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족문학론과 여성문학론의 관계와 결벌을 되짚어봄으로써 현재 여성문학이 처한 위치와 위상을 생각해보려는 한 시도이다. 80년대 여성문학론이 민족문학과 동행하고자 했을 때가졌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무엇이며, 그 문제의식의 실종이 여성문학론에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짚어보는 것은 현재 여성문학의 길을 열어가는 데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여성문학론이 그간 보여온 성취와 새로운 모색에도 불구하고, 복합적 시야와 비판적 동력이 약화되는 조짐이 드러나고 있는데 바로 이들이야말로 과거 여성문학론이 힙겹게 고민하고 추구했던 바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런 취지 아래 한편으로 민족문학론과의 만남을 시도한 과거의 논의들을 살펴보고, 다른 한편으로 근자의 여성문학론에서 두드러진 두 가지 경향, 즉 민족/민족주의에 대한비판 및 여성성 담론들의 공과를 비판적으로 재점검해본다.
This paper looks at the current status and position of women’s literature in Korea. It returns to the relationship between women's and national literature, and notes that despite various achievements and new directions in women's literature and feminist criticism, we may be currently witnessing a loss of the complex perspectives and critical momentum. These are what feminist critics worked for in the 1980s, when they tried to reconstruct and establish ties between national literature and "women's liberation literature.' This article reviews the efforts of these critics and looks for connections (or disconnections) with two recent trends: critiques of the categories of nation/nationalism and discourses on femaleness.
이 글은 여성의 모습이 나타난 김남주의 시를 대상으로 한국의 기충 여성이 안고 있는 민족 모순, 계급모순 성모순이 어느 만큼 인식되고 형상화되에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그 결과 민족 모순과 계금 모순이 상보적으로 기능한 결과인 능욕 당한 여성을 소재로 충격적인 참상을 폭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참상에 함께 기능하고 있는 성모순에 대한 인식은 찾아블수 없었다. 능욕 당한 여성들을 보면서 민족 문제나 계금 문제는 인식하면서 성 문제는 인식하지못하는 이유는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보다 열등한 존재임을 믿는 성차별 이데올로기에 깊이 침윤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내연화된 성차별 이메올로기를 시를 봉해 재생산하고있었다. 분노와 적개심으로 분열된 마음을 조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긍정적인 여성을 형상화시키고 있는 작품도 있지만 그 여성은 민족과 계급과 성을 초월한 상태에서 존재하거나 만족과 계급과 성을 분화시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에만 존재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모든 존재조건을 초월해 자식을 위해서는 초인적 사랑을 보여주는 존재이며, 조선의 딸은 가족의 소중함만을 인식할 뿐 가족구조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불평등한 인간관계에는 눈감은 화자의 이상 속에 존재하고 넉넉한 하얀 엉덩이의 아낙들은 네 살 박이 아이의 인식에서만 존재한다. 이것은 여성 문제라고 하면 단순하게 지배계급은 외세에 의해 자행되는 생적 유린만을 떠올릴 뿐 여성노동의 불평등 문제, 무보수 가사노동의 문제, 노동의 영역에서 배제된 생명 지생산문제 등에 대해서는 진혀 문제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인이기보다는 전사로 남고 싶어했던 김남주의 전선은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이었지 성모순은 아니었고, 시인이기보다 전사로 남고자 했기에 그는 다의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비유와 상징보다 벼린 칼날이 날카롭고 강직한 언어를 구사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김남주의시에서 여성문제는 인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태백산맥」의 문학사적 의의는 해방정국에 이은 6.25 전쟁과 휴전회담 동안 남로당계 공산당원으로 활약하다 한국현대사에서 공백으로 사라지다시피 한 빨치산의 진정성을 재현한 데 있다. 작가 조정래는 전남 해안의 벌교지방과 지리산을 무대로 남한의 우익 반공주의자들에 대항하여테러리즘과 전쟁도 불사한 이들을 자신의 민족이념인 '민중 민족주의 에 투신한 실천자들로 보았다. 컨텍스트 차원에서 그것은 1980년대의 정치적 민주화운동과 분단 극복을 위한 민중의 통일의지를 반공이데올로기에 악용하는 체제 도전적인 소설, 레드 컴플렉스의 공론화라는 점에서 진보의 드라마이다. 또한 당시 좌우익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으로 남,북한 정부 어느 쪽도 중도 좌파의 입지를허용하지 못하고 개인의 귀속을 강요하는 억압장치로서 국가와 그것의 상대화를 추체험하게 해준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거둔 빨치산의 진정성과 레드 컴플렉스의 공론화, 꽃에 관한담론의 시적 감수성, 지리산을 비롯한 소설공간적 지지(topography)의 자연생태적인 국토애. 서술층위에서 초점주체의 다변화를 통한 다양한 인식 편차, 전라도 방언의 탁월한 구사, 따위 텍스트의 여러 미덕에도 불구하고 여성사적 측면에서는 계급투쟁을 우선시하여 여성 억압적 요소를 등한시한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 작품이 남성에게 초점이 맞춰진 남성만족주의로서 젠더를 초월하진 못했다는 뜻이다. 어차피 민족이 젠더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어서 민족주의와 젠더의 길항은 「태백산맥」만의 문제가 아닌 페미니즘의 과제라고 생각된다.
노동문학 속의 여성상을 정화진과 방현석의 소설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그것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노동해방의 내일을 여는 투사' 형이 있다. 이 유형의 여성인물은 다시 '동지로서의 아내' 형과 '누이로서의 여성투사' 형으로 나뉜다. '동지로서의 아내' 형은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의 관계에 대한 작가 자신의 진지한 성찰의 결과로서 창조되었다. 그리고 '누이로서의 여성투사'형은 남성작가의 누이 콤플렉스가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긴 하지만, 노동해방에 대한 적극적인 전망을 열어가는 가운데 창조되었다. 둘째, 남성노동자의 갈등이 투사된, '흔들리는 동지' 형이 있다. 이 유형의 여성인물들은 남성작가의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창조된다. 각성된 남성노동자의 내면갈등이 각성되지 못한여성노동자에게로 투사되면서, 여성인물들은 긍정항/부정항의 이분법 중 부정항에 할당되는 것이다. 이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이 남성의 타자로서 존재해 왔다는 사실과 관계가 깊다. 셋째, '노동운동 바깥의 신데렐라와 탕녀' 형이 있다. '신데렐라' 형은 현장출신 남성 노동자작가의 투사(1%)로서 창조된 인물형인데, 남성 안의 부정적 측연이 타자로서의 여성에게 이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탕녀' 형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매혹과 혐오라는 양가감정이 투영된 인물형으로서, 여성 육체에 대한 관음증적 시선과 결합되면서 창조된다. 이러한 '탕녀' 형은 여성이 서사가 응시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서만 텍스트에 존재해 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여성상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여성상이 있는데, 그것은 텍스트 속에서 침묵당하는 여성상이다. 가령, 정화진의 「쇳물처럼」 (1987)이나 방현석의 「내딛는 첫발은」(1988), 「지옥선의 사람들」 (1990), 「또하나의 선택 (1991)에는 여성인물이 부재하거나있다고 해도 그 역할이 아주 미미하다. 텍스트 속에서 여성이 침묵당하는 현상은 여성들이 사회의 중심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노동소설 속에서 여성은 침묵당하거나, 침묵당하지 않더라.도 오직 남성의 입을 빌어서만 말할 수 있었다. 때문에 긍정적인 여성상은 노동해방에 복무하는 여성상밖에 없었고, 나머지 여성상은 남성의 내면 갈등이나부정적 속성, 성적 욕망이 투사된 결과로서만 형상화되었다. 그러므로 노동계급 여성의 진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여성 노동수기에 눈을 돌릴 필요가있다. 본격적인 노동문학의 출현 이전에 이미 1980년대 초반에 다수의 여성 노동수기가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87년 민주화항쟁을 거치면서 나온 수기들이나 남성노동자들의 수기들을 제외하더라도 다수의 여성 노동수기가 이미 80년대 노동문학의 탄생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남성작가의 노동소설이 안고 있는 여성형상화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사회의 새로운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남성 영역에 뛰어든 여성을보여주는 영화 <조폭마누라>는 여성을 타자로만 인식해온 기존 영화의 주류에 대한 진지한 반론을제기하느냐 혹은 또 다른 방식으로서의 타자화된 여성을 그릴뿐이나는 판단의 기로에 서 있다. 곧단순한 오락영화로 남느냐 혹은 지배적인 여성 유형에 대한 대안을 실천하느나 하는 것이다. 문화적 차원에서 복장전도는 옷과 몸의 차이에 대한 유회를 통해 사회적으로 구축된 성적 차이를 전경화한다. 신은경의 절제되고 간략하며 변화없이 건조한 복장은 복장전도의 암시성을 내포하며 진실에의 도전적 유희를 시도한다. 그러나 <조쪽마누라>의 복장전도서사는 성정체성과 성적 차이를 문제삼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양자의 절대성을 재확인하고 고정된 젠더와 통일된 주체의 당연한 질서를 확인하는 데 머문다. 남성적 신체와 언행과 복장의 신은경이 압박붕대로 감싸맨 가슴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과 여성적 육체의 한 극단적 표징이라 할 수 있는 임신을 했다는 준엄한 현실은 여성 신체와 젠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억압자의 담론에 대해 저항하는 신체로 보이는 듯한 신은경의 몸은 그 안에 생명을 담은 자궁을 가지고 있다는 새삼스러운 현실에 의해 전복된다. 모성성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의 문제를 남성적 복장전도와 외적인 모방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적 지점에영화는 도달한다. 유일한 혈육 언니는 남성적 젠더를 선택한 신은경에게 전통적 가치관을 입력하고 제도권내의가부장제적 가치관을 교육한다. 영화의 내러티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은 신은경이 아니라 죽어가면서도 줄기차게 가부장제를 주입하는 남성의 대변자 언니라는 놀라운 사실이 은폐되어 있다. 절정부에서 흔자 수십 명과 싸우는 신이 화려하게 펼쳐지지만 신은경은 패배하고 유산한다. 마침 나타난 보스가 구해주지 않았던들 목숨마저 보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아무리강한 여성이라도 궁극적으로는 남성의 보호와 그늘을 떠나 살 수는 없다는 결론을 반복함으로써젠더 이데올로기 재생산과정의 복귀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외적인 표현과 내적인 주장의 어긋남은 비일상과 일탈 그리고 변형된 웃음 등으로 조합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면은 은밀하게 감추어지고 외적인 포장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결국 <조폭마누라>는 여성의 일탈과 비정상은 여전히 남성적 보호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중심은아무리 주변의 저항을 받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강력한 담론을 보여준다. 또한 역담론의형성을 허용하는 듯하면서도 은밀히 저지하는 권력, 여성 정체성을 구축하고 표방하는역담론을규범을 벗어난 변태성으로 규정하는 권력을 볼 수 있다.
유교를 이념으로 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불평등은 크게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공적 영역에의 진입을 거부한 것에서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자신의 삶을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없었고, 사회적 인간으로 남성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교화의 대상이었고, 남성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수동적 존재였을 뿐이다. 유순하고 순종적인여성상이 규범적 여성상으로 정립되어 확대 재생산되던 시대에 윤지당은 자신이 평생 탐구했던성리학적 논리를 빌려 여성도 남성과 다름없는 천품을 타고난 존재임을 선언하였다. 윤지당은 성리학의 논리를 가지고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고, 정치적 영역까지 관심사를 넓혔다. 남성을 돕고 보완하는 여성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던 시대에 여성도 남성처럼 학문을 통해 성인이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여성이 자신의 삶의 주체임을 천명하였다. 또한 자신의 저서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후세에까지 전승하여 주체적 삶에 대한 여성의 자각이 일회성에 끝나지 않고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The paterfamilias society based on the Confucianism deprived women of the opportunity of education and obtaining political positions. The fact caused social inequality between men and women. Therefore, women could not only independently plan their life by their own decisions, but also they could not live along well with men in the same society To men, women were merely subjects to be enlightened by men, and women were only passive human beings who should he extraordinarily submissive to men all the time. Buttressed by the philosophy of human nature and human laws that was studied by Yim throughout her whole life when the images of submissive and obedient women were the epitome of all women, Yim strongly asserted that women should be treated and educated equally. Yim mainly insisted that women should be able to receive equal education to men and also broadened her study fields to a political sphere by claiming the philosophy of human nature and humanlaws. One more claim that Yim declared was that women themselves were able to establish their independent subjecthood and could be a sage through studying and researching hard on specific subjects they were interested in, even though the society extorted women from living only as helpful people for men's lives. By her books Yim tried to transmit her scholastic philosophy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and to reproduce the continuous self-consciousness about the subjective lives of women. This fact should be evaluated considerably meaningfully.
본고는 1940년 발표된 이태준의 후기 장편 소설인 「청춘무성」을 대상으로 계몽성과 여성성과의 관계를 탐색하였다. 「청춘무성」은 이태준 창편 소설의 특징적인 계몽소설의 구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근대화 프로젝트의 이념이 서사를 추동하면서 감성/이성. 사적/공적, 육체/ 청신, 자연/문명, 개인/ 사회, 그리고 여성/남성 등의 이항대립적 개념이 작품의 주요한 갈등을 형성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처럼 근대를 자기목적으로 추구하는 계몽적 서사에 내재된 여성 억압적 특징을 인물의 형상화와 계몽의 성취과정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작품은 크게 전반부의 애정갈등과 후반부의 사회참여라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야기는 애정이라는 사직인 욕망을 제압한 세 남녀가 사회라는 공적인 영역에 참여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여기에서 공간적인 영역의 이동은 시간적인 메타포로 전이되어 전자가 부정해야할 사적인영역으로서의 전근대적 세계라면 후자는 지향해야 할 공적인 영역으로서 근대적 세계가 된다. 그런데 사적인 영역에서 제시되는 전근대성이 한결같이 여성적 젠더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여성은 근대성에 미달된 영역으로서 계몽을 필요로 하는 열등한 대상일 뿐만 아니라 여성인물들의 자질로 구성되는 여성성은 그 자체로 근대성에 도달하기 데 위험한 방해물로 제시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인물은 소녀적 감상성에 매몰된 미숙한 인물이거나 육체적 열망에 사로잡힌 탕녀로 제시된다. 이들은 모두 비합리적이고 사적인 욕망에 사로찹힌 인물들로 이러한 이미지가 제공하는 감성성과 육체성은 전근대적인 것이자 동시에 여성적인 전유물로 제시되면서 계몽의 서사에 의해 끊임없이 억압되는 욕망의 주요한 내용이 된다. 따라서 전근대적인 표상들은 중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여성적인 젠더 표상과 은밀히 내통한다. 그리고 결국 근대는 여성성을 억압함으로써 보장된다. 여성들은 성적 정체성이 제거되고 양육의 헌신성만이 강조된 모성과 교사 역할을 통해 공적인 영역에 참여하지만 가부장적인 젠더 경계의 성역할 모델은 엄존하여 영웅적인 남성의 부차적인 역할로 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성적욕망과 감성, 그리고 모성을 구성내용으로 하는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에 의해 통제되고 억압되는 이러한 계몽의 담론은 결국 총동원체제라고 하는 전체주의적 식민지 지배담론에 봉사하는 결과로 귀착된다.
이 논문에서는 여성의 삶과 관련하여 <쌍금쌍금 쌍가락지), <누명쓰고 자살한 며느리>, <진주낭군) 〈큰어머니 노래>에서의 죽음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쌍금쌍금 쌍가락지>, <누명쓰고 자살한 며느리>, <진주낭군) <큰어머니 노래>에서의 죽음은 비교적 공통된 특칭을 가지고 있다. 노래의 주체가 되는 여성이 죽는다는 것과 그 죽음이 차살의 행태를 보이며, 노래 안에서 여성의 자기표현의 봉로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쌍금쌍금 쌍기락지>에서는 '죽음 을 상상함으로써 정조를 의심하는 오빠의 모함에 항변하고있다. <누명쓰고 자살한 며느리>에서 며느리는 배타적인 시댁식구들에게 말토 안 되는 아유로 모황을 받고 자살한다. <진주낭군>에서의 며느리는 소리없이 묵묵히 시키는 일 하면서 질 지내는 것갈았으나 남편이 첩과 즐기는 것을 보고 죽는다. <큰어머니 노래>에서의 본처는 첩의 집에 갔다가철의 삶을 봉해 자신의 삶과 처지에 눈을 뜨고 상심하여 자살한다. <쌍금쌍금 쌍가락지>에서는 보통 죽음을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지만, 누명쓰고 자살한며느려>, <진주낭군>, <큰어머니 노래>에서는 등장인물의 죽음이 나타난다. 《쌍금쌍금 쌍가락지> 눈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겪은 상황이지만, <누명쓰고 자살한 며느리>, <진주낭군>. <큰어머니 노래>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박탈당한 결혼한 여성이 겪는 현실이다. 곧.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어 있고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도 위험을 받는 상황에서 죽음을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확인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죽음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자기표현의 한 방법으로, '여성적 말하기 로써의 죽음이리 한 수 있다. 자산의 조재 및 현실에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 그 깨달음의 결과가 개선될 여지가 없는 암담함으로 드러날 때 죽음으로 표현된 것이다. 여성 향유자들은 이들 노래를 부르면서 몇가지 효과를 얻고 있다. 먼저 여성적 말하기 로써의 죽음이 현실 인식을 전제한다고 했을 다. 향유자들은 자신의 정체성 및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기회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부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남편을 상정함으로써 현실에서의 고통을 대리 치유하는 과정을 스스로 수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향유자들은 노래의 죽음에 침잠하지 않고 지혜롭고 건강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여성의 죽음과 남편의 애도가 자기위안적 상상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은 데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1925년 고려관에서 간행된 「조선명부전」을 소개하고, 그 의의를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조선명부전」이 출판된 1920년대는 민족독립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합쳤던 3.1운동의 실패로 인한 패배의식이 만연한 시기이다. 이후 더욱 강화된 일제의 규제 속에서 왜 여성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여성의 어떤 면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이 논문의 주요 관심사이다. 우리 나라는 원만한 근대사회로의 전환을 이루지 못하였다. 봉건적 지배이념과 근대사회로의발전 욕구는 사회전반에 위기감을 형성하였고 여기에 일제의 국권침탈 의도가 가시화되면서 국권수호를 위한 민족자강운동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 출판계에서는 신식 활자가도입되면서 고소설을 신식활자에 담아내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흥미위주의 중국번안소설과 판소리 개작소설이 주로 간행되었던 1910년대의 출판경향과는 대조적으로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역사적 실존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전기적 역사소설이 주로 출판되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출판된 것이 「조선명부전」이다. 이 작품은 이 시기 대부분의 역사소설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인물전기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고있다. 모두 10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은 여러 인물을 한 책에 뮤는 열전 적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각각의 인물 앞에 활약상을 요약하는 별칭을 더해 명명하는 특징을 지닌다. 인물 개개인에게 주어진 벌칭이 홀륭한 여성 을 규정하는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는 항목은 대부분 이전의 여성교훈서에 동장하는 것이지만 공적인 영역에서의 여성의 능력 발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중시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이에서 더 나아가 정치인 혹은 예술가로서의 활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능력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개화기 이후 진행되어온 여성교육과 여권신장에 대한 관심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고, 전통적 서사를 계승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개방적이고 진전된 인식을 보인다는 점에서 「조선명부전」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서전 이라는 서구의 장르와 개념이 식민지 조선에 들어와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경이지만, 일제 강점기 내내 자신의 자서전을 신문에 연재하거나 단행본으로 출판한 사람은 거의없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단행본은 아닐지라도 단편 자기서사라 부를 수 있는 짧은 자전적 서사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에 걸쳐 잡지 지면을 통해 속속 출판이 되었고, 특히 이 장르의생산과 토착화에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생산된 근대 여성의 단편 자기서사들은 나름대로의 특성과 다양한 존재방식으로 일종의 독립적인 장르를 형성함으로써, 장르와 필자의 성별 정체성 사이에 특별한 친화력을 드러낸다. 이 논문은 근대 여성의 자기서사의 형식적 내용적 특성, 그와 관련된 주요 쟁점들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일제 강점기에 잡지 지면에 출판된 여성들의 단편 자기서사의 역사와 특성, 문화적 의의를 분석한다. 잡지를 통한 출판이라는 근대적 생산조건과 피식민지경험이라는 정치적 문화적 특수성이 일제 강점기의 여성의 자기서사 장르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는데 중점을 두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첫째, 단편 여성 자기서사의 형식과 선택적 주제는 당시 증대되는 근대 여성독자군을 상대로 여성근대화의 요구에 부응한 잡지 출판계의 생존전략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다. 둘째, 여성들이 필자로서 독자로서 이 단편 자기서사의 생산과 수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이 장르는 근대적 여성성에 대한 대중교육과 사유촉진에 중요한 매개적 역할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여성필자의 높은 장르 점유도는, 민족이나 계급문제를통한 체제비판적 담론이 검열제도에 의해 억압되고 남성의 자기서사 생산이 상대적으로 부진한상황에서 발생한 식민지적 특수상황의 산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