결혼하여 교회로부터 책벌을 당했으며 그럼에도 그의 첫 작품에서부터 기독교 문제를 다루며 김말봉의 기독교정신 역시 아나키즘적 성격을 보인다. 『밀림』이 미완의 소설이나 그가 진보적 신앙의 자세를 지니고 있음을 살필 수 있었다.
해방 후 분단, 전쟁, 냉전을 거치며 한국은 민족국가 성립을 위한 기획에 골몰했다. 그러나 서사적인 지평에서는 탈/식민의 기억이 계속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3·8선 이남의 공간은 다른 체제를 가진, 이제는 갈 수 없는 ‘이북(以北)’을 염두에 두고 형성되어 갔다. 이때 임옥인(1911-1995, 함북 길주 출생)과 박순녀(1928-, 함남 함흥 출생)라는 월남한 여성작가들이 초점에 들어온다. 이들은 자신의 작품에서 떠나온 북한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거나, 혹은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등 남한의 상황에 따라 반대의 전략을 썼던 것이다. 이 글은 임옥인과 박순녀의 대표작, 「월남 전후」와 「어떤 파리」를 중심으로해방 후 여성작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어떤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주조해냈는지를 조망한다. 타자를 쓰면서 자기를 구성해내는 서사적 효과를 탐색할 때, 이는 특히 젠더가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고려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들 월남 여성작가들은 자신들이 떠나온 곳을 경유해서 남한을 구성하거나 비판하려고 했던것이다. 이제까지 탈역사적으로 읽힌 여성작가들의 서사를 역사적으로 맥락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본고는 왜 1990년대의 성정치는 ‘자유’의 맥락에서만 소환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군사정권이 끝나고 민주사회가 도래하였으며, 이념의 시대가 끝나 개인의 욕망과 자유의 시대가 되었다는 1990년대에 대한 해석은 성정치를 자유주의, 혹은 정체성 정치라는 협소한 틀에서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이는 1980년대부터 대중운동으로 성장해온 여성운동의 역량을 비가시화하는 해석 방식이다. 87년 이후 본격화된 여성운동은 성폭력, 가정폭력, 호주제 폐지 등의 구호를 광장에서 외쳤다. 1985년부터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열리는 한국여성대회, 1990년대 중반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 장애여성 운동, 2000년부터 20년째 지속되고 있는 퀴어문화축제 등 젠더 의제는 광장의 주체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니 광장의 1980년대 대 내면의 1990년대라는 해석은 광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광장을 보지 않은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광장의 역사와 계보에서 ‘차이’는 주변부적인 대상으로 치부되거나 다른 의미로 왜곡되어왔다. 비남성들이 광장의 의제를 제안했을 때, 그들의 구호는 ‘나중에’ 다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들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국가와 공론장이 어떻게 생각했든 간에 성정치는 대중운동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축적하고 있었고, 광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장애여성운동, LGBT 운동 등은 광장을 전유하고 교차성을 선취하였으며, 광장의 의제를 선도하는 역량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이 글은 탈식민주의 디아스포라 문화 연구, 영화와 소설을 통한 역사 재현, 기억연구의 접점에서 김소영의 2017년 다큐멘터리 영화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청춘」과 이회성의 1992년 소설 『유역(流域)』을 다룬다. 이러한 이론적 선택은 이 글의 분석 대상인 1950년대 말 북한 유학생들의 소련 망명과 그 이후의 삶을 반공주의라는 상투어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한민족 디아스포라 속에서 의미화할 수있게 만든다. 특히 탈냉전기 중앙아시아가 민족, 국적, 이념, 젠더가 교차하고 주체의 위치성이 재형성되는 ‘디아스포라 공간’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디아스포라 영화와 문학에서 드러나는 ‘기억의 다방향성’을 통해, 디아스포라 정체성이 그 자체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본질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실천과 개입을 통해 퇴행적 민족주의 뿐 아니라 보편적이고 민주적인 가치를 지향할 수 있음을 논하였다.
This study deals with ‘Goodbye My Love, North Korea: Red Youth’, a documentary film produced by Soyoung Kim in 2017, and ‘Watershed’, a novel written by Hoesung Lee in 1992, combining postcolonial and diasporic studies, the representation of history through film and literature, and memory studies. Such theoretical selection allows us to signify the North Korean students defecting to the Soviet Union in the late 1950s and their lives thereafter, the subject this study aimed to analyze, within a long-term Korean diaspora and away from the trite saying of anti-communism. Especially, this study tried to reveal that the post cold war period Central Asia was the diaspora space where race, nationality, ideology, and gender crossed, and the positionality of the diasporic subject was remodeled. Lastly, this study discussed that diaspora identities do not have a positive or negative nature in itself, but can seek not only for retrograde nationalism but also for universal and democratic values through ‘multi-directionality of memory’ appeared in the diaspora film and liter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