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법문화(legal culture)에서 여성이 겪는 상해(injuries)는 자주 인식되지않거나 그 피해가 배상되지 않는다는 점에 초점을 둔다. 김인숙의 『긴 밤, 짧게다가온 아침』을 법적 조치의 범위 바깥에 놓인 여성의 고통을 서술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여성주의 법학의 관점에 기대어 다시 읽고자 한다. 학출 송은재와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약속하는 인물 정만우의 만남을 그리며 ‘노동자의 고통을 사랑으로 위로하는 소설’로서 위치 지어져 온 이 작품을 본고에서는송은재의 마음에 주목하여 재독한다. 성폭력이 육체적인 폭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자기결정의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억압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성적 자기결정(sexual self-determination)’ 은 당대 여성운동 내부에서도 자리매김이 녹록지 않았다. 성폭력 피해자 여성의 ‘성’보다는 ‘인간’, ‘민족’이라는 광의의 개념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공유되고 있던 이때, 자신을 강간한 정만우를 “훌륭한 진짜 노동자”로 성장시키려는 마음과 그를 향한 “적의”를 동시에 품고 있는 은재의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주목된다. 이 ‘눈에 띄지 않는 부끄러움(low-visibility shame)’은 요컨대 사회적 순응을 의심하는 강한 ‘적대’로 남아 시민의 위계(subordination of women)를 독자에게 노출하고 있다. 노동자의 함성과 성폭력 피해자 여성의 함성이 모두 ‘소란’ 정도로 축소되어 잘 들리지 않던 시기, 법정이라는 장치 위에 노동자의 외침은 가득히 울려 퍼지는 것으로, 성폭력 피해 여성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은 기이한 “평화” 속에 잦아들게 되고 마는 것으로 재현(representation)하는 이 소설은,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동의에 기초한다고 했을때, 민주주의 체제에 돌입했다고 여겨지는 1990년대 초 한국에서 그렇다면 누가‘민주시민’으로서 호출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일찍이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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