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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REAN
  • P-ISSN1229-4632
  • E-ISSN2733-5925
  • KCI

No.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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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study analyzed the issues of the women's literature debate in Korea in the 1980s on feminist mook, Yŏsŏng (Women), Tto hana ŭi munhwa (Another culture). It was analyzed under the theme of representation-experiential subject and the complexity of subject. When using woman as a single category, feminism will be in cahoots with the power of Nationalism. We have seen many historical facts to support this. The issues of the women's literature debate in the 1980s include the question of how to interpret the complexity of women, race, and class. This complexity of subject can cause a crack in the excess imagination of a single subject dreamed of by National- Popular Literature, and it is positioned to come into conflict with nationalism. The concept of complexity can develop into a collectivity subject, a cross-sidential concept, class, ethnic, race, sexuality, sexual orientation etc.. In that the complexity of the subject body was raised as an issue in earnest, the women's literature debate in the 1980s takes an important place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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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women's poetry in the 1980s, focusing on the poems of Choi Seung-Ja, Kim Hye-Soon, and Heo Soo-Kyung. This paper focuses on the theme of violence and love as a characteristic of women's poetry in the 1980s. In the poetry of poet Choi Seung-ja, Kim Hye-soon, and Heo Soo-kyung who represent women's poets of the 1980s, the violence of the era is exposed in specific ways, conveying feelings of desperation. Finally, through encountering a loving relationship, the poets show how we overcame the catastrophic situation caused by the violence and violence of the times. The poems of Choi Seung-ja, Kim Hye-soon, and Heo Soo-Kyung actively portray the violence of the times rather than the poetry of contemporary poets or directly oppose the violence of the times. I found the batter beyond myself and went to the a place of love, solidarity and mourning. In the 1980s, when I faced the overwhelming violence of the times, I discovered the meaning of women's poetry in the 1980s when I invented the multi-layered meanings of mourning and love. In that sense, the history of poetry in the 1980s needs to be described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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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은 1980년대 이남희 소설을 대상으로 작품에 나타난 여성의식을 살펴보았다. 1985년 갑신정변을 다룬 역사소설 『저 석양빛』을 통해 등단한 이남희는 역사와 변혁이라는 80년대 의제를 민중민족주의적 시각에서 꾸준히 추구한다. 노동자 계급을 역사의 주체로 설정하여 계급 모순의 해결을 통한 사회변혁을 추구하고 있다. 무자각한 인물이 폭력적 억압의 실체를 깨닫고 연대와 투쟁을 통해 그것과 싸우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성장소설의 서사를 통해 계급 정체성을 확보한 노동자 여성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탐구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계급 정체성을 자각한 여성 노동자들이 패배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의식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와 행동력을 갖춘 저항적 주체로 서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중성적 노동자의 계급 문제로 봉합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여성의 문제를 계급 정체성으로 환원시켜 계급 해방이 곧 여성 해방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노동자’의 문제로 수렵되지 않는 ‘여성’의 문제와 모순이 서사의 논리에 제대로 통합되지 못한다. 작품의 의도에 통합되지 못한 여성 문제는 그러나 노동자 여성의 비극적 역사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되면서 계급투쟁을 유일한 혹은 우선적 문제로 설정하는 작품의 논리에 균열을 일으킨다. 여성이 노동자로 편입되기까지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참담한 고통과 결핍이 제시되면서 계급 모순으로 환원되지 않은 여성의 억압이 의도치 않게 드러난다. 비극적 이야기는 노동자가 되기까지 혹은 노동의식을 갖춘 부부관계에서도 지속되고 있음을 증언함으로써 계급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 정체성의 복합성을 노출시킨다. 그것은 계급 해방이 곧 여성 해방임을 주장하는 작품의 논리에 포섭되지 못한 잉여의 영역으로 남겨져 여성 모순이 계급 중심의 사회변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난제임을 보여준다. 서사의 논리에 포섭되지 못한 채 남겨진 여성 이야기는 90년대 이후 새로운 변혁을 위한 동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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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고에서는 ‘역사적 형식으로서의 여성-노동소설’의 내적 형식에서 발견되는 ‘차이’ 및 특징을 김인숙의 80년대 노동소설을 통해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80년대에는 ‘새로운 여성’들이 등장하였는데, ‘차이’를 인식하여 ‘여성노동자들의 당사자 인식’을 도출한 자발적 능동적 주체로서의 여성노동자가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성 학출’이었다. 여성 학출은 현장과 소설의 양 측면에서 ‘80년대적 현상’이자 ‘80년대적 특수성’이었다. 그런 점에서 여성 학출에 의해 생산된 80년대 여성노동소설은 ‘역사적 형식’에 해당한다. 여성 학출은 존재론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더 이상 ‘엄마 이야기’에 머물거나 엄마의 기획의 ‘대상’이 아니었다. 즉 ‘엄마 서사’와 결별한다. 또 이들은 이전 시대 여성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었던 ‘여성수난사’와도 결별한다. 이들은 수난보다 희망을, 도식적 전형보다 소시민성의 비판을 통해 획득되는 노동계급성을 보여 주었다. 그로 인해 남성 노동소설 작가와 다른 ‘고유한 글쓰기’가 도출되었다. 80년대의 대표적 여성 학출인 김인숙은 ‘역사적 형식’으로서의 여성-노동소설‘의 다양한 ‘방법’을 보여주었다. 우선 가족 프레임을 발명해, 우회․확장되는 여성의 노동계급성을 제시하였다. 「함께 걷는 길」 등에 제시된 가족 프레임은 ‘가정’을 ‘또 다른’ ‘정치적 공간’으로 설정하는 것으로서, ‘현장’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었다. 가족 프레임은 노동운동의 계급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리얼리즘의 위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다양성을 포착케 하는 유용한 서사장치였다. 김인숙에게 있어 가족 프레임과 그것이 선사하는 소시민성(비판 포함), 섬세한 심리묘사로 드러나는 내면성 등은 노동소설의 결함인 도식성, 비변증법적 기계론을 거둬내는 장치로 기능하였다. 『79-80:겨울과 봄 사이』와 「성조기 앞에 다시 서다」는 민중해방문학으로서의 ‘여성-노동소설’의 ‘방법’을 보여 주었다. 이 두 소설에서는 여성노동자가 노동과 반미의 주체로 성장해 가고 있었으며, 민중주의와 여성주의의 결합이 확인되었다. 여성노동자-대학생-어머니, 여성노동자-중간관리자 간의 역사적 합창이 각각 연출되었다. ‘90년대의 후일담’을 일부 선취하는 「부정」과 「구경꾼」 「가까운 불빛」에서도 아직 ‘구역질’ ‘가슴 속에 이는 떨림’ 등 소시민성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인숙의 소설은 단지 중산층의 소시민성을 비판만 하는 소설은 아니었다. 이는 변혁주체가 되지 못하지만, 동시에 변혁주제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닌, 운동권의 계급성에 포섭될 수 있는 ‘소시민의 잉여’를 ‘역설’하는 것이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김인숙의 여성-노동소설은 일반적인 ‘민중 프로젝트’와 크게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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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논문은 문자 중심의 여성문학(사) 이해의 한계를 논증하는 방식으로 ‘비-문자’ 감성 요소에 대한 문화사적 재현의 중요성과 행위자의 경험, 실천, 구술 차원을 고려한 디지털 차원에서의 여성문학/문화 공간을 설계하기 위한 ‘창의-생산’적 가능성을 제안했다. 이는 조선시대 여성의 문화지리를 디지털 차원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이 문자화된 자료를 고정적으로 재생산하는 디지털-재현의 방식을 넘어서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때 디지털 수용자가 대상 자료를 이해하는 방식과 관점 자체를 인문적 자원으로 포용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했다. 이 논문은 그 가능성에 대해 문자화된 여성문화/문학사의 기록 이면에 잠재되거나 온축된, 여성의 가치와 실천성, 문자로는 명시할 수 없었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문자생활과 문학 행위, 인문적으로 가치 있는 윤리적이고 감성적인 실천을 독해하는 방식으로부터 찾아보고자 했다. 문자화된 조선시대 여성의 생애사는 사대부, 남성, 지식인, 한자, 제도적 ‘문’을 경유한 자료이므로, 여성의 주체적 발화나 재현의 수사, 성찰성의 내용은 지워지거나 감추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복원하는 작업은 ‘투명하게 존재하는’ 그림자 읽기의 작업과 흡사하다. 조선시대에 공식적으로 문자생활을 권유받지 못한 여성 문화를 이해하고, 그 가치와 실재를 디지털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박람강기’라는 남성적 방식과는 달리, ‘박문강기’라는 구술과 청취의 화행성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며, 신분제의 하위 기단을 차지하던 여종과 유모도 포함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 중심적 시선을 확대재생산하는 방식을 넘어서, 수용자가 자료를 통해 역사와 문화를 성찰적으로 사유하고 비평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창의-생산적’ 방식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이 논문은 현대의 수용자가 조선시대 여성 문화의 존재 방식의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문자화’된 기록이 갖는 한계와 작동 원칙에 대한 성찰적이고 비평적이며 상상적인 이해를 확장할 수 있는 디지털 설계에 대한 인문공학적 구현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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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e modern aspects of crack and entangling in female life, in a stratified way that focusing on the renaming and switch of last names among Korean women in the early modern age. Names were given to women to a limited extent before modern times. Although some of women in the early modern age change their first and last names, so far, these cases have been regarded as, women who strongly follow the an exceptional existence or the conventions of westernization. But this phenomenon needs to be discussed in earnest, because it not only gives rise to questions about the ontological position of modern women, but also reveals the intersection at which modern times are entangled in a struggle for recognition. Therefore, this study examined how nameless women got their names after leaving their homes and they were called, through schools, churches, and organizations. Moreover, the cases of Western and Japanese women changing their last names to those of their husbands were considered separately, this study reconstructed the multi-layered aspects of women, who received baptismal names through Western Christianity and who changed their first and last names while studying abroad or receiving new education. This unpacks the meaning of renaming as a social phenomenon and implies that changing last names to those of their husbands was not merely an cult of wester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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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김기진의 「김명순씨에 대한 공개장」은 김명순에 대한 미디어 테러의 원류다. 김명순은 일차, 일본에서 국정여학교에 재학할 당시 일본육사출신 이응준소위로부터 데이트폭력을 당한다. 이때 『매일신보』의 보도는 미디어폭력이었다. 그러나 김기진의 「김명순씨에 대한 공개장」은 일차 미디어 폭력보다 훨씬 치명적으로 김명순의 삶과 문학에 상처를 입힌다. 이 공개장 사건으로 인해 김명순은 작가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 년여 동안 성적으로 방종한 여자라는 낙인이 찍혀 매장되어야 했다. 지금까지 김기진의 공개장은 단지 기생출신 소실의 딸이라는 김명순의 신분에 따른 가십 정도의 글로 이해되어 왔으나 사실은 김명순의 문학과 삶에 치명상을 준 계획적인 음모였다는 점에서 집중 연구할 필요가 있다. 김기진의 「김명순씨에 대한 공개장」을 다시 면밀히 살펴 본 결과 우선 다음 네 가지의 비윤리적인 특징을 추출할 수 있었다. 첫째, 김기진은 김명순을 죽이기 위해 여성의 가장 치명적 약점이 될 성폭력의 수사학을 썼다. 김명순의 문학을 나이로 치면 30대내외의 중년여자, 피부로 치면 육욕에 거친, 윤택하지 못한, 지방질은 거의 다 말라 없어진, 퇴폐하고 황량한 피부가 겨우 화장분의 마술에 가려서 나머지 생명을 북돋워가는 그러한 피부에 비유하여 성 폭력적 모독의 수사학을 구사했다. 둘째 이 피부에 대한 비유는 바로 나카니시 이노스케의 『여등의 등 뒤에서』의 비유의 표절이었다. 셋째 김기진은 임노월 김억 등 유미주의 예술관을 지닌 문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타깃으로 김명순을 택했다. 이것이 공개장의 계획적, 음모적 부분인데 남성작가를 겨누는 것보다 당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김명순과 『신여자』를 발행한 김원주 두 여성문인을 택하여 공격의 효과를 노렸다. 문장에서 차고 넘치듯이 이는 여성혐오와 여성폄하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넷째 김기진은 공개장에서 「피를 뿜는 여자」를 김명순이 낭독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찾아보니 두 사람은 도쿄에서부터 함께 한 토월회 회원이었으며 김기진은 김명순의 재능을 익히 알았을 터인데도 김명순문학을 죽이려 나섰다. 김명순과 김원주가 유미주의 작가 임노월과 동서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깔고 두 여성작가를 조롱하고 짓밟음으로써 임노월 등 유미주의문학을 멸절하고자 한 기획이었다. 김명순은 이로써 성적으로 방종한 여자가 되어 백 년 동안 매장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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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paper sheds light on the process leading up to the safe arrival of Mun Ye-bong, a “flower” of Japanese propaganda films during the latter colonial period to, the “people’s actress” after defecting to North Korea. Specifically, three films in which she appeared are analyzed – My Home Village (Nae kohyang, 1949), Blast Furnace (Yonggwangno, 1950), and Boy Partisan (Sonyŏn ppalch'isan, 1952) – the first of which was North Korea’s first art film. The paper discusses how Mun’s image in Japanese propaganda films was necessarily denied by her North Korean handlers, and how that image was then repeated and varied following the Liberation. Once she defected to the North, Mun actively advocated the Bukrodang (北勞黨) ideology with energy and sophistication via a media columnist. At the same time, she continued to cultivate the same star image that she had portrayed in the Colonial Period, either as the lead romantic interest for a stoic soldier or as a devotional mother figure. Thus, rather than playing the romantic interest for a Korean collaborator, she began playing the romantic interest for a member of the People’s Revolutionary Army. Likewise, when she played a motherly role, the son who dreamed of being a loyal subject of Japan (皇國臣民) was swapped out for a boy partisan. Of note, the North Korean regime demanded that Mun take on different roles than those she had depicted under Japanese rule. Her new handlers wanted her to bring modern experiences to the screen, including the escape from Shinpaseong (新派性), experiences reflecting life after the Liberation, and the harmony between politics and artistic values. Mun began to engage in positive self-criticism while receiving evaluations from Kim Il-sung, and she embarked on a process of inquiring into people’s lives and developing characters that reflected socialist life. Thus, while Mun had originally cultivated the image of a good wife and wise mother of the Colonial Period, particularly in the sense of embodying traditional Korean values, she was subsequently able to emerge as the people’s actress in North Korea, successfully ridding herself of her pro-Japanese past by embracing the rapidly-changing demands of socialist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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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한국 문학은 ‘애도의 내셔널리즘’에 맞서 망각의 블랙홀에 빠져 버린 이들의 흔적을 찾아 지배적 기억에 균열을 내는 ‘기억 정치’의 면모를 보여 왔다. 그러나 ‘소수자’의 기억 투쟁이 이루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여성들이 겪은 전쟁은 ‘공적인 애도’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여성이 겪은 전쟁이 공론화되지 못한 것은 여성의 ‘이방인(異邦人)성’과 관련성이 깊다. 전시 하에서 여성은 적군 병사의 성적 착취나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생명의 사제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병사를 키워 내고, 때로 자신의 민족이 증오하는 적군의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는 모순 속에 놓인다. 그러나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수혜국과 원조국 사이에 성적 수혜 관계가 형성됨으로써 한국의 민족주의가 강력한 가부장성을 함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이 여성의 삶에 남긴 상흔에 대한 기억과 애도 작업은 박완서의 등장으로 가능해졌다. 그녀의 데뷔작(『나목』)에는 고귀한 이들은 떠나고 그들 대신 살아남았다는 자기 비난에 시달리는 딸(여성)의 수치심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녀는 좌익이었던 오빠의 죽음에 대한 기억의 거듭된 수정과 복원의 작업을 통해 ‘애도의 금지’라는 국가법에 맞서 시민의 정의를 일깨우는 한국의 ‘안티고네’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전쟁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전히 구조되지 못한 채 물 속 깊이 “가라앉은 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가부장적 민족 국가의 전쟁 기억 속에서 빗금쳐지거나 지워진 성폭력 피해자나 “양공주”이다. 박완서는 이들 여성 ‘하위 주체(subalten)’들을 자신의 문학적 공간 속으로 초대해 말할 수 있는 자의 위치를 부여한다. 그녀는 가부장적 민족주의 공동체가 삼켜 버린 여성들의 흔적을 찾고, 살아남은 자에게 이들에 대한 기억과 애도의 의무를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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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논의는 1980년대 최승자의 시텍스트를 통해 공간의 소거 양상(atopos)을 살펴보고, 공간의 소거와 함께 ‘죽음’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시적 주체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한다. 특히 논의를 1980년대에 집중한 것은, 엄혹한 시대에 목도할 수 있었던 시민의 무고한 죽음을 애도하려는 시적 주체의 태도가 이 시기에 최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여성시는 주로 죽은 타자와 살아있는 주체를 자리바꿈함으로써 그 공감의 과정을 크게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변위(transposition, 자리바꿈)의 상상력이다. 특히 최승자의 시적 주체는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세상을 냉소하는 방식으로 일관되어, 그 상상력의 시적 형상화 양상이 주목을 요한다. 해당 텍스트는 공간의 소거를 통해 대타자의 억압을 형상화 한다. 이를 통해 통치 아래의 주체는 진정한 주체일 수 없으며, 오히려 ‘죽음’이라는 저항을 통해서만이 해방될 수 있음을 반증한다. 또, 언어 형식의 파격을 통해서도 이러한 세계의 모순을 끊임없이 폭로하고 있다. 결국 세계를 부정하고 자신을 소멸시키기를 갈망하는 시적 주체는 죽음을 스스로 체현하고 시대의 엄혹한 통제 앞에서 오히려 과감히 무(無)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최승자의 시텍스트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죽음(무정형)'과 '죽음을 선택하는 개인의 자유'를 통해, 흩어진 모든 주체가 ‘죽음’을 애도한다. 이렇게 개인적 애도의 행위를 통해 연대할 수 있음을, 그래서 그 개별 주체가 각 연결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Feminism and Korean Liter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