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이 논문의 목적은 김남조와 홍윤숙의 1950년대 시를 대상으로 1950년대 문단에서 여성시가 어떤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시가 전쟁의 상흔 을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들의 시에서 시도된 여성적 글쓰기의 가능성에 대해 논해 보려는 것이다. 전쟁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에서 여성 형상은 희생양의 표상으로 등장하곤 했다. 이러한 여성 형상의 이미지는 이후 ‘부재하는 아버지와 핍박받는 어머니-누나-여동생’, 또는 ‘권력의 표상 으로서의 아버지와 희생양으로서의 여성’의 구도로 1980년대의 시에까지 계 승된다. 이런 한국문학사의 젠더적 지형 속에서 1950년대 김남조와 홍윤숙의 시가 갖는 지형적 의미는 적지 않다. 김남조와 홍윤숙의 시는 구원의 표상으로서의 여성 형상을 그려내는 데 성 공했으며, ‘목숨’과 ‘생명’이라는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전후의 상처 를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한다. 전후의 한국 사회를 폐허로 인식하고 모든 것 을 파괴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의식이 후반기 모더니즘 시인들 에 의해 팽배해 있었다면, 김남조․홍윤숙을 필두로 한 1950년대의 여성시는 모성의 힘과 나무의 생명력을 토대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하 는 지향을 보여준다. 김남조와 홍윤숙의 시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우주적 상상력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태양, 지구, 달, 별과 같은 천체가 등장하는 우주적 상상력이 1950년대의 두 시인의 시에서 자주 펼쳐지곤 했는데, 이는 전통 서정시에 일 반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우주적 상상력과는 차이가 있다. 우주적 상상력은 김남조와 홍윤숙의 시에서 일차적으로는 고난의 현재를 하찮은 지구상의 일 로 보게 하는 기능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생명이라는 주제의식과 관련을 맺 으면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전후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김남조와 홍윤숙의 시에 나타나는 우주적 상상력의 의미는 1950년대의 시사 속에서 주목되어오지 않은 특징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남조의 시에서는 이후 여성적 글쓰기의 특징으로 정착되는 고백과 기구 (祈求)의 어조가 주로 나타나고, 홍윤숙의 시에서는 여성시로서는 다소 예외 적으로 의지와 명령의 어조가 자주 발견된다. 어조를 통해 드러나는, 1950년 대 김남조와 홍윤숙의 여성적 글쓰기는, 여성적 글쓰기의 단초로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성적 글쓰기는 일반적으로 ‘남성-아버지-언어’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지니는 해체적 글쓰기이지만, 1950년대의 김남조와 홍윤숙의 시에서도 그 단초가 발견된다. 이들의 시가 지니는 고백적 어투에 대해서는 여성적 글쓰기라는 관점에서 좀더 면밀한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어 보인 다. 특히 홍윤숙의 시에서 기억을 통해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태도 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행된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할 가능성을 열어 주는 윤리적 시선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전쟁의 의미에 대한 지적 성찰 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1950년대 시사 전체의 구도 속에서도 눈여겨보아 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본 연구는 1950년대의 문학 및 사회에 대한 재사유의 필요성에서 출발하였 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점령의 소거’를 통해 1950년대를 일정하게 담론화하 였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연구결과 1950년대는 전면적인 친미-반공 카 르텔도 반미의 무풍지대도 아니었으며, 반미의 양상도 ‘기지촌 문학’, ‘세태소 설적 경향’으로 압축되지 않았다. 1950년대의 반미는 근대 지향적 성격과 반(反)근대적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이는 ‘새로운 나라 만들기’와 관련하여 상반되는 탈식민적 시차(視差) 가 동시에 존재하였음을 입증해 준다. 이처럼 1950년대 문학은 다양성과 중 층성을 지니고 있었다. 상반된 탈식민적 시차는 또한 미국표상이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동일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전자의 계열에서 젠더는, 한편으로는 ‘성적으로 전유’되어 ‘가부장제 수호’ 라는 남성성 회복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반공주의의 여 성성 전유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반미 계보에서는 ‘여성’이 마치 ‘민족적 저항을 방해’하는 요인인 것처럼 서술되었다. ‘민중의 힘의 발견’은 드러났지만, 여성들은 새로운 삶을 ‘꿈꾸게’도 하는 동시에 ‘불가 하게’도 만드는 ‘위험한 존재’로 부각되었으며, 피식민 여성은 피식민 남성의 위기 탈출 및 남성성 회복에 기여한 후, 역할이 끝나자 버려졌다. 후자의 계열에서는 근대화의 남성 중심적 성격들이 비판되고 있기에 전자 계열에서처럼 여성이 매도되거나 버려지지 않았다. 물질문명이 비판되면서 피식민 내부의 가치들이 상대적으로 인정되면서, 피식민 내부의 이중 타자였 던 여성성들도 일정하게 인정되었다. 이중의 식민성을 제거하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나라 만들기의 중요한 요소임을 피식민 여성젠더의 시선을 통해 명쾌 하게 제시하였다. 전자의 계열은 ‘민족 범주 우선성’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으며, 후자의 계열 은 ‘다른 근대화의 지향성’을 드러내었다. 후자는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한 직 ㆍ간접적 비판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눈 여겨 보아야 할 점은, ‘친미-반공’ 연합이 아닌 ‘반미-반공’ 연합을 발굴하여 제시했다는 점이다. 선우 휘의 ꡔ깃발 없는 기수ꡕ는 ‘반미+반 공’을, 최정희의 ꡔ끝없는 낭만ꡕ은 ‘반공주의로서의 반미’를 보여 주었다. 1950 년대는 전면적인 친미-반공 카르텔도, 반미의 무풍지대도 아니었음이 확인되 었다. 1960년대 이후와 달리 1950년대에는 반미의 외연이 다양하게 확장되어 있었다. 본 연구 결과 1950년대 소설은 지배담론에 종속되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 라 ‘저항담론’의 성격도 일정하게 표출하고 있었으며, 각 계열에서 확인되는 반미의 시차는 1950년대 문학의 분단문학적, 민족문학적 특징으로 지적되었 다. 1950년대 소설 역시 국가ㆍ민족ㆍ젠더ㆍ계급의 차원에서, 근대화와 근대 극복이라는 ‘이중과제’를 나름대로 실천한 문학이었다.
전후 한국사회에서 전쟁미망인들은 사회가 말하는 정상가족을 가질 수 없 었다. 사회는 이들의 섹슈얼리티를 감시하며 미망인은 아들을 키울 때에만 아 름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회의 요구와 달리, 전쟁미망인의 가족 은 사회 재생산의 토대를 위협하는 양상으로 그려진다. ꡔ유혹의 강ꡕ이나 ꡔ태 양의 계곡ꡕ은 타락한 여성과 정숙한 여성을 대비시킨다. 소설의 표면 서사는 타락한 여성을 처벌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무성적 관계만이 가능함을 보 여준다. 성적 방종은 자기 처벌의 일환이 되고, 낭만적 연애는 무성적 관계 속에서만 유지된다. 여기서 무성애적 섹슈얼리티는 세대의 재생산을 불가능 하게 만들기에 문제적이다. 박경리의 초기 소설 ꡔ표류도ꡕ나 ꡔ시장과 전장ꡕ에 서는 전쟁미망인의 섹슈얼리티가 이성애정상성을 내파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의 경계를 허물고 가족의 안과 밖을 교란한다. 미망인이 대물림되는 서사 속에서 딸들은 어머니에 대해 양가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딸들의 성공적 연애를 방해하고 딸들을 동성애 우 울증자로 만든다. 이처럼 50년대 전후소설은 젠더 정체성을 위협하는 양가적인 섹슈얼리티 가 된다. 근대사회의 형성토대를 내파하는 이들의 섹슈얼리티는 사회의 재생 산을 부정한다는 측면에서 순수한 소비로 기능한다. 이는 전쟁미망인의 섹슈 얼리티를 통제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로 편입시키려는 사회의 의도와는 정반대 로 기능하는 것이다. 전쟁미망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제와 통제는 오히려 이들을 무성적인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가장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세대의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국 가와 사회에 대한 위반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1950년대 한국영화의 반공 서사에 나타난 여성 인물을 살펴, 1950 년대의 반공주의 영화 서사, 그리고 여성 표상의 상관성을 고찰하고, 이를 통 해 국가 이념과, 서사체로서의 영화의 자율성이 만나는 가운데 일어나는 긴장 과 균열,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구명하고자 한다. 대상 텍스트는 국책 선전영 화로 제작되어 반공주의가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는 <불사조의 언덕>(1954), <자유전선>(1955), <격퇴>(1956)과 액션물, 스릴러 등 장르 문법 속에서 남 북한 대치상황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당시의 국시인 ‘반공주의’로부터 자유로 울 수 없었던 영화들인 <운명의 손>(1954)과 <피아골>(1955)이다. <불사조의 언덕>, <격퇴>에서의 ‘반공 논리’는 ‘가부장적 가족’, ‘민족’, ‘기독교’, ‘미국과의 동맹’이 친연적 결합관계를 형성하며 도덕성을 담보하고, 그 도덕성을 전제로 한 흑백논리의 성격을 띤다. 이는 서사에서는 가족을 파 괴하는 공산군에 대적하여 기독교 가족이 저항하는 구도를 형성한다. 여기에 가족을 구하는 것은 미군과 국방군이다. 이때 여성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담 당한다. 첫째는 어머니나 아내로서 집안의 남성들이 잘 싸우도록 보살피고 헌 신하면서 승공에 기여하는 것이고, 둘째는 헌신하다 희생됨으로써 공산주의 의 부도덕성을 폭로하고 공분을 유발하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여성은 서사에서 희생과 헌신의 화신으로, 무력한 피해자의 표상으로 활용된 다. 그런데 <자유전선>에서는 ‘어머니’로 표상되는 구세대에게는 그러한 역 할을 지우는 한편, 능동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신세대 여성인물을 통해서는 반 공의 명분을 논리적으로 표방케 함으로써 시대의 새로운 요구를 드러낸다. 이 는 가족질서의 재편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여성에 대한 반공주의의 요구도 확장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반공 이념을 충실히 서사화하는 국책 영화들과 달리, 반공 이념의 고취가 주목적이 아닌 <피아골>과 <운명의 손>에서는 반공의 도식과 영화 장르 문 법, 그리고 서사의 자율성이 타협과 균열을 일으킨다. <피아골>의 주인공 애 란은 ‘눈물’로 상징되는 ‘여성성’을 되찾으면서 ‘산짐승’에서 ‘인간’으로 전향한 다. 그런데 애란이 인간으로 거듭나는 계기로서 작용하는 ‘여성성’이 균열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은 반공주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거점으로서의 취약함 을 드러내며, 회복되어야 할 ‘인간성’의 핵심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로써 애란이 획득하는 ‘여성성’은 도식적인 흑백논리로는 수용할 수 없는 ‘모호한’ 영역을 형성한다. 이러한 모호성은 <운명의 손>에서도 드러난다. <피아골>에서 공산주의 자 집단 내부에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를 설정할 때 반공주의로는 포획할 수 없는 서사 전개로 인해 이분법 구도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 안에서의 이념 대립도 이념에 기반하는 선악구도의 긴 장을 유지하기 힘들게 되면서 균열을 드러낸다. 이로 인해 결국 마가렛은 끝 까지 이념을 포기한다고는 말하지 않은 채 ‘적’이 분명치 않은 ‘적탄’에 죽고 싶지 않다는 모호한 명분을 내세우며 연인의 손에 죽어간다. 이러한 죽음의 선택은 <피아골>에서의 애란의 방황과 동일한 영역을 형성한다. 이러한 ‘모호성’은 1990년대 이전까지의 영화를 통틀어 반공 서사의 한계 점을 보여준다. 1950년대에 그 한계점이 그어졌다는 것은 1950년대의 특이성 이자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아울러 현대사의 질곡과 함께 그 안에서 여 성의 행동 영역이 얼마나 한정되어 갔는지를 암시한다.
1958년 8월부터 『여원』에 연재되기 시작한 정운경의 <왈순아지매>는 만 화의 여성 캐릭터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인물이다. 이 여성인물은 현대적인 교양과 도시적 세련미를 갖춘 여성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면서도 당대 여성들 을 비롯하여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논문은 이 여성인물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와, 그 효과에 대한 연구이다. 『여원』은 현대적인 여성의 교양을 위한 잡지로 창간되어, 초기에는 여대생 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주력한다. 이런 편집방침에 맞추어 1955-56년 기간 동 안 연재된 만화는 세 편 모두 미혼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이 미혼여성은 서 구적인 외양을 지니고서 거리에 나온 여성들이지만, 이런 여성들을 성적 이미 지로 연결시키는 남성적 시선에 갇혀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 다. 만화는 이런 상황을 반영하는 가운데, 오해와 반전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이런 미혼여성 주인공들은 일 년을 채우고서 ‘주부’를 중심 으로 변화한다. 이 주부는 현모양처라는 ꡔ여원ꡕ의 여성교양의 중심 이념을 구현하는 인물 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열렬한 구애를 거쳐 남성과 결혼에 이른 낭만적 사랑 의 주인공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가부장으로서의 남편과 그를 내조하 는 아내라는 성역할이 아닌, 가족 구성원으로서 사적 영역을 담당하는 주부로 서 자리매김되는 수평적 젠더 질서의 여성표상이다. ‘주부’는 남편의 사랑을 받아들인 사랑과 결혼의 주체로서 남편과 동등한 위치에서 가족을 구성해 가 는 여성인 것이다. ꡔ여원ꡕ의 만화는 1950년대에 낭만적 사랑을 거쳐 결혼에 이르는 많은 청춘남녀의 결혼풍속과 이를 바탕으로 구성된 가족관계의 수평 적 젠더질서를 ‘주부’의 표상을 통해 구체화한다. 그러나 이 주부의 여성표상은 그 대쌍으로 창안된 남성상이 기존의 가부장 적 권위를 위협하는 남녀평등적 관계의 반영이라는 면에서 서서히 비판되기 시작한다. 1950년대 가정생활의 필수조건처럼 존재했던 식모형상은 이런 여 성상의 변화를 조절하고 통제하는 지배담론을 흡수하면서 여성들의 가정 내 위상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 왈순아지매의 인기는 여기서 나오는 것이며, 왈 순아지매가 매개하는 여성의 보수화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왈순아지매는 토속적이고 반문명적인 순박하고 억척스러운 성격으로 인해 집안 살림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부상하면서, 가정사를 관장하게 되고, 급기야 전통적인 미덕을 정립하는 도덕적 주체가 되기에 이른다. 주부들의 서 구지향적인 근대화 성향과 대립되는 왈순아지매의 심성은 가정 내에서 남성 의 권위를 존중하고 전통적인 가치를 보존하는 미적 상징으로 역할한다. 이로 써 주부의 가족 내 위치에 균열을 가하고, 젠더 질서를 재조정하는 역할을 하 는 것이다. 왈순아지매가 서구추수적인 당대의 풍속을 비판하면서 자연적인 소박한 미를 제안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런 미덕으로 인 해 가족 내의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면에서 왈순아지매의 역할이 지닌 위험성을 지적할 수 있다.
본고는 민족서사로 다루어지는 이광수의 「삼봉이네 집」(1930~31)이 여성 의 육체적 타락에 얽힌 스캔들을 채용한 ‘정조(貞操) 서사’라는 데서 출발했 다. 함께 다룬 작품은 흔히 통속소설로 일컬어지는 「순정해협」(1936)과 ꡔ순애 보ꡕ(1939)로 세 작품은 정조의 <발명-타락-구원>으로 이어지는 동일한 틀 을 보여준다. 신소설부터 이어진 정조서사의 30년대적인 특징과 더불어 30년 대 초반부터 후반에 이르는 정조서사의 변화는 본문에서 언급했다. 세 작품이 공유하고 있는 틀, 즉 정조가 발명된 이상 타락할 수밖에 없고 이는 구원되어 야 한다는 틀을 본고에서는 ‘정조 서사의 판타지’로 명명했다. 정조 서사는 정 조의 타락을 재단하는 낡은 이데올로기, 그리고 정조의 타락을 구제하고자 동 원하는 미래의 전망이 교차되는 곳이다. 그 양상의 하나로 정조 판타지 속에 서 재탄생하는 여성상과 남성상을 함께 문제 삼았다.
1960년대는 여성작가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본고는 1961년에 등단하여 199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전개한 여성작가 김의정에 주목하고자 한다. 김의정의 1960년대 작품경향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목소리」는 한국전쟁 속에서 진정한 주체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성들 의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목해 볼 점은 작가가 한 국전쟁의 상황을 여러 문화가 혼종되는 다문화적 상황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런 다문화적 상황 안에서 ‘차이’를 인식하는 가운데 탈경계 적 주체가 탄생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사상, 이념, 국적 등이 경계를 허물고 화합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작가의식은 이념을 극복할 수 있는 여성주의적 대안의 새로운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인간애’를 실천하는 데서 ‘우리’라는 ‘반성적 연대’ 가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소리」에서 보여주는 시선은 그간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 취하고 있는 인식과는 색다른 김의정만의 독특 함으로 주목해 볼 수 있다.
일본계 미국인 요코 가와시마 웟킨스의 자전소설 『요코 이야기』는 2차대전 패전국 소녀의 고통만을 되살림으로써 영어권 청소년들에게 아시아에서의 역 사적 가해자/피해자에 대한 전도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 한민족 독자들의 분노를 촉발시킨 바 있다. 미국 『교사 가이드』에서 『요코 이 야기』와 동시에 읽힐 것을 권장하고 있는 최숙렬의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은 요코와 비슷한 시대, 비슷한 나이의 소녀를 등장시켜 『요코 이야기』와 기 억의 전쟁을 벌이는 일종의 대항소설이다. 웟킨스가 소설로 형상화한 자기 삶의 심상지리(imagined geographies)가 미국인들이 상상해온 태평양전쟁의 심상지리와 맞아떨어짐으로써 『요코 이야 기』는 미국 교육제도가 인정하는 정전(正典)의 자리를 확보한다. 『요코 이야 기』에서 전쟁이란 곧 진주만 이후의 태평양전쟁이다. 즉 일본이 러시아, 중국 등과 벌인 제국주의 전쟁,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조선 항일세력을 말살하기 위 해 벌인 수많은 전쟁은 『요코 이야기』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최숙렬은 바로 그 지점에서 ‘기억의 전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웟킨스와 미국이 보지 못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한반도에서의 또 다른 전쟁을 증언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야말로 역사 교사 최숙렬을 소설가로 탈바꿈시킨 원동력인 것이다. 최 숙렬은 한반도에서의 식민지/피식민지, 가해/피해 사실을 열거하고 되새기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사람의 전형적인 심상지리를 직조한다. 그러나 이렇게 평 행선을 달리는 최숙렬의 대항서사도 반공산주의(反共産主義), 미국에 대한 호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요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결국 웟킨스와 최숙렬, 두 아시아계 미국인 ‘모델 마이너리티’들이 호출하고 제작한 모범적이 고 상식적인 텍스트인 이 작품들에는 ‘정의롭고 선한 미국’, ‘악의 기원 공산주 의’라는 서사가 이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ꡔ요코 이야기ꡕ가 고집하는 서사적 ‘완결’에의 욕망은 적의 전쟁에 강제 동 원되었던 조선인 성노예, 학도병과 같은 타자와 부조리한 사건의 존재를 인지 하지 못하며, 진실이 작가가 재현한 현실 너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용납하지 않는다. 내셔널 히스토리의 타자를 부인하는 것은 『떠나보낼 수 없 는 세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요코 이야기』는 여전히 전쟁의 폭력을 현 재의 서사로 살아가는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부름과 호소에 대한 무책임한 응 답이다.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 또한 녹록치 않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피 해자 민족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대항서사로서 여러 측면에서 ꡔ요코 이 야기ꡕ의 한계를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