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조선후기 대하소설은 당대의 문화를 섬세하게 재현해냄으로써 단순한 ‘서사물’을 넘어서 ‘문화의 집적체(集積體)’로서의 면모를 지닌다. 그 중 「유씨삼대록」은 특히 당대의 문화를 실제에 근접하게 재현하려는 의식이 강한 작품으로,작시(作詩), 연회(宴會), 잡기(雜技), 친잠의(親蠶儀) 등의 여성의 놀이문화에관한 형상화가 매우 구체적이었다. 먼저 여성들의 작시 문화에서는 한 집안의 여성들이 모여 시를 짓는 데서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도 참여하여 시에 대해 품평을 함으로써 남녀 간의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이를 병풍으로 제작하여 남김으로써 두고두고완상했던 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여성들 간의 깊이 있는 연대의식, 그리고 여성과 남성 간의 깊이 있는 소통이 작시 문화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여성들의 연회 문화에서는 여성들끼리 모꼬지를 열어 즐기는 과정에서의 상을 차리는 방식, 상에 올리는 음식, 연회자리에서의 예절 등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상층의 가문에서는 상을 개인별로 차려서 먹었고,이러한 음식에는 산해진미와 더불어 그간 아껴두었던 술까지 내어와 즐겼으며, 이런 과정에서 때로는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던 정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윤리교과서적인 연회 문화의 재현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기 쉬웠을 생생한장면들이 이들 연회에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세 번째로, 바둑, 투호 등의 잡기 문화는 여성의 놀이문화 중 일상적이라고할 만큼 빈번히 등장하며, 여성이 자발적으로 하기보다는 어른의 명령을 받고어른들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남녀 간에 하는 경우도 부부 혹은 남매간의 범위를 넘지 않아 일정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있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아내가 자신을 박대한 남편을 잡기에서만큼은 손쉽게 이기는 장면을 설정함으로써 놀이문화가 주는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라는통쾌함을 표출하고 있었다. 네 번째로, 친잠의는 일종의 궁중의식이지만 성대한 놀이문화로서의 성격을띠면서 최상층 여성들의 놀이문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궁중에서 친잠의를 준비하는 입장이 아니라 친잠의에 초대받은 최상층 가문의 여성들의 입장에서 친잠의에 관해 형상화함으로써, 친잠의 자체에 대한 절차뿐만 아니라이런 연회에 참여하는 기대와 흥분, 그리고 영광스러움까지 담아내고 있었다. 이처럼, 「유씨삼대록」에서는 상층 여성들의 놀이문화를 섬세하게 형상화하고있으며, 이 중 시를 병풍으로 만들어 향유하는 장면, 궁중의 연회인 친잠의에참여하는 장면 등은 「유씨삼대록」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유씨삼대록」에 묘사된 여성의 놀이문화는 실록, 문집 등의 문헌기록에도간혹 보이는데, 이들 기록은 「유씨삼대록」에 재현된 여성의 놀이문화가 사실에 바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한편, 실록 등에서는 놀이문화에대해 소략하게 서술하고 있어 여성들이 이를 즐겼을 때의 감흥 등에 대한 내용은 소거되어 있기 쉬운데 「유씨삼대록」에서는 이런 놀이문화를 하나의 영상처럼 선명하게 형상화함으로써 구체성을 확보한다. 이처럼 실제 역사 기록 속의 여성의 놀이문화와 「유씨삼대록」 속의 여성의 놀이문화는 상보적으로 공명하면서 조선후기 여성의 놀이문화를 재구해 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최근의 옛 놀이문화에 대한 연구가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간혹 보이는 여성의 경우에도 일반 여성들의 놀이문화를 위주로 이루어진데 반해, 「유씨삼대록」 등의 대하소설은 상층 여성들의 고급한 놀이문화를 부각시킴으로써 조선시대 여성의 놀이문화를 재구해내는 토대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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