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린은 반복적인 일상이나 몰개성적인 삶을 견디지 못하는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예외적 개인으로 이해되어왔다. ‘실존’과 ‘자기’를 추구하는 그의 목소리는 관념성을 부각하는 것이자 타인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실과 불화하는 그의 의식세계는 ‘참된 자기’로 살아가기 어렵게 하는 억압적 현실과의 긴장과 경합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전혜린이 추구했다고 여겨지는 관념적 가치들이 어떠한 맥락에서 생산되었고, 현실 문제와 어떠한 관련성을 띠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혜린의 ‘자기’를 추구하려는 실천적 행위는, 그 과정에서 장애가 되는 당대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관념 속에 굳어진 젠더 규범을 거부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여성성을 내면화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전혜린은 한 개인이 여성성과 남성성에 속하는 면면들을 넘나들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분법적 젠더체계의 견고함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때, 본질화된 젠더를 횡단하는 힘은 ‘자기’가 인식되는 찰나의 순간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자기 상실을 유도하는 고착화된 성역할 논리 속에서, 전혜린은 여성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이 부조리함을 응시하는 것만이 인습과 타인의 시선을 따르지 않는 ‘자기’의 삶을 살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샤르트르, 보부아르 등의 실존주의 철학과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등 그가 읽었던 책에서 나타나는 사유들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인다. 또한 독서를 통해 만난 단일한 정체성으로 규정되지 않는 복수의 여성‘들’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번역을 비롯한 산문에 담아냄으로써 공론장의 젠더 규범과 화합하지 않는 사유를 보여주었다. 이는 전혜린이 자신의 현실과 투쟁하고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글쓰기 실천의 동력과 방법을 그가 읽은 책과의 영향 속에서 키워나갔음을 알게 한다. 이처럼 전혜린은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 젠더 규범을 동요하게 하는 문화적 실천을 수행했다. 규범화된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기’를 만들어가는 개인을 강조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당대 이분화된 젠더구조를 무너뜨리는 수행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볼 때, 전혜린 문학에서 발견되는 평범함과 속물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구체적 현실을 도외시하거나 현실 밖으로 탈주하고자 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일면적인 해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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