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5-6706
1971년 8‧10 주민항거는 박정희 정권의 돌진적인 자본주의적인 근대화, 대자본을 축으로 하는 경제성장 전략과 그에 수반된 거대도시화의 모순이 드러난 것이었다. 구조적으로는 도시 공간 재구조화 과정에서 발생한 재정 위기에서 기인하였으나, 직접적으로는 이 사건은 정권과 행정당국의 무성의하고 졸속적인 철거민 정책, 그리고 성급한 분양계획 추진과 높은 분양가격과 과세조치 등에 의해서촉발되었다. 이 사건은 교회라는 조직적인 공간, 주로 전매자 중심의 사전의 조직적 청원활동과 8‧10 당일의 예상치 못했던 걷잡을 수 없는 소요가 결합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도시빈민의 군집성과 빈번한 상호접촉, 이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는 동원구조(mobilizing structures)를 형성하여 갈등의 잠재적 기반이 되었다. 8‧10 당일의 사건은 적대적 폭발(hostile outburst)의 양상을 지녔는데, 초기대책위 단계 이후 전체 과정을 종합해보면 주민항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도시 봉기의 양상을 띤 이 군중행동을 항쟁이라고까지 부를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의행동이 권력집단을 공격한 것이 아니고, 추상적 지배구조의 변화를 목표로 하면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정부의 몇몇 정책에 대한 단순 항의와 분노에서 촉발된것이었기 때문이다. 군중들이 일시적인 흥분으로 인해 분노가 폭발하기는 했으나서울시 측이 요구조건을 수락하자 당일 하루의 시위에서 끝나고 말았으며, 당일의 군중들의 행동도 이후의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할 정도로 다분히 일규(一揆)적이고 표출적이었다.
The 8‧10 People’s resistance at Gwangju Grand Housing Complex in 1971 occurred by the government and Seoul city’s shortsighted, unprepared policy for the urban poor in moving them to a new settlement, Gwangju Grand Housing Complex. When the government imposed far expensive sale price for the land than expected, those who bought the partitioned land organized a committee in order to reduce the price by appealing for the government. While Jaeil church and local elites led by Chun Sung-Chun represented the people’s demand in the beginning and created a space for mobilization, the crowd gathered for demonstrating their grievances on August 10 violently expressed their enragement, which proved the biggest people’s resistance since the Korean War. The people’s violent action of the day seemed like hostile outburst with no clear goal or target. As it remained an autonomous peoples’ resistance, it stopped on the day’s afternoon when the crowd heard the news that Seoul Mayor, Yang Tack-sik accepted all the demand the representative committee. Although the incident occurred and ended suddenly and in violent fashion, it left some important lessons both on the government’s city-restructuring policy and urban poor’s social movements there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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