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 논문에서 조선후기, 특히 19세기 여성 관련 자료를 대상으로 가장의 역할을 한 여성의 행위와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았다. 가장은 가산 관리와 가족 통솔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지만, 사대부 남성 가장은 성정의 우활함이나 청렴한 덕을 강조하면서 가정의 살림을 돌보지 못한 회한을 토로할 뿐이다. 남성 가장을 대신해 여성은 실제로 생계를 책임지는 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여성 생활사 자료에서는 여성 노동의 가치와 치산 능력, 인력 관리 능력이 적극적으로 평가되는데, 이 때, 여성 가장의 미덕이 전통적 부덕(婦德)의 양상과는 배치되는 지점이 생겨난다. 남자, 군자(君子), 성인(聖人)과 비교되는 여성 가장의 치산 행위는 근대적 가치인 계획성, 정확성, 효율성의 가치와 접목되면서 여성 성역할의 영역을 긍정적으로 확장시켰다 하겠다.
I have considered the aspects of women's behavior as a matriarch on the 19th century women's daily life history materials. The patriarch is responsible for managing the family property and leading the household members, but the noble patriarch has donenothing but repenting of his own irresponsibility as a patriarch standing on the thoughtlessness(迂闊), the integrity(淸廉). In place of the noble patriarch, the mistress of a house becomes the matriarch who bears the responsibility for living. In the 19th century women's daily life history materials, the value of women's labor and women's ability that manages the property and people are estimated positively. Therefore the matriarch's virtues in the 19th century have been in discord with the traditional womanly virtues(婦德). The matriarch's management of the property that is compared with a man, a man of honor(君子), a sage(聖人) is characteristic of the planning, the correctness, the efficiency as the modern virtue, that positively expanded the category of the women's gender role.
본고는 1950년대 전후 남성성의 탈구축 양상을 통해 남성성의 비수행이 지닌 정치적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전후 문단의 중진인 염상섭은 전도된 삼각관계를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의 역전을 보여준다. 『취우』,『대를 물려서』등은 여성 2명과 남성 1명의 역전된 삼각관계를 통해 남성성이 거래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때 남성주체는 기존의 연인과 새로운 연인(포식자 여성) 사이에서갈등하며,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한다. 이는 정치적 주체인 가부장, 국민으로 바로서지 못하는 멜랑콜리적 남성주체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세대의 대표주자인 손창섭의 「공휴일」, 「인간동물원초」, 「혈서」 등은 결혼에 대한 거부에서 더 나아가 이성애 제도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확장된다. 손창섭의 남성주체들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보여준다. 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언제든 남성을 거세할 수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적으로 형상화되는 범죄자, 잉여인간, 동성애자 등의 남성주체는 동성사회를 동성애적 사회로 만들며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중심축을 뒤흔든다.
This article aims to explain the de-construction procedure of masculinity in Korea. In 1950’s Korea, building a family wasconnected to reconstruct the nation. People wanted to have a great father and well governed family. But Yeom shows the gender reverse through the love triangle of 2 women and 1 man. In this triangle the man are sexually objectified by the women. The melancholy of men chose not to choose a wife. And the masculinity was objectified by the narrative. Son deprived the nation-narrative from the marriage-seekingnarrative. Son’s male figures are afraid of female sexuality, anddeny the hetero sexuality. This is because they think femalesexuality can castrate them. Son’s national criminals makehomosocial society become homosexual society, so the hegemony ofmasculinity could collapse.
1980년대 실제 남성 관객들에게 성인으로의 입사 체험, 해방과 탈출로서 기억되는, 1980년대 에로영화들은 위기의 남성성이라는 남성 정체성의 특수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담론이다. 에로영화는 성적 욕망과 관련한 분열적 남성 주체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이러한 분열성을 극복, 재건하기 위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표면적으로는 남성다움과 남성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에로 영화의 구조적 비약과 불균형을 만들기도 한다. 분열적 남성주체의 모습은 대체로 성적 좌절을 수반하는 훔쳐보기, 역전된 남녀관계, 여성의 능동성 등을 통해 묘사된다. 에로영화는 섹스를 즐기는 남성보다는 섹스로부터 배제되거나 소외된 남성의 시각을 통해 내러티브를 전개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남성의 망상이나 폭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에로영화는 이러한 남성성의 분열적 모습을 지우고 남성성을 재건하는 방향으로 결말을 짓는다. 남성성 재건의 양상은 몇 가지의 패턴으로 나눌 수 있다. 불법적, 폭력적인 섹스 즉 나쁜 섹스를 구별짓고 이를 사회비판이라는 시각을 통해 묘사하는 것 그리고 구원자, 보호자로서의 남성 역할을 회복하는 것 마지막으로는 도시과 문명 세계를 훼손의 공간으로 그리고 고향과 자연, 비문명의 세계를 치유의 공간으로 묘사한 뒤 고향과 전통을 회복시키는 주체로서 남성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영화 전반에 묘사되는 성적 쾌락을 처벌하면서 내러티브를 가부장제의 가치관으로 통합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에로영화는 결국 과장된 성욕을 묘사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이를 즐기게 하다가도 이러한 쾌락을 가부장제의 가치관 속으로 다시 밀어 넣고 쾌락을 만드는 섹스들을 어느 순간 나쁜 섹스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가부장제에 의해 용인되는 건전한 남성성을 재건하게 된다. 1980년대 에로영화의 구조는 이렇게 성적 쾌락과 자기 처벌 그리고 비판 의식 사이를 모순적으로 오가면서 위기의 남성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나타난 이른바 조폭영화의 주된 경향은 남성 주인공들의 때 이른 죽음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영화들은 대개 갓 입사(入社) 단계에 접어든 청년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들이 진입할 세계는 남성 동성사회적 원리에 따라 운용된다. 가부장적 젠더 동학의 핵심인 동성사회성은 강력한 동성애 혐오를 내세움으로써 동성애와의 연속성을 억압한다. 그러나 조폭영화에서는 억압을 위한 안전장치인 여성의 역할이 현저히 축소되어 있어 남성 인물의 동성사회적 판타지가 한층 뚜렷이 드러난다. 청년 남성들은 억눌린 동성애적 욕망 뿐 아니라 가족 로망스로서의 성격까지 지닌 이 판타지로 인해 여성화되고, 결국 시스템에 대한 부적응자로서 죽음을 맞는다. 조직폭력의 세계에 입사한 청년들이 속한 세계는 필름누아르 스타일의 비정한 도시 공간으로 시각화된다. 그들은 순진한 가족주의에 입각한 유대가 더이상 불가능해진 누아르적 세계에 자신들이 속하게 되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향수의 정서와 연결된 멜로드라마적 감정 과잉의 태도를 보인다. 따라서 청년들의 죽음은 시대착오적 인식으로 인한 낙오이자 처벌이 된다. 그러나 이 죽음들은 오염된 세계에의 편입을 거부하면서 진정성과 순수함을 내세우는 ‘요절’로서의 속성을 동시에 지니면서 양가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1990년대 후반기 조폭영화에 나타난 남성들의 죽음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작을 맞닥뜨린 청년들이 지녔던 감정의 구조가 누아르적 세계에 대한 멜로드라마적 인식을 통해 영화화된 사례인 것이다.
The main trend of the so-called ‘Jopok’ movie(Korean gangster movie) that appeared during the financial crisis around 1997 can be summarized as untimely deaths of heroes. These films usually begin with a scene where a young man just joins a gang and the world he is entering is operated by the principle of male homosociality. As the key of the patriarchal gender dynamics, homosociality suppresses his continuity with homosexuality by claiming strong homophobia. Yet, in ‘Jopok’ movie, the female role as a safety device for the suppression is remarkably reduced, so the male characters’ homosocial fantasy appears more clearly. Young men are feminized due to this fantasy characterized by a suppressed homosexual desire and even a family romance, and encounter a death as ones maladjusted to the system. The world to which the young men who entered a world of organized violence belong is visualized as a cold-hearted urban space in film noir style. They do not realize that they came to belong to a noirish world where fellowship based on naive familism had no longer been possible and show an excessive emotional melodramatic attitude connected to the feeling of nostalgia. Thus, the young men’s deaths are a fall and punishment due to their anachronistic recognition. Yet, these deaths create ambivalence characterized by ‘premature deaths’ by which they insist on authenticity and purity refusing to go into the polluted world. In other words, the young men’s deaths in the films in the second half of the 1990s are cases of the cinematization of the structure of feeling they came across the beginning of the neoliberal era through their melodramatic understanding of noirish world.
한국에서의 홍콩영화 수용은 1967년을 기점으로 한다. 1967년 개봉해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둬들인 호금전의 「방랑의 결투」 이후, 홍콩산 액션영화는한국영화 시장에서 지속적인 흥행 성과를 거둬들였다. 특히 이 영화들은 계급,젠더, 세대별로 분화되기 시작한 1970년대의 한국영화 환경 속에서 도시 하위계급 남성이라는 특정 소구층을 대상으로 하였다. 1970년대 영화산업의 급격한 침체와 국가의 과도한 통제에 직면한 한국영화계는 이 안정적인 상품과 결합하기를 원했다. 1970년대 내내 문제가 되었던 ‘위장합작’은 이러한 시장의요구에 따른 결과였다. 본 논문에서는 1970년대의 홍콩영화 수용과 위장합작, 1973년 시작된 전세계적인 이소룡 붐 속에서 만들어진 한국산(혹은 이미 국가적 귀속이 불분명한) 아류영화들을 대상으로 내셔널 시네마의 규정 혹은 범위를 이미 초과하는 사태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동시에 이들 영화에 등장하는 단련된 신체는 산업화, 특히 중공업과 관련있다. 즉 이 홍콩산 권격영화, 혹은 그에 영향받은 아류영화들은 당시의 중화학 공업 과정에서의 신체에 대한 선호의 무의식을 보여줄 뿐 아니라 신체적 한계에 따른 무의식적인 위기와 저항감을 또한 표현한다. 1970년대 일련의 액션영화의 지속적인 등장을 가능하게 한 이 하위계급 남성의 ‘취향’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하에서 한국이 담당하고 있던 역할과 상응하며 동시에 이 영화들의 전세계적 공통 계급의 ‘소비’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Hong Kong Cinema was imported to South Korea from 1967. Ever since King Hu’s Come Drink With Me attained an unexpected success in 1967, Hong Kong action films had achieved a continuous box office hit in Korean film market. In particular, these films targeted a certain stratum of urban lower-class males in the Korean film environment in the 1970s that was about to be divided into classes, genders, and generations. In the 1970s, the Korean film field encountered a rapid industrial recession and the government’s excessive regulation, thus relying itself on the combination with this stable product of Hong Kong action films. Camouflage Collaboration, which became problematic all the 1970s, was the consequence of the Korean film market’s demand. This paper examines the definition of national cinema or the situation that already exceeds the boundary of national cinema, focusing on the imported Hong Kong cinema, its camouflage collaboration, and Korean - or, already beyond this national boundary - formula films that were made in the world wide Bruce Lee boom from 1973. In the meantime, I determine that the characters’ trained corporeal representations in the films are associated with industrialization,particularly with heavy industry. That is, these Hong Kong martial arts films or their related formula films in the 1970s do not only reveal the unconsciousness of preferable body for heavy chemical industry, but also presents another unconscious crisis and resistance to physical limitation.
본고에서는 「세경본풀이」가 제주도의 신화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텍스트에 나타나는 농업관(농경관, 농업의식, 농업에 대한 인식)을 중점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세경본풀이」에 대한 연구는 자청비가 가진 일반 농업신적 면모를 설명하는 데 할애되었다. 그러나 「세경본풀이」에는 자청비 외 두명의 신이 더 있으며 이들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텍스트의 지엽적 사실이나 모티프보다는 구조에 초점을 두면서, 개별 사건을 전체 속에 위치시키는 통합적 구조와, 인물들의 상징적 의미를 탐구하는 계열적 구조를 살펴보았다. 통합적 구조의 특징은 문도령과 자청비의 만남-혼인의 서사에 정수남의 죽음-재생의 서사가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도령과 자청비의 만남, 반복되는 이별-재회, 혼인의 서사 즉 결연담은 탄생-좌정의 중심 서사이다. 자청비와 정수남의 서사는 문도경과 자청비의 이별-재회의 중심 서사이다. 따라서 「세경본풀이」의 통합적 구조는 문도령-자청비 서사와 자청비-정수남의 서사로 이루어진 이중적 구조로 볼 수 있다. 계열적 구조에서는 이들 관계가 상징하는 바를 탐구하였다. 이들 관계는 모두 불안정성에 기초하는데, 문도령-자청비 관계는 소통의 일방성으로, 자청비-정수남의 관계는 조건적 상호성으로 인해 그러하다. 나아가 본고는 그러한관계들이 제주도의 농업 현실에서 환기하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세경본풀이」는 제주도 농업의 특수성에 대한 담론이기도 하다. 기질적 척박함, 기후조건의방해, 목축의 번성 가능성 등 현실적 의미들이 활성화되는 것은 「세경본풀이」에서 주체들의 분리와 이들 관계의 불안정성에 기인한다. 하늘의 일방성과 야생의 전복 가능성 등 신들 관계의 불안정성은 제주도에서 농사에 대한 문제적상황을 환기시킨다. 이 상황에서는 일방성을 상호성으로, 야생의 전복가능성을복속가능성으로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하늘과땅, 목축과 농업의 부조화를 조화롭게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이기도 하다. 「세경본풀이」를 통해 구성되는 제주도 농업관에는 농업 환경의 “인위성(人爲性)”혹은 “작위성(作爲性)”과 그로 인한 농사의 “고단함”이 나타난다.
본 연구는 고정희가 전 생애에 걸쳐서 천착해온 여성주의 창조적 자아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한국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사회문화적 담론이 그의 다양한 글쓰기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의 시 창작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48년 해남 농가에서 출생한 고정희는 유년시절과 독학으로 공부한 청소년기, 그리고 『월간 해남』 기자를 거쳐 1970년 광주 YWCA에서의 프로그램 간사,1975년 한국신학대학 입학, 1979년 <목요시> 동인활동을 거치면서 자신의 창조적 자아를 다방면으로 훈련해 나갔고 문학적 역량을 축적해 나갔다. 그러나1980년 5월 18일 광주항쟁이후 그의 창조적 자아는 이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변화 발전해 나갔다. 특히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약 7년 동안 창립동인으로 참여한 [또 하나의 문화] 1)활동은 그의 여성주의 의식을 발전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고정희는 1987년 또문 동인지 3호 『여성해방의 문학』 좌담에서 여성문학가들에게 “문학적 수업과 페미니즘 의식을 동시에 길러가는작업”이 요구된다고 주장하였다. 1991년 6월 8일 생애 마지막 공식 자리인 [또 하나의 문화] 월례논단에서고정희는 자신이 기독교, 민중, 여성이라는 세 개의 주제를 껴안고 씨름했다고말하였다. 그 결과 이 세 주제가 하나로 융합되어 한국문학사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모성-신”을 제9시집 『광주의 눈물비』 제2부 「눈물의 주먹밥」에서 “어머니 하느님”이라는 혁신적인 상징기호로 창조해냈다. 따라서 “어머니 하느님”은 고정희의 시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세 개의 화두, 수유리(기독교), 광주항쟁(민중), [또 하나의 문화](여성)이 하나로 어우러져 고정희 여성주의 창조적 자아가 닻을 내린 지점의 형상화이다. 고정희의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수많은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이는 고정희가살아온 열정적인 삶의 태도, 고행의 수도승을 닮은 삶의 방식, “어머니 하느님”을 창조해 낸 혁신적인 시적 상상력 등이 우리들에게 끼친 영향의 결과이다. 이러한 그의 여성주의 창조적 자아의 발전과정은 1980년대 한국사회의 다양한 사회운동과 사회문화적 담론의 산물이며 그 결과 한국문학사에서 고정희를 여성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또 개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본고는 신여성과 소문의 관계에 관한 연구가 소문에 대항하는 여성주체의 개별적 반응에 집중함으로써 저항적 차이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야 한다는 전제하에 송계월의 소문 대응 양상에 대해 고찰하였다. 일반적으로 송계월은 개벽사 여기자, 여류문인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 이력과 함께 미모의 여기자, 동료 문인과의 연애담, 처녀 출산, 갖가지 억측과 소문에 시달리다 요절한 것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온갖 소문에 시달리면서 자책하고 절망하였다는, 결과론적으로 죽음을 논할 때 송계월이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여기자로서, 여류문인으로서 얼마나 전투적이고 역동적으로 살았는지에 대한 삶의 태도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에 본고에서는 송계월의 삶의 태도를 기저로 소문에 대응하는 양상을 고찰하여 송계월의 삶과 문학을 좀 더 적극적이고 생산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송계월이 소문에 강경하게 대응한 것은 이미 여학교 시절 ‘함경도 기생’이라는 소문에 고통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소문에 대응하는 송계월의 반박이 과도한 신경과민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사건에서부터 소급되어야 할 것이다. 송계월은 오랫동안 소문에 노출되어 큰 고통을 받았으며 두 번째로 소문에 휩싸이자 적극적인 반박과 공격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송계월은 자신과 관련한 소문을 평론의 형태로 저항한다. 소문 생산의 가치,우열, 선악을 비평의 영역에서 다룸으로써 소문의 반박이라는 일차적 목적을 넘어 소문의 생산자인 데마고그(Demagogue)와 상업주의적 저널리즘을 비판한다. 이는 송계월이 직업적 경험으로 데마고기(Demagogy)가 제작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자신과 관련한 소문이 개인적 목적과 선동을 위한 데마고기였다는 사실, 데마고기의 생산자를 실명화 하여 공론화된 소문의 재생산을 차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송계월의 정치성이며, 이러한 변전(變轉)을 통해 도덕적 책임의 소재를 전환시킬 수 있었다. 소문의 생산자에게 직접적인 공세를 벌임과 동시에 소문을 가십이라는 이름으로 잡지에 실은 부르주아 저널리즘을 비판함으로써 황색저널리즘(Yellow journalism)과 소문의 생산자에게 저널리즘적 양심과 윤리적 책임을 제기하는 것이다. 소문이 대상자가 아닌 실명의 생산자(저널리즘,유포자)에게로 되돌아감으로써 송계월은 소문을 수사학이 아닌 정치학으로 쟁점화한 것이다. 이처럼 추문에 대항하는 독특한 대응방식은 송계월의 강렬한 주체성과 저항성, 결벽성을 반증하며 그녀의 삶과 관련하여 작품을 좀 더 적극적으로 재해석해야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 논문은 1950년대 『여원』이 실었던 연재소설들을 대상으로 하여, 당대 여성 문화와 교양담론을 선도해 나갔던 『여원』의 연애 담론이 소설로 구현된 양상을 검토함으로써 戰後 연애 담론의 현주소를 밝히고, 1950년대 『여원』 연재소설을 역사적으로 의미화하고자 한다.『여원』의 기사와 칼럼들은 해방 후 대중화되기 시작한 연애의 자유에 대한 관념을 결혼과 굳게 결부시키고, 성, 사랑, 결혼이 하나의 관계 안에 행복하게 일치하는 낭만적 사랑을 이상화함으로써 여성을 가정적 존재로 정체화하고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재확립하고자 했다. 『여원』의 연재소설들은 낭만적 사랑을 이상화했던 연애 담론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재생산하는 담론 창출의 장이었다. 1950년대『여원』에 실린 연재소설 총 14편 중 13편이 사랑과 결혼의 문제를 다루었으며, 그 중 시대물과연재 중단물을 제외한 9편이 청춘남녀의 사랑의 갈등을 고난 극복의 드라마로그리면서 명증한 선악의 구도를 통해 성, 사랑, 결혼이 일치하는 윤리적 관계를 바람직한 사랑의 모델로 견인해 나간다. 그러나 소설은 담론의 경향을 반영하면서도 또한 담론의 이상 안에 내재한 모순을 들추어내고 담론의 정향성에 균열을 빚어냈다. 「방초탑」이 동양적 윤리의 우월성을 암시하면서도 서구적‘자유’를 과잉 이해하는 동경의 심리와 전통 회복의 의지 사이에서 유동하는당대인들의 동요를 노출하고 있었다면, 「현가」는 한 번 결정된 마음의 정향에운명적 숭고성을 부여하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집착을 극도의 정신주의적인금욕의 세계로까지 이끌어간 결과, 정신주의가 추구하는 완전한 평화와 해방의 끝점은 죽음과 같은 것임을 노출하는 역설적 결과를 보였다. 이와 궤도를달리하여, 「후조의 귀로」는 성적 욕망에 굴복하는 비규범적 사건을 통해 규격화된 낭만적 사랑이 실패하는 지점을 드러내고, 사랑의 새로운 의미가 탐구될수 있는 진공을 개방했다. 이처럼 연애의 자유가 촉발하는 욕망의 질주, 정신적 사랑과 금욕주의, 섹슈얼리티의 유혹 등을 면밀하게 묘사하는 가운데 『여원』의 연재소설들은 담론이 정향하는 사랑의 규범을 일정하게 추구하면서도동시에 그와 같이 정향된 규범에 균열을 가하는 비규범적 욕망과 이해를 노출했다. 그런 점에서 『여원』의 연재소설은 이론적이고 담론적인 형태로 제출된낭만적 사랑을 실제 생활의 영역과 접속시켜 사고하고 실험하는 가운데, 담론과 배치되는 당대인들의 동요와 불안을 드러내고 낯선 사랑에 대한 상상으로부터 빚어지는 실존적 욕망과 방어의식을 함께 노출했던 문화적 구성물로서그 역사적 위상이 새롭게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In this paper, I searched how the discourse of love reflected in the serial novels in the women's pop magazine Yeowon in the 1950s. After the Korean war, the traditional marriage system was significantly criticized and the free love discourse of the colonial times became to be regularized for the mass beyond the restriction of the intellectuals. Along the trend of free love discourse, columns and articles in Yeowon combined love into marriage tightly in that they tried to idealize romantic love which combines love, marriage and sexuality together in one relationship, and this combination made it certain that a woman was a being of a domestic area and supported the re-establishment of the traditional patriarchal system. The serial novels in the women's pop magazine Yeowon in the 1950s reflected and reproduced the love discourse of the magazine. However, serial novels also made a fissure of the discourse in diverse ways. The Washington Monument(Bangchotap) exposed the disturbance of intellectuals of the days who were floated between the will to reconcile with the tradition and the will to be westernized while over-understanding the western love philosophy. A Song of a String(Hyunga) revealed a paradoxical result that the end of platonic love was nothing but a status of death when it lead romantic love into asceticism. The Return Trip of a Migratory Bird(whojo-ui guiro) opened a vacuous hollow to investigate new meaning of love when it revealed the fail of romantic love by disclosing one’s sexual desire with an unexpected incident.
본고는 정연희 자전소설인 『고죄』와 『비를 기다리는 달팽이』를 대상으로 ‘불륜’ 문제를 담론화하는 방식을 탐구하였다. 1960, 70년대 사회적 일탈 행위이자 사회적 혼란의 주범으로 탄핵받았던 ‘불륜’이 여성의 시각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규명하고자 한 것이다. 작품의 담론은 여성의 불륜을 부적절한 정념으로 처벌하거나 가정으로 회귀할 것을 강요하는, 일반적 불륜 담론의 훈육적 계몽성을 따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혼의 정당한 사유와 새로운 사랑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남편의 비정상적인 외도와 무책임한 방탕으로 인해 이혼은 아내의 정당한 선택적 결단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혼녀를 가정 파괴의 부정녀로 비난하는 윤리적 처벌로부터 스스로를 구제한다. 60, 70년대 낭만적 사랑에 구조화되어 있는 성차별과 가부장적 폭력성이 문제가 되는 것인데 불륜의 사랑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남성은 개인적 소유물로 여성을 인식하고 육체의 순결성만 강박적으로 강요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비극적 파탄을 맞게 된다. 여기에서 비극성의 원인을 감성에 둠으로써 정념을 단속하는 보수적 규율 담론과의 외연적 일치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이공격하는 대상을 여성의 육체나 정념이 아닌 억압성을 바로 인식 못하는 맹목성에 둠으로써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작품은 피흘림을 통해 도덕적 자책감과 훼손에서 벗어나게 함은 물론 사회적 활동을 통해 주체적 자아 성취의 길을 제시한다. 이러한 피흘림의 장치는기독교적 상징 서사를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죄의 고백을 통해 절대자의 시선으로 들어가는 순응적 회귀보다는 분노와 항의를 강하게 표출함으로써 지배적 구조의 모순에 대한 항의를 표현하고 있다. 이들 작품의 혼외 사랑이야기는 사랑의 구조에 내재된 차별성을 공격하고 고난을 통해 자아 정체성을 회복하는 여성 주체의 성장을 재현함으로써 보수적 불륜담론의 훈육성을 훼파하고 있다.
박완서의 소설에서 ‘남편’은 당대 사회 문화적 가치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일상적 삶의 우위성을 강조할 때는 물론, 부조리한 삶의 양태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경우에도 남편은 주요한 매개로 등장한다. 남편의 표상이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이상적 남성성의 변화에 기인한다. 요컨대, 박완서는 남성성의 구성과 재구성을 남편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소설에서 남편은 세속적 근대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당시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경제적 능력을 갖춘 남성이었고, 박완서는 이러한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80년대 소설에서 남편은 여성주의 운동의 적(敵)으로 등장한다. 가부장적 권력으로써 여성을 종속하고 통제하는 남편을 통해 작가는 불합리한 젠더 규범의 모순을 직시하였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에 등장한 성찰적 남성성의 사례를 통해 남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가치가 변화하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90년대로 들어서면서 남편의 모습은 다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특히 90년대 후반부터 남편의 표상은 윤리적 인간애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남성성의 변화는 박완서의 소설이 젠더 이분법의 해체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는 바로 박완서 소설의 젠더 정치성이라 하겠다.
이 논문은 한강의 소설에 나타난 여성 주체화의 방식을 우울증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내 여자의 열매」(1997), 『그대의 차가운 손』(2002), 및 『채식주의자』(2007)이다. 이들 작품의 중요 여성 인물로 등장하는 영혜, L, E 그리고 인혜의 서사적 의미를 통해 이들의 주체화 방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채식주의자』연작의 모태가 된 「내 여자의 열매」를 통해 여성의 주체화와 구조적 폭력과의 관련성을 살펴보았다. 「내 여자의 열매」의 여성 인물인 ‘아내’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이 글에서는 여성 주체가 앓는 고통의 알 수 없음을 비가시성을 특성으로 하는 구조적 폭력과 관련지어 해석하였다. 특히 이 구조적 폭력에 대한 복종과 거부의 복합적 관계 속에서 여성의 주체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계의 양상은 『그대의 차가운 손』과 『채식주의자』의 바탕에도 깔려 있어 각 작품의 여성 인물들을 우울증적 주체로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들 작품에 나타나는 폭식, 채식 및 거식은 우울증적 주체의 자기징벌적 양상과 관련된다. 더불어 이들 작품에 나타나는 공통적 양상인 여성주체의 피화자화의 의미도 함께 살펴보았다. 나아가 발화의 자격이 주어지지않은 여성 주체의 존재 방식이 어떻게 가면의 전략으로 드러나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이 글에서 다룬 우울증적 주체의 양상은 단순히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형성해가는 여성의 자기주체화 방식이다.
This study is aimed to figure out the method of feminine subjection described in Han Gang’s novels in relationship withmelancholia. For this, the following novels were investigated; ‘The Fruit of My Lady (1997),’ ‘Her Cold Hands (2002)’ and ‘Vegetarian (2007).’ In particular, it has attempted to examine the subjection mechanism through the narrative meaning of female characters in these novels (Yeong-hye, L, E and In-hye). First, this study has analyzed how the feminine subjection was correlated with seismic violence through ‘the Fruit of My Lady’ which was the matrix of ‘Vegetarian (2007).’ This novel described that pain and affliction which a woman couldn’t recognize on her own were formed in the relationship with seismic violence. Specifically, the author understood that it was correlated with paradoxical obedience which was formed in the process of acceptance and rejection or subjection. This kind of concept was also the basis in ‘Her Cold Hands’ and ‘Vegetarian.’ It was explained that characters were the base to form a melancholic subject. Then, this study has figured out how the melancholic pattern of a feminine subject in ‘Her Cold Hands’ and ‘Vegetarian’ was expressed. First, how binge eating, vegetable eating and anorexic eating were correlated with the self-punishment pattern of the melancholic subject was investigated. In addition, the meaning of the feminine subject as a narratee, which was found in all these novels, was analyzed. Furthermore, how the method of existence as a female subject which wasn’t authorized to speak was expressed as the strategy of masquerade was investigated. Through these discussions, Han Gang’s novels have revealed the typical pattern of feminine subjection because the pattern of melancholic subject handled in this study is not just a pathological symptom but the mechanism of self-subjection that a woman forms her identity in relationship with ruling ideology.
본 연구에서는 한국문학사에서 여성비평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한 1990년대 한국여성비평가들의 비평담론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19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한 김미현, 신수정, 최성실, 심진경을 그 대상으로 논의하였다. 1990년대 여성비평가의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한 비평을 비판적으로 파악하고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시각을 작품화한 여성작가를 적극적으로 조망하고 있다는 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오정희, 박완서, 신경숙, 은희경 등의 작가들에게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동시에 1990년대 여성비평가들의 차이점은 그들이 관심을 쏟는 문제의식과 연관되는데 김미현이 여성의 몸에, 신수정이 여성의 언어에, 최성실이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심진경이 모성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여성비평가들 안에서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김미현 비평의 핵심은 여성의 몸이며, 여성의 몸이 인어공주와 아마조네스의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생물학적 차원을 떠나 사회문화적인 구성물로 여성문학을 사유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작용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신수정 비평의 핵심은 여성의 언어이며,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남성의 상징적 언어체계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내부의 욕망을 ‘비명’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는 것임을 분석해낸다. 그 비명은 상징계 이전의 상상계의 언어이다. 신수정은 여성의 언어인 비명이란 억압되어 있는 자신만의 신생의 언어를 갈망하는 여성인물이 돌파구를 찾아가는 모습을 드러내거나 혹은, 혼동의 언어를 몸으로 체험하는 것임을 통해, 여성의 언어가 고통과 희열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최성실 비평의 핵심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로, 친밀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 가운데 숭고함을 추구하는 낭만적인 사랑과 에로틱함을 추구하는 열정적인 사랑으로 구분한 후 논의를 전개한다. 낭만적인 사랑이란 정신적인 부분을 메워주는 영혼과의 만남을 가정하나 기존의 제도와 쉽게 단절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열정적인 사랑이란 관능과 유혹의 극단을 치달으면서 욕망의 극단을 추구하지만 제도와 규범과 단절한 채 필연적으로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낭만적 사랑과 열정적 사랑의 이중성을 갖고 있다. 심진경 비평의 핵심은 모성으로, 모성을 생물학적으로 보는 시각이 모성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있다면, 모성을 사회 문화적으로 보는 시각은 모성이라는 실존적, 구체적 체험을 무시할 위험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비평가는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는 모성과 생물학적 모성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비평가는 모성은 억압과 해방의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여성작가들은 경험과 제도로서의 모성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모성적 세계에 이르는 길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한국여성비평가들은 여성들 간의 차이나 여성 내부의 분열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주체성과 고유성에 관한 관심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공통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문학사에서 1990년대 여성비평가들은 문단의 변방이 아닌 주류에서 본격적인 비평가로 활동하였다고 볼 수 있다.
문학과 영화의 매체적인 차이를 감안하면 영화로 전환될 때 가장 까다로운 문학 텍스트는 인간 내면의 추상적인 정신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시간에 따른 인물의 행동이나 자연 상태의 변화를 다루고 있는 서사가 아닌, 변화의 방향성이 모호하고 주로 1인칭 화자의 내면 독백적 서술을 통해 변화의 지점들을 제시하고 있는 문학 작품이야 말로 영화의 기호인 ‘표현적인외연’을 획득하기 가장 어려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1960년대 중반에 제작된 문예 영화 가운데 내면적 독백이 주를 이루는 손소희의 「그날의 햇빛은」 과 이를 영화화한 「초연」(정진우 감독, 1966)을 대상으로 고백체 소설이 영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서사의 구조적 변화를 고찰해 보았다. 원작에서 1인칭 화자의 심리적 변화에 치중되어 있었던 내적 독백들이 영화에서는행위를 통해 재현되는 구체적인 사건 제시로 전환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추상적 의미 전달이 용이한 언어와 즉물적 제시를 통해 의미에 도달해야 하는 영상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에 기인한다. 또한 소설에서 화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 변화에 따라 비계기적으로 연결되었던 서사 구성이 영화에서는 선조적 시간 구성을 따라 재배치되었다. 매체 전환 과정에서 일어난 서사 구조의 변화는 각 매체의 수용 방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독자의 이해 여부에 따라 텍스트 활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소설에 비해 집단적이고 일회적인 감상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영상 매체의 수용 환경이 이와 같은 시간 구성 변화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여성 화자가 대타자의 욕망에 자신을 종속시킴으로써 쾌락을 추구하는 히스테리적인 주체였던 반면 영화의 여성 주인공은 능동적인 욕망의 주체로서 구현되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시각적으로도 성적 매력이 강조되었지만 자신의 욕망에 좀 더 솔직하게 드러내는 인물로 그러진다. 이와 같은 변화는 극적 갈등을 더 적극적으로 유발시켜 대중적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동시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소설 속의 여주인공이 정신병원이라는 ‘비정상성’의 범주에 갇히는 결말에 도달했던 것과 달리 영화 속의 여성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에 대해 서사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결말의 차이에는 소설에서 여성 주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감독의 비판적 해석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Considering differences between the literature and the film, a literary text which focused on human inner state is the most tricky one when translating it into a film. That kind of literary work does not deal with actual events which have time, place and act so it lacks 'expressivité' which is main tool for most films. Son Sohee's short story The Sunshine on That Day has lots of confession - diaries and letters - which describes a female main character of the story which Jung Jinwoo's Gunsmoke (Choyeon) is based on. There are lots of structural differences between them some are caused by difference of media and some are intentionally created by the director of the film. Most event described in confession changed into scenes with actual actions. These changes are due to the intrinsic difference of media. The short story written mainly inoder of free association of the narrator who are confined in a psychiatric hospital because of mental destruction. The film choose arrange all the events in oder of time so that most audiences can easily understand the whole story. Considering 1960's media circumstance, it was nearly impossible for anyone to watch films freely and repeatedly in order to apprehend excessively complicated story. The changes in structures of each text are closely associated with receptive capacity of each medium. The changes in substance occured on the psychological state of the female main character. The narrator in the fiction who willingly surrenders her desire to the Other is described as a hysterical subject. However, the female main character in the film is more open to her own desire and persue her ideal -ego through the love affairs with male characters. She is somewhat sexually iconized on the screen but in the end she survived while the narrator of the fiction confine and narratively punished for sexual freedom. The active role of main character in the film dragged more attention of the public (which the success of the film score demonstrates). She also was the problematic character who made the society think over what the meaning of "prostitute" and the desire of women.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 일곱 편의 이야기가 전하는 동화」(1845)와 타마르 반 덴 도프 감독의 장편 극 영화 「Blind」(2007)는 「Blind」가 「눈의 여왕」을 모티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상호텍스트적인 관계가 있는 작품들이다. 두 작품은 모두 악마가 거울을 만들고, 그 거울의 깨진 조각이 사람의 눈과 마음에 들어감으로써 사람이 냉정한 태도로 아름다운 것을 추하게 보게 되었다는 진술로 시작된다. 이때 추하게 보이는 대상들은 대개 여성들이다. 이 논문에서는 ‘거울’의 주제학을 통해 인간과 미적 본질에 대해 사유해보고 인물 층위, 서술 기법과 매체의 층위, 서사 이데올로기와 결말의 층위에 따라 비유와 주제로서의 거울, 남성-여성의 상호적 관계, 문학-영화의 관계, 그리스 비극-기독교 서사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