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18-19세기의 야담집에 수록된 강간' 과 간통의 서사는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한 남녀 간의감정적 교류에서 나아가 이것을 체험하고 표현하는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 및 그들이 기반해 있는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구현한다. 해당 시기의 야담집에서 강간은 명백한 범법 행위로 간주되지만, 피해자 여성의 입장을 소거시킴으로써 이를 정당화하거나 성적 충동을 긍정하면서 이를 사랑 으로 호도하고, 상호적 합의에 따른 것으로 기술함으로써 그 폭력성을 회석화시키기도 했다. 이는 당대적 지배 이념에 포섭된 서술 주체와 서술 시각의 권력성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폭력의 회생이 되는 대상들은 신체적 약자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육체에 대한 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사회적 약자로 확대되었다. 피해자 여성이 강간을 천생연분이나 인연론으로 수용한 것은 자신의 사회적 생존을 연장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처럼 '폭력' 이 사랑 이나 운명으로 환치되는 형식은 여성의 신체가 공동화되고 소외되었던 당대적 현상을 반영한다. 또한 부부 관계 이외의 성적 교유나 쾌락을 중심으로 한 남녀관계는 개인적 '사랑 의 영역을넘어서 사회적 범죄의 대상으로 인식되었으며, 특히 당사자 여성에게 처벌이 집중되었다. 이는 상호성에 근간한 사랑 의 영역이 사회적으로 관리되고 통제되었음을 입증하며, 성에 대한 불평동한 인식이 지배적이었음을 시사한다. 그 과정에서 사생활의 영역을 차압당한 '관기' 나 궁녀' 의 개인적 사랑은 '간통' 이라는 불명예의 대상으로 지목됨으로써, 특정한 사회적 조건이 '사랑의 경험' 을 범법 의 대상으로 규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서사적 담론은 주로 야담의 주요 향유층이었던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기술된 결과로서, 섹슈얼리티가 일방적으로 행사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회생자가 되었던 여성의 음성이 배제된데서 연유한다. 이러한 서술 시각에 의해 통제되는 이야기의 논리는 현실의 특정한 세계 인식의내용을 문학의 형식으로 향유하게 함으로써, 이를 이데올로기적인 담론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취향과 유희의 소비 수단으로 설득하는 문화적 힘을 발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