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19는 근대 한국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한 ‘혁명’이지만 그간의 연구는 주로 서울 지역 대학생들의 희생과 봉기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어왔다. 그러나기실 4 · 19는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부패 정권에 항거하며 시작한 학생 의거로부터 출발해 3 · 15를 거치며 대학생과 시민 계층으로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이 논문은 4 · 19의 도화선으로 평가받은 3 · 15에 주목하여 3 · 15 당시 여성들의 활동을 기록물에 근거해 실증적으로 재구성했다. 3 · 15에 참여한 여성들의 그룹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김주열의죽음을 애도하며 시위에 참가한 어머니 그룹은 3 · 15의 근저에 모성적 슬픔의 정서가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비약적인 정치의식의 발전을 보여주는 엘리트 여학생 그룹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백윤선 의거담은 김주열의 유서로 바뀐 한성여중생 진영숙의 유서와 함께 남성적으로 젠더화되는 혁명의성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공적 기록에 남아 있지 않고, 자신을 드러낼 수도 없었던 윤락여성들의 참여가 있었다. 3 · 15 50주년을 맞이하여 이들은 지역에서 제작한뮤지컬과 드라마의 주요 인물로 부활하여 대중의 정서 속에서 혁명(의거)의거친 성격을 순화시키는 특별한 존재로, 또 3 · 15의 주역으로 새롭게 복권되고 있다. 이처럼 3 · 15뿐 아니라 4 · 19는 이제 지역별로, 또 젠더적 시각에서연구가 필요하며, 이런 방식을 통해 그간의 연구에서 놓친 4 · 19의 전지역적의미를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을 개인의 사회성과 표현의 자율적인 형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기형성의 과정이라 했을 때, 여성 386 세대들은 여성 혹은 여류라는 집단의 범주혹은 성의 규범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개체로서 성숙의 통과제의를 시도했던교양 주체들임이 분명하다. 여성 386 세대들의 후일담 소설은 혁명이 좌절된뒤 비로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성별에 눈 뜬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소환의 형식이 되면서 성별화된 기억의 양상을 띤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 사회와 여성, 의식과무의식, 계몽과 욕망, 이성과 감성, 주체와 사물, 정신과 몸, 금욕과 탕진, 중심과 주변, 광장과 밀실 등 세상에 대한 견고한 이분법 위에 구축된 386 세대의정치 철학이 심문에 부쳐진다. 여성 386들의 후일담은 혁명의 시간을 감상적으로 추억하기보다, 좀더 신랄한 해부의 성격을 띨 가능성도 높다. 특히 본 연구는 대표적인 진보주의 작가 혹은 386 여성작가로 꼽히는 공지영과 김인숙의 작품에서 매우 이질적이면서 유사한 측면들이 발견된다는 점에주목했다. 그것은 ‘속’됨에 대한 이질적 태도이다. 공지영의 소설은 속됨에 대한 극도의 콤플렉스 혹은 성스러움에 대한 선망을, 김인숙은 세속적인 것에대한 히스테리컬한 열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사람의 후일담 소설은 공히성스러움의 압력에 짓눌린 자들의 피해의식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 결과물이다. 공지영의 후일담은 386 세대에게 순정함과 진정성을 광휘를 부여해역사를 자기의 추억으로 만들려고 하는 나르시시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여기에는 역사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열망이 깔려 있다. 중심을 열망하는 주변의글쓰기가 공지영의 문학이다. 반면 김인숙은 80년대를 통과하면서 원초적인자기를 잃어버린 혹은 욕망을 짓눌린 인물을 통해 혁명의 위선과 억압을 공격하고 들추는 퇴폐의 열정을 선보이며 80년대가 억누른 욕망들 소환한다.
이 논문에서는 4월혁명을 다룬 당대의 기록물들과 소설들을 중심으로 혁명이 어떤 방식으로 서사화되면서 기록되었는가를 살피고, 이 과정에서 민중들의 혁명 참여가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면서 혁명사가 구성되었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당대의 정치 엘리트들과 지식인들이 대학생들을 혁명사의 중심에 위치 짓고자 한 것을 혁명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 한계를 설정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하였다. 대학생들은 혁명의 목표를 국민 주권의 회복에 맞추었고 사건의 기록자들은 이를 학생혁명의 성취로 인증해 주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주권 행사의 주체’로 상상했을 때 가능한 일이지만, 이들이 주권 실현의 유일한 방법으로 재선거를 요청했던 것은 실제적인동등한 시민권을 열망하는 것이라기보다 형식적 평등의 제도적 실현을 추구하는 일에 불과했다. 물론 당시가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과정에서 주체형성의 초기단계였으므로민중은 겨우 학생들의 시위에 동원될 준비만 되어 있었다고 말할 만하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인식과 요구가 학생들과 동일하기 때문에 이들이 혁명에자발적으로 동원될 수 있었다고 짐작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오히려 하층민은 실상 통제 불가능하고 위험한 존재로 상상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들이 일으킬 수 있는 폭동에 대한 공포가 만연해 있었으며, 정치 엘리트들과 지식인들은 폭력과 비폭력의 이분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들을 통어하면서 혁명의 방향을 조절해 나갔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의 정치 참여는 철저하게 배제되는바, 4월혁명이 남성들의 정치 투쟁과 정치적 경쟁의 장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이 글은 1960년대 혁명과 시, 그리고 여성성의 상관관계를 논구하기 위해김수영과 신동엽의 시에 나타난 여성표상을 분석한 논문이다. 소위 1960년대대표적인 참여시인인 이 두 시인의 혁명 시에서 여성이 매우 중요한 표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수영의 경우는 여편네라는 비하적 표현을 통해서 부인을 경계하는 듯 하지만, 실은 그에게 부인은 ‘사랑하는 적’으로 오히려 문학의 악을 실험하고,자신의 위선을 깨닫게 하는 ‘선’한 존재이다. 또한 아내와 식모 순자는 위선을모르고 이성으로 대상을 재단하지 않는 순수 직관의 표상이기도 하다. 이들의존재성을 통해 김수영은 ‘너무나 간단해서 어처구니 없는’ 대자연의 순리를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한 자연의 카오스적 운동이 곧 혁명의 진리임을 깨닫고 이를 시적인 경지로 승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그에게 ‘무수한 반동’으로서 ‘거대한 뿌리’를 인정하게 하고, ‘만주’라는 역사를 기억하게하는 깨달음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 안에서 그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죽음 반 사랑 반’의 존재로 자각하게 된다. 선/악의 이분법적 도식을 뛰어넘어진정한 ‘선’의 경지에 도달했듯, 그는 여성이라는 적과의 대결을 통해서 그는남성/여성의 이분법적 도식을 뛰어넘는 존재론적 인식을 이룩한다. 그리하여그는 반시론의 경지에 가 닿게 된다. 그는 결국 여성들과의 대결, 그리고 이로인한 여성성의 성찰을 통해 시적인 경지를 획득한 것이다. 그에게 여성은 시와 혁명의 경지에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신동엽의 경우는 모성적 유토피아를 실패한 혁명적 미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서구적 이성에 의해 시행된 제국주의, 국가주의, 전쟁, 폭력이라는남성적 근대에 대한 반발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모성성은 백제라는 수난과 부활의 공간 표상으로 등장하며, 폭력적인 남성성을 순화시켜 줄 성스러운존재로서 제시되기도 한다. 그에게 여성적인 것(모성성)은 곧 이 민족이 이룩해야 할 유토피아적 전통의 상징이 된다. 이처럼 이 대표적인 혁명 시인들에게 ‘여성’은 그들의 시에서 혁명의 경지에 다다르는데 많은 깨달음을 전해준 매개이자, 혁명적 미래를 계시하는 메시아적 존재이다. 그리고 혁명의 시적 실현체로 존재한다. 이러한 점은 남성 중심적인 근대의 기획, 국가의 기획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다. 이들에게는 국가중심으로 진행되는 근대화의 기획에 대한 환멸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국가주의라는 남성성에 대한 안티테제로여성적인 것이 요청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이들의 혁명과 여성의 연관된 논의 속에서는 ‘전통’이라는 개념이 틈입한다. 이는 1960년대 지식인들이 국가주의적 기획에 대항하기 위해 세워야했던 새로운 공동체의 이념체로서 그들과 다른 혁명적 ‘전통’을 세워야 했던저간의 당위성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 ‘전통’은 일반적 의미의 전통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지점이 있다. 신동엽에게 전통은 단지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혁명적인 것, 신비로운 경이로운 광채 하에 구성되는, 미래로 유예된 시간의 선물이 된다. 이러한 전통의 신성화 역시 이성적인 유토피아 기획이 불가능한, 당대의정치적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국가주도의 자본주의 경제국, 혹은 교과서적인서구적 민주주의이외에는 더 이상 어떠한 논리적이고 이념적인 사회상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시기에 출현한 유토피아는 분명 미적인 것, 신비로운것, 과거의 것, 초월적인 것, 신성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성적인 것’을혁명적 지식인, 시인들이 전유한 것도 이러한 상황에 기초한다. 여성들은 이성적인 것을 기반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국가주의의 남성성에 대항하는 신비로운 것, 과거의 곳, 초월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60년대는 여성적인 것이 ‘시적인 것’ 혹은 ‘신성한 것’, ‘혁명적인 것’으로 등장하는 시대이다.
이 글은 몸담론으로 강경애의 『인간문제』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권력은 인간을 몸으로 환원시켜 도구화하고 인간은 몸의 욕구를 통해 그 권력에 이의제기를 한다. 이 글은 후자에 초점을 맞춘다. 재산 혹은 지식을 가진 주체는타자를 육체로 간주하지만 타자는 바로 그 몸의 욕망을 통해 권력에 대응한다. 음식과 질병은 몸으로 경험하는 제도의 폭력을 실감나게 드러내고 그것에대항하여 인간임을 선언하는 유효한 표지가 된다. 몸의 욕망을 뚜렷이 각인시킴으로써 소설은 구조적 모순의 통찰에 그치지 않고 이에 대항하는 능동성과상호육체성의 윤리적 차원을 확보한다. 상호육체성을 통해 경쟁과 대립의 관계에서 공감과 연대의 관계로 변화하는 인물관계를 떠낼 수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여성적 저항방식의 가능성 또한 확보된다.
The body discourse can provide so many useful and salient points of reference in reading Kang, Kyung Ae's 『Ingan Munje(of Human Issues)』(1934), which this article analyses. According to this discourse, the ruling power tries to reduce human being into material body and make the body subordinate to its domination, while human being may pose some objection against the domination via such a body. The novel shows so clearly that the latter process can be represented in this real world. The subject who has properties and/or knowledge can treat the others as the bodies, who, in turn,respond to and challenge such treatment through presentation of the desires that stem from the bodies. Illness and food may constitute the main signals that unveil violent nature of social system and show solemn declaration of being humans who stand against such violence. Kang's novel has made a salient success in these aspects. It depicts secular desires of the female bodies so vividly, from which resisting power to challenge the dominant ruling powers and the ethics of the intercorporéité are firmly secured. The intercorporéité of the novel can make ever changing relationship between the characters, which is leaving apart from competition and conflict and moving toward sympathy and solidarity. It opens small but important possibility of feminized way of resist against de-humanizing powers.
이 논문은 이영도가 이호우의 동생이라거나 청마의 연인이라거나 하는 문학이전의 사적인 평가방식, ‘규수시인’이라는 ‘여류’로서의 주변부적 평가방식과는 달리 그의 문학세계가 얼마나 공적인 것을 지향해갔고, 그것을 실현해갔는지를 추적하려고 하였다. 이영도의 문학적 출발은 사적인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영도의 삶에 깊숙이 내재된 공적인 것에의 욕망은 자신을 ‘미래의 유관순’으로 자처하며,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어린 시절의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유치환과의 서간집을 발간하면서 사적인 관계를 공적인 것으로 치환하여갔고, 그 기금을 기반으로 자신의호를 딴 ‘정운문학상’을 제정하면서 자신을 제도화, 권력화 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문학적 권력의 물질적 조건으로 전이하였던 것도 자신을 민족과 국가단위의 영역에서 스스로 부여한 역사적 임무를 다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여류문학인회 부회장, 한국시조작가 협회 부회장직을 맡았으며, 『현대시학』추천인으로 활동하면서 문단의 대표로서 공적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그의 공적 욕망은 시조 텍스트에 나타나는 정치의식이나 역사의식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공적 욕망의 가장 밑바탕에 구조화된 “등불”의 이미지는자신을 희생하면서 어둔 밤을 밝혀 새날을 맞이하려는 계몽적 의지를 드러낸다. “등불”은 “진달래”로 변주되면서 4·19의 혁명정신과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진 젊은 넋들로 확장된다. 이 역시 자신을 ‘미래의 유관순’으로 자인했던 이영도의 공적 의지를 드러낸다. 국토의 지리적 풍경은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풍경이 아니라, 국토애와 현실비판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고, 이순신에대한 관심은 조국의 현실을 난세로 규정하면서 현실의 방향타를 민족주의에서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Unlike general perceptions for Lee Young-do putting priority on private things over literature and a peripheral evaluation method on being a "female writer," this study aimed at exploring into what how much her literature world was in pursuit of public things and putting them into practice. The start of Lee's literature was escape from a private sphere. Lee Young-do's desire for public things, which was deeply incorporated into her life made her acknowledge that she herself was "the Ryu Gwan-soon of the future," which was originated from the incident of her childhood that was accepted as her destiny. As a result, since publishing a collection of letters with Ryu Chi-hwan, Lee Young-do started to replace a private relation with a public one. And based on the fund generated from the collection, she set up the "Jeong-un Literature Award, named after her pseudonym and made her institutionalized and a power. The transfer of her name to a material condition for literal power was also resulted from her efforts for fulfilling her historical duty granted by her herself in an ethnic and nation unit sphere. Her public desires stands out in her political․historical awareness which has been revealed in a Sijo text. Sijo roughly translates to a traditional Korean lyric form consisting of three long lines. The image of the "Lamp"structured in the lowest bottom of a public desire reveals an enlightened will which lights a dark night and embraces a newly-dawned day while sacrificing oneself. The Lamp is transformed into "The Azaleas" which is symbolic of the young victimized souls who were fallen for 4·19revolutionary spirit and democracy, which also shows a public will of Lee Young-do who self-acknowledged as the "Ryu Gwan-soon of the future." Itcould be safely said that the geographical landscape of the national land is used to reveal the love for the national land and a criticism for reality, not as a landscape being objectively seen and her interest in Lee Sun-shin shows that she sought to find a rudder for reality in nationalism while defining the reality of her fatherland as a warlike age.
이 논문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와 1980년대 한국 여성시인들의 시를 비교하여 이들의 시가 보여주는 특성과 여성시사에서 이룬 성과를 규명하고자 한다. 실비아 플라스와 1980년대 한국 여성시인들은 가부장제 혹은 절대 권력에대해 강한 부정을 행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유사성을 드러낸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에는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고 부친에 대한 애증이 복잡하게 드러난다. 이에 비해 1980년대 한국 여성시는 오랜 가부장제와 폭력적인 정권에 대한상징으로서의 의미가 큰 부권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표출한다. 이들은 여성적 경험과 여성성에 대한 자각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실비아 플라스는 모계로 이어지는 생명의 강한 유대에대해 또 다른 압박감을 느끼며 위기의식을 드러낸다. 한국의 여성 시인들은가부장제의 희생자이면서도 그것의 충실한 조력자가 되어온 한국의 어머니들 에 대해 냉철하게 인식하고 새로운 여성성을 모색한다. 글쓰기 방식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개성은 파격적인 시어의 사용과 언술 방식의 혁신에 기인한다. 실비아 플라스는 일인칭 화자의 극적 고백에 내면의소리를 담아 발견의 순간들을 이끌어낸다. 한국의 여성시인들은 자유로운 형식의 언술로 억압된 언어에 대한 예리한 각성과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봉준호의 작품들은 2000년대 한국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서, 대중성과작품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외적으로는 흥미롭고 쉬운 이야기 구조를 보이지만, 다층적 분석과 논의의 가능성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여성주의적 논쟁의 여지를 보이기도 한다. 본고는, 그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면서도아직 기존 논의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소녀’ 모티브에 주목하려 한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연쇄살인 사건의 여성 피해자가 다수 등장하지만, 작품의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결정적 피해자는 여학생 소녀이다. 그녀의 희생은 합리적 남성 주체의 죄의식과 무력감, 정체성의 분열을 가져온다. 「괴물」의 소녀는 한국 사회의 서민 대표 집단처럼 제시된 가족 중 가장 어린 인물이다. 한국 사회의 현실적 문제를 괴물 퇴치담의 판타지로 풀어간 이 작품은, 현대화된 신화적 상상력의 희생 제물로 소녀를 선택한다. 「마더」에서 피살된 소녀는, 모성의 치명적 악마성을 드러내기 위한 매개자 역할을 한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발전이 멈춰버린 지점을 포착할 때조차, 그 인식의 수단으로서 소녀의 희생은 여전히 필요하다. 희생되는 소녀 모티브의반복적 활용은, 봉준호 영화의 대중적 감성과 사회 비판 의식, 입체적 텍스트로서의 깊이를 보장해주는 안전장치이다.
The movies directed by Bong JoonHo are the friendly works which give 2000's Korean movie as the most important result, equipping a popularity and a artistic achievement simultaneously. Externally are visible as interestingly easy talk structure, but keep the possibility of multi layer analysis and discussion together, margin an argument in terms of feminism. This article pays attention to 'young girl motive', appears commonly in his works but still not discussed so far. From 「Memories of Murder」 the feminine victim of serial killer grows multiple appearance but the decisive victim who accomplishes as an climax is the young schoolgirl. Her sacrifice brings the feelings of guilty and helplessness, disruption of identity to the rational masculine subject. The girl in 「The Host」 is the youngest person in the popular representative family of the Korean society. This movie solves the actual problem of the Korean society with fantasy of the monster extirpation and the work, selects the young girl as the scapegoat of the mythical imagination which is modernized. In 「Mother」 the young girl who gets killed, does the vector duty which is distinguishing the fatal demoniac characteristic of motherhood. When catching the point even which throws away the development of the Korean society as the relationship of the mother and the son, the sacrifice of the young girl is necessary as ever as means of the recognition. Repetitive application of the ‘sacrificed young girl motive' is a safety bolt which guarantees the Bong JoonHo's movies with popular sensitivity, social criticism and the depth as multi-dimensional text.
켈트족은 지구상에서 이미 사라진 민족이지만, 그 문화는 아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켈트 문화와, 서구 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그리스-로마 문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켈트 문화가 자연과 꿈과 낭만성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여성에 대한 켈트족의 태도에도 반영되고 있다. 켈트 사회 역시 모든 인도 유럽어족 사회처럼 가부장사회였지만, 그리스-로마 문화에 근간을 둔 다른 가부장사회들과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켈트족은 여성에게 상당한 권리를 부여했으며, 여성을 아주 귀하게 여겼다. 이러한 사실은 켈트족의 사회제도를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한 특성은 켈트 신화 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켈트 여신들은 그리스-로마 여신들과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그녀들은 남성신에게 종속 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이며, 주체적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켈트 여신의 독립성은 <주권 여신>이라는 신화적 개념 안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켈트 신화 안에서 왕권의 보유자는 남성인 왕이 아니라,여성인 여신이다. 왕권은 왕의 존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신의존재로부터 나온다. 여신은 왕권의 궁극적 담지자이며, 그것을 일시적으로 인간인 남성 왕에게 위탁하는 것에 불과하다. 서구에서 켈트적인 것은 바야흐로 대대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이것은충분히 예상되었던 것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문화 현상 안에서 켈트 신화가 가지고 있는 대안 담론으로서의 위치에 주목하게 된다. 켈트 신화는 상상력과 환상성이 중시되고 있는 탈근대 맥락 안에서 뚜렷한 문화적적성을 드러낸다. 그 적성의 중심에 켈트 여신 신화가 있다. 우리가 켈트여신들을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