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5-6706
본 연구는 강력한 중앙권력이 주도하는 도시개발이 공간, 특히 ‘수도’에 미치는 영향을알아보기 위하여 8월 전원회의 사건 전후 평양의 도시계획을 분석하였다. 한국전쟁 이후인민경제 3개년계획을 초과 완수한 북한은 새로운 경제계획 수립과 더불어 평양의 도시계획의 방향성 또한 수정해야 했다. 인민경제계획 3개년 기간 동안 경제계획과 연동되어 진행된 평양의 도시계획은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지역을 재정비하고, 상징(중심공간), 즉 김일성광장 주변을 정비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때문에 새로운 경제계획하에서는 도시를대대적으로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발한 것이 ‘8월 전원회의 사건’이었다. 8월 전원회의 사건 이후 김일성이 강력한 중앙으로서의 힘을 갖게 되자, 평양의 도시건설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전후 복구 시기에 집중했던 공간 이외의 공간에 도시계획사업을 진행하였으며, 건축을 설계하는 방식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조립식건축방식을 택하였다. 조립식건축방식은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채택했던 시공방식이었지만, 북한의 경우 이 시공방식을 당시의 상황에 맞게 개편하여 받아들였고, 그 결과 ‘평양속도’ 라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선행연구에서는 이 시기를 분석할 때 주로 ‘평양속도’와 ‘조립식건설’에 집중하여 ‘성과의 시기’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시기를 ‘찬란한 성과’의 시기로 결론짓기에는 많은 정치적인 상황과 복잡한 국제정치 상황이 존재하며, 성과로 인한 부작용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인민경제 5개년계획 기간의 정치상황과 도시계획사업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서 현재까지도 기적처럼 여겨지고 있는 ‘평양속도’의 배경으로작용하는 이 시기를 재검토하고 북한의 정치적 상황과 김일성의 강력한 중앙집권이 완성한평양의 도시경관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