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본고는 명치유신 이후 일본 정부가 추진한 여러 정책 가운데서 풍속단속의 하나로 나체금지령과 관련한 신체에 대한 제도적 규정과 그 대항담론의 대표작이라 할 요사노 아끼코(與謝野晶子)의 <흐트러진 머리(みだれ 髮)>(1901)를 통해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겪은 신체언설을 조명해본 것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은 풍토적 토양 탓인지 거리낌없이 일상생활 속에서 나체를 드러내도 성에도 개방적이었다. 하지만 명치 정부가 이를 선진 서양문화의 관점에서 야만적 풍습이라고 감추려 들면서 근대화 노선에 저촉되는 생활 속의 알몸은 물론 누드화 따위 예술행위도 금지하자 시민, 정치 지도자, 예술가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신체언설이 난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근대화의 일환으로 도덕, 위생관념을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는 정치권력과 전통적 신체 감각을 가지고 살아온 일반 시민들 그리고 새로운 예술인 서구적 근대미술을 모방하려는 화가들이 나체를 둘러싸고 공방을 펴는 와중에 발표된 아끼코의 시집 <흐트러진 머리>는 남성의 시선에 의해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육체가 아닌 여성 자신에 의한 육체를 적극적으로 표현 한 데 의의가 있다. 요컨대, 아끼코는 국가 권력의 제도적 성 규범과 예술적 신체 미학의 범주도 아닌, 그러면서도 그 모두의 영향과 더불어 전통적 나체의 생활감각을 수용한 주체적이고 새로운 여성 신체를 창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