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연구가 일종의 ‘붐’을 이루면서 최근 꽤 많은 논문이 산출되었다. 본 연구는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 진행된 정동 연구와 한국에서 진행된 정동 연구 경향을 비교 검토하면서 한국의 정동 연구의 이론과 현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서구에서 정동 연구가 페미니즘과 젠더 이론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이어받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페미니즘 연구를 부정하는 입장이 강하다. 이런 경향은 한국 지성사의 식민주의와 성차별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본 연구의 중요한 논점이다. 한국에서 최근 산출된 논문의 경향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유형화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기존의 문학 연구나 문화연구 영역에 감성 연구와 정동 연구를 도입하는 경향이다. 두 번째로는 예술 존재론과 이미지 정치에 대한 논의에 입각하여 정동 논의를 전개하는 연구이다. 세 번째로는 에토스와 정동에 대한 논의로 세월호 사건 등을 비롯한 재난과 트라우마, 애도의 윤리와 정동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 네 번째로는 정동 경제와 사회적인 것에 대한 논의이다. 다섯 번째는 혐오발화에 대한 연구이다. 한국 사회의 혐오 발화에 대한 논의는 정동 이론과 페미니즘, 젠더/퀴어 연구가 결합한 전형적 사례라고 할 것이다. 미국과 유럽,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정동 연구가 다양한 이론적 원천을 계승하고 페미니즘을 모든 이론을 재검토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이론으로 재정립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 달리 한국의 정동 연구는 페미니즘 이론을 역사적이고 이론적 원천에서 삭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지식장과 학문장, 그리고 공론장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식민주의와 성차별주의에서 비롯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페미니즘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야말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역능을 문란, 퇴폐, 부적절함, 근본주의적 불순분자로 배제하면서 구축된 근대적 주체성과 공론장의 한계가 반복되는 전형적 사례이다. 본고에서는 이를 시민적 공론장의 형성과 재생산 과정에서 정동의 힘이 ‘여성화’의 방식을 통해 부적절한 힘으로 억압되는 과정을 통해 살펴보았다. 특히 여기서 ‘여자 떼에 대한 공포’가 정동의 힘과 ‘다스릴 수 없는 자들의 역능’을 제어해온 역사와 현실을 정동 이론의 차원에서 고찰하였다. 또 이런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고찰을 통해 오늘날 이론의 재구성에서 정동 연구와 페미니즘의 결합은 가장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제공할 거의 유일한 역사적 이론적, 실천적 원천이라는 점을 밝혔다.
This thesis is the Comparative research regarding affect studies and the theoretical resources of gender studies. Especially focusing on the puissance of ungovernables and the fear against the 'la foule de femme'. Almost every affect studies produce in Western part and East Asia emphasize the gender studies, feminist researches and queer studies as theoretical resources of affect studies. In contrast with this 'general' tendencies of affect studies some studies of Korean 'left' group are eliminate gender studies, feminist researches and queer studies as theoretical resources of affect studies. This tendency of affect studies in Korean academic world is the historical effect of sexism and colonialism in scholarly field.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지 주거의 한 유형이 아니라 경제적, 심리적 현상이다. 한국을 어디서나 아파트가 보이는 ‘아파트 공화국’으로 만든 것은 아파트 공간의 건축적 합리성이 아니다. 박정희는 62년 마포아파트 기공식에서 아파트가 “혁명한국의 한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이러한 바람은 60년대 말 강남개발이 본격화되고 부동산 투기 붐이 조성되면서 실현되었다. 강남개발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해 극도로 편향된 부의 배분을 가져와 아파트를 사용가치의 주거공간이 아니라 자산 이득을 얻기 위한 투자대상으로 만들었다. 아파트는 욕망을 해방시키고, 운이 좋으면 한 몫 거머쥘 수 있다는 기대를 불어넣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박정희 모더니즘의 기념비(monument)다. 아파트는 나도 너처럼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의 민주주의를 유도함으로써 압축성장을 가져온 일등공신이다. 시기심은 다른 이가 차지한 행운에 대한 주체의 박탈감에서 비롯된 분노의 다른 표현, 즉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반응하는 주체의 양식이다. 이는 시기심이 정치적 충동과 비판 의식이 잠재된 사회 민주주의적 감정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시기심에 사로잡힌 주체는 타인을 많이 갖기 게임의 경쟁자로 가정하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자가 되지 못하고, 이는 시민사회의 도덕 원리로서 공감의 실패로 이어진다. 시기심은 타인을 선망하고 흉내내는 데 몰두하는 맹목으로 패거리의식을 낳고 취약한 사회집단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다. 시기심은 수직사회에서 비교의식에 따른 주체의 선망과 좌절 그리고 우울은 불안이나 소외 같은 근대 감정처럼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 시기심이 사회적 약자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감정이라면, 사회자본이 매우 취약한 여성들이 행운을 거머쥔 이에 대한 시기심을 더 고통스럽게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7-80년대에 발표된 박완서의 단편소설은 강남개발 이후 내 집 마련 열풍의 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근대 체험의 의미를 포착한다. 소설 속 근대화 여성 1세대들은 살림이나 양육 등 전통적인 여성 역할에 머물지 않고 ‘복부인’, ‘교육엄마’로 가족의 신분이동, 계급이동을 위해 분투함으로써 박정희 체제의 일원이 되었다. 박완서는 개발기 모성의 희생적 위치를 부각시키는 대신 그것의 부도덕성을 까발리는 반(反) 멜로드라마로서 제도적 여성성을 성찰의 대상으로 포착한다.
본고는 정동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정서적, 인지적 대응으로 상정하고 한국 사회에서 최근에 나타나기 시작한 정동적 전환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2016년 여름에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 「부산행」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적 정동의 알레고리로서 정동적 전환을 재현하는 것으로 읽고 영화의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 「부산행」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존엄한 인간으로서 생존하는 것의 불확실성과 그 불안정성 속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프레카리아트를 1:99라는 인간 대 좀비의 인구율적 차이를 형성하며 재현한다. 본 연구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전지구적 계급이 된 프레카리아트 문제와 함께 영화의 최후의 생존자가 되는 두 여성, 즉 임산부와 초등학생이 과연 해피엔딩과 밝은 미래의 주인공인지에 대해 고구해 볼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에게 생물학적 재생산의 능력만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주의적 정동의 미래는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질 것이다.
This paper hypostatizes the affect as an emotional and cognitive response to the present neoliberal capitalist order and inquires into the affective turn recently emerged in South Korea. To do so, it reads and analyzes a text of the first Korean zombie film, Train to Busan, which has sold ten million tickets in summer of 2016, as an allegory of South Korean affect that represent the nationally on-going affective turn. The film not only symbolizes the precarity of the noble survival of a human being under the neoliberalist order but also visualizes the quantity of zombies versus humans as that of the precariat, the majority (99%) of the population and the very few privileged (1%). Along the line with the issue of the precariat, a new global class in the neoliberalist capitalism, this study thus interrogates the film's closure wherein ultimately survive two females, namely a pregnant housewife and an elementary-school girl and questions if that is a happy ending. By doing so, it not only questions the possibility of zombies affecting and being affected but also addresses a "cruel optimism" or cruel future of the survivors in this patriarchal capitalism that only requires women to be the biological tool of reproduction.
이 논문은 『제국신문』(1907.5.17~1909.2.28) 논설란에 게재된 ‘풍속개량론’ 및 관련 논설, 기서, 별보를 잡보란에 수록된 ‘풍속’ 관련 ‘사건 기사’와 비교함으로써, 근대계몽을 주장한 매체와 지식인, 언론의 입장과 매체(기자/목격자)에 의해 관찰된 일상, 또는 그 안에 포섭된 당사자의 행동과 목소리의 ‘차이’를 ‘다층적 근대성’이라는 관점에서 해명했다. 『제국신문』은 풍속개량론을 연재하기 전에 사회와 일상에 대한 관찰을 수행하여, 체계적인 분석의 기초를 마련했고 비판과 대안을 모두 제안했다. 연재 전후에는 문제적 풍속이 나타난 인민의 태도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제언을 서술함으로써, ‘태도로서의 근대’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청국의 문제와 연결시킴으로써 아시아 내부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풍속개량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 풍속은 의복, 개가, 압제혼, 육아 등인데, 여성 독자의 기서는 여기서 간과된 여성의 교육권과 교양적 처신을 논의함으로써, 매체의 관점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 풍속개량론이 계몽의 언설구조를 취했다면, 이와 연결된 여성문제는 잡보란을 통해 ‘사건화’되어 서술되었다. 논설에서는 개가 허용을 강조했지만, 잡보란에서는 부모의 만류로 불가능했던 사연, 개가를 둘러싼 각종 사기와 폭행 사건, 과부 보쌈을 둘러싼 범죄가 서술되었으며, 사망한 남편을 따라죽는 여성을 여전히 열녀로 치하하는 기사가 공존했다. 조혼과 압제혼은 풍속개량론에서 비판된 혼례문화였는데, 잡보란을 통해 특히 각종 매매혼의 피해 사례가 빈번했음이 드러났고, 작첩, 통간, 폭력, 가출 등 혼인생활의 파국과 가정불화가 속출되었음이 보도되었다. 기사의 서술 시각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었지만, 여성의 억울함을 듣고 공감하는 관점이 공존하는 중층성을 띠었다. 잡보란에는 여성에 대한 강간, 화간(통간), 유명인에 연루된 성적 스캔들, 기생, 매음(위생, 범죄, 스캔들), 인신매매 등이 ‘사건화’ 되어 실렸다. 이는 논설이 주목하지 않았던 근대 초기 여성적 삶의 실상이다. 이 논문은 근대초기 인쇄매체를 대상으로 근대성을 논할 때, 지식인의 관점이 반영된 논설란만을 배타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논증하기 위해 ‘논설’와 ‘잡보’란의 상호관련성을 분석함으로써, ‘다층적 근대성’이라는 연구 관점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 글은 분노 감정이 김명순의 시세계를 해명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라고 보고 그녀의 시-「싸움」, 「유리관 속에서」, 「내 가슴에」, 「저주」, 「유언」, 「외로움의 변조(變調)」, 「무제」2편 등-를 분석하였다. 그녀의 시에서 분노 감정은 1924년에서 1925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표출되었다. 이 시기는 그녀가 남성 문인들과 매체로부터 부당한 여성 혐오와 비난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시기이다. 따라서 분노 감정은 그녀에게 위해를 가하는 공격자들에게 그것을 중단하라는 경고이며, 그들의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표출된 저항 감정이다. 과거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분노 감정은 표출하지 말아야 할 부정적 감정이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서 분노는 억압하고 억제해야 할 부정적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해 적극적으로 표출해야 할 감정이다. 분노 감정이야말로 가부장제의 모순된 체제를 변화시키는 창조적 에너지이자 여성문학의 중요한 미학 원리이다. 본고는 김명순의 시에 표출된 분노 감정이 젠더 불평등과 가부장제의 부당한 억압에 저항하는 정당한 감정이며, 자아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긍정 감정이라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시를 해석하였다. 그런데 본고는 분노와 더불어 슬픔, 우울 등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었다. 왜냐하면 감정은 역동적이어서 슬픔은 언제든지 분노로 바뀔 수 있으며, 슬픔이 분노로 바뀌면 슬픔은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상황에서도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면 분노가 되고, 자신에게 돌리면 슬픔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아 내부를 공격하면 우울이 되는 등 분노, 슬픔, 우울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마리 J. 마츠다는 소수자의 다수자를 향한 혐오 발언은 ‘분노에 찬 시’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녀에 따르면 종속된 집단의 지배 집단을 향한 증오감의 표현, 혐오, 그리고 분노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발언과는 달리, 지배 집단을 향한 구조적 지배를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리 J. 마츠다의 말처럼 김명순의 시에 나타난 분노 감정과 혐오 발언은 다수자인 남성을 향한 ‘분노에 찬 시’이다. 여성들을 향한 남성들의 혐오 발언은 젠더 위계 서열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을 열등하고 종속적인 위치로 전락시킨다. 하지만 김명순은 자신의 시에서 여성 혐오에 침묵하지 않고 분노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혐오 발화자인 남성의 권위를 교란시켰다. 김명순의 시가 보여준 분노 감정은 개인적인 데서 촉발된 것이지만 개인적인 것을 넘어선다. 여성을 혐오하는 가부장제의 권력에 도전하고 그들의 권위를 교란시키는 여성 주체를 반복해서 보여주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김명순은 대단한 페미니스트이다. 그녀는 ‘사나운 조선’에서 좌절하지 않고 분노의 감정을 시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출한 강인한 여성이었다.
본고에서는 20년대 이후 하층민 중독자 표상이 드러난 작품들을 특히 모성과의 관계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일제강점기 소설 속에서 중독자 아들에 대한 육친애, 중독자 남편에 대한 폭력과 모성의 히스테리, 중독자의 모성과 돌봄의 숭고를 드러내고 그 의미를 평가할 것이다. 훈육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데 이바지하는 모성애와 달리 보호와 양육에 집중하는 어머니의 돌봄은 육친애로 나타나며, 채만식의 「불효자식」은 중독자 자식을 향한 혐오스러운 육친애를 형상화한다. 중독자-남편을 둘러싼 서사에서 모성은 최정희의 「곡상」과 강경애의 「마약」에서 보듯 돌봄보다 훈육을 강조하며 폭력적 서사와 죽음의 이미지를 가져온다. 김사량의 「지기미」는 아편중독자 노인이 아편을 권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돌봄이라는 모성의 자질을 발휘하는 숭고의 서사를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하층민 아편중독자의 표상은 모성과 결부되는 가운데 혐오스러운 육친애와 폭력을 낳는 히스테리, 중독자의 돌봄이라는 역설을 통해 식민지 가부장제 근대 사회의 정상성에 균열을 가져오는 다양한 서사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This study aims to analyzes the representation of a subaltern opium addict in the Korean Novels after 1920s especially from the relation with maternity. We show and value a mother's blood relative love to her opium addict child, a woman's violence to her opium addict husband and a mother's hysteria and the sublime maternity of a subaltern opium addict's in the novels at the colonial age. Apart from a maternal affection which contributes to the order of patriarchy with a mother's discipline, a mother's care to her child becomes blood relative love. And Chae, Mansik's 「an undutiful son」 shows a mother's disgusting blood relative love to her opium addict son. The maternity put more stress a mother's disciplain than a mother's care and shows a violent narratives and the images of death in the narrative about a subaltern opium addic husband like Choi, Jeong-hei's 「Goksang」 and Gang, Gyeong-ae's 「Drugs」. Kim, Sa-ryang's 「Zigimi」 paradoxically shows a sublime maternal narrative that an old subaltern opium addict cares his brethren like their mother with inviting to opium addiction. The representation of a subaltern opium addict related to the maternity in the Korean novels at the colonial age shows various narratives that break up the normality of a colonial modern patriarch society with the paradox as a disgusting blood relative love, a violent hysteria and a subaltern opium addict's care.
『사상계』기행문은 여타 잡지의 기행문과 매우 달랐다. 순수 여행담 성격의 글이라기보다 시찰담, 학술 교류, 학계 방담의 성격이 강하였다. 이는 『사상계』가 스스로를 ‘종합학술지’로 규정하고 근대화 전략의 토대를 ‘학술교양’에 두고 있었던 점과 상통한다. 서구/아서구/비서구 기행문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근대’ ‘국민국가’ ‘발전’에 대해 상상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서구 기행문은 오리엔탈리즘 시선으로 서구를 한결같이 ‘보편’으로, ‘발전’으로 표상하고 있었다. ‘제국주의의 눈’으로, 저개발의 후진국인 한국이 ‘발전’하려면 서구의 문명(화)을 수용해야 하다는 것을 여러 형태로 역설하였다. 식민주의가 비판되지 않았으며, 반공주의가 근대화와 결합하면서 ‘승공’(勝共)으로 가치화 되고 있었다. 따라서 리저널리즘에 대한 재편의식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문명론적, ‘발전(재건)’의 젠더는 남성이었다. 아서구 기행문은 피식민의 피해의식을 봉인하고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를 해금시킴으로써, ‘전후 일본’의 리저널리즘적 재편 욕망인 ‘새로운 아시아 보편’에 의식・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된 지식인의 사유를 환기하였다. 이는 일본 내에서 ‘전후 일본’이라는 내러티브가 전쟁책임과 가해의식을 봉인하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연출한 것과 동궤였다. 젠더의식은 특별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 때의 ‘비(非)젠더’란 남성젠더적인 것이었다. 비서구 기행문에서는 새로운 민족적 관점을 충동하면서 리저널리즘의 재편을 통해 보편을 재구성하려는 의지가 확인되었다. 리저널리즘에 대한 적극적・수동적 사유가 둘 다 목도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네 개의 ‘아시아 리저널리즘’으로 구분되었다. ‘냉전(반공) 우선성’의 아시아 리저널리즘, ‘발전론 우선성’의 아시아 리저널리즘, 우선성이 작동하지 않은 채 ‘냉전과 발전론이 결합’한 경우, ‘중립주의’의 아시아 리저널리즘이 그것이다. ‘반제국(식민)주의 우선성’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냉전(반공)을 ‘과잉전유’한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발전론 우선성’의 경우 발전의 핵심은 ‘경제력 성장’이었지, 센(Sen)이 말하는 ‘자유의 신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중립주의는 아시아 리저널리즘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것이었으나, 리저널리즘을 재편하고 보편을 재구성 하는 탈식민적 사유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는 후진성=여성성=저개발, 선진성=남성성=발전이라는 성적 은유가 작동하고 있었다. 『사상계』 기행문에서 ‘발전(재건)론’은 젠더의제가 실종(소거)된 기획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1960년대 지성사를 대표하는 잡지 『사상계』의 이념적 특징을 과학주의로 분석하고, 과학주의와 젠더 재구성의 관련성을 분석하였다. 1960년대 연구는 냉전과 군사주의, 새마을운동과 생산성 담론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어 왔다. 이 연구에서는 급속한 근대화를 추구한 박정희프로젝트의 생산성담론이 중심이념으로 삼았던 가치를 과학주의로 추출하였다. 기술민족주의라 규정할 수 있는 이 시기의 과학주의는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는 마술적 조력자로 기능하였으며, 기술이 모든 이들에게 선이 될 것이라는 기술결정론의 관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술결정론은 후에 미소군비경쟁과 과학기술 발전의 정치적 권력화를 비판한 기술의 사회적 형성론에 의해 비판받게 된다. 기술도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또한 기술이 사회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기술결정론은『사상계』에 한정된 이념적 특징이 아니라 근대화프로젝트의 핵심요소로 강조되었으며, 핵무기와 핵발전에 대한 열망과 함께 부국강병의 상징적 기호로 사용되었다. 민족이 살아나가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개척정신이요 과학적 방법이라는 장준하의 사상계 권두언처럼 과학주의는 민족지성과 국가정책이 맞물리는 지점이었다. 그러나 급속한 국가프로젝트로 속화된 기술민족주의로 진행되면서 이상적 인간상을 기계적 남성성으로 만들어내는 생산성담론으로 변화해간다. 지금까지 헤게모니적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가치가 인간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분석 또한 이루어졌다. 그러나 생산성 담론의 기계적 남성성이 왜 한국사회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되었는가에 대한 성찰은 부족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 논문에서는 속화된 과학주의가 기계적 남성성의 내적 논리가 되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사상계』는 이상적 인간상을 과학주의적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보편적 인간상으로 설정하기 때문에 여성 역시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인간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 무성적 매체라 할 수 있는 이 잡지의 내면화된 젠더 구성은 전통적인 성별역할론을 유지하고 있다. 『사상계』 전문위원인 김기석의 글이나 이 잡지에 수록된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지성보다는 과잉된 감정을 여성성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계적 남성성과 감정 과잉의 여성성에 대한 이분법은 과학주의 담론을 통해 그 내적 논리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과학과 과학주의는 별개의 개념이다. 과학이 사실에 대한 성찰적 지식이라면 과학주의는 과학적 지식을 신화화하는 이념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신화화된 믿음은 인간에 대한 성찰보다는 민족부흥을 위한 생산적 인간을 구성하는 데 기여한다. 그 때문에『사상계』의 젠더 구성은 성찰 없이 기계적 남성성과 감정 과잉의 여성성으로 이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analyzes the ideological feature of 『Sasanggye』, the magazine which is representative of the history of Korean intelligence in 1960s, as scientism. And then it explores how scientism reframes gender; a link between scientism and the reconstruction of gender. Most of the studies on 1960s have been centered on the cold war and militarism or the Saemaul Undong(the campaign to booster productivity by reforming the whole country) and the productivity discourse. While intensively analyzing the productivity discourse of Park Junghee's Project to follow after the speedy modernization, the study extracts scientism from the values that it uses as essential ideology. The scientism at that time, that can be prescribed as the technology nationalism, functions as a magic helper for enhancing the wealth and military strength of a country. In addition, it holds such views about technology determination that technology will be good for everyone. The technology determination was criticized by the social shaping of technology that criticized the arms race between the U.S. and the soviet Union; it mentions that not only is technology constructed socially, but it forms society. The technology determination was emphasized as the key factor in the modernization project rather than the ideological feature limited to 『Sasanggye』, and used as the symbolic mark of enhancing the wealth and military strength of a country with longing for nuclear weapon and nuclear development. Jang Junha argues in the frontispiece of 『Sasanggye』 that the factor required for our people's survival is a pioneering spirit and scientific method. As his words, scientism is the point that national intelligence and national policy are so intertwined. As scientism moved forward in the secularized technology nationalism, the speedy national project, it is changed into the productivity discourse; we take it for granted the mechanical man is the ideal man. There have so far been many studies on hegemony masculinity and feminity and lots of analyses which the value of man-woman dichotomy would obstruct human diversity. It, however, is judged that there is a lack of contemplating the reason why the mechanical man in the productivity discourse becomes hegemony masculinity in Korean society. 『Sasanggye』prescribes that an ideal human is a scientific human. So needless to say, women should be a rational and scientific human, given that he is a universal human as well. The construction of gender internalized in the magazine, which can be called asexual media without any specific mention about women, holds conventional perception of sex role. According to the articles of Kim Kisuk, an expert advisor of 『Sasanggye』 or women's writings included in the magazine, it can be founded out that over-emotion rather than intelligence is prescribed as feminity. For the dichotomy of mechanical masculinity and over-emotional feminity its reason will be comprehended by scientism discourse. Science and scientism are distinct concept. While science is knowledge reflecting a fact, scientism is an ideology mythifying scientific knowledge. The mythic faith of scientific technology contributes to productive human rather than reflection on human. For that very reason, it shows that the construction of gender in『Sasanggye』has two types of human; mechanical masculinity and over-emotional feminity.
1960년대 여성문학 장(場)의 형성과 여성문학의 정체성 확립은 『한국여류문학전집』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한국여류문학인회’의 전집 발행은 여성 작가의 작품을 선별하고 강조함으로써 ‘여류문학’의 정전을 형성하려는 시도였다. 특히 전집의 시 장르는 신인 그룹의 등장과 ‘여류시’의 출판, 전집 발간이라는 분명한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여성 신인들은 기존의 서정시와 다른 새로운 시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여류시’의 세대적·시적 경향의 차이를 만들게 된다. 1960년대 ‘여류시’에 대한 비평은 순수/참여의 대립 구도 안에서 배제된 측면이 있으며, ‘여류’라는 ‘저자성(authorship)’은 ‘센티멘털리즘’의 비판과 연결되었다. 주류 문단에서 ‘여류시’는 사상의 결여, 정서적 긴장의 부재를 의미했지만, 이후 여성 시인들은 일상과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표현 방식을 취함으로써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
The formation of women’s literature field and the establishment of its identity in the 1960s were visualized through the 『Korean Women’s Literary Collection』. By publishing the complete series, the Korean Female Writers’ Association tried to select and emphasize literary works written by female authors, thereby canonizing “women’s writing.” The genre of poetry in the collection, in particular, demonstrates the clear continuity of a new emerging group of authors, the publication of “women’s poems,” and the issuance of a collection . New female poets at the time presented a poetic sense that differed from that in the existing lyric poetry, and this created gaps in generational and poetic trends within “women’s poetry.” “Women’s poetry” in the 1960s was excluded from critical analysis amid a confrontation of purity versus engagement , and the “authorship” of “women” was often linked to criticism of “sentimentalism.” While the mainstream literary world regarded “women’s poetry” as lacking in thought and deficient in emotional tension, female poets later broadened the horizons of contemporary poetry by adopting a objective method of expression about daily life and reality.
본 연구는 1970년대 한국에서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텍스트와 사상이 어떠한 방식으로 번역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의 보부아르 번역사에는 도덕적 관념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실존적 사랑에서 남녀 간의 동지적 사랑. 혹은 일부일처제에 대응하는 일탈에의 욕망까지 다양한 의식이 혼재되어 있었다. 특히 보부아르의 번역이 활발했던 1970년대는 여성학이 제도화되는 등, 한국 여성 의식이 성장하기 위한 객관적 발판이 마련되었던 시기이다. 고학력 여성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책 읽는 지식인 여성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의 인식이 독서를 통해서 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을 증명해 주는 텍스트가 1975·76년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이다. 한국에서 보부아르의 텍스트는 「위기의 여자」의 발간 이전부터 번역되었으며, 이 시기의 인기에 힘입어 이후 『제2의 성』 등 주요 텍스트가 번역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에 관한 텍스트가 많이 번역되어 대중적인 관심이 보부아르의 철학적 측면보다는 사생활, 특히 연애관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동지적 연애를 꿈꾸었던 당대 여성들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러면서도 이 시기에는 「위기의 여자」 외에도 여성의 억압적 현실, 특히 핵가족 제도 내부에서 구성된 허위의식을 비판하는 텍스트도 번역된다. 그만큼 당대의 (핵)가족 제도와 미풍양속이라는 전통 관념의 억압에 대응하는 여성들의 의식이 변화했던 것이다. 「위기의 여자」에서 보부아르는 여성 스스로가 억압적 현실을 인식하고 존재론적 자각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매우 냉정한 시각에서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위기의 여자」의 베스트셀러화는 이 텍스트가 불륜이라는 소재를 통해 중년부부의 위기라는 흥미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모니끄가 존재론적 자각을 이루기까지 직면해야 했던 처절한 상황에 당대 여성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또한 ‘불륜’에 유난히 분노했던 당대 한국 여성들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여성들은 가부장제의 전통과 현모양처 이데올로기, 핵가족 제도의 모순 속에 개별자들간의 관계가 아닌 남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성의 증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동지적 사랑을 동경하면서도 보부아르가 기획했던 부조리성을 깨닫는 개별자로서의 여성의 존재론적 자각은 제대로 수용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보부아르의 텍스트 중 「위기의 여자」는 여성주의적 시각을 전유하기 시작한 지식인 여성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다. 이를 볼 때 여성주의적 시각을 전유했던 지식인 여성 혹은 여성작가들과 「위기의 여자」를 읽었던 여성들 간 존재론적 성찰의 온도차는 아직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이러한 여러 다양한 번역의 진폭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텍스트가 한국 여성주의 문학 발전에 하나의 기준점이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이 논문은 버틀러의 문화번역에 나오는 ‘경쟁하는 보편성’과 ‘수행적 모순’의 중요성을 고찰하고 영국 여성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1929)과 중국계 미국 여성작가 맥신 홍 킹스턴의 『여인 무사』(1976)을 경유해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1998)에 나타난 보편 여성 주체에 대한 문화번역의 정치성과 윤리성의 접합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울프가 여성 해방의 조건으로 제시했던 ‘돈’과 ‘방’의 의미를 중심으로 근대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인권에 관한 보편적 주장의 의미와 힘이 형성되는 이 세 텍스트의 수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에서 버틀러의 문화번역 논의를 탐구하고자 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우선 보편성에 대한 어떤 주장도 문화적 규범과 별개로 발생할 수 없으며, 국제적인 장을 구성하는 경합하는 규범들의 배열을 생각한다면 그 즉시 문화번역을 요구하지 않고는 보편성 주장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런 ‘경쟁하는 보편성’에 대한 번역 없이는 보편성의 개념 자체가 자신이 넘는다고 주장하는 언어적, 문화적 경계를 넘을 수 없다. 경쟁하며 중첩되는 보편주의를 판정하고 구성하는 가운데 다문화주의의 정치성은 번역의 정치로 이해될 수 있다. 두 번째로 특수성의 보편성으로의 동화는 그 흔적, 즉 동화불가능한 잔여물을 남기는데 이것이 보편성을 스스로에게 유령적이게 만든다. 문화번역의 과제는 바로 이런 보편성안의 유령 같은 특수성이라는 ‘수행적 모순’을 필요로 하며 내부에서 보편자로 말할 권한이 없지만 그 용어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다. 번역이 헤게모니 투쟁이 되기 위해서는 배제되고 주변화된 이들이 지배담론 안에서 보편성을 주장하고 지배 담론이 외래 어휘를 자국어 사전에 수용하면서 지배 담론 자체가 변화해야 할 것이다. 『자기만의 방』과 『여인 무사』를 통해 「뮬란」에 재현된 ‘돈’과 ‘방’의 변화된 문화 번역은 ‘경쟁하는 보편성’과 ‘수행적 모순’의 관점에서 정치학과 윤리학을 연결할 가능성을 밝힐 수 있다. 버틀러의 문화번역은 창의적 틈새와 격렬한 운동으로 경쟁하는 보편성을 다시 무대화하여 규제적 규범과 법을 수행적으로 재의미화하고 재발화할 수 있다. 번역의 틈새는 나의 외부에 있는 것과의 접촉, 즉 탈아적 관계성의 매개이자 한 언어가 다른 언어를 만나 타자와의 접촉이 발생하는 윤리적 장면이다.
This study examines the significance of 'competing universalities' and 'constitutive contradiction' in Judith Butler's 'cultural translation' and explores the possibility of overlapping between politics and ethics of the cultural translation in the female subject of Disney's animated feature Mulan(1998) through A Room of One's Own(1929) by Virginia Woolf and The Woman Warrior(1976) by Maxine Hong Kingston. For this it investigates the task of Butler's cultural translation in the various rhetorical and cultural contexts of the three texts in which the meaning and force of universal claims of human rights of women as modern subjects are made, focused on the meaning of 'money' and 'a room' that Woolf suggested as requirements of women's liberation. According to Judith Butler, no assertion of universality takes place apart from a cultural norm and no assertion can be made without at once requiring a cultural translation given the array of contesting norms that constitute the international field above all things. Without the translation of 'competing universalities', the very concept of universality cannot cross the linguistic and cultural borders it claims to be able to cross. The politics of multiculturalism could be understood as a politics of translation in the service of adjudicating and composing a movement of competing and overlapping universalities. Secondly, assimilation of the particular into the universal leaves its trace, an unassimilable remainer, which renders universality ghostly to itself. The task of cultual translation is one that necessitated precisely by the 'performative contradiction' of the ghostly particular, the spectral doubling in the universal that takes place when one with no authorization to speak within and as the universal nevertheless lays claims to the terms. For the translation to be in the service of struggling for hegemony, the dominant discourse will have to alter by virtue of claiming universalities of excluded and marginalized particular ones in the discourse, admitting the foreign vocabulary into its main lexicon, and changing the dominant discourse itself. Transformed cultural translation of 'money' and 'a room' represented in Mulan through A Room of One's Own and The Woman Warrior can shed light on the possibility of connecting the politics and ethics and broaden the horizon of cultural translation in terms of 'competing universalities' and 'performative contradiction'. By creative chasms and violent shuttling, Butler's cultural translation can restage competing universalities and lead to performative re-signification and re-articulation of regulatory norms and laws. The chasm in translation can become the condition of contact with what is outside me, the vehicle for an ec-static relationality and the ethical scene where one language meets another and contact with alterity happ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