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1990년대 문학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지, 그 재현의의미가 무엇인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은희경과 전경린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가이다. 은희경과 전경린의 초기 작품을 통해 1990년대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면서 특히,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지점으로 당시 성해방 담론의 영향력이 커가던 상황에서 그녀들의 작품 속 여성 인물이 취하는 섹슈얼리티가 재현되는 방식과 이것이 갖는 문학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겠다. ‘사랑’이라는 범주 안팎에서 이뤄지는 섹슈얼리티는 사랑이나 연애가 어떤권력 관계에 기초하는지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무성적이거나 남성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했던 상황에서 여성의 성욕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여성의 성적 쾌락과 만족이 무엇인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재구성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래서 여성 문학은 지금까지 의미화하지 못했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술해야 했고 1990년대에는 이에 대한 예술적 실험이 본격화된 시기라 할수 있다. 은희경은 『새의 선물』을 통해 사회의 지배적 정서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규범적 여성성이 가진 불합리함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은결국, 금기에 대한 도전이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런 금기에 대한도전은 결혼제도와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면서 쾌락 추구를 위한 섹스, 사랑 없는 결혼도 가능하다는 도전으로 이어진다. 은희경의 초기소설은 금기에 대한 도전과 낭만적 사랑에 대한 회의, 그리고 단순한 쾌락추구를 위한 섹스 등을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그리고 전경린은 가부장제와 규범적 섹슈얼리티를 위반하는 정념의 분출을통해 기꺼이 파탄을 향해 몸을 던지는 방식으로 여성 섹슈얼리티를 탐색한다. 전경린은 철저하게 불행하기를 감수하면서 온전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 내면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심연의 저편을 향한 실천을 모색한다. 전경린은 규범적 세상에서는 죄가 될 수 있는 사랑을 하는데 죄책감이 없다. 그리고 현실의 파탄을 우회하지 않고 여성 섹슈얼리티를 추구하는데, 이는 여전히 모호하고 애매하지만 비유와 상징을 통해 전복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1990년대 여성작가들이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해 문학적 형상화를 시도했다는 것은 이전 시기 성해방담론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여성작가의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재현은 그 의미가 덜 저항적이더라도 훨씬 현실에 가까운 방식으로 여성의 욕망과 현실을 반영한다. 남성에게 만족을 연기한다는 것, 관계와 섹스에 집중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은희경의 생존전략이었다면, 전경린은 정념의 분출을 통한 가부장제에 대한 위반과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무정형의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온전한 자기가 되려 했다. 이는 각각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서 규범화된 여성성을 요구하던 시기, 이를 거부하고 금기를 깨고 위반을 도모하는 불안한 상상력의 재현 방식이었고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를 모색하는 과정의 출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은희경, 『새의 선물』, 문학동네, 1995.
은희경, 『타인에게 말걸기』, 문학동네,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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