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본 연구는 한 개인 여성의 내면을 따라가는 여성 서사로서 최정희의 『끝없는 낭만』이 지닌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해방기 양공주 소설’이라고 알려진 이 작품은 ‘국제결혼’이냐 ‘양공주’냐의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한 여성 개인의 비극을 그려내고 있다. 최정희가 1952년 당시 양부인들과 이웃하여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하였다고 밝힌 이 소설은 그들의 일상적 어려움을 내면에 초점을 맞춰 조명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여성 내면의 감정을 입각점으로 삼고 세 가지 측면에서 최정희가 파악한 양공주 문제에 재접근하고자 하였다. 주인공 이차래는 아버지와 약혼자 배곤을 비롯한 타자의 시선을 아프게 의식하며 수치심을 강요받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사회 규범에 부합하지 못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욕망은 도리어 욕망의 주체에게 수치심을 유발하는 원인이된다. 수치심은 우울증, 불안장애, 중독, 자살 등 문제와도 연결되며 양공주 문제에서 파생되는 문제와 별개로 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차래를 중심으로 서술되는이 서사에서 주변 인물로 인텔리 여학생 한상매와 양공주 정순자가 등장하여 이차래의 내면에서 불화하는 두 가지 정체성을 더 돋보이게 비춰주고 있다. 특히이차래의 최후를 함께 해준 사람은 혈연이나 결혼으로 맺어진 사람이 아니라 양공주 정순자라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마지막으로 이차래를 더욱불행하게 만든 상황은 혼혈아의 어머니라는 사실이었다. 혼혈아 아들의 이질적외모와 남편의 부재라는 문제를 타개하기 위하여 이차래는 아이를 영아원으로보내는 방법, 즉 해외입양을 보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차래가 눈으로뒤덮인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는 신체적 증상은 불안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며 그녀의 죽음은 이미 서사 곳곳에 배치된 여러 단서를 통해 예고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가족으로의 ‘귀환’이 아니라 가족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로이 서사는 완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