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의 폭발적인 페미니즘 열기는 여성문학연구에 활기를 불러일으켰지만 문학연구의 ‘또 하나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혹은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문화상업주의와 맞물려 진행되면서 억압에 저항하고 여성의 인간다움을 지향하는 ‘여성해방’이라는 본래의 의도는 희석되어가고 있는 듯한 우려가 있다. 이제 한국 여성문학연구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고자 하는 자기 내부의 욕구에 직면한 시점에서 여성문학연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면 나아갈 길의 방향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역사적 연구를 통해 한국근대여성문학론의 복원과 재인식이 필요하다. 여성문학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자신의 현실의 문제의 역사를 캐고자 하는 많은 여성연구자들의 열정에 의해 역사적 연구의 성과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이는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에 의한 여성 경함 말하기로서 여성의 글쓰기에 주목한 나혜석의 입장이라든지, 남성중심 평단에 의해 변방화된 ‘여류’작가 논의를 비판하고 여성작가들의 성과물을 온당하게 평가한 여성 비평가 임순득의 비평활동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 여성의 억압받는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여성문학이론이 되어야 한다. 한국여성문학론의 출발은 우리 여성 자신의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했으나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의 유입과 함께 한국의 여성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론적 논의들이 융성하고, 여성이 1990년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구체적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대해서는 기피하는 경향을 낳았다. 왜 우리가 이곳, 이때에 여성문학을 논의하고 연구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셋째 한국의 여성 현실과 문학 현실을 대면하면서 방법론을 개척해야 한다. 1990년을 전후하여 외국의 페미니즘 이론이 물밀 듯이 소개되면서 한국의 여성문학의 현실과 동떨어진 논의들도 단지 그것이 새롭다는 이유로, 혹은 외국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이유로 수용되는 경향이 있다. 삶에서의 억압이 강고한 현실에서 그것의 구조를 캐고 해방을 지향하는 이론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기존의 현대문학사가 남성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남성 이데올로기의 담론적 제양상이 시대적 반영이라는 편향성의 요동을 상징한다고 하면, 이제 기존의 편향성은 새로운 문학사의 기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근대적 각성으로 출발된 한국 여성문학은 여성문인들에 의하여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로서의 사명감으로 문학을 그 방법과 수단으로 동원하였으며 삶의 의미를 자유에 두었다. 감미로운 시가 있는가 하면 불의에 항거하여 울분을 토하는 현실비판의 저항시도 있고, 여성의 한(恨)을 잇는 전통적 서정을 수용하기도 하였다. 1920년대의 여성시는 서정을 바탕으로 하는 허무의식과 비애감이라고 한다면 소설은 여성해방과 자유 연애사상을 그 주제로 하여 시와 소설이 매우 대조적이었다. 또한 시인과 작가를 함께 겸업하는 20년대 여성문학의 특성은 1930년대 소설에 오면서 시인과 작가의 뚜렷한 장르의 전문화를 보여준다. 여성문학사의 흐름과 그 특성은 남성과의 차별화이기보다는 경험적 증언을 바탕으로 한 차이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문학사의 또 다른 소외문화를 연구하고 정리하는 길이 우리 문학사의 올바른 정립이라고 본다.
모든 경험이 문학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성으로서의 경험은 글쓰기의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남성이 모든 것의 척도이며 그 척도를 만들어 내는 것도 남성이기 때문이다.” 여성작가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언어’는 이미 가부장제사회의 권위적인 체계를 그 안에 포함하고 있다. 산업화시기의 여성작가가 처한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었다. ‘경제성장’이 구호 아래, 의식의 보수화가 심각하였던 이 시기에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담아낼 언어가 없었다. 여성을 억압하는 각종의 사회장치들은 ‘낭만적 사랑’ ‘현모양처’라는 말로 포장되어 그들의 경험을 왜곡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씌어진 엿ㅇ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낭만적 사랑을 찾아 가정을 떠나는 여성의 등장이 그것이다. 가정은 그들의 정체성을 매몰시키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모티브는 작가와 작품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반복적이고 집단적인 목소리가 여성의 ‘욕망’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일탈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는가. 이는 여성에게 모순적으로 적용된 근대의식 때문이다. 근대화된 사회는 개인의 개성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사랑도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게 된다. 우리 근대문학의 초기에 나타난 자유연애 사상이야말로 이러한 근대의식이 소산이다. 이 시기 소설에 나타나는 낭만적 사랑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시기에는 자본주의의 비정상적인 성장과 더불어 근대화의 이념도 강화되었다. 핵각족화가 진행되면서 여성은 사적 영역의 전문가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되고 낭만적 사랑에 대한 기대도 강화된다. 하지만 이것이 허구이다. ‘낭만적 사랑’을 걸고 여성에게 ‘순결’과 ‘현모양처’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지만 가정은 텅 빈 공간에 불과하다. 남성은 생산을 위해 집밖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로 해서 이 시기 여성작가의 소설에서는 가정에서 이룰 수 없는 ‘낭만적 사랑’을 가정 밖의 절대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으로 도피시켜 추구하게 된다. 이 시기 활동하였던 한말숙 손소희 한무숙 박경리 강신재의 작품 속에서 이러한 행위구조들은 낯설지 않게 등장한다. 이러한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은 ‘순결성’과 ‘현모양처’의 이데올로기를 모두 전복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토대 위에서 창조된 인물들의 의식수준이나 행위방식은 당대 가부장제사회의 모순을 심도 있게 지적하는 데 도달하지 못한다. 한무숙의 「유수함」이나 「낙루부근」 같은 작품에서 이와 같은 저항의식과 한계를 살필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모순의 진정한 실체를 파헤치지 못하고 파편적, 감각적으로만 접근한 저항의식은 그 무모함 때문에 오히려 저항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가부장사회이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게 된다. 그들은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일의 행복을 말하는 반동적인 작가가 되거나 운명, 종교라는 비현실적 공간으로 도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한말숙의 「아기 오던 날」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되어 있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작가들의 ‘사랑’에 대한 집착은 새로운 주의를 요구한다. 90년대 문학에서 ‘집’의 존재 양식이 여전히 중시되고 있는 점을 주시한다면 산업화시기의 여성작가가 보여주었던 욕망의 모습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문학이 보여주는 친밀성에의 요구는 전복적인 혁명의 요소로도 읽혀질 수 있다.
제주도의 잠수는 다른 지역의 여성들과는 다른 일상의 유형을 띠고 생활한다. 잠수의 작업은 즉 물질은 시간적으로 물때를 맞추어야만 가능하므로, 대부분의 잠수들은 농사를 짓다가 간조가 되면 바닷가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하고 다시 만조가 되면 농사일 혹은 가사일을 한다. 이처럼 잠수의 일은 혼자서는 하기 곤란한 힘겨운 노동이기 때문에, 자연히 동료들과의 공동체 의식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된다. 민요도 이런 상황에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그 구연형태가 집단적읻. 물론 밭농사를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의 경우에는 상황이 이와는 구분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독창이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의 선입관돠는 달리 제주 잠수의 생활이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기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모습을 민요를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면, 기존 논의처럼 소위 ‘잠수노래’에만 관심을 쏟아서는 곤란하다. 밭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를 포함해, ‘시집살이요’니 아기를 돌보며 부르는 ‘자장가’에서도 우리는 그들의 삶과 그 지향점을 읽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제주 잠수들이 부르는 민요 가운데서 가장 특징적인 것이 ‘잠수 노래’와 ‘맷돌·방아 노래’다. 민요를 통해서 본 제주 잠수의 삶은, 우리가 관념적으로 상상하듯이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이들은 물에서 ‘놀이를 즐기는 것’ 아니고, 생계를 위해 험한 반다에 몸을 던지는 직업인의 모슴으로 우리에게 드러난다. 따라서 민요를 통해 드러나는 여성들의 삶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따라서 이들에 형상화되는 제주 잠수의 모습이 근면하고 진취적이고 강인하다 하더라도, 그 의미의 실질은 구분이 되면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제주 여성들의 가슴에는 한이 매무 골깊에 묻혀 있으므로, 그들의 민요 역시 어둡고 구슬픈 성격을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들의 진취적이고 강인한 정신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기능하는 것이다. 때문에 진취적이고 강인한 그들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설움과 힘겨움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현실과 무관하게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만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작용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주의의 구체적 실현이라는 목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글은 조선후기 국문 장편소설 가운데 여성소설의 태동과 존재를 둘러싼 사회학적 배경을 고찰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나아가 이들 소설의 역사적 의의까지 파악초자 했다. 본디 우리 민족은 여권 존중의 전통을 갖고 있었다. 비록 국가적으로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사회였지만, 실질적인 사회에서 제한적이나마 여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그래서 이를 기반으로 활달한 여성들은 매우 선진적인 활약상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이같은 전통은 고려 이해 조선 전, 중기까지도 비교적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나 조선 전, 중기의 유교식 제도정비에 따라 주자학적 가부장제의식이 점차 확산되고, 조선후기 예학의 발달과 당쟁으로 인한 문벌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주자학적 가부장제는 하나의 사회제도로서 정착되었다. 그 결과 모든 사회에서 여권은 말살된 채, 여성은 단지 남성위주의 사회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장편 여성소설은 이처럼 조선후기 주자학적 가부장제의 정착에 따른 여성사의 급격한 위축에 대응해서 태동한 것이었다. 그 결과 모든 사회에서 여권은 말살된 채, 여성은 단지 남성위주 사회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장편 여성소설은 이처럼 조선후기 주자학적 가부장제의 정착에 따른 여성사의 급격한 위축에 대응해서 태동한 것이었다. 또한 소설의 역사적 의의는 그처럼 질곡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 의식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비록 파편적인 형태일지라도 근대적인 여성해방의지까지 표출했다는 점에 있다. 결국 한국 여성주의 문학은 근대 이후 서구의 충격에 일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조선후기 주자학적 가부장제가 정착되면서 거의 동시대에 태동했다고 생각한다.
본 논문은 가부장제가 성리학적 이념에 의해 점점 더 강화되어가는 17세기 후반에 산출된 장편 소설 『소현성록』에 대한 여성주의적 연구의 일환이다. 이 작품은 사대부 남성작가의 작품들과 달리 소설 속 여성들의 형상이 매우 생동감있게 드러날 뿐더러, 당대 여성 현실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 속에 가장 큰 비중으로 존재하는 여성 인물들 각각의 분석을 통해서 그녀들의 힘, 주체적 성격 등을 살핌으로써, 외면적 주체인 효의 실천 외에 이 작품이 가지는 지향을 포착하는 데 이 글은 중점을 둔다. 먼저 여가장의 존재적 의미를 통해 여성의 능력과 힘을 살피고, 다음으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욕망을 추구하는 아내들을 통해 주체적인 여성의 면모들을 확인하며,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존립근거를 확보하려는 석파의 모습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고찰하는 것으로 본문은 전개된다. 이러한 분석 과정을 통해서 이 작품의 여성작가적 면모를 다시금 확인하고, 장편소설 속에 존재하는 여성들의 형상을 읽어내는 다양한 독법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마지막으로 가문소설과 가문의식에 대한 문제점들을 간략히 피력한다.
본고에서는 한국 근대에서 ‘사랑’이 전시대에 비해 어떻게 변모되고 제도로 정립되는가를 살펴보았고 아울러 근대적 사랑의 특징인 ‘낭만적 사랑’이 남성과 여성에게 어떻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가를 보았다. 전근대적 사랑은 공동체 윤리로서 법의 차원으로 미분화되어 성립하는 반면, 근대의 사랑의 논리는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개화기와 1910년대에는 전근대의 윤리관을 본질적으로 탈피하지 못한 연유로 ‘사랑’의 문제가 지식인들의 근대화 추구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계층은 생득적으로 형성되었고 따라서 결혼제도 또한 이 생득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철저한 중매혼, 집안 대 집안의 결혼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개화기 이후 천부인권설의 역설 교육의 보급으로 양반/상민의 계급 구분은 와해되고 귀족적 지위가 후천적 능력에 의해 획득되는 근대사회가 형성된다. 지식인계층은 이렇게 형성되었으며 낭만적 사랑에 의거한 자유연애 결혼은 이들이 채택한 새로운 결혼제도였다. 그리고 이들의 이데올로기를 이론화시킨 대표적 인물이 이광수였으며, 그는 과거 양반들의 성적 욕망의 체제 및 방식, 혈통유지를 위한 혼인과 욕망 해결을 위한 기생계층의 이용을 철저히 비판함으로써 지식인계층에 걸맞는 성적 욕망을 재정립할 토대를 만들고 있다. 이때 사랑은 지극히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데 남성과 동일한 근대교육을 받은 여성은 결혼 전에는 남성의 연애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양과 자질을 갖춘 존재로, 결혼 후에는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는 어머니로서의 존재로 규정된다. 이 이데올로기는 「무정」에 잘 드러나 있다.
많은 평론가들은 사회와의 단절과 그로 인한 자아분열, 그리고 현실과 화해하지 못함으로써 야기되는 왜곡된 감수성과 불모의 육체성, 심리적 불안정 등을 오정희 소설의 주요 모티프로 지적한다. 그리하여 오정희의 소설세계는 친숙함과 안정의 장소가 아닌, 일탈, 혼동, 낯섦의 장소로 인식되며 사회화과정을 수반하는 성장소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정희의 유년기 소설을 성정소설로 보기를 주저하는 이 같은 논의들의 이면에는 공통적으로 오정희 소설의 토대가 되는 특성을 여성성으로 보고 이러한 여성성을 사회적인 것이 부재하는 것을, 즉 현실의 사회, 역사적인 측면이 배제된 채 사적인 것만이 존재하는 영역으로 해석하는 태도가 깔려 있다. 이 논문은 오정희 유년기 소설을 성장소설의 한 형식으로 보고, 그것의 의미를 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정희 유년기 소설에서 여자아이들은 모성 거부를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이는 여성의 육체를 모성적인 것에만 한정하는 가부장적인 질서에 대한 부정임을 함의한다. 아울러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격변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새로운 사회 질서인 자본주의적 경제논리를 통해서 다시 한번 왜곡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 논문은 90년대 한국문학이 거둔 최대의 성과로 볼 수 있는 최명희의 『혼불』에 나타난 가족-모티프의 풍속화 방식을 죽음ㆍ결혼ㆍ탄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혼불』은 3대의 여성을 중심으로 한 매안 이씨 가문의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한가문의 흥망성쇠가 탄생과 결혼 그리고 죽음이라는 개인의 의식과 그 가문을 둘러싸고 있는 이웃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 『혼불』은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매안이씨 가문의 영고성쇠가 구축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과 결혼 그리고 새로운 탄생은 『혼불』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혼불』에서 이러한 죽음ㆍ결혼ㆍ탄생의 풍속은 해체될 위기에 놓여 있는 가족을 하나로 결속시켜 그들 고유의 풍속을 만들어 다음 세대로 전승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풍속은 가족관계에서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고 선택한 결과의 산물인 것이다. 즉 가족의 구성원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시련과 고통을 인내하면서 그 풍속을 전승하게 되는 것이다. 『혼불』에서 죽음은 청암부인과 홍술의 죽음이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그리고 청암부인의 죽음은 종손부 허효원에게로 그 넋이 옮아가 죽어도 죽지 않는 윤회의 고리를 형성한다. 『혼불』의 또 다른 계층은 홍술의 죽음은 ‘투장’이라는 죽음의 풍속을 등장시켜 좀더 치열한 신분의 차이와 갈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가족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키려는 시대의 다양한 변화 속에서도 이들이 지키려는 가족의 윤리와 도덕이 항상 존재한다. 핏줄의 보전과 가문의 순수성을 지속하기 위한 의미가 강한 『혼불』의 결혼은 불행을 암시, 그 불행 속에서 굳건히 서는 여성 가장과 그 여성 가장 때문에 부유하는 식민지시대의 가장의 모습이 부각되는 결혼이다. 또한 해원의 한 양식으로 등장하는 망혼제는 결혼의 색다를 의미의 풍속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흡월정의 풍속과 함께 보이는 『혼불』의 탄생은 가족의 구성이 해체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생명의 자양분으로 새로운 세대의 주역으로서 가문의 대를 잇고, 신분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혼불』은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빚어지는 다채로운 삶의 모습과 당대의 사회적인 문제들까지 가족이라는 창을 통하여 다양한 시선으로 여과하고 있다.
남성중심의 정치ㆍ경제 체제와 부계혈통 중심의 가족제도가 정착함에 따라 여성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었으니 이런 사회에서 여성이 불임이라는 것은 존재의 근거를 상실하는 일이었다. 그 동안 불임여성은 남녀 모두에게 불완전한 여성으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어머니가 되지 못하는 죄책감과 열등감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불임이라는 존재의 위기에 당면해 여성은 비로소 자기 몸이 타자를 위한 공간으로만 여겨져 왔음을 인식하게 되며, 자신이 주체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이 논문은 90년대 후반 발표된 소설 가운데 불임여성이 주된 작중인물로 등장하는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 김인숙의 「거울에 관한 이야기」, 김형경의 「세상의 둥근지붕」, 차현숙의 「나비, 봄을 만나다」를 대상으로 불임여성의 파멸의 양상과 그들이 모색한 치유의 방략을 고찰해 보았다. 네 편의 소설 가운데서 서술자를 남성으로 내세운 「아내의 상자」는 부부의 서사로, 가부장제사회에서 불임부부가 어떻게 파멸하는지를 보여준다. 규격화된 도시문명 속에서 두 부부는 불임인 채로 남편은 평온으로 위장된 황폐한 껍데기의 삶을 살고, 아내는 의식이 마비된 채 폐기되고 만다. 이에 반해 서술자를 여성으로 내세운 「거울에 관한 이야기」, 「세상의 둥근 지붕」, 「나비, 봄을 만나다」는 페미니즘 가족 로망스로 불임여성이 모색한 불임 치유의 방락을 보여준다. 불임 모티프는 여성의 자기 정체성 확립의 기제로 작용한다. 모성만을 유일한 여성적 가치로 여기려는 가부장제에서 모성이 억압의 굴레가 아니라 창조적 기쁨의 근원이 될 수 있는 방안, 생물학적으로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여성의 자아 정체성 확립의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된다. 사실 남성은 모두 불임인데 불임의 불모성을 문제삼는 것은 언제나 여성이다. 불모성의 남성성을 중심으로 형성 유지되어 온 가부장제의 불모성을 치유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불임 치유의 방략은 필수적인 일이다.
공선옥 작품에서 광주항쟁 모티프는, 아이 모티프와 함께 ‘사람답게 살기 위한 생명줄’의 의미로서, 일상에서 끊임없이 일탈을 꿈꾸게 하기도 하고 현실적ㆍ일상적 삶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 공선옥 작품에서 광주항쟁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생명줄로 작품 전체의 원체험으로서 작용한다. 또 아이는 에미의 목숨줄을 붙여주는 유일한 끈, 목숨줄이 된다. 이 광주항쟁 모티프와 아이 모티프는 둘 다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여 주체적인 삶을 사는 데 필수적 요인들이다. 이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시대의 유물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부권적 질서나 중산층 이데올로기에 바탕한 허위의식인 낭만적 사랑이나 모성 이데올로기를 과감히 배격한다. 부권적 질서나 낭만적 사랑을 배격한 바탕 위에 공선옥은 자매애적 유대라는 자궁가족 관계를 벗어난 진정한 인간적 유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자매애적 유대는 여성이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가부장적 제도 바깥에 자신을 자리매김함으로 삶의 공간을 좀더 확장하고자 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매애적 유대는 딸들과의 관계를 강화한다. 가족 안에서는 엄마와 딸, 자매들의 관계, 이웃 여자들과의 관계로 확장하여 인간적인 유대를 강화한다.
본 논문은 한국적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드러나는 현대 한국 남성과 여성의 지위를, 소설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남성상과 여성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러한 작품들이 독자들(본고에서는 교육적 관심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학생을 더 염두에 두고 있다.)의 성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하여 이에 대한 교육적 처방의 필요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살펴볼 두 소설은 이문열의 『선택』과 김정현의 『아버지』이다. 두 작가의 작품이 주목을 요하는 이유는 이들 두 작품의 문학적 성취에 관한 논의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것이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민감한 한 대응이었다는 점, 그리고 이들 두 작품이 모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대중에 끼친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가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 분담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남성 작가가 그림으로써 남성중심 사회에서 지배적 시각을 어느 정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소설의 분석을 통해 한국의 가부장제가 가장의 지위에 대해 과중한 책무를 부과함으로써 강한 남성 콤플렉스를 유도하면서 남성의 희생을 정당화하고, 그리고 사적 공간 안에서 여성의 역할을 미화하고 절대화함으로써 여성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두 작품의 대중적 성공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이 어떤 식으로 유지, 관리되는지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성 역할을 간접적으로 규범화하여 독자 개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남성으로서 혹은 여성으로서 사회적 역할에 대한 내면화에 이르도록 하는 과정과 결부되어 있다. 이는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역지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어서, 이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교육의 장에서 일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직접적인 개입과 조정을 통한 것이 아니라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이 구성되는 지점을 응시하고도록 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하고 유형화시키며 재구성해 냄으로써 이를 다양한 삶의 가능성 속에서 변화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성 정체성 형성과정에 자신의 성찰적 의지를 반영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러 역할들과 규범, 관습들 및 이에 대한 기대치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규정적인 구조가 존재하므로, 상호 인식의 복잡 마묘한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기 원하는 개인이라면 이러한 요소들을 잘 선택하고 재생산해 내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교육적 맥락에서도 수동적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서의 학습자의 위상을 재정립함으로써, 자신의 삶의 환경에 능동적으로 개입해 나가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남성 지배의 과정 혹은 자본주의 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특성화된 모성애나 혹은 강한 남성상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시 보게 하고, 문학작품이나 대중매체에서의 재현물을 통한 추체험 빛 비판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속한 가족과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능동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관여하게 하는 것의 의미는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본고의 주장이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나혜석의 처녀작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1917년 6월에 씌어진 나혜석의 처녀작은 우리 여성소설사에서 최초의 여성소설이 되며 10년대 우리 문학의 간과해서는 안될 성과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자계』 창간호에 여성소설이 한 편 실려 있다는 것은 알려졌으나 그 소설이 누구의 소작인지, 그리고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필자는 20년대에 등단하여 60여 년 활동한 여성작가 박화성의 글에서 나혜석의 처녀 단편에 대한 증언을 발견하고 이 증언을 토대로 하여 나혜석의 처녀작의 실재와 그 내용을 고증하고 밝혀보았다. 나혜석의 처녀작이 실려 있는 『여자계』 창간호는 등사판과 활판 두 가지이다. 이 가운데 활판 창간호가 나혜석의 처녀작이 실려 있는 『여자계』 1호라는 것을 전영택의 글 등을 참고하여 우선 고증하였다. 다음 박화성이 증언하고 있는 작품의 내용이 나혜석의 다른 글을 말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한 결과 나혜석의 「부부」는 다른 어느 글과도 같지 않음을 밝혔다. 다음 필자는 처녀작 「부부」가 다루었다는 봉건적 유습에 희생당하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나혜석의 글들과 이광수의 조혼의 비극 등 당시 지식인사회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논설들을 참고하여 살폈는데, 그 내용이 대략 '축첩'에 관련한 것이리라는 추측이 가능하였다. 한편 나혜석과 춘원 이광수가 친밀한 관계였으며 나혜석의 소설 쓰기에 이광수의 지도가 있었으리라는 전제 아래, 이광수의 10년대 소설 가운데, 봉건적 유습에 희생되는 여성의 비극을 그린 단편 「무정」과 나혜석의 「부부」를 비교하여 보았다. 이 비교는 나혜석이 다른 소설에서 보여준 소설기법으로 미루어 이광수와 어떻게 다를 것인지를 짐작해 본 것이다. 이 역시 박화성의 증언, 억울하게 학대받는 한 여성이 봉건적 유습에 희생이 된 '생활상이 재치있게 잘 그려져 있다'는 것에 근거한 추론이다. 본고의 고찰로 나혜석의 처녀작은 「부부」이며 이 소설은 1917년 6월 30일자로 발간된 『여자계』 창간호에 실렸고, 이 소설에는 억울하게 학대받는 한 여성이 봉건적 유습(아마도 축첩)에 희생되는 생활상이 재치있게 그려져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1933년에 나혜석이 장편 『김명애』를 썼다는 기록과 더불어 우리는 이제 우리 여성소설사에서 나혜석의 「부부」가 최초의 여성소설이며 나혜석이 곧 최초의 여성작가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본고는 나혜석의 소설 「경희」에 대한 담화론적 연구이다. 지금까지 나혜석과 그의 작품에 대한 논의는 실증적 역사 전기비평ㆍ반영론ㆍ페미니즘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페미니즘 비평은 텍스트를 이젠 좀 정치(精緻)하고 세련되게 읽을 때도 되었다고 보는데 여전히 과격하고 범박한 상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성문학의 사회과학화나 심리주의 편향의 외재적 연구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꼼꼼하고 다양한 방법론적 읽기가 필요한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문학작품도 결국 작가와 독자 사이의 소통을 전제로 한 언술행위인 것에 주목하고 나혜석이 「경희」를 통해서 보여준 담화의 연행양식을 검토해 보고자 했다. 더욱이 나혜석처럼 소설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논설을 쓰고 소설조차 지배담론에 대항하는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한 계몽주의 작가의 경우, 소설 장르의 어떤 측면이 그에게 도움을 주었느냐가 담화방식에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담화의 특징은 앎-모름의 위계질서상 교화자가 ‘앎(知)’의 위치에서 피교화자인 무지한 대중을 깨우치려고 하였다면, 나혜석은 타자의 계몽에 덧붙여 자기 다짐이란 담화논리로 남성중심 사회의 반페미니즘 역풍과 신여성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고자 했다. 당대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춘원의 민족개조론보다 나혜석의 신여성론이 덜 위선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경희」 역시 신여성 우위의 교훈성 담화이지만 인물들의 논쟁을 통한 정보전달의 간접화에 의해 노골적 설교투가 아닌 간접설득의 계몽효과를 거둔 것이라든지, 가정내적 사건의 생생한 묘사, 능숙한 일상어의 구사로 긍정적 신여성의 입상화에 성공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 조선의 여성들은 자아의식에 눈뜨고 가정과 사회에서의 남녀불평등의 개혁에 힘을 쏟아 왔다. 그러나 연애와 섹슈얼리티에서도 남녀가 평등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주장은 나혜석이 최초였다. 「이혼고백장」 발표와 거의 동시기에, 나혜석은 소완규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해서 최린을 상대로 고소하였다. 고소내용은 정조유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이다. 이처럼 남편과 연인이었던 남성에 대해서 개인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고발한 것은 나혜석을 시회로부터 고립시키고 배척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개인적인 일로서 처리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섹유얼리티의 문제를 사회화한 것, 당시의 ‘여성문제에 진보적인’ 남성조차 가지고 있던 남녀의 지배·피지배 관념에 항의하였기 때문이다. 사회와 가족의 전통적인 가부장제 구조가, 일제 지배하에서 국가적인 질서에 편입된 가족제도로 바뀌어 가려고 하는 이 시기의 조선에서, 나혜석의 주장은 완전히 이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그녀의 여성해방론의 특징은, 모든 영역에서 남녀의 불평등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종래 여성측으로부터 타부시되어 왔던 섹슈얼리티 영역의 불평등까지 포함해서 강요된 ‘정소’와 ‘처녀성’을 부정한 점에 있다. 이처럼 나혜석의 생각과 그것에 토대를 둔 행동을, 그녀의 ‘특이한 개성’에 의한다고 하면, 그것은 본질에서 배우 벗어난 의론이 될 것이다. 오히려 나혜석의 언설은 극히 현대적인 문제를 던지고 있고, 또한 일본이나 다른 나라의 여성해방론과 비교연구할 만한 제재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