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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07월 03일(수)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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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서 '우리'로: 허정숙과 근대적 여성주체

From ‘I’ to ‘We’: Heo Jeong-Sook and the Modern Woman Subject

여성문학연구 / Feminism and Korean Literature, (P)1229-4632; (E)2733-5925
2015, v.0 no.34, pp.89-148
이소희 (한양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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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신여성들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인물, 허정숙이 공적인 지면에 발표한 구체적인 자료들과 그의 여성운동 활동 궤적을 미시적으로 읽어냄으로써 그가 추구했던 근대적 여성주체의 개념과 변화과정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지금까지 허정숙 관련 연구는 “붉은 연애”와 사회주의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이 대부분이지만 본 연구는 허정숙을 “조선의 여성주의 운동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것이다. 연구대상으로 삼은 시기는 1920년 여름 그가 <조선여자교육회> 활동에 가담한 시기로부터 1926년 5월 미국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이다. 허정숙은 이 시기동안 조선 여성들이 “이중 노예”의 생활에서 “개성”을 가진 “근대적 여성주체”로 변환할 것을 주장했고 그 자신이 단발 등의 행위를 통하여 문화적 여성운동을 직접 실천했다. 1920년 여름부터 조선 최대의 여성교육운동 단체인 <조선여자교육회>를 통하여 계몽주의 여성운동에 참여하였고 1922년 이후 상해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입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사회주의 여성운동으로 방향 전환을 하였다. 1924년 5월 <조선여성동우회>의 창립 발기인으로, 또 1925년 1월 <경성여자청년동맹>에도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특히 1925년 3월 8일 조선 최초의 “국제부인데이” 기념행사도 주도하였다. 1924년까지는 “나” 여성사회주의자 허정숙으로서 “여성해방은 경제적 독립이 근본”이라는 점을 선언적으로 주장하였으나 1925년 1월 입사한 『동아일보』에서의 경험은 식민지 조선사회의 현실과 “우리” 조선 여성의 여성문제를 더욱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경험은 허정숙이 식민지 조선사회의 현황을 진단하여 여성문제 해결을 위해서 어떤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야 하는가에 대해서 미래지향적 관점을 갖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그 결과 1925년 하반기부터 『신여성』에 발표된 허정숙의 글들은 주로 “우리 조선여성”들이 어떻게 근대적 여성주체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선여성의 개인적 자아 “나”와 조선여성 전체 “우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우리 조선여성”들이 함께 개선해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즉 조선여성 개개인이 봉건적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자아”를 인식하고 “번민”하여 “근대적 여성주체”로 전환하고 “우리의 OOOO의 결함에 대해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우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여성사회주의자로서의 면모보다는 “우리 조선여성”이 처해있는 봉건적 일상생활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을 추구하는 “조선의 여성주의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봉건에서 근대로 이행하던 시기인 1920년대 초ㆍ중반 “조선의 여성운동가” 허정숙은 조선여성 개개인 “나”의 차원에서 개성적인 여성주체가 되는 의식혁명으로부터 조선여성 전체 “우리”가 근대적 여성주체로 나아가기 위해서 사회 구조적인 개혁에 힘쓸 것을 주장하였다.

keywords
Heo Jeong-Sook, Modern Woman Subject, New Woman, Women’s Movement, Woman, Gender, 허정숙, 근대적 여성주체, 신여성, 여성운동, 여성, 젠더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the changing process of Heo Jeong-Sook’s focus on the women’s movement from the “I” of each Joseon woman’s personal self to the “we” of the whole of Joseon women’s modern subjectivity in the colonial Joseon society of the early 1920s. It focuses on Heo Jeong-Sook’s points of view on the subject of modern woman as influenced by socialist feminism and the modernization of the colonial Joseon from 1920 to 1926, just before she left for the USA in May 1926. As a feminist activist, Heo Jeong-Sook was first involved in the women’s education movement in 1920-1921, because women’s education was necessary for the transformation of family and home and, finally, it would lead to the transformation of colonial Joseon society. In 1921-1924 she learned socialism in Shanghai in China and participated passionately in the socialist women’s movement through socialist organizations. After working as a newspaperwoman in Dong-A Ilbo in early 1925, she could understand the hostile life-circumstances of all Joseon women, whereby they were doubly treated as slaves, both personally and economically. She wrote her own feminist ideology for the modern woman in the contemporary feminist magazine New Woman in 1925-1926. She urged that Joseon women should struggle not against men or their husbands, but against traditional customs and the everyday lifestyle. She thought that, because Joseon women were under multiple repressions such as feudalism, patriarchy, capitalism and colonialism, the independent women’s movements would be necessary for both sexual and class emancipation in those days. She therefore insisted on revitalizing the keen senses of Joseon women with individual selfhood by resisting the daily patriarchal oppressions. As a kind of cultural icon of the subject of modern woman, she adopted the practice of cutting her long hair along with other socialist feminists, which brought a sensational cultural shark into colonial Joseon society. Based on socialist feminism, Heo Jeong-Sook sought ways of raising feminist consciousness among Joseon women, and finding out what kind of feminist strategy could be effective for the modern woman and efficient for the women’s movement in the early 1920s.

keywords
Heo Jeong-Sook, Modern Woman Subject, New Woman, Women’s Movement, Woman, Gender, 허정숙, 근대적 여성주체, 신여성, 여성운동, 여성, 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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